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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hiyou Higuchi,ひぐち いちよう,히구치 나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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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면 발끝까지도 닿을 듯한 머리를 위쪽에 꼭 묶어서 앞머리를 크게 틀어올린 머리 모양은 무거워 보이기도 하고, '샤구마'라는 이름도 좀 무섭지만, 이것은 요즈음 유행하는 것으로 유곽에서뿐 아니라 양가의 따님들도 많이들 한다. 다이코쿠야의 '미도리'라는 아이는 흰 살결에 콧날이 오뚝하고, 입매가 작진 않지만 야무진 편이라서 보기에 흉하지 않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미인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말하는 목소리는 가늘고 맑으며 남을 대할 때는 애교가 넘치고, 행동에는 활기가 있어서 보기에도 기분이 좋다. 감색으로 나비 무늬를 크게 수놓은 유카타를 입고, 검정색과 흰색으로 앞뒷면의 색을 댄 '쥬야오비'는 가슴까지 높게 올려 매고, 발에는 옻칠한 뒤가 둥근 게다를 이 근방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높은 것으로 신고 아침 목욕을 다녀오면서 목을 하얗게 칠하고 수건을 걸치고 서있는 모습을 보면, '3년 후의 모습이 기대된다'고 유곽의 젊은이들은 말할 정도로 예쁘다.
* 샤구마 : 부풀린 머리를 넣어서 크게 머리를 올린 일본 전통식 머리 모양을 말하는데 원래는 유녀들이 하다가 명치 20년경부터 일반인들도 하게 되어 화족여학교의 학생을 비롯해서 양가의 자녀들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이름이 '빨간 흙색의 곰'이라는 한자와 뜻을 지닌다고 해서 이름이 무서워 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 쥬야오비 : 검정색과 흰색을 앞뒤로 대서 만든 허리띠로, 검정색은 밤을, 흰색은 낮을 나타내고 있다. --- pp 2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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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서리 내린 아침. 수선화의 조화를 격자문 밖에서 안으로 넣어둔 이가 있었다. 미도리는 까닭없이 그리운 생각이 들어서 선반 위에 있는 작은 꽃병에 꽂아두고는 그 외롭고 깨끗한 모습을 바라보며 아꼈다. 그런데 어디선가 구름처럼 전해진 얘기로는, 그날 아침이 신뇨가 다른 학교에 가서 스님이 되는 수행을 시작한 바로 그 날이었다고 한다.
--- pp 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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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도랑의 모퉁이를 돌아, 언제나 지나다니는 좁은 길을 거슬러가서, 다이코쿠야 앞까지 왔을 때, 운 나쁘게도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점점 거세진 바람은 검은 우산 꼭대기를 붙잡아 하늘로 잡아 올릴 것만 같다. 이래선 안된다고 발에 힘을 주고 버티는 순간,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게다의 앞 끈이 줄줄 풀어지는 것이다. 우산보다도 이쪽이 더 큰일이다.
신뇨는 난감해 혀를 내두르면서도 이제 와서 어찌할 방도가 없어 다이코쿠야의 문 앞에 우산을 세워두고, 처마 밑으로 비를 피하면서 게다 끈을 만드는데, 평상시 이런 일을 해본 적도 없는 스님에게 그것은 여간 여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은 서두르지만 아무리 해도 끈은 쉽게 매어지지 않았다. 하다하다 소맷자락에서 글짓기 초고를 쓴 종이를 집어내어 쭉쭉 찢어 새끼를 꼬아보기도 하는데 심술맞은 태풍이 또 불어와서 세워놓은 우산이 데구르르 굴러간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하고 '웬수 같은 놈' 하고 말하고는 잡으려고 손을 뻗치지만 오히려 무릎 위에 얹어 놓았던 보따리가 땅바닥에 떨어져서 흙투성이가 되어버리고 옷자락까지도 더러워졌다. 비 오는 날에 우산이 없고 도중에 게다 끈마저 끊어지는 것만큼 보기에도 딱하고 불쌍한 일도 없다. 그때 마침 미도리가 창호지 문 속에서 유리너머로 밖을 내다보다가, '어머, 누군가 게다 끈이 끊겼나 봐. 어머니, 끈을 줘도 좋을까요?'라고 묻고는, 실 바구니에서 유센의 염색 무늬가 있는 헝겊조각을 움켜쥐고 뜰의 징검돌을 따라서 서둘러 나왔다. --- 7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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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구치 이치요는 우리 나라의 독자들에겐 생소한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이 우리 나라에 완역, 소개되기는 이 작품 <키재기>가 처음이니 그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녀가 일본문학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작지 않은 비중을 생각한다며 우리의 무지는 다소 외외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또한 지금까지 일본문학의 국내소개가 얼마나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단편적이고 편향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단적으로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쓰메 소세키,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다자이 오사무, 이시하라 신타로, 오에 겐자부로, 마루야마 겐지, 마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히라노 게이치로에 이르기까지, 일본문학은 비교적 체계적인 통사와 사조를 배경으로 국내에 꾸준히 소개, 수용되었다. 