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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
New China 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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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다중문화권 속에서 성장하다
안휘성 적계현 용천 후씨의 후예
차(茶) 상인의 아들, 상해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전국 최고의 명문학교에 합격하다

2. 청화대학생, 노동개조로 거듭나다
청화대학 캠퍼스의 영민한 학생
관리의 길로 접어들다
문화혁명의 피바람이 불어닥치다
투쟁과 비퍈, 개혁의 혼돈 속에 먼 곳으로 내몰리다

3. 숨어 있는 용, 송핑을 만나다
하찮은 노동에서부터 재출발
감숙성 건설위원으로 전근 가다
송핑이 세상을 다스릴 인재를 양성하다

4. 풍운아, 중남해로 가다
후야오방이 발탁한 새로운 인물
공청단의 세대교체
완자오궈와 후진타오의 합작
짧은 기간 제1서기직을 맡다

5. 서남고원에서 첫 포효를 울리다
귀주의 젊은 관리
빈곤 타개책을 마련하다
정치수완을 마음껏 발휘하다

6. 티베트의첫 문관 지도자로서 라사에 가다
위급한 시기에 받은 명령
라사의 독립운동을 엄중히 진압하다
당근과 채찍을 든 티베트 지도자

7. 세기를 뛰어넘는 후계자의 길(상)
단번에 최고위층으로 도약하다
덩샤오핑 이론의 깃발을 높이 들다
장쩌민을 받들고 전진하다

8. 세기를 뛰어넘는 후계자의 길(중)
21세기를 향한 후진타오의 인맥
부주석을 맡아 외교무대에 오르다
군 · 경 상업활동 금지안의 세찬 역공

9. 세기를 뛰어넘는 후계자의 길(하)
집정 수완과 이념
리더십의 형성과 특징, 그리고 후계 변수
끝없는 맺음말

저자 소개 1

차이나랩 대표

차이나랩 대표이며,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중국 경제 전문가이다. 1989년 한국외국어대학 중국어과를 졸업했다.그후 한국경제신문에 입사, 국제부,정치부,정보통신부를 거쳐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베이징과 상하이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상하이 화둥華東사범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월세를 절약하기 위해 중국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직접 주식투자를 해봄으로써 실물 감각을 익히기도 했다. 현재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에서 두 눈 부릅뜨고 한국이 중국과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중국의 13억 경제학』, 『세계 경제의
차이나랩 대표이며,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중국 경제 전문가이다. 1989년 한국외국어대학 중국어과를 졸업했다.그후 한국경제신문에 입사, 국제부,정치부,정보통신부를 거쳐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베이징과 상하이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상하이 화둥華東사범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월세를 절약하기 위해 중국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직접 주식투자를 해봄으로써 실물 감각을 익히기도 했다. 현재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에서 두 눈 부릅뜨고 한국이 중국과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중국의 13억 경제학』, 『세계 경제의 슈퍼엔진 중국』, 『상하이 리포트』, 『뉴차이나, 그들의 속도로 가라』, 『경제특파원의 신중국견문록』, 『중국 함정』, 『우리가 아는 중국은 없다』
등이, 옮긴 책으로 『뉴차이나 리더 후진타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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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양중메이
1945년 중국 강소성 무진 출생. 상해 화동사범대학 졸업. 일본 릿교대학 동양사학(석사). 미국 하버드대학 동아시아연구소 객원 연구원. 미국에서『중공당사통신』『민주 중국』 등 편집. 94년 이후 일본의 '현대중국연구센터' 대표 겸 주임연구원 활동.

주요 저서로『후 야오방 평전』『장쩌민 전』『주룽지 전』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47523820

책 속으로

당 조직인사의 대권을 장악하고 있던 송핑 역시 후진타오를 적극 지지했다. 후진타오를 발탁한 장본인이었던 그는 후진타오가 티베트 당서기로 거론되는 것 자체에 대해 흡족했다. 보수파로 알려진 리펑도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리펑 역시 1986년 11월 귀주에 시찰 갔을 때 후진타오가 전력을 전공한 기술관료라는 점에서 괜찮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 역시 전력을 전공했기에 더욱 친근감이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사 결정은 후진타오의 원만하고도 쾌활한 처세의 방법을 보여준다. 그는 관직 생활을 하면서 나아감과 물러남의 맥을 짚어내는 독특한 정치철학을 갖고 있었다.

정치국 회의는 최종적인 인사 결정에 앞서 후진타오가 티베트에 가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첫째, 정치적인 신념이 확고하다. 당의 정책을 업무에 반영하는 데 뛰어나다. 모든 일을 중앙 정책에 어긋남이 없이 처리한다.

둘째, 다년간 감숙성과 귀주성을 비롯한 빈곤한 지역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같은 빈곤지역인 티베트에서도 뛰어난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셋째, 젊고 기력이 왕성하다. 산소한 희박한 티베트 고원에서 일하기에 신체조건이 적합할 것이다.

넷째, 실무에 정통하고, 조사와 연구를 중요시한다. 그는 한 번 정한 정책은 흔들림없이 이루어내고야 만다. 또 돌발적인 사태에 대한 대응력이 뛰어나다.

다섯째, 국방관념이 확고하다. 1988년 9월 31일 후진타오는 귀주성 회의에서 인민의 무장 역량 강화에 대해 강조했다. 후진타오의 국방에 대한 가치관은 다음의 발언에서 알 수 있다.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지도자는 병력이 없으면 불안하고,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기가 닥친다는 이치를 알고 있어야 한다. 장기 안정에 대한 통치관념이 명확해야 한다. 국방교육을 강화하고, 인민의 국방의식을 강화하는 것은 국가안전 및 민족의 흥망성쇠와 관련된 막중한 일이다.』

--- p.18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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