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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상점
중화주의와 중상주의가 함께 꾼 동상이몽, 광주 13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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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장 제국의 남쪽 문을 열다
광주의 13개 상점 / 매력 만점의 항구 / 대서양에서 온 선단 / 건륭제 남쪽에 동그라미를 그리다 / 월해관 : 황제의 충복 / 황제의 남쪽 보물 창고 / 물 위의 상점 / 13행 상점 : 최초의 서양식 건물 / 황포 : 배의 마을 / 최고의 비단 / 차의 시대 / 아름다운 도자기

제2장 세계 최고의 갑부
세계로 나가는 상인 / 런던 어음을 취급하다 / 상인 지도자의 길 / 점원에서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다 / 미국에 투자하다 / 광주의 홍정상인 / 정원, 사당, 화원 / 미국 범선의 원대한 꿈 / 워싱턴 대통령의 특별 주문

제3장 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
“예테보리호”의 전설 / 루이 14세의 중국 사랑 / 수출용 그림 : 손으로 그린 중국 풍물 사진 / 남고 화실 / 임칙서와 서양 의사의 비밀 우정 / 기루와 “귀신 언어” / 대반, 오문에서 겨울을 보내다 / 서양인 부녀자 소동 / 영국 섬과 프랑스 섬

제4장 양귀비꽃에 감춰진 슬픈 노래
양행의 도산 / 영국 회사의 함정 / 머리 위에 매달린 칼 / 건륭제가 조지 3세에게 보낸 서신 / 양귀비꽃 / 도광제의 판단과 전쟁 / 호문 / 광주가 지불한 배상금 / 행상의 여운

역자 후기

참고문헌

저자 소개 3

리궈룽은 요녕성 건평 출신으로 1983년 광동 중산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현재 중국제일역사당안관 편연부 주임으로 재직 중이며, 중국당안학회 당안문헌편찬학술위원회 주임을 맡고 있다. 그는 청대 당안의 정리와 해석에 많은 연구 성과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의 근현대사에 관련한 활발한 저술활동과 CCTV 등 방송매체와의 활발한 교류로 역사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관영방송인 CCTV에서 제작하는 역사 다큐멘터리 제작에 활발히 참여하여 『제국상행』,『고궁』등의 총고문, 기획을 맡은 경력이 있다. 주요저서로는 『청대광주13행기략』,『제왕여불교』 등이 있다.

리궈룽의 다른 상품

요한 2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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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o Giuseppe RoncalliJoannes XXIII

1881년 11월 25일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가난한 소작인 집안에서 태어난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는 열두 살에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교회사, 교부학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론칼리는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1905년부터 1914년까지 베르가모의 테데스키 주교 비서신부로 일하였다. 이 시기에 론칼리는 노동자들의 고충을 접하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15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베르가모의 군인 병원에서 일하였고, 1919년 신학교의 영성 지도자로 임명되었다. 1921년 베네딕토 15세 교황에 의해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이탈리아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1925년 비오
1881년 11월 25일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가난한 소작인 집안에서 태어난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는 열두 살에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교회사, 교부학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론칼리는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1905년부터 1914년까지 베르가모의 테데스키 주교 비서신부로 일하였다. 이 시기에 론칼리는 노동자들의 고충을 접하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15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베르가모의 군인 병원에서 일하였고, 1919년 신학교의 영성 지도자로 임명되었다. 1921년 베네딕토 15세 교황에 의해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이탈리아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에게서 주교품을 받고, 불가리아로 파견되었다. 1935년부터 터키 및 그리스의 교황 사절로서 근무한 론칼리는 힘없는 가톨릭 소수파를 대변하며, 유럽에서 온 난민을 구하고, 지하에 사는 유대인들을 돕는 일에 앞장섰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이던 1944년 비오 12세 교황은 론칼리를 주 프랑스 교황 대사로 임명하였다.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론칼리는 수많은 난민, 특히 유대인들을 나치로부터 구출하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 1953년 론칼리는 베네치아 총대주교로 서임되었다.

1958년 비오 12세 교황의 선종 후, 새 교황에 선출되었다. 선출 당시 77세의 고령이던 요한 23세 교황은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깨고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여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현대사회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 공의회는 교회의 자각과 쇄신, 신앙의 자유, 종교와 정치의 제 역할 찾기, 개별 민족과 사회 존중, 세계 평화, 그리스도 교회의 일치, 다른 종교와의 대화, 전례 개혁을 비롯한 교회의 현대화 등을 촉구하였다. 또한 요한 23세 교황은 냉전시대의 긴장 완화를 이끌어냄으로써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였다. 위암 진단에도 교황으로서의 직분을 다하던 요한 23세는 1963년 6월 향년 81세로 선종하였다. 2014년 4월 27일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李和承

