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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향기를 맡고 싶소
이상 산문집
이상
예옥 2008.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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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나는 당신 없이는 못 사는 몸이오
에피그램 / 행복 / 19세기식 / 약수藥水 / 혈서血書 삼태三態 / 애야哀夜/ 아포리즘 1

2. 근심이 나를 제한 세상보다 큽니다
산촌여정山村餘情 / 아포리즘 2 / 권태 / 이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주라 / 어리석은 석반夕飯/ 모색暮色 / 첫 번째 방랑 / 야색夜色 / 여상女像 사제四題 / 아름다운 조선말

3. 도회의 인심은 어느 만큼이나 박해가려는지
조춘점묘早春點描 / 아포리즘 3 / 추등잡필秋燈雜筆 / 산책의 가을 / 서망율도 西望栗島 / 『오감도』 작자의 말 / 내가 좋아하는 화초와 내 집의 화초

4.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이렇게 야위었는데
슬픈 이야기 / 동경東京 / 병상 이후 / 아포리즘 4 / 얼마 안 되는 변해辨解 / 무제-악성樂聖의 거울 /

5. 다시 살아야겠어서 저는 여기를 왔습니다
동생 옥희 보아라 / 편지 1 / 편지 2 / 편지 3 / 편지 4

저자 소개 1

李箱, 김해경金海卿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1910년 8월 20일에 태어났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학생 회람지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29년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어 근무하던 중 12월에 건축학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1928년 졸업 앨범에서 평생 동안 필명이 되는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1930년 [조선]에 첫 소설 『12월 12일』 연재를 시작하며 등단했다. 이후 『이상한 가역반응』 『파편의 경치』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내며 활발한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1910년 8월 20일에 태어났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학생 회람지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29년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어 근무하던 중 12월에 건축학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1928년 졸업 앨범에서 평생 동안 필명이 되는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1930년 [조선]에 첫 소설 『12월 12일』 연재를 시작하며 등단했다. 이후 『이상한 가역반응』 『파편의 경치』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내며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친다.

1934년에는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연재했는데, 난해하고 파괴적인 형식에 독자들의 항의를 받고 연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오감도 작가의 말」은 연재 중단 후 쓰여 해당 잡지에는 발표되지 않았다. 1936년「날개」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날개」는 이상의 대표 소설이다. 이듬해는 1937년 2월 사상불온 혐의로 일본 경찰에 유치되었고, 같은 해 4월 17일 도쿄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사망하였다.

현대시사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며, 1930년대에 있었던 20년대의 사실주의, 자연주의에 반발한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였다. 그는 건축가로 일하다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겉으로는 서울 중인 계층 출신으로 총독부 기사였던 평범한 사람이지만, 20세부터 죽을 때까지 폐병으로 인한 각혈과 지속적인 자살충동 등 평생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던 기이한 작가였다. 한국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시와 소설을 창작한 바탕에는 이런 공포가 늘 그의 삶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10년에 태어나 1912년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집에 장손으로 입양되었고,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신명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마쳤다. 손가락이 잘리고 빈궁하게 살았던 친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와 자신을 입양한 백부에 대한 증오심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영민하여 학업 성적은 우수하였고,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질이 있어 학창시절, 직장시절 내내 그림에 꿈을 품고 열중하였다. 또한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이 있었고, 예술적 이상향으로 동경(도쿄)을 꼽았다고 한다. 스스로를 선각자이며, 천재, 모더니즘의 기수이자 전위예술의 선구자라고 자처했는데, 식민지 시대임에도 민족적인 자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범세계적이고 현대적인 문명에 심취하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는 한국 고유의 색채를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유럽이나 일본 문학계에 유행하던 모더니즘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실제 생활은 나태하고 난잡, 무기력했다고 전해지며,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잡지 [조선(朝鮮)]의 1930년 2월호부터 12월호까지 9회에 걸쳐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기도 한 『12월12일(十二月十二日)』을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하였고,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을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BOITEUX·BOITEUSE』 『오감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했고, 1932년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조선]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으며,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였다. 이후 [구인회]에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다. 미친수작, 정신병자의 잡문이라는 혹평을 받아 결국 30회로 예정되어 있었던 분량을 15회로 수정하여 연재가 중단되었지만 열화와 같은 찬반양론을 일으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소설 『지팡이 역사』 수필 『혈서삼태』와 『산책의 가을』 등을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연재되는 동안 삽화를 맡아 그리기도 하는 등 창작 활동은 계속하였다. 친구인 구본웅(具本雄)과는 신명(新明)학교 동기동창일때부터 각별히 친했으며, 대학입학시 그가 선물한 스케치박스(사구상)에서 필명인 이상이 나왔다는 설이 전해진다. 화가 구본웅이 인쇄소 창문사에 이상의 일자리를 주선하여 근무하면서 1936년, 구인회의 동인지인 [시와 소설]을 창간하고 편집해 발간하지만 1집만을 발간하고 그만둔다. 이후 [중앙]에 『지주회시』 [조광]에 『날개』 『동해』를 발표하였다.

