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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의 문화, 난타의 정치
양장
최정호
시그마북스 2008.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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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철 늦은 좌우 이념 투쟁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노스탤지어를 걱정한다
공산당 허용한다면
요강, 청계천, 동족화합
왼손과 오른손, 左右의 기능
민노당 앞날을 주목한다
내게 어느 편이냐 묻는다면
싸움도 아니고 퀴즈도 아니고
좌우 이념 논쟁의 한계
우익의 우쪽, 좌익의 좌쪽
‘6·25 통일전쟁론’의 아이러니
내가 진보를 못 따라가는 까닭
좌익소아병 치유의 세 번째 기회
한국 좌파의 새로운 역사적 ‘원죄’
여러 갈래의 좌파와 ‘친북 좌파’

노무현 시대를 산다
盧 정권 앞날엔 ‘희망만 있다’
대통령직의 數理와 倫理
노무현式 살신성인? 대통령 탄핵이 남긴 것
이해찬 총리에 대한 기대
‘역할분담론’에 대해서
대통령의 ‘연정론’에 대해서
盧 정권을 평가하는 3대 기준
생각의 나들이, 공인의 말솜씨
절제의 나사가 빠진 사회
나라가 망하는 다양한 길
대통령이 무슨 힘이 있나?
‘노 후’ 걱정과 ‘노 후’ 대책
2006년 세밑의 ‘코리안 랩소디(韓國狂詩曲)’
사회의 폭력, 국가의 무력
허무주의 혁명의 시대?

‘국가 원수’라는 자리
‘대통령 책임제’ 언제까지?
무엇이 오늘 貴한 것인가
‘국가 원수’라는 자리
난타의 문화, 난타의 정치
4년 중임제? 우울한 회상
억만금 무게를 갖는 대통령의 말
약자의 정의? 약자의 신화…
우파·좌파 정권의 저마다 역할
우리의 미래를 낙관하는 근거
그래도 꼭 직선제라야 하나
한국의 ‘데모크라시’
공화국 60년에 50명의 국무총리
대통령? 누구를 뽑아야 하나
‘심정윤리’와 ‘책임윤리’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민족통일의 환상을 버리자
평화-안보 이중전략이 필요하다
탈냉전 시대로 무임승차?
세 겹의 反휴머니즘
북한은 우리의 ‘동족’인가?
말은 같은 우리말이지만…
화해의 허상, 통일의 허상
통일, 평화, 민족… 선전과 현실
참된 ‘친북, 민족공조’를 위하여
6·13과 6·15의 사이
미사일과 선제공격, 누구에게 득이 되기에…
‘민족통일’의 환상을 버리자
남북정상회담을 하겠거든
민주화 이후 국정의 3대 과제
땅보다 사람을 생각하라
한반도의 남북을 보고 있으면

분단시대의 역사는 惡인가
어제의 정의, 오늘의 정의
올해를 이렇게 넘겨도 되나
분단시대의 역사는 惡인가
이념의 폭력, 언어의 폭력
누가 누구를 단죄하는가
‘해체의 영웅’ 하벨
여운형, 박헌영, 이승만의 忌日
‘해방’ 조국의 첫인상과 ‘한류’
박정희 시대, 역사의 비극
우남, 백범, 몽양, 빈, 프라하, 서울
6·25 때 먼저 가신 이들에게
삶의 시간, 역사의 시간
6월, 기습의 계절, 기습의 정치
손이 속을 숨긴다 - 수단과 목적의 모순

일본은 독일과 다르다
어둠속의 결투 - 분단시대의 間諜戰
2005년이 어떤 해인데…
유럽의 左派와 한국의 左派
‘그네뛰기’와 ‘자리굳히기’
독일의 참회, 일본의 침묵
오타 시크의 ‘십계명’과 美國
너무 낮은 외교부 장관의 위상
동아시아 공동체와 2005년
일본은 독일과 다르다
독일에서 본 일본의 보통국가론
‘反動’을 가리듯 ‘親日’을 가려서야
독일 녹색당의 脫이념
반기문, ‘분단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에게 약자의 존재란
히로시마, 나가사키와 ‘역사의 망각’

