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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mac McCarthy,Charles McCar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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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제 몇 시에 일어났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어제야. 다른 건 중요치 않아.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너의 인생이 되지. 그밖엔 아무것도 없어. 너는 도망가서 이름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할지 몰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천장을 바라보며 여기 누워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하고 묻게 돼. --- 본문 중에서
저기 어딘가에는 살아 있는 진정한 파괴의 예언자가 있다. 다시는 그 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는 알고 있다. 그가 진짜라는 것을. 나는 그가 한 일을 보았다. 한때 나는 그 자의 눈앞에서 걸어다녔다.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두 번 다시는 내 운명을 걸고 그 자를 만나러 가지 않겠다. ....... 나는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영혼을 모험에 내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자신은 그러지 않을 테다.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본문 중에서 무엇이든 도구가 될 수 있소. 아주 작은 거라도. 심지어는 당신이 알아차릴 수 없는 것도 있소. 그것들은 손에서 손으로 떠돌아 다니지만 사람들은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 그리고 어느 날 결산이 이루어지는 거요.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똑같지 않지. 아마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지. 이건 겨우 동전 아니냐고. 별다를 것 없는 동전일 뿐이라고. 행위와 사물을 구별하면서. 마치 역사의 한 순간을 다른 순간과 손쉽게 바꿔치기할 수 있다는 듯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물론 이건 그저 동전일 뿐이오. 그렇소, 맞소. 그저 동전.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인생은 매순간이 갈림길이고 선택이지. 어느 순간 당신은 선택을 했어. 다 거기서 초래된 일이지. 결산은 꼼꼼하고 조금의 빈틈도 없어. 그림은 그려졌고 당신은 거기에서 선 하나도 지울 수 없어. 당신 뜻대로 동전을 움직일 수는 없지. 절대로. 인생의 길은 쉽게 바뀌지 않아. 급격하게 바뀌는 일은 더구나 없지. 당신이 가야 할 길은 처음부터 정해졌어.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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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피할 수 없다. 아무도 막을 수 없다.“아주 낯선, 그들의 세상이 온다!”
2007 퓰리처상 수상 작가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고품격 스릴러 거장 코엔 형제의 영화 2007 전미비평가협회, 뉴욕/보스턴/워싱턴/시카고/샌프란시스코비평가협회 최우수 작품상 수상(영화) 2008 골든글로브 각본상 수상(영화) 2008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등 8개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영화) “코엔형제의 걸작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원작 소설!” 어떤 작품인가? - 끝없는 의문, 절묘한 플롯 사막에서 영양을 쫓던 평범한 사나이 모스는 우연히 유혈이 낭자한 총격전의 현장을 발견한다. 참혹한 시체들, 다량의 마약, 200만 달러가 넘는 현금, 그리고 물을 찾는 중상의 생존자. 모스는 돈가방을 챙겨 그곳을 떠난다. 하지만 생존자를 외면한 것이 마음에 남았던 모스는 그날 밤 물병을 가지고 다시 현장을 찾아간다. 그러나 마약은 사라지고 생존자는 누군가의 총격으로 살해되었으며, 그를 기다리는 것은 미지의 추적자들이다. 이제 지극히 평범했던 모스의 삶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는 도망과 총격전, 음모와 살인 속으로 던져진다. 마약 혹은 돈과 연관된 무리들과의, 혹은 그 무리들 간의 총격전과 살인, 나름의 논리로 아주 냉철하게 살인을 일삼으며 거리를 좁혀 오는 살인마 시거, 진심으로 모스를 염려하지만 이 지옥 속에서 모스를 구해 내기엔 너무나 무기력한 보안관 벨. 결국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사라지며, 누군가는 조용히 물러난다. 그러나 작품이 끝나고도 물음은 계속된다. 그 답을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아주 능숙하고 냉철한 독자만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작품을 읽는 진정한 재미도 오롯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왜 ‘노인’인가? 이 작품의 원제 ‘No country for old men’은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의 첫 구절(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작품을 읽어 보면 단순히 구절만 인용한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가 아예 예이츠의 시에서 모티프를 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거칠고 황량한 느낌의 이 작품이 ‘서정적’이라는 의외의 평가를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릴러 속에 살아 있는 문학적 울림, 이 작품의 매력은 끝이 없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은 으레 나올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결코 근사한 것은 되지 못한다. 왜 노인인가? 누가 노인인가? 왜 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하는가? 시를 읽어 보라(프롤로그에도 실려 있다). 그리고 작품을 읽어 보라. 다시 시를 읽고 작품을 보라.