백부에게서 유산을 물려받고 가족들과 함께 살았으나, 가족들의 무지와 가난에 곧 질려서 보름만에 나와버렸다. 1933년, 무질서한 생활로 폐병이 심해져 각혈까지 한 그는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구본웅과 함께 황해도 백천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했다. 그 곳에서 그의 연인인 금홍을 만났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금홍을 못잊고 방황 하다가 제비 다방을 마련해 그녀를 마담자리에 앉혔다. 그는 금홍과의 만남 이후에도 여러 여급들과 사랑을 나누었는데, 이들을 무척 사랑하긴 했지만 그 행복이 오래간 적은 없었다. 다만 이들과의 관계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어 작품들을 집필하였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금홍과 권순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가면 『봉별기』, 『날개』, 『지주회시』 그리고 『종생기』등과 전문시 음화시, 문명 비평류의 수필 등을 산더미처럼 쏟아내었다. 이 수많은 작품들이 술에 절어있던 한밤 중에 쓰여졌다는 사실은 ‘천재 이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그러던 그는 이화여전 출신인 여류문인이자 친구 구본웅의 이복동생인 변동림(이상이 죽은 뒤 순화 김환기의 부인이 된 김향안 씨)과 결혼을 하였다. 그녀는 금홍과 달리 빈민굴에서 고생하는 그의 가족과 깊은 친분을 맺었다. 하지만 그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그녀는 카페의 여급으로 일하며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건강악화와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 국내에서의 비참한 현실과 마주친 이상은 도피하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탓인지, 가족과 아내를 남겨둔 채 1936년에 동경행을 선택했다. 동경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가난을 절절히 겪던 그는 『종생기』, 『환상기』, 『실락원』, 『실화』, 『동경』 등의 수많은 작품을 엮어냈고, 『봉별기』를 [여성]에 발표하였다.

그의 마지막 여자인 변동림은 『동해』 『단발』 구필 『행복』 『종생기』의 『선』 『실화』의 『연』 등에서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 있다.이듬해 2월, 극도로 악화된 건강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이상은 1937년 불량선인(사상불온) 혐의로 운 나쁘게도 일본 경찰에게 검거되어 옥살이를 치렀다. 건강이 악화되어 거의 시체나 다름없게 된 그는 보석을 허가받아 평소 동경제대의 부속병원에 입원했다. 항상 여자와 문학에 빠져 살던 이상은 결국 날지 못한 채 변동림이 구해온 레몬의 향기를 맡으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유해는 화장하여, 경성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에 숨진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유실되었다. 20세기 한국문학사에 내장된 최고의 형이상학적 스캔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집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이상의 다른 상품

편자 : 박현수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시집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위험한 독서』가 있고, 연구서 『현대시와 전통주의의 수사학』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사학』 『한국모더니즘 시학』, 시비평집 『황금책갈피』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38쪽 | 370g | 140*200*20mm
ISBN13
9788995761298

책 속으로

죽어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여봅니다. 벽 못에 걸린 다 해어진 내 저고리를 쳐다봅니다. 서도西道 천리를 나를 따라 여기 와 있습니다 그려! 등잔 심지를 돋우고 비망록에 불을 켠 다음 철필로 군청빛 ‘모’를 심어갑니다. 불행한 인구人口가 그 위에 하나하나 탄생합니다. 조밀한 인구가. 내일은 진종일 화초만 보고 놀리라, 탈지면에다 알코올을 묻혀서 온갖 근심을 문지르리라, 이런 생각을 먹습니다. 너무도 꿈자리가 뒤숭숭하여서 그러는 것입니다. ---「산촌여정」 중에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 이상으로 괴로운 상태가 또 있을까. 인간은 병석에서도 생각한다. 아니 병석에서는 더욱 많이 생각하는 법이다.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하였을 때 그의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 그리하여 망쇄忙殺할 때보다도 몇 배나 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특질이요 질환인 자의식 과잉은 이런 권태치 않을 수 없는 권태계급의 철저한 권태로 말미암음이다. 육체적 한산閑散 정신적 권태 이것을 면할 수 없는 계급이 자의식 과잉의 절정을 표시한다. ---「권태」 중에서

