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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시리즈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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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첫째 날 밤의 꿈(第一夜) ― 나쓰메 소세키 / 최재철
눈 오는 날(雪の日) ― 히구치 이치요 / 이부용
귀거래(歸去來) ― 구니키다 돗포 / 권정희
오세이 이야기(お?女のはなし) ― 고이즈미 야쿠모 / 이정희
할아버지 할머니(ぢいさんばあさん) ― 모리 오가이 / 유진우
호색(好色)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김태영
소녀(少女) ― 와타나베 온 / 이남금
어설픈 천사(不器用な天使) ― 호리 다쓰오 / 장유리
불타는 뺨(燃ゆる頰) ― 호리 다쓰오 / 허호
사랑하러 간다(戀をしに行く) ― 사카구치 안고 / 김정희
비용의 아내(ヴィヨンの妻) ― 다자이 오사무 / 배가혜
예언(予言) ― 히사오 주란 / 전은향

저자 소개23

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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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sume Soseki,なつめ そうせき,夏目 漱石,나츠메 긴노스케 夏目 金之助

나쓰메 긴노스케는 원치 않은 아이로 태어났다. 갓난아기 적에 시오바라 가문으로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의 이혼으로 다시 나쓰메 집안으로 돌아왔다. 부모한테서 인정받지 못한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면학에 전념하여 동경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친구에게서 ‘돌로 이를 닦는다’는 뜻의 소세키라는 호를 물려받았다. 그는 거의 평생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이곳저곳에서 영어교사 생활을 전전하다가 일본 정부의 명령으로 영국 국비유학을 떠났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 자기의 본령을 찾느라 유학생활도 실패했다. 소세키는 뒤늦게 하늘이 내린 자기 재능과 자신이 가야 할
나쓰메 긴노스케는 원치 않은 아이로 태어났다. 갓난아기 적에 시오바라 가문으로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의 이혼으로 다시 나쓰메 집안으로 돌아왔다. 부모한테서 인정받지 못한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면학에 전념하여 동경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친구에게서 ‘돌로 이를 닦는다’는 뜻의 소세키라는 호를 물려받았다. 그는 거의 평생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이곳저곳에서 영어교사 생활을 전전하다가 일본 정부의 명령으로 영국 국비유학을 떠났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 자기의 본령을 찾느라 유학생활도 실패했다. 소세키는 뒤늦게 하늘이 내린 자기 재능과 자신이 가야 할 인생을 깨달았다. 도쿄로 돌아온 후 서른일곱 살이 돼서야 기분 전환 삼아 소설 한번 써보지 않겠냐는 친구의 권유로 단편을 하나 쓴 것이 소세키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것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였다. 그는 내면에 가득했던 세계를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도련님』, 『풀배게』, 『우미인초』, 『산시로』, 『그 후』, 『문』, 『마음』, 『열흘 밤의 꿈』, 『봄날의 소나티네』, 『현대 일본의 개화』, 『나의 개인주의』 등 소설, 하이쿠, 수필, 평론, 한시, 강연,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일본인이 사랑하는 국민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국가와 권력을 멀리하였다. 문부성이 박사학위를 선사하자 그것을 거부하였다.

“박사가 아니면 학자가 아닌 것 같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학문은 소수 박사들의 전유물이 되어 학자적인 귀족이 학문권력을 장악하는 폐해가 속출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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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구치 이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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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hiyou Higuchi,ひぐち いちよう,히구치 나쓰

일본 근대 여성 문학의 선구자이자 여성 서사의 신경지를 개척한 인물이다. 본명은 나쓰(奈津), 일본 근대의 서막이 열린 1876년 도쿄의 한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문학적인 재능을 보여 아버지의 권유로 당시 고전을 가르치고 습작하게 했던 하기노야라는 가숙에 들어갔다. 나쓰의 아버지는 본래 농민이었지만 에도 시대의 지배층이었던 무사 계급이 되고자 했고, 마침내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얼마 뒤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 막부가 붕괴하자 그 역시 무사에서 부르주아 시민으로 거듭나야만 했다. 이에 운반청부업조합을 세워 사업에 손을 댔지만
일본 근대 여성 문학의 선구자이자 여성 서사의 신경지를 개척한 인물이다. 본명은 나쓰(奈津), 일본 근대의 서막이 열린 1876년 도쿄의 한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문학적인 재능을 보여 아버지의 권유로 당시 고전을 가르치고 습작하게 했던 하기노야라는 가숙에 들어갔다. 나쓰의 아버지는 본래 농민이었지만 에도 시대의 지배층이었던 무사 계급이 되고자 했고, 마침내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얼마 뒤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 막부가 붕괴하자 그 역시 무사에서 부르주아 시민으로 거듭나야만 했다. 이에 운반청부업조합을 세워 사업에 손을 댔지만 실패로 끝났고, 결국 번민으로 죽어 갔다.