식미지 시대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소설이 그동안 한국소설의 나아갈 지점을 지시하는 전경이 되었고 모티프로 작용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근년에 이르러 '일본소설에는 (한국소설에는 있는) 형이상학의 전통이 부재한다'는 등의 용감한 비판도 등장했지만 김윤식이 지적한 것처럼 현해탄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웠던 이 땅의 작가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우리가 오늘소개하는 히구치 이치요는 사실 매우 불우한 삶을 살다 간 작가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가적 재능을, 그 심원한 역랴을 미처 다 꽃피우지 못하고 사라진 소위 '요절한 천재작가'이다. 결혼도 하지 않은 스물다섯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는 그녀의 전기적 사실은 근대적 여명기가 가지고 있는 혼돈과 퇴폐의 이미지, 그리고 세기말 문학의 어떤 극적인 성질을 부각시키는 것과 아울러 그녀의 작품세계를 적절히 수식하는 측면이 있다. 사실 이 작품 <키재기>는 히구치 이치요의 문학세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키재기>는 처음에 일본의 유수 문학잡지 <문학계>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옮긴이가 정리한 연보(131쪽)에 의하면 <키재기>는 1895년 1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연재되었다고 한다. 물론 중간중간, 연재가 중단된 적도 있었던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키재기>가 유명한 문학잡지에 연재되면서 히구치 이치요의 작가적 명성은 전 일본문단에 알려지게 된다. 이 작품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오롯이 이 작품이 선취하고 있는 선구적 시대성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신분사회였던 근세에서 모든 민중이 평등한 권리를 인정받는 근대 사회로의 이행기에 이 작품에 미친 히구치 이치요의 소설적 촉기는 매우 유연하면서도 섬세하게 일본 사회를 충격했던 것이다. 소설이 당대의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내는 첨예한 긴장과 갈등, 혹은 시민들의 정치적 의식의 성숙도를 가장 여실하게 내포하고 반영하는 장르라면 이미 히구치 이치요에게는 근대적 문학 장르인 소설에 대한 성숙한 작가적 의식이 싹트고 있었음을 이 작품은 잘 보여준다. 일본의 유곽 마을에 사는, 유녀로 일하는 언니를 자랑스러워하는 매력적인 여자아이 '미도리'와, 미도리의 단짝인 전당포 가게의 아들 '쇼타로'. 그리고 용화사는 절의 주지스님의 아들인 '신뇨', 지력이 모자라지만 천진난만한 '상고로' 등을 내세워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는 말하자면, 근대 이전의 카오스와 근대적 합리성을 지향하는 이성과의 독특한 불협화음이 빚어내는 유니크한 세계이다. 그 세계를 통어하는 것은 일본에서 '닭날'이라고 불리우는 미신과 결합된 재래의 소란한 풍습이기도 하고, 유곽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표상해 내는 야만스러운 봉건적 질서이기도 하다. 히구치 이치요는 일본의 재래적 풍습과 봉건적 질서라는 절대적 조건 아래에서 십대 소년 소녀들 사이에 발생하는 풋풋하 에피소드를 창조해 낸다. 그 에피소드들이 풍부하게 내장하고 있는 긴장과 갈등, 모순 같은 생기들은 곧 일본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근대화의 여러 징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시종 발랄하고 애교 넘치는 캐릭터를 보여주더 미도리가 초경을 맞이하면서 일순 성숙해지고, 그녀가 좋아했던 신뇨가 수선화 조화를 남기고 수행길을 떠나는 작품의 마지막 대미는 상당히 암시적으로 읽히고 있는데 이는 기성의 세계가 보지하고자 하는 가치에 운명적으로 맞서오는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스스로 자각하고 수용하고자 하는 히구치 이치요 자신의 내밀한 욕망의 은유처럼 읽힌다. 내용만을 놓고 살피면 이 작품은 성장소설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미도리와 신뇨, 쇼타로, 조키치 등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이 한참 성장기에 이쓴 십대 소년 소녀들이라는 점, 그리고 이들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조건에 나름대로 반응하고 저항하면서 자아인식, 나아가 세계인식의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에게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그들 앞에 도래할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작가가 의식적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 등은 이 소설이 서구의 전형적인 근대 성장소설의 포맷과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세련된 형식은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별것이 아닐지 몰라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놀라운 작가적 수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키재기>를 쓸 때 히구치 이치요의 나이는 불과 스물넷이었고 그 이듬해 그녀가 요절했으므로 이 소설은 히구치 이치요 문학의 절정기에 씌어진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고유의 풍습, 유곽의 희극적 분위기, 애틋한 첫사랑 등이 유연하게 어우러져 있는 이 빼어난 작품은 일본문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중요한 모티프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