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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떼, 닥터 양!
생명의말씀사 200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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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추천의 글 1 | 닥터 양의 탐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추천의 글 2 | 타고난 의사가 아닌 다듬어진 명의
■ 여는글 | 네팔 13년, 한나절 신나는 사이클링처럼

1부 봄, 미지의 땅을 향하여

■ 다음을 알 수 없으므로 더 흥미로운 길
■ 보이지 않는 손길은 언제나 작업중
■ 이겨내거나 또는 적응하거나
■ 섬김, 성실과 겸손으로
■ 로버트와 루스, 황금기 초입에서 만난 친구

2부 여름, 그 황금기의 기억

■ 황금기의 첫 아침
■ 레스 도난,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헌신
■ 인모, 선물로 또는 사랑의 빚으로
■ 가운을 입은 예수님의 초상
■ 억울한 감정을 다스리는 법
■ 낙원의 불청객
■ 가난이 죄가 되지 않는 네팔을 위하여
■ 사랑만이 대안이다

3부 가을, 무르익은 열매는 창고에 쌓이고

■ 크리슈나를 털고 크리스티나로
■ 인드라가 유혹을 견딜 수 있을까요?
■ 킴의 변신은 끝나지 않았다
■ 찬드라,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전도자
■ 진정한 혁명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4부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추울수록 새로운 봄기운


■ 비교하면 눈이 탁해집니다
■ 농부가 떠난 들판에도 봄은 오는가
■ 기로에 선 선교병원, 대안을 찾아라

■ 닫는글 | 함께 뛰어주시겠습니까?
■ 감사의 글 |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후기 | 삶으로 전하는 한 편의 명설교

저자 소개

저자 : 양승봉
양승봉 선교사는 1982년 부산의대 졸업, 고신의료원에서 일반외과 수련을 마쳤으며, 3년간 군의관 복무 후 김해복음병원 외과 과장으로 일했다. 의과대학시절 누가회(CMF)를 통하여 선교에 눈을 뜨고, 선교에 부담감을 가졌으며, 선교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되었다.
저자 : 신경희
신경희 선교사 1984년 이화여대 특수교육과를 졸업했으며, 부산구화학교 교사로 일했다. 현재 양승봉 선교사 부부는 인터셔브선교사로 네팔에서 14년째 사역하고 있다. 가족으로는 신경희 선교사님 사이에 진모, 경모, 인모 세 아들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496g | 128*188*20mm
ISBN13
9788904100903

책 속으로

네팔 13년, 한나절 신나는 사이클링처럼

모처럼 온 식구가 자전거를 몰고 집을 나섭니다. 아내와 막내는 물론이고 멀리서 공부하다 며칠 전에 돌아온 큰아이도 합류했습니다. 둘째까지 있었더라면 그야말로 ‘가족 총집합’이었을 텐데, 아쉽게도 녀석은 앞으로 두어 주나 더 있어야 얼굴을 보여줄 모양입니다. 사실 첫째도 곧 뉴질랜드로 돌아가야 합니다. 힘들게 잡은 약국 아르바이트를 놓칠 수 없는 까닭입니다(약학대학 졸업반 학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사방에 흩어져 사는 가족이 다같이 뭉친다는 건 이처럼 만만한 노릇이 아닙니다.

일단 가능한 가족끼리라도 나들이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2박 3일 정도 시간을 내서 둘리켈과 나갈콧으로 사이클링을 다녀올 작정입니다. 코스는 왕복 150킬로미터 남짓. 그만하면 막내한테도 부담스럽지 않을 겁니다. 공식적인 기획 의도는 ‘장남 무사 귀환 환영회’를 열자는 것이지만, 사실 나머지 식구들에게도 한숨 돌릴 틈이 필요했습니다. 연말부터 봄까지 그야말로 넋이 쏙 빠지도록 바빴거든요. 병원일도 많았거니와 뜻밖의 손님들이 여럿 찾아오고 모임이 꼬리를 무는 바람에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편히 쉴 여유가 없었습니다. 주인들이 눈코 뜰 새 없는 판국에 자전거가 무슨 재주로 바깥바람을 쐬겠습니까? 세 대가 나란히 건넌방에 누워 바퀴를 하늘로 쳐든 채 먼지를 뒤집어 쓸 밖예요.

모두들 상기된 표정이지만 아무래도 막내 인모가 가장 신이 났습니다. 진즉부터 준비를 마치고 좁다란 마당을 빙빙 돌며 출발을 재촉합니다. 형은 아우가, 아내는 그런 장남이 마냥 대견합니다. 이렇게 멋진 행사에 성대한 기념식이 빠질 수 없습니다. 둥글게 둘러서서 함께 기도를 드린 뒤에 힘차게 외칩니다. “파이팅!”