참을 수 없는 진실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진실’의 가벼움
심청, 부안 앞바다로 가나?
지방분권화와 脫평준화
公論과 言路 - 옛날과 오늘
정부와 언론의 相生을 위하여
사람의 태도가치에 대하여
대도시의 人道主義
국보 1호를 바꾸자는 생각의 바탕
역사를 일상생활 공간 속으로
모차르트와 FIFA 월드컵 축구
선택과 집중, 동계올림픽의 추억
아아, 간송미술관…
명분과 실익, 문화재 반환의 논리
한글의 표기능력 확충을 위하여
몽골의 이태준 기념공원
언론의 통제, 동서고금

황우석 신화와 스캔들
영웅없는 시대의 영웅
치과의자에 누워서
‘최후의 진실’을 누가 말하나
황우석 교수를 믿었던 사람들

한국문화가 色을 쓴다
모스크바 한겨울 밤의 꿈
물과 바다, 헬라스와 한반도
한국 여성이 일을 저지른다
버셀의 춤에 음악이 쫓아왔다
브로드웨이의 감동 그대로
연륜과 패기의 앙상블
한국문화가 ‘色’을 쓴다
‘아르스 노바’와 ‘하이 서울’
서울의 테헤란로와 ‘퇴폐’ 예술
‘춘향전’의 중국화와 ‘동북공정’
회상의 로스트로포비치
진은숙 음악의 ‘빛과 빛깔’, 세계를 쏘다
회상의 파바로티
‘사랑의 시련’ 속의 우리 춘향
2007년이 선물해준 기쁜 소식들

모든 시대는 신 앞에 직접 선다
‘어제의 얼룩’ - 송구영신의 연하장

어떤 죽음의 메시지

저자 소개 1

崔禎鎬

평생을 언론과 대학의 ‘두에 몬디(두 세계)’에 살고 있는 최정호는 우리나라에서 연재 칼럼을 쓰고 있는 최장수 최고령 칼럼니스트. 1933년생. 아호는 하이재(何異齋), 제대로(諸大路), 노송정(老松亭).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를 거쳐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언론인으로 1955년부터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글을 썼으며 교수로서 1968년부터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울산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한국미래학회(1968), 한독 포럼(2002)의 발기인으로 창립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세계의 공연예술기행(전 3권)』
평생을 언론과 대학의 ‘두에 몬디(두 세계)’에 살고 있는 최정호는 우리나라에서 연재 칼럼을 쓰고 있는 최장수 최고령 칼럼니스트. 1933년생. 아호는 하이재(何異齋), 제대로(諸大路), 노송정(老松亭).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를 거쳐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언론인으로 1955년부터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글을 썼으며 교수로서 1968년부터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울산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한국미래학회(1968), 한독 포럼(2002)의 발기인으로 창립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세계의 공연예술기행(전 3권)』(2006), 『난타의 문화, 난타의 정치』(2008), 『사람을 그리다』(2009),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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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2월 1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734g | 152*220*30mm
ISBN13
9788984453180

책 속으로

우리 대통령은 말을 잘한다. 국무총리도 말을 아주 잘한다. 나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특히 386세대라는 젊은 정치인들은 여야, 보혁 가릴 것 없이 두루 말을 잘한다. 우리가 요즈음 노상 듣고 보는 것처럼.

언제부터 우리나라 대통령이 저렇게 말을 잘하게 됐을까. 말끝마다 “그러니까 말여…” 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 “학실히 버르장머리를…” 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도 말이 어눌했다. 18년 장기 집권했던 무서운 대통령은 심기가 불편하면 말을 못한 게 아니라 아예 말을 안 함으로써 더욱 무서운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측근들에게까지 곧잘 친필 서찰을 적어 보낸 박정희, 국내외에서 저서를 간행한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는 ‘구텐베르크시대’, 인쇄문화의 시대, ‘글의 시대’의 대통령이었다. 그에 비해 노무현 대통령은 ‘맥루한의 시대’, TV와 인터넷의 시대, ‘말의 시대’가 배출한 첫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말을 잘할 수밖에.

