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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당신 없이는 못 사는 몸이오
에피그램 / 행복 / 19세기식 / 약수藥水 / 혈서血書 삼태三態 / 애야哀夜/ 아포리즘 1 2. 근심이 나를 제한 세상보다 큽니다 산촌여정山村餘情 / 아포리즘 2 / 권태 / 이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주라 / 어리석은 석반夕飯/ 모색暮色 / 첫 번째 방랑 / 야색夜色 / 여상女像 사제四題 / 아름다운 조선말 3. 도회의 인심은 어느 만큼이나 박해가려는지 조춘점묘早春點描 / 아포리즘 3 / 추등잡필秋燈雜筆 / 산책의 가을 / 서망율도 西望栗島 / 『오감도』 작자의 말 / 내가 좋아하는 화초와 내 집의 화초 4.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이렇게 야위었는데 슬픈 이야기 / 동경東京 / 병상 이후 / 아포리즘 4 / 얼마 안 되는 변해辨解 / 무제-악성樂聖의 거울 / 5. 다시 살아야겠어서 저는 여기를 왔습니다 동생 옥희 보아라 / 편지 1 / 편지 2 / 편지 3 / 편지 4 |
李箱, 김해경金海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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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여봅니다. 벽 못에 걸린 다 해어진 내 저고리를 쳐다봅니다. 서도西道 천리를 나를 따라 여기 와 있습니다 그려! 등잔 심지를 돋우고 비망록에 불을 켠 다음 철필로 군청빛 ‘모’를 심어갑니다. 불행한 인구人口가 그 위에 하나하나 탄생합니다. 조밀한 인구가. 내일은 진종일 화초만 보고 놀리라, 탈지면에다 알코올을 묻혀서 온갖 근심을 문지르리라, 이런 생각을 먹습니다. 너무도 꿈자리가 뒤숭숭하여서 그러는 것입니다. ---「산촌여정」 중에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 이상으로 괴로운 상태가 또 있을까. 인간은 병석에서도 생각한다. 아니 병석에서는 더욱 많이 생각하는 법이다.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하였을 때 그의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 그리하여 망쇄忙殺할 때보다도 몇 배나 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특질이요 질환인 자의식 과잉은 이런 권태치 않을 수 없는 권태계급의 철저한 권태로 말미암음이다. 육체적 한산閑散 정신적 권태 이것을 면할 수 없는 계급이 자의식 과잉의 절정을 표시한다. ---「권태」 중에서 나는 그분들게 돈을 갖다 드린 일도 없고 엿을 사다드린 일도 없고 또 한 번도 절을 해본 일도 없습니다. 그분들이 내게 경제화를 사주시면 나는 그것을 신고 그분들이 모르는 골목길로만 다녀서 다 해뜨려버렸습니다. 그분들이 월사금을 주시면 나는 그분들이 못 알아보시는 글자만을 골라서 배웠습니다. 그랬건만 한 번도 나를 사살하신 일이 없습니다. 젖 떨어져서 나갔다가 23년 만에 돌아와보았더니 여전히 가난하게들 사십디다. 어머니는 내 대님과 허리띠를 접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내 모자와 양복저고리를 걸기 위한 못을 박으셨습니다. 동생도 다 자랐고 막내누이도 새악시 꼴이 단단히 박였습니다. 그렇건만 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슬픈 이야기」 중에서 과거를 돌아보니 회한뿐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속여왔나 봅니다. 정직하게 살아왔거니 하던 제 생활이 지금 와보니 비겁한 회피의 생활이었나 봅니다.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고독과 싸우면서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며 있습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제야除夜입니다. 빈자떡, 수정과, 약주, 너비아니, 이 모든 기갈의 향수가 저를 못살게 굽니다. 생리적입니다. 이길 수가 없습니다. 가끔 글을 주시기 바랍니다. 고독합니다. 이곳에는 친구 삼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서울의 흙을 밟아볼는지 아직은 망연합니다. 저는 건강치 못합니다. 건강하신 형이 부럽습니다. ---「편지 3」 중에서 나는 내 아내를 버렸다. 아내는 “저를 용서하실 수는 없었습니까” 한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용서’라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은 없다. 왜? ‘간음한 계집은 버리라’는 철칙에 의혹을 가지는 내가 아니다. 간음한 계집이면 나는 언제든지 곧 버린다. 다만 내가 한참 망설여가며 생각한 것은 아내의 한 짓이 간음인가 아닌가 그것을 판정하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결론은 늘 ‘간음이다’였다. 나는 곧 아내를 버렸다. 그러나 내가 아내를 몹시 사랑하는 동안 나는 우습게도 아내를 변호하기까지 하였다. ‘될 수 있으면 그것이 간음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도록’ 나는 나 자신의 준엄 앞에 애걸하기까지 하였다. ---「19세기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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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적이며 낯설고, 아름다우며 난해한 산문세계 】
이 책에 실린 산문은 전체 35편으로, 논설에 해당하는 글과 권두언 등을 제외한 이상의 산문을 거의 다 수록한 셈이다. 너무 젊은 나이에 숨진 작가였기에 산문이 많지 않으며, 그 중에서도 4편의 아포리즘과 5편의 편지를 제외하면 정식으로 산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26편으로 축소된다. 그나마도 이상 생존 당시에 발표된 글은 많지 않으며, 유고遺稿가 절반가량을 차지하는데 「권태」나 「슬픈 이야기」 등의 잘 알려진 작품도 이 경우에 속한다. 이상의 유고 중에는 일본어로 된 글들이 있는데, 1960년대에 발굴되고 시인 김수영 등에 의해 번역되었다. 이 글들에서는 이상의 복잡한 내면의 풍경을 읽을 수 있는데, 특히 「애야」「얼마 안 되는 변해」「무제-악성의 거울」등의 글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지워버린 듯한 환상성이 극단적으로 표출되어 있다. 이상의 가장 유명한 수필 「권태」나 「산촌여정」에 비교할 때 일문으로 씌어진 이 글들은 꽤 복잡하고 난해하다. 