비교적 모자람 없이 배우며 자랐으나, 큰오빠를 폐결핵으로 잃고,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의 죽음으로 16세의 나이에 호주가 된 그녀는 실질적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때 정혼자와도 파혼을 당했다. 이에 일가 호주로서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소설을 써서 돈을 벌기로 결심하는데, 이는 지인의 성공 사례에서 동기를 얻은 것이었다. 아사히신문에 소설을 쓰고 있던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의 문하에 들어가 가르침을 받았다. 이 무렵부터 나쓰는 달마대사가 타고 강을 건넜던 일엽편주에 빗대어 '이치요'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1892년 20세 때 첫 작 「밤 벚꽃」에 이어 「매목」을 발표했지만 큰 수입은 못 되었고, 전당포를 드나들었다. 돈이 바닥나자 급기야 그녀는 어머니와 요시와라 유곽 근처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가운데 『꽃 속에 잠겨』를 발표하기도 했으나, 그러나 잡화 가게도 얼마 뒤 접고 집필에 매진하기 위해 혼고 마루야마 후쿠야마 정(丸山福山町)으로 이사했다. 대표작으로는 『섣달그믐(大つごもり)』, 『가는 구름』, 『도랑창』, 『십삼야』, 『키 대보기たけくらべ』, 『처마에 걸린 달(軒もる月)』등 수작을 완성한다. 『배반의 보랏빛』으로 문학적 전기를 꾀한 듯하나 『바다대벌레』에 모티프를 제공하고 미완에 머물렀다. 1896년 11월, 25세에 폐결핵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하기노야’의 스승 나카지마 우타코는 이치요를 헤이안 시대의 재녀 세이쇼나곤에 비유했다.

23세 때 『문학계』에 「키 대보기」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문예구락부』에 「탁류」, 「십삼야」 등도 연이어 발표했다. 이듬해에는 「갈림길」, 「나 때문에」 등을 발표했으며, 「키 재기」 또한 완성함으로써 문단의 총아로 부상했다. 당시 특권 계급의 여류 소설가들은 상류 사교계 등의 협소한 세계를 소재로 취하거나 대단원으로서의 결혼을 플롯으로 하여 작품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치요의 소설은 이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다양한 여성들의 삶과 고뇌를 언어화했다. 대표작인 「키 재기」에서는 요시와라의 구시대적 활기와 메이지적인 어둠, 사치와 빈곤, 해학과 슬픔이 교차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소년 소녀들의 성장을 그렸다.

그러나 젊음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이치요는 1896년 과로로 인한 폐결핵 악화로 24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녀의 비극적인 삶과 대조적으로 이치요는 사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부터 당대 최고의 여성 소설가로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 그녀의 작품은 그때부터 일본 근대 문학의 정전 목록에 올라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2004년 일본 정부는 이치요를 새 오천 엔 권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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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니키다 돗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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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ppo Kunikida,くにきだ どっぽ,國木田 獨步

일본 근대의 소설가이자 시인, 저널리스트, 편집자다. 치바 현(千葉縣) 출생으로 히로시마 현(廣島縣)과 야마구치 현(山口縣) 등에서 성장했다. 아명은 가메키치(龜吉)인데 데쓰오(哲夫)로 개명했다. 돗포(獨步)는 필명이며, 학력은 도쿄전문학교[東京專門學校, 현 와세다(早稻田)대학] 영어정치과를 중퇴했다. 작가 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國男) 등과 친교를 맺었고, 데뷔작은 청일 전쟁 종군기인 『애제통신(愛弟通信)』(1894)이다. 대표 작품으로 자연 친화적인 시 「돗포 읊다(獨步吟)」(1897) 등과 사상 소설 「잊을 수 없는 사람들(忘れ得ぬ人人)」(18
일본 근대의 소설가이자 시인, 저널리스트, 편집자다. 치바 현(千葉縣) 출생으로 히로시마 현(廣島縣)과 야마구치 현(山口縣) 등에서 성장했다. 아명은 가메키치(龜吉)인데 데쓰오(哲夫)로 개명했다. 돗포(獨步)는 필명이며, 학력은 도쿄전문학교[東京專門學校, 현 와세다(早稻田)대학] 영어정치과를 중퇴했다.

작가 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國男) 등과 친교를 맺었고, 데뷔작은 청일 전쟁 종군기인 『애제통신(愛弟通信)』(1894)이다. 대표 작품으로 자연 친화적인 시 「돗포 읊다(獨步吟)」(1897) 등과 사상 소설 「잊을 수 없는 사람들(忘れ得ぬ人人)」(1898), 「쇠고기와 감자(牛肉と馬鈴薯)」(1901), 자연을 재발견한 명문 「무사시노(武藏野)」(1898) 등을 발표하고, 후기에 「봄 새(春の鳥)」(1904), 「대나무 쪽문(竹の木戶)」(1908)으로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적 역할을 맡는다. 잡지 『부인화화보(婦人畵報)』(현존)의 창간자, 편집자로서도 평가받고 있다. 작가 후반기에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등이 돗포 작품을 높이 평가했고, 우리나라 근대 문학의 선구자 이광수는 1900년대 초 도쿄 유학 시절 돗포의 단편을 애독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1893년부터 일기 『거짓 없는 기록(欺かざるの記)』을 쓰기 시작해 사후에 출판된다.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의 지인이자 개화기 작가인 야노 류케이(矢野龍溪)에게 소개받아 오이타 현(大分縣) 사이키(佐伯) 소재 쓰루야학관(鶴谷學館)의 영어 및 수학 교사로 부임(1893. 10), 이듬해 8개월 만에 퇴직한다.
1894년, 『청년문학(靑年文學)』에 참가, 출판사 민우사(民友社)에 입사해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가 1890년에 창간한 『국민신문(國民新聞)』의 기자가 된다. 1894년 청일 전쟁 해군 종군 기자로 참가해, 남동생에게 부치는 서간체 형식으로 전쟁 르포 『애제통신(愛弟通信)』을 연재해 ‘국민신문 기자 구니키다 테쓰오(國木田哲夫)’로서 일약 유명해진다.