전북 전주 출신으로 타이완 국립사범대학 역사연구소에서 중국 상업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디지털대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 전통 상인과 상업문화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저서로 『중국의 고리대금업』 『상인이야기』 등이 있다. 중국 학계에서 비교적 고전에 속하는 정관응의 『성세위언』, 주둥륜의 『장거정평전』과 현대 학자인 리보중의 『중국 경제사 연구의 새로운 모색』 『조총과 장부』, 판수즈의 『관료로 산다는 것』, 리궈룽의 『제국의 상점』 등을 번역하여 중국의 상업 전통 및 환경을 비롯해 관련 연구 방법 등을 소개했다. 또한 중국의 전통 역사교육을 받은
전북 전주 출신으로 타이완 국립사범대학 역사연구소에서 중국 상업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디지털대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 전통 상인과 상업문화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저서로 『중국의 고리대금업』 『상인이야기』 등이 있다. 중국 학계에서 비교적 고전에 속하는 정관응의 『성세위언』, 주둥륜의 『장거정평전』과 현대 학자인 리보중의 『중국 경제사 연구의 새로운 모색』 『조총과 장부』, 판수즈의 『관료로 산다는 것』, 리궈룽의 『제국의 상점』 등을 번역하여 중국의 상업 전통 및 환경을 비롯해 관련 연구 방법 등을 소개했다. 또한 중국의 전통 역사교육을 받은 학자들이 미국 학계에서 활동하며 중국 역사를 보는 또 다른 시각과 관점의 차이, 접점 등을 만들어내는 모습도 하오옌핑의 『중국의 상업혁명』 『동양과 서양, 전통과 근대를 잇는 상인, 매판』, 왕위안충의 『중국과 미국, 무역과 외교 전쟁의 역사』 등으로 꾸준히 번역하여 알려왔다.

이화승의 다른 상품

역자 : 이화승
전북 전주 출신으로 대만 국립사범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연수한 뒤, 1997년 대만국립사범대학 역사연구소에서 중국 사회경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북대학을 거쳐 현재 서울디지털 대학교 중국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의 전통경제, 특히 상업과 상인, 중국과 외국의 상업 분쟁에 관해 연구를 하고 있다. 『중국의 고리대금업』을 썼으며 『중국의 상업혁명』,『동양과 서양, 전통과 근대를 잇는 상인 매판』,『성세위언』등을 옮겼고 『19세기 상해 회심공해로 본 중서상업분쟁』,『청말 경원선을 통해 본 상인의 사회참여』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2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566g | 153*224*20mm
ISBN13
9788971390658

출판사 리뷰

에피소드 하나:강희제와 루이 14세의 우정
“서양인들이 처음 광주에 오면, 13행 상관은 그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중국 관리와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다. 또 북경으로 가는 허락을 얻기 전에 중국을 배울 수 있는 학습장이기도 했다. 청나라의 기록에는 강희 시기 서양 선교사들이 광주에 도착하면, 일단 상관商館에서 중국어를 다 배운 다음 황제에게 보고하고, 궁중에서 부르면 그때야 북경으로 갔다고 한다.

강희제는 서학西學에 관심이 많아, 서양인들이 가져온 새로운 정보를 즐겨 들었다. 그래서 1712년에는 광주에 서양 선박 소식은 없는지 다섯 번이나 물을 정도였다. 이렇게 궁중에 들어와 일하던 몇몇 선교사는, 황제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중요 인물이 되었다. 황제의 주변에서 중국 관복을 입고 중국어를 하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선교사들은, 이 늙은 제국에 신선한 서양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강희제 때 황제 주변에 있던 프랑스 선교사에게 ‘암피트리테Amphitrite’라는 상선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1693년 강희제는 프랑스 선교사 부베Joachim Bouvet에게, 프랑스로 돌아가 루이 14세에게 더 많은 과학자를 보내 달라는 부탁을 전하도록 했다. 당시 중국과 프랑스를 전문적으로 오가던 선박이 없어, 그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상선을 타고 파리로 돌아갔다.

부베가 그린 중국 귀족들의 관복 그림은 프랑스 궁정에 중국옷을 모방해 입는 유행을 불러왔다. 강희제는 루이 14세에게 중국책 49권을 선물했는데, 이 책들은 지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루이 14세는 자신이 파견한 선교사가 중국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을 알고는 매우 기뻐했다. 부베는 강희제가 프랑스 선박을 보고 싶어 한다며, 루이 14세에게 중국과의 통상을 촉진하라고 요청했다.