이에 대해 박현수 교수는 서문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일문 노트의 글은 출판 매체에 발표된 그의 글에서 감추어진 비교적 덜 통제된 내면을 잘 보여준다. 기존의 발표작들이 자기 검열에 의해 어느 정도 완결되고 문법적으로 순화된 형태를 보여주는 데 반하여 일문 노트의 글들은 무의식을 기록한 것처럼 지상의 모든 관습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래서 난해하지만 그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더 깊은 사색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이상이 사랑했던 여인들, 그의 문학코드 】 잘 알려져 있듯 이상에게는 금홍, 권순영, 변동림이라는 세 여성이 있었다. 금홍은 1934년 배천 온천에 갔을 때 만난 작부이고, 권순영은 정인택과 삼각관계였던 여급이었고, 변동림은 구본웅의 이복동생으로 이화여전 영문과 출신의 문인이었다. 「날개」를 비롯한 그의 많은 소설에서 그러했듯이 이상은 이 여성들과의 연애를 토대로 한 몇 편의 산문을 남겼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글들을 모아 1부로 엮었는데, 20세기의 모더니스트였으면서도 19세기적인 정조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상의 여성관이 드러나 있다.(“내가 이 세기에 용납되지 않는 최후의 한꺼풀 막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간음한 아내는 내어쫓으라’는 철칙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는 내 곰팡내 나는 도덕성이다”―「19세기식」) 또한 ‘나는 한 매춘부를 생각한다’라는 부제를 단「애야哀夜」는 전집류에서 산문이 아닌 시로 분류될 만큼 시적 상징과 수사로 가득한 특이한 작품이다. 박현수 교수는 이 글의 전개상 시로 보지 않고 산문에 포함하였는데, 이것은 이상이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물어버릴 만큼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가졌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 자연을 예찬하지 않는 자의식 과잉의 이상 】 이상의 가장 아름다운 산문이라 평가되는 「산촌여정」과 「권태」는 1935년 여름 평남 성천에 잠시 요양차 머물렀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때의 경험은 이 책의 2부로 엮은 5편의 다른 산문을 통해 거듭 표현되어 있는데, 도회지에서 태어나 성장한 지식인의 눈에 비친 생경한 시골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일망무제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퍼러냐. 하루 온종일 저 푸른빛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며 단순히 자연을 예찬하지 않는 대목은 여느 작가들과 구별되는 시선과 표현이기도 하다. 물론 촌처녀의 건강한 아름다움에 반하기도 하고 꽃봉오리가 벌어져 꽃이 피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무료한 놀이를 하는 불쌍한 아이들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하지만, 성천 기행 산문은 평화로운 곳에서도 쉬지 못하는 이상의 자의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하였을 때 그의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고 하면서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모습, 수사적 환상의 세계로 탈출하려는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이에 대해 박현수 교수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상의 문학은 일상에 발을 디디고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일상적인 세계로부터 절연된 절대적인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상은 이 세계의 진부한 일상에 진절머리를 치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삶, 전혀 새로움이 없는 이 회색의 세계에서 그는 어떤 혁명과 같은 절대적인 변화를 갈망하였다. 어떤 방향으로든 이 근대세계의 상투성을 뚫고 나아가고자 하였다. (……) 이상은 그의 경험에 전적으로 몰입하는 경우가 없다. 그는 언제나 세계에 대한 수사학적 거리를 유지한다. 모든 것은 어떤 표현의 대상이라는 미적 자의식을 견지하고 있었기에 그의 경험은 어떤 경우에도 날것 그대로 생경하게 혹은 어설프게 나타나는 경우가 없다. 자신의 개인사를 말할 때조차 그는 투명한 유리창 밖에서 어떤 대상을 관찰하는 것처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한다. 이것이 극단화될 경우 사실의 세계와의 연관성이 극도로 미약해져 난해하고도 환상적인 세계와 가까워지게 된다.” 【 천재가 아닌 인간 이상 】 수필은 어떤 작가의 시나 소설을 이해하는 데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하는데, 이상의 경우 역시 그러하다. 특히 형식의 실험과 언어유희가 극심한 이상의 문학을 읽고자 할 때 이상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산문은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천재’가 아닌 ‘인간’ 이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며, 그리고 가난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애를 썼다는 부분이다. 그가 다방을 여러 차례 경영한 것은 낭만이 아니라 생활이었던 것이다. 특히 「슬픈 이야기」에는 23년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슬픔과 부모에 대한 사랑, 가장으로서의 무능함이 고백적으로 담겨 있다.(“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또한 편지글인「동생 옥희 보아라」에는 애인과 만주로 떠나버린 여동생을 걱정하는 큰오빠의 지극한 사랑이 나타나 있다. 또 폐병을 방치하면서 자학적으로 술을 마셔댔던 이상이지만 「병상 이후」라는 산문에서는 자신을 치료할 의사를 “위대한 마법사나 예언자 쳐다보듯이” 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담겨 있다. 이상의 ‘자의식 과잉’이란, 이러한 산문들에 엿보이듯, 간절히 소망하나 실현되지 않는 현실 또는 불안정한 성장과정에서 기인된 것임을 추측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