나는 그분들게 돈을 갖다 드린 일도 없고 엿을 사다드린 일도 없고 또 한 번도 절을 해본 일도 없습니다. 그분들이 내게 경제화를 사주시면 나는 그것을 신고 그분들이 모르는 골목길로만 다녀서 다 해뜨려버렸습니다. 그분들이 월사금을 주시면 나는 그분들이 못 알아보시는 글자만을 골라서 배웠습니다. 그랬건만 한 번도 나를 사살하신 일이 없습니다. 젖 떨어져서 나갔다가 23년 만에 돌아와보았더니 여전히 가난하게들 사십디다. 어머니는 내 대님과 허리띠를 접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내 모자와 양복저고리를 걸기 위한 못을 박으셨습니다. 동생도 다 자랐고 막내누이도 새악시 꼴이 단단히 박였습니다. 그렇건만 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슬픈 이야기」 중에서

과거를 돌아보니 회한뿐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속여왔나 봅니다. 정직하게 살아왔거니 하던 제 생활이 지금 와보니 비겁한 회피의 생활이었나 봅니다.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고독과 싸우면서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며 있습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제야除夜입니다. 빈자떡, 수정과, 약주, 너비아니, 이 모든 기갈의 향수가 저를 못살게 굽니다. 생리적입니다. 이길 수가 없습니다. 가끔 글을 주시기 바랍니다. 고독합니다. 이곳에는 친구 삼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서울의 흙을 밟아볼는지 아직은 망연합니다. 저는 건강치 못합니다. 건강하신 형이 부럽습니다. ---「편지 3」 중에서

나는 내 아내를 버렸다. 아내는 “저를 용서하실 수는 없었습니까” 한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용서’라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은 없다. 왜? ‘간음한 계집은 버리라’는 철칙에 의혹을 가지는 내가 아니다. 간음한 계집이면 나는 언제든지 곧 버린다. 다만 내가 한참 망설여가며 생각한 것은 아내의 한 짓이 간음인가 아닌가 그것을 판정하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결론은 늘 ‘간음이다’였다. 나는 곧 아내를 버렸다. 그러나 내가 아내를 몹시 사랑하는 동안 나는 우습게도 아내를 변호하기까지 하였다. ‘될 수 있으면 그것이 간음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도록’ 나는 나 자신의 준엄 앞에 애걸하기까지 하였다.

---「19세기식」 중에서

출판사 리뷰

【 감각적이며 낯설고, 아름다우며 난해한 산문세계 】
이 책에 실린 산문은 전체 35편으로, 논설에 해당하는 글과 권두언 등을 제외한 이상의 산문을 거의 다 수록한 셈이다. 너무 젊은 나이에 숨진 작가였기에 산문이 많지 않으며, 그 중에서도 4편의 아포리즘과 5편의 편지를 제외하면 정식으로 산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26편으로 축소된다. 그나마도 이상 생존 당시에 발표된 글은 많지 않으며, 유고遺稿가 절반가량을 차지하는데 「권태」나 「슬픈 이야기」 등의 잘 알려진 작품도 이 경우에 속한다.

이상의 유고 중에는 일본어로 된 글들이 있는데, 1960년대에 발굴되고 시인 김수영 등에 의해 번역되었다. 이 글들에서는 이상의 복잡한 내면의 풍경을 읽을 수 있는데, 특히 「애야」「얼마 안 되는 변해」「무제-악성의 거울」등의 글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지워버린 듯한 환상성이 극단적으로 표출되어 있다. 이상의 가장 유명한 수필 「권태」나 「산촌여정」에 비교할 때 일문으로 씌어진 이 글들은 꽤 복잡하고 난해하다. 이에 대해 박현수 교수는 서문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일문 노트의 글은 출판 매체에 발표된 그의 글에서 감추어진 비교적 덜 통제된 내면을 잘 보여준다. 기존의 발표작들이 자기 검열에 의해 어느 정도 완결되고 문법적으로 순화된 형태를 보여주는 데 반하여 일문 노트의 글들은 무의식을 기록한 것처럼 지상의 모든 관습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래서 난해하지만 그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더 깊은 사색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이상이 사랑했던 여인들, 그의 문학코드 】
잘 알려져 있듯 이상에게는 금홍, 권순영, 변동림이라는 세 여성이 있었다. 금홍은 1934년 배천 온천에 갔을 때 만난 작부이고, 권순영은 정인택과 삼각관계였던 여급이었고, 변동림은 구본웅의 이복동생으로 이화여전 영문과 출신의 문인이었다. 「날개」를 비롯한 그의 많은 소설에서 그러했듯이 이상은 이 여성들과의 연애를 토대로 한 몇 편의 산문을 남겼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글들을 모아 1부로 엮었는데, 20세기의 모더니스트였으면서도 19세기적인 정조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상의 여성관이 드러나 있다.(“내가 이 세기에 용납되지 않는 최후의 한꺼풀 막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간음한 아내는 내어쫓으라’는 철칙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는 내 곰팡내 나는 도덕성이다”―「19세기식」)