귀국 후 1895년 11월, 기독교인 집안의 사사키 노부코(佐佐城信子)와 만나 열애 끝에 도쿠토미 소호의 주례로 결혼하고 기독교인이 된다. 곤궁한 생활 때문에 귀향해 부모와 동거하게 되는데 이듬해 노부코(信子)가 실종되어 협의 이혼하고, 그 충격으로 실의에 빠진다. 나중에 이를 소재로 시라카바(白樺)파 작가 아리시마 다케오(有島武郞)는 소설 『어떤 여자(或女る)』(1919)를 발표했다.
1905년 건강이 악화된다. 제2소설집 『돗포집(獨步集)』(1905)을 간행하고, 단편 「호외」(1906)를 발표, 폐결핵으로 요양 생활 중, 「궁사(窮死)」 「절조(節操)」(1907) 등을 발표하고 37세에 작고한다. 자연주의 작가 다야마 가타이는 조사에서, 돗포의 인생은 한마디로 ‘궁(窮)’이라고 했다. 제3소설집 『운명(運命)』(1906)이 높게 평가받았고, 돗포는 자연주의 운동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돗포의 문학과 사상은 명리(名利) 부정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노장(老壯) 사상, 러시아 소설가 투르게네프의 자연 계절 묘사, 영국의 전원시인 워즈워스의 낭만성, 기독교의 박애(博愛)정신 등의 영향을 받았다. 이 외에도 무사시노(武?野)의 자연미를 시적인 요소로 함축한 『무사시노』, 사교 클럽에 모인 사람들이 인생을 이야기하는 형식을 통해 돗포의 사상을 말하는 『쇠고기와 감자(牛肉と馬鈴薯)』,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임을 모르고 결혼한 남성의 고뇌를 다룬 『운명론자(運命論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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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야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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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cadio Hearn,小泉八雲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 Lafcadio Hearn)는 1850년 그리스의 레프카다섬에서 아일랜드인 군의관 아버지와 그리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계 영국 출신으로 일본에 귀화했다. 두 살 때 아일랜드로 이주한 뒤 네 살 때 어머니와 헤어지고 일곱 살 때 아버지와 사별한 뒤 친척에게 맡겨졌다. 열여섯 살 때 놀던 중 왼쪽 눈을 실명. 열아홉 살 때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호텔 보이, 야간 경비, 행상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저널리스트로 문필력을 인정받게 된다. 그 후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즈,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섬에 이주해 문화의 다양성에 매료되고, 왕성한 취재 집필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 Lafcadio Hearn)는 1850년 그리스의 레프카다섬에서 아일랜드인 군의관 아버지와 그리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계 영국 출신으로 일본에 귀화했다. 두 살 때 아일랜드로 이주한 뒤 네 살 때 어머니와 헤어지고 일곱 살 때 아버지와 사별한 뒤 친척에게 맡겨졌다. 열여섯 살 때 놀던 중 왼쪽 눈을 실명. 열아홉 살 때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호텔 보이, 야간 경비, 행상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저널리스트로 문필력을 인정받게 된다. 그 후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즈,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섬에 이주해 문화의 다양성에 매료되고, 왕성한 취재 집필 활동을 했다. 뉴올리언즈 시대에 엑스포에서 접한 일본 문화, 뉴욕에서 읽은 『고사기』 등의 영향을 받아 1890년 4월에 일본 땅을 밟는다. 그해 8월 마츠오카에 있는 시마네중학교에 영어 교사로 부임한다. 또 구마모토 제5고등학교, 고베 크로니클사에서 근무한 뒤 1896년 9월부터 도쿄대학에서 문학부 강사로 영문학을 강의한다. 그해 고이즈미 세츠와 정식으로 결혼하고 일본에 귀화했다. 1903년 도쿄대학에서 해고되어 강사 자리를 나쓰메 소세키에게 물려주고 와세다대학에서 교편을 잡는다. 옛날이야기 듣기를 좋아해 부인이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모아 『괴담(怪談)』(1904)을 발표했다. 번역, 기행문, 이야기 문학을 중심으로 평생 약 30여권의 저작을 남겼다. 1904년 9월 26일 심장마비로 54세의 생애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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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오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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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gai Mori ,もり おうがい,森鷗外

본명은 모리 린타로(森林太?)로,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계몽기 지식인이자 근대 문학의 선각자다. 오가이(鷗外)는 도쿄대학(東京大學) 의학부 출신의 군의관으로 독일 유학(1884∼1888)을 가서 위생학 연구뿐만 아니라 서양 문학을 두루 섭렵했다. 1894년 가을, 1개월간 군의관으로 조선 부산에 체재하면서 남긴 일기 등도 있다. 동서양에 걸친 넓은 시야의 소유자로서, 동서양의 학문과 문학 일반에 대한 이해를 바탕 삼아 일본 근대 문학 초창기에 평론과 번역으로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소설가·시인·학자로서도 여러 업적을 남겨 근대 문학 성숙기의 일본 문단에서 나쓰메 소세키(夏目漱
본명은 모리 린타로(森林太?)로,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계몽기 지식인이자 근대 문학의 선각자다. 오가이(鷗外)는 도쿄대학(東京大學) 의학부 출신의 군의관으로 독일 유학(1884∼1888)을 가서 위생학 연구뿐만 아니라 서양 문학을 두루 섭렵했다. 1894년 가을, 1개월간 군의관으로 조선 부산에 체재하면서 남긴 일기 등도 있다. 동서양에 걸친 넓은 시야의 소유자로서, 동서양의 학문과 문학 일반에 대한 이해를 바탕 삼아 일본 근대 문학 초창기에 평론과 번역으로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소설가·시인·학자로서도 여러 업적을 남겨 근대 문학 성숙기의 일본 문단에서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와 쌍벽을 이루는 작가다.

