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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_ 10?26 운명의 날 전후하여
1 _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70년대의 시작 2 _ 1971년 8월 10일, 광주 민중 봉기 3 _ 1971년 8월 23일, 실미도의 아침 4 _ 1971년 10월 2일,‘ 항명파동’과 4인방 5 _ 1972년 10월 17일, 유신 선포와 이세규 장군 6 _ 1972년 12월 15일, 통일주체국민회의 7 _ 1973년 10월 최종길 형제, 우리 시대의 〈무간도〉 8 _ 1973년 11월, 절간이 된 신학대학 9 _ 1974년 스물두 살 김병곤, 사형 앞에서 영광을 외치다 10 _ 19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운동과 백지광고―《동아일보》의 영광 11 _ 1974년 8월 15일, 육영수의 죽음과 영애의 출현 12 _ 그들이 세상을 향해 용감했을 때 13 _ 1974년 4월, 살인자가 된 법정―인혁당재건위원회 14 _ 1975년 4월 11일, 자유를 향해 날아간 새 김상진 15 _ 우리가 살았던 이상한 나라 1―두발 단속 16 _ 1978년 2월 21일, 동일방직 똥물사건의 영웅 17 _ 1977년 11월 23일, 《우상과 이성》 필화사건 18 _ 1977년 9월 9일, 청계피복 노조 목숨을 걸다 19 _ 우리가 살았던 이상한 나라 2―국기하강식 20 _ 1978년 4월 24일, 함평 고구마 사태 21 _ 1979년 8월 11일, 지울 수 없는 이름 YH 김경숙 22 _ 1977년 4월 20일, 무등산 타잔 박흥숙 23 _ 1979년 4월 27일, 남민전의 땅벌 작전 24 _ 1979년 5월 5일, 감자농사꾼 오원춘의 양심선언 25 _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와 부마항쟁 26 _ 1979년 11월 24일, 유신, 죽었으되 죽지 않았다―위장결혼식사건과 홍성엽 찾아보기 |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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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동과 항의의 소산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면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내세웠다. 그 해석에 동의하지 않으면 올바르지 못하다거나 편향되었다거나 심지어 ‘혼이 비정상’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2016년 2월 29일, 역사교육연대회의는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나온 근현대사 국정교과서인 초등《사회 6-1》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 감추기가 이루어졌다고 분석했다. 3선 개헌, 10월 유신, 국민 탄압 등에 대해 모두 ‘박정희’가 아닌 ‘박정희 정부’로 표현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발전은 집중 부각시키면서 박정희의 공으로 돌렸다. 책의 집필 의도를 ‘2015년,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간 서른여섯 해 뒤에 홀연히 돌아와 우리 앞에 선 억지와 만용의 여신女神에 대한 반동과 항의의 소산’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우려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성찰과 해석의 학문이다. 성찰과 해석이 단일한 방향으로만 행해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공을 부풀리고 과는 감추는 역사교과서가 ‘올바른’ 역사교과서일 수 있을까. ‘올바른’ 역사교과서에 이 책에 담긴 유신공화국의 민낯이 포함될 것인가. 초등《사회 6-1》 교과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지 않을 듯 보인다. 이 책이 유의미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