하지만 ‘말을 잘한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 아니 그보다 도대체 ‘잘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말을 잘한다고 할 때의 ‘잘’과 글을 잘 쓴다고 할 때의 ‘잘’은 같은 의미일까.
‘욘사마’ 배용준은 ‘잘’ 생겼다. 그건 누구에게나 호감이 가도록 준수하게 생겼다는 좋은 뜻이다.
그러나 여자는 ‘잘’ 운다고 할 때 그건 모든 여자가 아름답게 운다는 뜻일까. ‘겨울연가’의 최지우처럼 만인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기품있게 운다는 뜻일까. 한국 관리들은 뇌물을 ‘잘’ 먹는다고 하면 그들의 고운 입 모양으로 매너도 아름답게 뇌물을 먹는다는 뜻일까.

말을 삼가라는 신언(愼言)의 어훈(語訓)이 살아 있던 전통사회에서는 말을 잘한다는 게 자랑이 아니었다. 군자는 오히려 말이 서툴기를 바란다(君子欲訥於言)고 가르쳤다. 그래서 점잖은 이몽룡이 춘향의 집을 찾아가선 ‘앉고 보니 별로 할 말이 없고 공연히 기침 기운이 나서’ 헛기침만 하는 어눌한 도령으로 형상화됐고, 그 대신 심봉사를 등쳐먹은 천하의 몹쓸 뺑덕어멈은 ‘일년 삼백육십오일 입 잠시 안 놀리고는 못 견디는’ 말 잘하는 인물로 정형화해 놓았다.

물론 ‘말을 잘한다’고 해서 뺑덕어멈이 우리 대통령처럼 말한다거나 우리 국무총리가 뺑덕어멈처럼 말한다고 모함할 생각은 전혀 없다.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말로 치고 패고. 의정 단상으로 서류와 책과 심지어 구두짝까지 내던지는 ‘난타의 문화’ ‘난타의 정치’에 이 사람까지 가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여기선 말을 잘한다는 것엔 두 가지 뜻이 있음을 밝혀 두고자 하는 것이다. 공자는 고향 사람들과 있을 때엔 말 못하는 사람처럼(似不能言者) 보였으나 조정에 나가면 말이 거침없고 다만 삼갈 따름이었다는 것이다. 말을 ‘잘’하지만 평소엔 말을 ‘잘’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말의 문화가 가장 먼저 꽃핀 영국 의회에서도 청산유수로 말을 하면 사려 깊지 못한 사람처럼 보일까 보아 영국 국회의원들은 일부러 말을 더듬는다는 유명한 얘기가 있다. 동북아 문화권에선 더욱이 말 잘한다는 게 자랑이 아니요, 말을 잘 못하는 것이 별 흉이 아니었다. 일본의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100년이 지난 뒤에도 ‘일본 외교에서의 침묵의 의미’란 연구논문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난타’가 세계 도처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편 베를린의 국립가극장에서 일본의 작곡가 다케미쓰 도루의 작품들을 짜깁기해 ‘작곡하지 않은 오페라’를 ‘마이웨이 오브 라이프’란 제목으로 그곳 극장장이 연출하여 공연하는 걸 지난달 구경했다. 최소한 음향과 최소한의 연기로 이뤄진 오페라. 현지 언론은 그걸 ‘고요함의 소리’를 들려주는 작품이라 호평하고 있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말 잘하는 국민이 되었는지, 언제부터 저런 ‘난타의 문화’에, ‘난타의 정치’에 익숙한 국민이 되었는지…. 아니, 그게 도대체 ‘우리’인가? 맞는 얘기인가?