오가이의 대표작은 일본 근대 최초의 번역 시집 『그림자(於母影, 오모카게)』(1889)와 서양 문학 번역에 안데르센의 『즉흥시인』(1892), 입센의 『노라(인형의 집)』(1913), 괴테의 『파우스트』(1913)가 있고, 단편 소설 「무희(舞?)」(1890), 「망상(妄想)」(1911), 장편 『청년』(1910), 『기러기(雁)』(1911), 역사 소설 「아베 일족(阿部一族)」(1913), 「산쇼 대부(山椒大夫)」(1915) 「다카세부네(高?舟)」(1916), 역사 인물 전기 『시부에 추사이(?江抽?)』(1916), 그리고 『시로 쓴 일기(うた日記)』(1905)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다방면에 걸쳐 활약했다. 오가이는 ‘서양에서 돌아온 보수주의자’답게 ‘동도서기(東道西器)’와 비슷한 소위 ‘화혼양재(和魂洋才)’로서 동서양에 대한 해박한 식견과 복안으로 서양의 장점을 배워 바람직한 일본 근대화의 방향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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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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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unosuke Akutagawa,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芥川 龍之介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전공인 영문학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문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간결하면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필치가 특징이지만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왕조물’, ‘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전공인 영문학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문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간결하면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필치가 특징이지만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왕조물’, ‘기독교물’, ‘에도물’, ‘개화기물’, ‘현대물’ 등의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나생문(羅生門)』, 『마죽(芋粥)』 등 150편 정도의 단편 소설을 남겼다.

초기에는 일본 고대 설화 문학에서 소재를 취해 보편적이면서 현대적인 인간 에고이즘의 내면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썼고, 이후 예술지상주의적인 경향의 작품들, 에도 시대 그리스도교 박해를 다룬 기리시탄 작품들, 일본의 근대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 등을 쓰다가 말년에는 자살을 염두에 둔 듯 자신의 삶을 무자비하게 조롱하고 야유하는 자전적인 작품들이 많다. 1927년 7월 24일 새벽,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다바타의 자택에서 치사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했다. 그가 밝힌 자살의 이유는 ‘장래에 대한 그저 막연한 불안’이었다. 아쿠타가와의 자살은 관동대지진과 더불어 일본 근대사에서 다이쇼라는 한 시대의 종언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던졌다. 1935년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문예춘추의 사주 기쿠치 칸이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고 현재까지도 이 상은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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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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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잡지 『여성(女性)』과 『고락(苦?)』이 실시한 영화 원안 현상 공모에 「그림자(影 Ein Marchen)」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다. 『신청년(新?年』 편집장 요코미조 세이시에게 발탁되어 하쿠분칸에 입사한다. 모닝코트를 입고 신사 모자를 쓰고 출퇴근한 일화는 온의 모더니즘에 대한 심취를 나타내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집에 원고를 부탁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향년 27세. 주요 작품으로는 「그림자(影)」, 「소녀(少女)」, 「병사의 죽음(兵隊の死)」, 「양성구유자의 혈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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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 다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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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suo Hori,ほり たつお,堀 辰雄

도쿄에서 태어나 1921년 제일고보 이과를 거쳐 1929년 도쿄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전쟁 당시의 불안정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문학 세계를 고수한 작가다. 당시까지 사소설(私小說)적이었던 일본 소설의 흐름 속에서 호리는 픽션이라는 ‘지어낸 이야기’로 낭만파라는 문학 형식을 확립하려 했다. 1923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알게 되어 그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아쿠타가와의 자살에서 받은 큰 충격을 대학 졸업 논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론」 및 「성가족(聖家族)」에 담아냈다. 전쟁 말기부터 결핵 증상이 악화해 전후에는 거의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 49세의 나
도쿄에서 태어나 1921년 제일고보 이과를 거쳐 1929년 도쿄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전쟁 당시의 불안정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문학 세계를 고수한 작가다. 당시까지 사소설(私小說)적이었던 일본 소설의 흐름 속에서 호리는 픽션이라는 ‘지어낸 이야기’로 낭만파라는 문학 형식을 확립하려 했다. 1923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알게 되어 그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아쿠타가와의 자살에서 받은 큰 충격을 대학 졸업 논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론」 및 「성가족(聖家族)」에 담아냈다. 전쟁 말기부터 결핵 증상이 악화해 전후에는 거의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문학은 서정성이 높아 시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대표작으로는 「성가족(聖家族)」, 『아름다운 마을(美しい村)』, 「바람이 분다(風立ちぬ)」, 「광야(曠野)」 등이 있다. 이 대표작들에는 사랑을 통해 죽음을 넘어선 곳에서 진정한 생을 발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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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구치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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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o Sakaguchi,さかぐち あんご,坂口 安吾,사카구치 헤이고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다자이 오사무와 더불어 ‘무뢰파(無賴派)’의 대표 작가이다. 본명은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아버지 니이치로와 어머니 아사 사이의 5남으로 태어났다. 사카구치가의 선조는 지금의 후쿠오카현 가라쓰의 도공이었다가 후에 니가타로 이동해 온 지방 부호다. 아버지 니이치로는 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니가타 신문사 사장이었고 한시 시인으로도 알려진 정치가로서 언제나 다망했으며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냉담했다. 사카구치가의 재산은 체면과 의리를 중시했던 니이치로의 대에서 탕진되게 된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다자이 오사무와 더불어 ‘무뢰파(無賴派)’의 대표 작가이다. 본명은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아버지 니이치로와 어머니 아사 사이의 5남으로 태어났다. 사카구치가의 선조는 지금의 후쿠오카현 가라쓰의 도공이었다가 후에 니가타로 이동해 온 지방 부호다. 아버지 니이치로는 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니가타 신문사 사장이었고 한시 시인으로도 알려진 정치가로서 언제나 다망했으며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냉담했다. 사카구치가의 재산은 체면과 의리를 중시했던 니이치로의 대에서 탕진되게 된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명의 형제 중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난 안고는, 어린 시절 이미 방랑벽이 있었으며, 골목대장 행세를 하며 싸움질을 하고 돌아다녀 어머니의 미움을 사는 한편, 주로 무사들의 군담을 숙독했고, 남몰래 닌자의 인술을 연구하기도 했다. 1919년 니가타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 무렵부터 집과 학교를 싫어해서 수업을 빠지고 홀로 방황하는 날들을 보내다 낙제하게 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발자크 등의 소설을 탐독하며 지내다가 결국 1922년에 퇴학당했다. 그해 가을 상경해 부잔 중학교에 입학했고 에드거 앨런 포와 이시카와 다쿠보쿠 등을 인생의 낙오자로서 사랑하며 그들의 작품을 숙독했다.