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가슴 한구석을 스쳐 가는 서늘한 바람, 허공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응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둔탁한 충격을 느낄 것이다. 누가 노인인가? 벨인가? 모스인가? 혹은 바로 당신인가? 서부극? 스릴러? 모든 뛰어난 작품이 그렇듯이 이 작품은 여러 얼굴을 갖고 있다. 스릴러의 긴박감에 싸인 현대판 서부극의 모습, 이것이 이 작품의 첫인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숨 가쁜 사건들, 조밀하고 단단한 시퀀스, 무뚝뚝해 보이는 어투와 잔잔한 독백이 교차하는 문체미의 앙상블은 이 작품을 고품격 스릴러, 완성도 높은 서부극으로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스릴러와 서부극의 틀에 부은 시멘트가 채 양생하기도 전에 우리 앞에 다가서는 것은 현대 사회의 심연을 응시하는 묵시록의 시선이다. 멕시코 국경의 황량함, 다양한 형태와 구경의 총기들, 핏빛과 화약 연기들의 로컬 이미지들 아래에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그늘에 대한 노회한 응시가 있다. 포크너 상과 퓰리처 상에 빛나는, 현대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거장의 원숙함은 이 작품에 이르러 폭넓은 대중과의 교감을 성취하기에 이르렀다. 거장은 거장을 알아보는 것일까? 거장 코엔 형제가 이 작품을 영상에 담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2007년 칸에서부터 2008년 아카데미에 이르기까지 각종 영화제를 휩쓴 동명 영화의 개봉까지 보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2월 21일 개봉). 매카시와 코엔 형제, 문학의 향기와 영화미의 협연은 2008 벽두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소설 속으로 - 개성적 문체, 매력적 캐릭터가 엮어 내는 ‘지옥의 묵시록’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처럼 빠른 전개와 군살 없는 묘사로 품격 높은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준다. 선혈이 낭자한 사막의 살인 현장에서 거액이 담긴 돈가방을 우연히 발견한 모스를 둘러싸고, 자신만의 기이한 살인 원칙을 가지고 있는 불가사의한 살인마 시거와, 제2차 세계 대전의 외상을 간직한 채 파국을 향해 치닫는 세계를 음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보안관 벨이 빚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을 저변에 깔고 있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거장 코엔 형제가 영화로 만들어 전세계에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킨 동명 영화의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휘감고 있는 분위기는 묵시록적이다. 스릴러의 외관을 취하고 있는데도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는 느낌은 거기서 나온다. 소설 첫머리부터 피비린내 나는 살인이 벌어지고 마지막까지 살인 행각이 이어지며 피 냄새가 가시지 않지만, 평범한 스릴러에서 느낄 수 없는 텁텁한 긴장감이 전편에 서려 있다. 그 긴장감은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생사를 건 대결에서만 나오지는 않는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추리적 요소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우리는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다). 그것은 장식적 수사를 억제한 냉담한 문장, ‘그리고(and) 문체’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하고 ~하고’의 연속, 서술과 설명이 배제된 묘사 일변도의 장면 제시, 감정이 응고된 건조한 대화로 사정없이 끌고 가는 플롯 전개의 속도감에서 나온다. 독자가 한 장면에 대해 두 번 생각하기도 전에 다음 장면이 연거푸 이어지고 마치 꽉 짜인 일정표에 따르듯 이야기는 파국을 향해 가차 없이 치닫는다. 어느 순간 인물의 행동이나 플롯의 전개가 의아스럽다가도 다음 순간 그것은 무형의 힘이 가하는 필연의 소산이었음을 불현듯 깨닫는다. 그러므로 소설 전체에 의연히 흐르고 있는 것은 어떤 묵시록적 필연성이다. 독자는 모스가 돈가방을 집어 드는 순간부터 그가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모스 자신도 어렴풋이 느꼈듯이. 그리고 그 필연성에 대한 예감은 문명 자체에 대한 예감으로 번진다. 소설 전편에 서린 서스펜스는 소설 안에서 바깥세상으로 퍼져나간다. 언어를 극도로 아껴 냉담하고 건조하게,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 행동과 사건만을 따라가는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내면을 드러내는 인물은 보안관 벨이다. 그는 사려 깊고 건전하며 모스의 운명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만 무력하고 음울하며 관조적이다. 나직히 웅얼거리는 그의 소박하고 진심 어린 독백은 이야기의 진행을 가로막고 독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간주곡으로 끼어들지만, 우리는 그것이 때로는 짜릿하고 신나는 구경거리를 방해하는, 노인의 촌스럽고 고집스러운 잔소리처럼 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불가사의한 살인마는 동전을 던져 희생자의 생사를 결정하고 궤변에 가까운 논리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주저하고 망설이는 벨과는 달리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벨이 선(善)을 대변한다면 그는 악(惡)을 대변하지만, 그 사악함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장엄한 위력을 풍긴다. 벨이 (그리고 아마 매카시도) 느끼기에 하느님조차 그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스릴러의 플롯은 역사의 (비극적인) 섭리와 뒤섞인다. 따라서 시거가 현실에서 가능한 인물이냐고 묻는 것은 응당 필요하지만 대답하기 힘들고 어쩌면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다. 그는 악의 화신일뿐더러 우리가 아무 제어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지 모르는 역사 자체의 의인화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