골목에서 큰 길로, 대로에서 시골길로

마침내 자전거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선두는 내가, 후미는 첫째가 맡습니다.
집에서부터 한동안은 골목이 이어집니다. 네팔의 뒷길은 들쭉날쭉 좁아졌다 넓어졌다 불규칙합니다. 그 좁은 길을 사람들과,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소와 개가 사이좋게 나눠 씁니다. 사고를 당하지 않으려면 앞을 잘 살피는 동시에 흘낏흘낏 옆 골목을 곁눈질해주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힘들겠다고요? 처음엔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젠 네팔사람이 다 됐거든요. 이쯤이야 장애물 축에도 못 낍니다. 아이들은 오히려 스릴을 즐기는 눈치입니다. 자전거 네 대가 요리조리 길을 누비고 지나갑니다.

20분 정도 지나면 갑자기 앞이 툭 터지면서 큰 길이 나타납니다. 간선도로 중에서도 교통량이 많기로 손꼽히는 대로입니다. 여기부터는 조금 긴장을 하는 게 좋습니다. 네팔의 도로에서는 자동차를 무서워하지 않는 통행인들과 상대방이 양보해줄 것을 추호도 의심치 않는 운전자들의 진검승부가 하루종일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곳곳에서 사고가 터질 것 같습니까? 뒤죽박죽 어지럽겠다고요? 뭐 꼭 그런 건 아닙니다. 혼란이 장기간에 걸쳐 숙성되면서 새로운 질서가 발효됐습니다. 기사와 통행인들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면서 양보와 단호한 거부의사를 판별해냅니다. 자동차가 살짝 속도를 떨어뜨리면 그 사이로 폴짝폴짝 몇 걸음씩 길을 건너갑니다. 우리 네 식구도 능숙하게 그 질서에 편입합니다.
흐름을 타자마자 곧바로 다른 문제에 부닥칩니다. 오르막에 접어들면서 매연의 공격이 시작되는 탓입니다. 사실 카트만두의 탁한 공기는 악명이 높습니다. 거리를 걸으면 금방 목이 칼칼해지고 와이셔츠 깃은 순식간에 꼬질꼬질해집니다. 하긴, 수십 년씩 혹사한 노후 엔진에게 질 낮은 연료를 잔뜩 먹였으니 깨끗한 ‘방귀’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지도 모릅니다. 차에 탄 승객들이야 창문을 닫으면 그만이지만 자전거에 올라탄 이들에게는 고행이 따로 없습니다. 넘어지지 않고 언덕을 오르려면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야 하고 그렇게 힘을 쓰자니 입은 더 크게 벌어집니다. 채 10분이 지나기도 전에 최상의 조건에서 매연의 진수를 맛보게 됩니다. 숨이 턱턱 막히지만 그래도 이쯤은 애교로 받아줄 수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목이 적응을 했는지 힘들긴 해도 죽겠다고 엄살을 피울 정도는 아닙니다.

고생스러운 시간이 있으면 신나는 순간도 있는 법. 고갯마루를 넘으면서 자전거의 호시절이 시작됩니다. 일사천리로 달려 내려가는 기분이 그만입니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요란합니다. 수레에 귤 몇 개를 올려놓고 무료하게 손님을 기다리는 행상, 사리 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초조하게 버스를 기다리는 여인네들, 우연히 만난 친구와 손짓을 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남정네들의 얼굴이 휙휙 지나갑니다. 적당한 피로감과 공복감이 도리어 뿌듯한 느낌을 줍니다. 차르르륵 체인이 기아를 끼고 돌아가는 소리가 마냥 상쾌합니다. 머잖아 시골길에 들어설 테니 매연과도 곧 작별입니다.

논을 끼고 달리는 길은 좁고 비포장이지만 그만큼 한산해서 마음이 한결 느긋해집니다. 너른 들판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릅니다. 나이든 농부 둘이 논두렁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습니다. 소 몇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풀을 뜯습니다. 언덕과 언덕이 겹쳐진 풍경 뒤로 거대한 설산들이 보입니다. 실처럼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개울이 나오고, 다리를 건너면 비탈, 경사지를 지나면 마을이 나타납니다. 너무나 규칙적이어서 마치 도돌이표가 붙은 악보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시골 동네를 지날 때마다 아이들은 흔치 않은 외국인들을 구경하고 일행은 꼬마들의 천진한 몸짓을 살피는 진풍경이 반복됩니다.