막연하게 엄격한 구도자의 삶을 동경하여 1926년, 도요 대학 인도철학윤리과에 입학한다. 입학 후 불교서와 철학서를 섭렵하는 데 몸을 혹사하며 공부에 매진한 탓에 생긴 신경쇠약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어학을 맹렬히 공부한다. 193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동인지 [말]과 [청마]를 창간했다. 1931년에 발표한 단편소설『바람 박사』와 『구로타니 마을』이 소설가 마키노 신이치의 극찬을 받음으로써 신진 작가로 급부상한다. 1932년 여류 작가 야다 쓰세코를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1936년 절교한 후 신생을 기하며 교토를 방랑하면서 그녀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눈보라 이야기』를 썼다. 1946년, 전후의 시대적 본질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파악한 「타락론」과「백치」에 의해 일약 시대의 총아, 오피니언 리더로 떠오르며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에세이 「타락론」에서는 전쟁에 졌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인간에게는 타락의 본성이 있고 혼란은 필연적이며, 타락을 통해 다시 일어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타락론」을 소설화한 것이 「백치」다.

1947년 가지 미치요와 결혼하고,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과 에세이, 탐정소설, 역사 연구, 문명 비평 르포르타주 등 다채로운 집필 활동을 전개하여 전후의 난세에 문화와 역사 및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와 동시에 세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 경륜 부정 사건 고발, 각성제와 수면제 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발작 등 실생활 면에서도 언제나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 2월 17일 지방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향년 50세였다.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퇴폐를 반영한 작풍을 확립하고 시대의 새로운 윤리를 제시함으로써 일본인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사카구치 안고는 다자이 오사무와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무뢰파 작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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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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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츠시마 슈지津島修治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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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오 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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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ran Hisao,ひさお じゅうらん,久生 十蘭