또한 ‘나는 한 매춘부를 생각한다’라는 부제를 단「애야哀夜」는 전집류에서 산문이 아닌 시로 분류될 만큼 시적 상징과 수사로 가득한 특이한 작품이다. 박현수 교수는 이 글의 전개상 시로 보지 않고 산문에 포함하였는데, 이것은 이상이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물어버릴 만큼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가졌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 자연을 예찬하지 않는 자의식 과잉의 이상 】
이상의 가장 아름다운 산문이라 평가되는 「산촌여정」과 「권태」는 1935년 여름 평남 성천에 잠시 요양차 머물렀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때의 경험은 이 책의 2부로 엮은 5편의 다른 산문을 통해 거듭 표현되어 있는데, 도회지에서 태어나 성장한 지식인의 눈에 비친 생경한 시골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일망무제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퍼러냐. 하루 온종일 저 푸른빛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며 단순히 자연을 예찬하지 않는 대목은 여느 작가들과 구별되는 시선과 표현이기도 하다. 물론 촌처녀의 건강한 아름다움에 반하기도 하고 꽃봉오리가 벌어져 꽃이 피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무료한 놀이를 하는 불쌍한 아이들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하지만, 성천 기행 산문은 평화로운 곳에서도 쉬지 못하는 이상의 자의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하였을 때 그의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고 하면서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모습, 수사적 환상의 세계로 탈출하려는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이에 대해 박현수 교수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상의 문학은 일상에 발을 디디고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일상적인 세계로부터 절연된 절대적인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상은 이 세계의 진부한 일상에 진절머리를 치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삶, 전혀 새로움이 없는 이 회색의 세계에서 그는 어떤 혁명과 같은 절대적인 변화를 갈망하였다. 어떤 방향으로든 이 근대세계의 상투성을 뚫고 나아가고자 하였다. (……) 이상은 그의 경험에 전적으로 몰입하는 경우가 없다. 그는 언제나 세계에 대한 수사학적 거리를 유지한다. 모든 것은 어떤 표현의 대상이라는 미적 자의식을 견지하고 있었기에 그의 경험은 어떤 경우에도 날것 그대로 생경하게 혹은 어설프게 나타나는 경우가 없다. 자신의 개인사를 말할 때조차 그는 투명한 유리창 밖에서 어떤 대상을 관찰하는 것처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한다. 이것이 극단화될 경우 사실의 세계와의 연관성이 극도로 미약해져 난해하고도 환상적인 세계와 가까워지게 된다.”

【 천재가 아닌 인간 이상 】
수필은 어떤 작가의 시나 소설을 이해하는 데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하는데, 이상의 경우 역시 그러하다. 특히 형식의 실험과 언어유희가 극심한 이상의 문학을 읽고자 할 때 이상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산문은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천재’가 아닌 ‘인간’ 이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며, 그리고 가난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애를 썼다는 부분이다. 그가 다방을 여러 차례 경영한 것은 낭만이 아니라 생활이었던 것이다.

특히 「슬픈 이야기」에는 23년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슬픔과 부모에 대한 사랑, 가장으로서의 무능함이 고백적으로 담겨 있다.(“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또한 편지글인「동생 옥희 보아라」에는 애인과 만주로 떠나버린 여동생을 걱정하는 큰오빠의 지극한 사랑이 나타나 있다.

또 폐병을 방치하면서 자학적으로 술을 마셔댔던 이상이지만 「병상 이후」라는 산문에서는 자신을 치료할 의사를 “위대한 마법사나 예언자 쳐다보듯이” 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담겨 있다. 이상의 ‘자의식 과잉’이란, 이러한 산문들에 엿보이듯, 간절히 소망하나 실현되지 않는 현실 또는 불안정한 성장과정에서 기인된 것임을 추측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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