---2004년 11월 17일자 칼럼 ‘난타의 문화, 난타의 정치’중에서

출판사 리뷰

김대중 정권 때부터 불이 지펴진 우리나라 공론권의 이념적 갈등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층 심화 격화됐다. 소위 진보와 보수, 개혁과 수구, 혹은 좌우의 대립이라 하는 이념 갈등. 이러한 이념적 갈등은 노무현 정권에선 소위 386의 젊은 세대가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 잡으면서 다시 세대 갈등의 양상조차 띠게 되었다.

그 결과 이 정권에 참여하지 않은 주변부는 중심부의 다중적인 공격의 수사 앞에 서게 됐지만 어떤 면에서는 늙은 세대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갖지 못한 그들만의 체험과 기억으로 오늘의 이념문제를 그냥 방관만 할 수 없어 ‘참여정부’에 참여는 안 해도 참견은 해야겠다고 나서면서 저자는 지난 5년 동안 많은 글을 써왔고 그 글을 통해 각 시대의 의미를 헤아림은 물론 격동의 시대들을 잇는 의미의 고리를 찾으려 했다.

1980년 광주의 피투성이 산욕에서 탄생한 386세대의 체제 부정적 개혁세력과 그에 몰린 기존질서의 보수세력 사이의 이념 갈등은 건국 이래 초유의 것으로 아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을 ‘역사’의 책갈피 속이 아니라 ‘삶의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세대에게는 오늘의 이념 갈등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 되돌아 온 낡은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 많다.
저자는 반세기 동안 글을 써왔지만 지난 5년 동안 받은 독자들의 적극적인 성원과 같은 것은 일찍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한 독자들의 범상치 않은 반응이란 어떤 면에서는 지난 정권의 각종 기행과 일탈이 잠들어 있던 공론권을 두드려 깨운 때문으로, 조선시대에는 그처럼 세상에 공론이 활발하게 이는 것은 나라에 기운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현대에 와선 이러한 공론을 일으키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 언론매체, 특히 신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1958년, 제로(諸路)라는 필명으로 칼럼을 쓰기 시작해 반세기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여러 신문 지면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칼럼이라는 이 외래어를 우리말로 옮길 수는 없을까 고민한 끝에 ‘사설(僿說)’이라는 말이 가장 가까운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적고 있다. “쓸데없이 자질구레하고 대수롭지 않은 말들”, “속담에 내 먹기는 싫어도 버리기는 아깝다는 그런 말들”, “소인배가 세속과 함께 흘러 움직이면 많아지는 말들”이라고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스스로 낮춰 그의 글들을 ‘사설’이라 일렀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의 칼럼이야말로 그러한 글들이라 말하지만 소설가 한수산은 이러한 저자의 글을 “이 격조 없는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끝내 지켜야 할 인격의 잣대였으며, 그 지성, 해박함, 연륜을 더해 가는 혜안의 글들은 우리 시대가 가지는 위안이며 그렇게 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행복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추천평

공기(公器) 지면에 적는 최 교수의 글쓰기 이력은 무려 반세기. 지금도 진행 중이다. 사람은 주어진 시대를 살 수밖에 없는 까닭에 그는 ‘시대를 아파’했고, ‘신 앞에 직접 선다’는 각 시대의 의미를 헤아림은 물론 격동의 시대들을 잇는 의미의 고리를 찾으려 했다. 대중매체의 발달로 공적 공간에서 말의 영향력은 커졌지만, 동시에 말의 신뢰성이 의심받는 우리시대에 최 교수는 드물게 호소력 높은 언관(言官)이자, 시각이 예리한 당대 사관(史官)으로 우뚝 선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참여정부의 시대상을 ‘참견’한 글은 호오(好惡)감정을 넘어 분명한 사리(事理)로 따진 덕분에 책으로 묶인다. 세기에 걸친 사원건축처럼 최 교수가 쌓는 문자탑의 초석 한 덩이 무게인 책은 공자 말씀대로 능히 “글로써 벗을 모을 만(以文會友)”하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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