홋카이도 출생으로, 소설가이자 연출가이다. 필명인 히사오 주란은 프랑스 유학 당시 스승이었던 거물급 연출가 샤를 뒬랭(Charles Dullin)의 일본어 발음에서 따온 것이다. 모험 소설, 추리 소설, 역사 소설, 유머 소설, 논픽션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활동을 했다. 대표작은 「해표도(海豹島)」, 「곤충도(昆??)」 등이 있다. 작풍은 속도감 있는 문체와 세심한 인간 관찰에 따른 역설적인 논리, 빠르게 반전하는 전개가 주를 이룬다. 전쟁을 거치는 동안 이민자나 방랑자, 다문화, 파국, 표류 같은 국가의 비호에서 멀어진 인간의 모습은 작가가 중요하게 다루었던 문학적 주제
홋카이도 출생으로, 소설가이자 연출가이다. 필명인 히사오 주란은 프랑스 유학 당시 스승이었던 거물급 연출가 샤를 뒬랭(Charles Dullin)의 일본어 발음에서 따온 것이다. 모험 소설, 추리 소설, 역사 소설, 유머 소설, 논픽션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활동을 했다. 대표작은 「해표도(海豹島)」, 「곤충도(昆??)」 등이 있다. 작풍은 속도감 있는 문체와 세심한 인간 관찰에 따른 역설적인 논리, 빠르게 반전하는 전개가 주를 이룬다. 전쟁을 거치는 동안 이민자나 방랑자, 다문화, 파국, 표류 같은 국가의 비호에서 멀어진 인간의 모습은 작가가 중요하게 다루었던 문학적 주제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에 사숙하며 문학서를 탐독했다. 1920년에 귀향하여 하코다테 신문사에서 근무하던 중 연극에 흥미를 느껴 1922년에 연극 집단 ‘소극회’에 참가, 1923년에 동인 그룹 ‘생사(生社)’를 결성한다.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1929년부터 1933년까지 프랑스 파리에 유학한다. 귀국한 후 1934년에 파리 체재의 경험을 바탕으로 콘요시·타누코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집을 발표한다. 히사오 주란이라는 필명은 「황금 늑대」를 발표한 1936년부터 사용하였다. 범인 수사나 권선징악 중심이 아닌, 심리 묘사에 집중하는 새로운 탐정 소설을 선보이며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아시아태평양전쟁 중이던 1941년에 화중(華中) 지방으로 종군했으며, 1943년에는 해군에 징집되어 남태평양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한동안 행방불명 신고를 받았으나 1944년 지바 초시로 무사히 돌아왔다. 전쟁 후에는 현대소설, 역사소설, 논픽션 등을 계속 집필했다. 1957년에 식도암으로 자택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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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철(崔在喆)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대학 일본언어문화학부 명예교수다.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비교 문학 비교 문화 전공)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장과 외국문학연구소장, 대학원 비교문학과 주임교수, 도서관장, 행정지원처장, 일본어대학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일본근대문학회 창립회장, 한국일어일문학회장, 세계문학비교학회장, 한국비교문학회 학술이사를 역임하고, 한국문학번역원, 대산문화재단, 대한민국학술원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일본문학의 이해』(민음사, 1995. 1995년 문화체육부 우수도서)와 『일본문학 속의 사계(四季)
최재철(崔在喆)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대학 일본언어문화학부 명예교수다.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비교 문학 비교 문화 전공)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장과 외국문학연구소장, 대학원 비교문학과 주임교수, 도서관장, 행정지원처장, 일본어대학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일본근대문학회 창립회장, 한국일어일문학회장, 세계문학비교학회장, 한국비교문학회 학술이사를 역임하고, 한국문학번역원, 대산문화재단, 대한민국학술원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일본문학의 이해』(민음사, 1995. 1995년 문화체육부 우수도서)와 『일본문학 속의 사계(四季) - 한국문학과의 비교를 통하여』(소명출판, 2016. 2017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가 있고, 역서에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지음 『산시로(三四郞)』(한국외대출판부, 1995)가 있으며, 편저에 『韓流百年の日本語文?』(人文書院, 2009), 공저에 『鷗外の人と周?』(講座 森鷗外1, 新曜社, 1997), 『문학, 일본의 문학 - 현대의 테마』(제이앤씨, 2012), 『무라카미 하루키를 논하다』(제이앤씨, 2014), 『비교문학자가 본 일본, 일본인』(현대문학, 2005), 『번역과 문화의 지평』(박문사, 2015),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이해』(소명출판, 2016)[이 세 권은 한일비교문학·문화 총서 1, 2, 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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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Bu Yong,李芙鏞,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비교문학·비교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학술 석사 및 학술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는 강원대학교 강원문화연구소 전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공저로 『비교 문학과 텍스트의 이해』(소명출판, 2016)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 「『겐지 이야기(源氏物語)』에 나타난 음악 교육」(『일본언어문화』 37,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2016)이 있다. 『우지 습유 모노가타리』의 제3권 제17화, 제12권 제13화, 14화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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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on Jung-hee,權丁熙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시라유리(白百合)여자대학교 대학원 아동문학전공 연구생 수료 후 도쿄(東京)대학 총합문화연구과 초역문화과학전공 비교문학비교문화 코스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논문으로 2006년 제18회 김소운상(金素雲賞)을 수상했으며 일본 센슈(專修)대학과 경원대학교 강사를 역임하였다. 성균관대학교에서 BK박사후 연구원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동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저서로는 『『호토토기스』의 변용-일본과 한국에서의 텍스트의 ‘번역’』(2011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한국 근대문학과 일본』(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시라유리(白百合)여자대학교 대학원 아동문학전공 연구생 수료 후 도쿄(東京)대학 총합문화연구과 초역문화과학전공 비교문학비교문화 코스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논문으로 2006년 제18회 김소운상(金素雲賞)을 수상했으며 일본 센슈(專修)대학과 경원대학교 강사를 역임하였다. 성균관대학교에서 BK박사후 연구원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동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저서로는 『『호토토기스』의 변용-일본과 한국에서의 텍스트의 ‘번역’』(2011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한국 근대문학과 일본』(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쓰치야 레이코(土屋子), 『일본 대중지의 원류메이지기 소신문 연구』 등이 있다. 「번안소설로서의 「귀거래」 1910년대 양건식 단편소설의 원작 연구」, 「근대 연극장의 재편과 ‘흥행’ 개념‘연행’에서 ‘흥행’으로」 등 한국연구재단 우수논문으로 세 차례 선정되었다. 그 밖에 「민유샤(民友社), 국민소설(民小)」 등의 자료 해제와 「‘소설’이라는 미디어-도쿠토미 로카의 「소설의 소설」론(「小?」というメディア-??蘆花の「小?の小?」論」)」을 일본근대문학회(日本近代文學會)에서 발표하는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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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쿠바대학(筑波大?)에서 아베 코보 연구로 석사, 박사과정을 밟았다. 한국에서는 최초로 아베 코보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진정한 아베 코보 연구자다. 대표 저서로는 『일본 현대문학의 기수 아베 코보 연구』(2009년도 대한민국학술원 기초학문육성 우수학술도서에 선정)가 있고, 공저로는 『그녀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사랑했다-불꽃처럼 살다간 12인의 여성작가들』(2012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 도서에 선정) 등이 있다. 이밖에 아베 코보의 장편소설을 번역한 『타인의 얼굴』 등이 있다. 현재 위덕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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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동남보건대학교 관광일어과 교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양어대학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 일어일문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모리 오오가이(森鷗外)의 역사 소설 연구」(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3)가 있으며 저서로 『일본현대소설선독』(제이앤씨, 2012), 『문학, 일본의 문학-현대의 테마』(공저, 제이앤씨, 2012), 역서로 『가족이 있는 풍경』(유이 타케지 지음, 도서출판 서당, 1990), 『지(知)의 논리』(공역, 경당, 2008), 『모모도 선을 말하다』(시게마츠 소이쿠 지음, 스타북스, 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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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兌映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일본문화연구전공(日本文化硏究專攻)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부 강사로 재직 중이다. 일본 고전 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일본 문학 전반, 일본 문화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공저로 『일본 문학의 기억과 표현』, 이 있고, 『놀이로 읽는 일본 문화』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源氏物語における?の主人公性に?する―考察??の人物造型と「まめ」とのかかわりを中心に―」, 「?と浮舟―宇治十帖後半部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일본문화연구전공(日本文化硏究專攻)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부 강사로 재직 중이다. 일본 고전 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일본 문학 전반, 일본 문화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공저로 『일본 문학의 기억과 표현』, 이 있고, 『놀이로 읽는 일본 문화』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源氏物語における?の主人公性に?する―考察??の人物造型と「まめ」とのかかわりを中心に―」, 「?と浮舟―宇治十帖後半部の物語における男と女―」, 「浮舟?の方法―物語の方法としての<?係>を中心に―」, 「柏木物語の方法と表現―光源氏物語における位置を中心に―」 등이 있다. 공역서로 『일본언어문화』, 『우지 습유 모노가타리』의 제3권 제18화, 19화, 제10권 제1화, 『일본 명단편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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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南錦