강희제가 연해를 개방한 것과 루이 14세가 동양으로 진출하려던 시도는 서로 일치했다. 강희제를 답방하려고 루이 14세는 배를 건조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1698년 500톤급의 ‘암피트리테호’가 처음으로 광주를 향해 항해를 떠났다. 배에는 수십 명의 해군 장교, 부베가 초빙한 10명의 학자들이 탔다. 중국 전도를 그린 파레닌Dominique Parrenin, 『역경易經』을 번역한 레기Jean-Baptiste Regis, 『원곡元曲』을 번역한 앙리마리Joseph Henry-Marie 등이었다. 또 루이 14세가 강희제에게 보내는 화려한 동판화 등 많은 선물이 실려 있었다. 중국 정부는 프랑스 정부에서 보낸 선박이라는 이유로 모든 세금을 면제하여 환영을 표했다. 이 해 광주에 프랑스 상관이 문을 열면서 연이어 유럽 각국의 상관들이 문을 열었다.”

에피소드 둘:세계 최고의 갑부는 중국인? 비결은 해외 투자!
“반씨의 동문행이 19세기 전후에 광주의 상업계를 독주했다면, 그 이후에는 오씨의 이화행怡和行 시대였다. 오씨 집안은 무엇보다 투자에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오씨 집안은 부동산과 차밭, 상점, 거액의 현금을 가지고 있었는데, 1834년 당시 소유한 현금만 2,600만 은원銀元에 달하여 청나라 정부의 1년 재정수입의 절반에 해당했다. 이 시기 미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의 자산이 겨우 700만 원쯤이었다. 미국 학자 모스는 오병감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상인이었다’라고 했다. …… 오병감은 한 번도 중국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해외에 투자를 했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그는 외국 상인과 편지로만 거래했다. 자신은 영어를 몰랐지만 별로 어려울 건 없었다. 당시 그는 13행의 외국 상관에서 무역에 종사하던, 풍부한 국제 무역 경험을 지닌 미국 상인들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적절하게 그들의 건의와 의견을 잘 받아들였다. 오병감은 그들을 잘 대해 주었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었다.

오병감은 이런 대리인들을 믿고 그들이 일을 잘 처리하도록 배려하면서 해외 투자를 계속했다. 1837년 그의 대리인이던 24세의 미국 상인 존 머레이 포브스John Murray Forbes가 미국으로 돌아갔다. 8년 전 그가 중국에 왔을 때는 단지 일을 배우려는 젊은이였다. 그는 중국에서 차를 거래하다가 오병감의 양자가 되었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 그의 주머니에는 50만 멕시코 은원이 들어 있었다. 포브스는 이 돈으로 미국의 철도 사업에 투자하여, 북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미국 철도의 최대 사업가가 되었다.

오병감은 대리인을 통해 미국의 보험업에 투자하고 주식도 샀다. 그의 아들 오소영伍紹榮도 아버지처럼 미국 철도 사업에 투자했다. 초반에는 실패도 했지만, 독특한 안목으로 분산투자하여 결국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오씨 집안이 미국에 투자한 자금의 이자만 해마다 백은 20여 만 냥에 달하여, 이화행은 명실상부한 다국적 기업이 되었다.

에피소드 셋:세계의 종말보다 무서운 서양 부녀자
“서양에서 불어온 바람은 때로 예상치 못한 갈등과 충돌을 야기했다. 그러한 충돌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표출되곤 했다.

청나라 정부는 광주에 사는 외국 상인들에게 여러 금지령을 내렸지만, 대개 형식적이어서 실제로는 집행되지 않았다. 다만 ‘서양인 부녀자’의 광주성 출입금지만은 엄격하게 실행했다. 서양인 부녀자들은 주로 대반이나 상인들이 데려온 가족이었다. 해마다 반 년 정도를 광주의 상관에서 살아야 하는 외국인들에게, 여자를 데려오지 못하게 한 것은 참으로 지키기 어려운 규정이었다.

1830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대반인 베인즈William Baynes는 금지령을 어기고 아내와 아이들을 가마에 태워 광주 13행 상관에 데리고 와, 성 안팎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광주 장군과 양광 총독, 월해관 감독, 광동 순무는 매우 당황하여, ‘천조天朝의 체제를 위반한’ 이 사건을 서둘러 보고했다. 『광주번귀록』에서는 이 사건을 이렇게 다루었다.

1830년은 외국인들이 광주에 살던 시간 가운데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그해 10월 몇 명의 영국과 미국인 부녀자들이 오문에서 상관으로 왔다. 그들 가운데 영국 상관에서 일하던 윌리엄 베인즈의 아내가 가장 미인이었는데, 그녀는 전형적인 런던의 유행복을 입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 그들은 남자들과 함께 가장 번화한 13행 주변을 거니는 등, 공개적으로 법규를 위반한 뒤 가마를 타고 상관으로 들어갔다. 백인들이 어디를 가든 호기심에 찬 중국인들이 따라다녔고, 놀란 사람들은 창문으로 내다보기도 했으며, 가게들은 서둘러 불을 켰다.

관리들은 갑자기 발생한 이 사건에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오호관을 엄하게 문책하는 한편, 도처에 공고를 내걸어 이런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경고했다. 설사 세계에 종말이 온다고 해도 관리들이 그렇게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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