한일근현대 비교문학·문화를 전공했고(문학과 여성/젠더/식민지주의 연구),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대학원 비교사회문화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외국어대학, 경희대학 및 기타대학 강사, 가와사키(川崎)시립 다치바나고등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는 도쿄 세이토쿠대학 국제학부 강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家と家庭と女性:日·韓近代文?における看護婦表象と良妻賢母思想」(2009), 「漱石作品における植民地主義と女性嫌?の問題―植民地への移動者と「芸妓」の表象を中心に」(2007) 등이 있고, 저서에 『시로와 쿠로의 일본어회화 패턴 111』(2017/공저), 『실용일본어강독Ⅰ·Ⅱ』(2
한일근현대 비교문학·문화를 전공했고(문학과 여성/젠더/식민지주의 연구),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대학원 비교사회문화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외국어대학, 경희대학 및 기타대학 강사, 가와사키(川崎)시립 다치바나고등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는 도쿄 세이토쿠대학 국제학부 강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家と家庭と女性:日·韓近代文?における看護婦表象と良妻賢母思想」(2009), 「漱石作品における植民地主義と女性嫌?の問題―植民地への移動者と「芸妓」の表象を中心に」(2007) 등이 있고, 저서에 『시로와 쿠로의 일본어회화 패턴 111』(2017/공저), 『실용일본어강독Ⅰ·Ⅱ』(2003/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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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일어일문학과 조교수·경북대학교 일본연구센터 센터장 1930년대 '제국 일본'의 모던을 주제로 나고야대학(名古屋大?)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근대의 대중문화에 대해 도시, 매체, 젠더, 식민지 등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잡지 미디어를 중심으로 일본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대적 특성에 대해 규명하고자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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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통역대학원을 거쳐 일본 쓰쿠바대학 문예언어연구과 석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바이코가쿠인대학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원대학교 명예교수로, 호리 다쓰오, 미시마 유키오 등 주요 작가 관련 다수의 논문이 있다. 「일본 명단편선」에 기고한 번역은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소개했던 단편 작품 중에서 선정했다. 하야마 요시키, 다자이 오사무, 김사량이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작가들의 작품이지만, 읽기 쉬우면서도 되풀이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묘미를 느끼게 된다. 일본 유학 중 문학 평론가 히라오카 도시오(平岡敏夫)와 시인 기타가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통역대학원을 거쳐 일본 쓰쿠바대학 문예언어연구과 석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바이코가쿠인대학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원대학교 명예교수로, 호리 다쓰오, 미시마 유키오 등 주요 작가 관련 다수의 논문이 있다.

「일본 명단편선」에 기고한 번역은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소개했던 단편 작품 중에서 선정했다. 하야마 요시키, 다자이 오사무, 김사량이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작가들의 작품이지만, 읽기 쉬우면서도 되풀이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묘미를 느끼게 된다.
일본 유학 중 문학 평론가 히라오카 도시오(平岡敏夫)와 시인 기타가와 도루(北川透)의 영향을 받은 탓으로 탐미파 문학에 관심이 깊다. 특히 미시마 유키오, 다자이 오사무, 호리 다쓰오,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의 작가와 관련된 연구가 많다. 논문으로는 「황순원과 미시마 유키오 비교 연구」, 「다니자키 준이치로 작품 연구」, 「미시마 유키오 대표작 연구」, 「호리 다쓰오 작품 연구」, 「미시마 유키오와 엔도 슈사쿠 비교 연구」, 「미시마 유키오와 오에 겐자부로 비교 연구」, 「나쓰메 소세키 작품 연구」,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 비교 연구」 등이 있으며, 번역 작품으로는 『금각사』, 『인간 실격』, 『포로기』, 『산시로』, 『노르웨이의 숲』, 『고목탄』 등이 알려져 있다.
평소에 즐겨 읽는 작가로는 위에 열거한 작가 이외에도 다니자키 준이치로, 호리 다쓰오, 미시마 유키오 등이 있다. 특히 『슌킨쇼』, 『산의 소리』, 『금각사』를 일본 근대 문학의 3대 명작으로 꼽고 있다. 독자들에게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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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초역문화과학과 비교문학 비교문화코스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한일 고대사 및 고대 문학이고, 문학의 시선으로 역사를 다루는 등 문학과 역사의 융합적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가천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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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에서 일본어를, 동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공부한 후 번역에 흥미를 느껴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일한 번역을 전공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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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 근현대문학을 전공했으며, 전후 초현실적 작풍으로 인간 존재의 불안을 탐구한 아베 고보를 연구했다. 현재는 광고 기획과 편집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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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7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482쪽 | 210*297*30mm
ISBN13
9791128856556

책 속으로

여자는 조용한 어조를 한층 높여,
“백 년 기다려 주세요”라고 각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 년, 내 묘지 옆에 앉아 기다리고 있어 주세요. 꼭 만나러 올 테니까요.”
나는 그저 ‘기다리고 있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까만 눈동자 속에 선명하게 보였던 내 모습이 희미하게 무너져 내렸다. 고요한 물이 움직여 비치는 그림자를 흩트리면서 흘러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자의 눈이 딱 닫혔다. 긴 속눈썹 사이에서 눈물이 볼로 떨어졌다. -이미 죽어 있었다.
나는 뜰에 내려가 진주조개 껍데기로 구덩이를 팠다. 커다란 진주조개는 매끄러운 가장자리가 예리했다. 흙을 파낼 때마다 조개 뒷면에 달빛이 비쳐 반짝반짝 빛났다. 눅눅한 땅 냄새도 났다. 구덩이는 얼마 안 되어 팔 수 있었다. 여자를 그 안에 넣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흙을 살짝 덮었다. 덮을 때마다 진주조개 뒷면에 달빛이 비쳤다.
--- 나쓰메 소세키, 「첫째 날 밤의 꿈」 중에서

그러자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는 돌연 얼굴을 들어 올려 이부카 군을 보았다. 마치 이부카 군이 거기 구경꾼들 사이의 뒤쪽에서 엿보고 있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방 안은 밝고 밖은 어두워서 이부카 군이 봤다고 생각하더라도 상대 쪽에선 안 보였을 수도 있다. 더욱이 이부카 군이 그곳에 같이 있다는 걸 신경 써야 할 이유 같은 건 없지만 어쨌건 너무도 갑자기 두 사람의 눈이 딱 마주친 것이다.) 창백한 얼굴에다 눈 끝으로 길게 뻗은 속눈썹까지 눈물에 반짝이며 귀여운 윤곽을 지닌 얼굴이다. 이부카 군은 그때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만큼 놀랐다. 갑자기 자기를 쳐다봐서만이 아니다. 이부카 군은 거기서 그야말로 자신이 연모하는 소녀에 다름 아닌 소녀를 발견했던 것이다.
--- 와타나베 온, 「소녀」 중에서

저는 가게에 들어선 작업복 차림의 일행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하면서 주인아주머니에게 속삭였습니다.
“아주머니, 죄송한데 앞치마 좀 빌려주세요.”
“이야, 미인을 데려다 놓으셨네. 이거 보통이 아닌데?”
손님 중 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유혹하지 마십쇼. 돈이 걸려 있는 몸이니 말입니다.”
주인 남자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백만 불짜리 명마(名馬)다, 이 소린가?”
또 다른 손님이 저급한 농담을 던졌습니다.
“명마도 암컷은 반값이라면서요.”
사케를 데우면서 저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 「비용의 아내」 중에서

출판사 리뷰

국내 최초로 일본 명작 단편을 인생, 재난, 근대, 동물, 광기, 남녀, 일상, 허무, 구원 등 10개의 주제로 출판했다. 이처럼 일본 문학을 주제별로 10권 발행한 것은 국내 출판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작품 127편, 작가 42명, 역자 63명이 참여했다.

≪일본 명단편선≫을 기획한 의도는 무엇보다도 국내의 일본 문학 소개가 몇몇 현대 인기 작가의 대중적 작품이나 추리 소설류에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수한 일본 근현대 단편 명작들을 찾아, 전문가에 의한 질 높은 번역과 적절한 작품 해설 및 작가 소개, 풍부한 주석 등을 독자에게 제공해 가벼운 일본 문학을 소비하는 독서 풍조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번 기획의 목표는 이처럼 국내 독자들의 일본 문학에 대한 편식을 일깨우고자 함이 그 첫 번째다. 그리고 19세기 말 메이지 시대의 작품부터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 전기, 그리고 전후의 작품까지를 망라함으로써 일본 근현대 문학의 기본 흐름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체계적 읽기를 지향하는 것이 두 번째다. 저작권 관계로 1960년대 중반까지 생존한 작가를 대상으로 작품을 선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주요 작가들은 다 포함되어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시마자키 도손 등 한국에 널리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 외에 가지이 모토지로, 니이미 난키치, 도쿠다 슈세이, 우메자키 하루오, 하야마 요시키, 히사오 주란 등 다소 생소한 작가들의 명작들도 포함되었다. 일본어와 한국어로 작품을 발표했던 한국 작가 김사량의 작품도 들어 있다.

특히 일본 근현대 문학사에서 위상에 비해 이제까지 국내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초역 작품들이 여러 편 포함되었다는 것도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초역 작품들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한 줌의 흙」 · 「의혹」, 사카구치 안고의 「죽음과 콧노래」 · 「진주」 · 「전쟁과 한 명의 여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증념」 등을 비롯해 이즈미 교카의 「그림책의 봄」,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두 줄기의 피」 등 20여 편이다.

‘완성도 높은 명단편선’이 되도록 번역은 원문에 충실하되 한국어로 읽히는 가독성을 고려하고, 각주는 간명하며 알기 쉽되 직간접 일본 체험을 반영한다는 ‘문화 번역’을 따랐다. 요즘 일본 문학 작품 번역에 오류가 많고, 쉽게 생략하거나 원문에 없는 어휘를 집어넣어 가독성만을 노리는 세태와는 선을 긋고자 한 것이다.

번역에 참여한 역자들은 대학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한 전문가들로서 국내뿐만 아니라 김현준(일본 무사시노대학), 이남금(일본 도쿄세이토쿠대학교) 등 해외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전공자들과 공동 작업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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