허름한 가게에 들러 차 한 주전자를 주문합니다. 나이 든 주인장이 마디 굵은 손으로 차를 끓여냅니다. 맛은 조금 떨어지지만 인심만큼은 후해서 잔이 넘치도록 부어줍니다. 초년병 시절에는 그 맛이 그 맛이더니 이제는 입에 착 달라붙는 찻물을 가릴 줄 알게 됐습니다. 한편으로 길을 묻고 다른 한쪽으로 자전거 상태를 점검합니다. 험한 길을 달릴수록 기계 상태에 민감해야 합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고장이라도 나면 큰 탈이니까요. 특별한 문제는 없는데 공기펌프가 없어졌습니다. 자전거 프레임에 매달아뒀는데 어디선가 떨어져버린 모양입니다.

어련하겠습니까? 길이 좀 험했어야 말이지요. 그렇게 사납게 흔들어대는데 뭔들 안 떨어지겠습니까. 큰맘 먹고 사서 개시도 안 한 물건이라 아깝기는 하지만 되짚어 돌아갈 수도 없고, 간다 한들 남아 있을 리도 없어서 깨끗이 잊기로 합니다.

사이클링, 네팔 13년을 압축하는 삽화

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옛 도시 박다풀을 지나면 본격적인 난코스, 오르막 40리 길에 접어듭니다. 그리고 그 길 끄트머리가 이번 여행의 목적지 나갈콧입니다. 평지와 650미터의 고도 차이가 나니까 자전거를 타고 수락산이나 대둔산 정상까지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대충 비슷합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경사로를 타기 시작하지만 생각만큼 속도를 내지 못합니다. 종일 자전거를 탄 탓에 제법 기운이 빠진데다가 언덕길이기 때문일 겁니다. 가야 할 곳이 빤히 보이는데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길은 큰 뱀처럼 산허리를 휘감으며 빙빙 돌아 올라갑니다. 10분 전에 지나온 길이 바로 아래로 내려다보입니다. 왼쪽으로는 거칠고 황량한 언덕길이, 오른쪽으로는 까마득한 산비탈이 펼쳐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세가 풀어집니다. 입에서는 거친 숨이 연신 쏟아져 나옵니다. 뒤에서 보면 엉덩이가 씰룩씰룩 좌우로 심하게 움직이는 게 어릿광대의 우스갯짓 같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한 진모 녀석이 제 엄마 곁에 바짝 붙어 한 마디 내던지고 냅다 도망칩니다. “엄마, 히프가 너무 큰 거 아녜요?”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막내의 지청구가 뒤따라옵니다. “아빠, 힘들어요. 얼마나 더 가야 해요?”

이러니저러니 말이 오가는 것도 잠시뿐, 차츰 말수가 줄어들고 저마다 자기 상념에 빠져듭니다. 몸으로는 묵묵히 페달을 밟는 한편, 머리로는 저마다의 실마리를 붙들고 생각의 끝을 더듬어갑니다. 아내는 다음 주 요리교실에서 가르칠 음식을 고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진모의 입가에 뜻 모를 미소가 떠나지 않는 걸 보면, 뉴질랜드에 두고 온 여자친구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요즘 힙합댄스에 푹 빠진 인모는 머릿속으로 고난도의 동작을 흉내내고 있을 겁니다.

나이가 드는 걸까요? 개인적으로는 요즘 들어 지난 세월을 복기해보는 일이 부쩍 잦아졌습니다. 의과대학에 들어가고, 아내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병원에서 일하면서 크리스천 의료인들과 교제하고, 선교사로 지원하고, 뉴질랜드에서 훈련을 받고, 오지 병원에 부임했다가 카트만두로 나와 오늘에 이르는 과정을 마음속으로 하나하나 따라갑니다. 네팔에 들어와 적잖은 세월을 보내는 동안 무던히도 많은 언덕과 비탈길을 오르내렸습니다. 문득 선교사로, 외과의사로 이곳에서 지냈던 13년이 자전거 타기와 참으로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욕이 앞서서 무작정 달려 나갔다가는 지쳐 떨어지기 십상입니다. 앞만 보고 내달리면 속도는 다소 빠를지언정 주변을 일일이 살피기 어렵습니다. 목표에만 정신을 빼앗기면 목적을 잃어버립니다. 고생하러 자전거를 끌고 나선 게 아닌 것처럼 고행하러 선교지에 나온 것도 아닙니다. 지도를 잘못 읽으면 갔던 길을 한참이나 되돌아와야 합니다. 고단한 오르막 뒤에는 신나게 달릴 수 있는 비탈길이 기다립니다. 위험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때마다 도움의 손길이 나타납니다. 공기 펌프를 잃어버리고, 체인이 끊어지고, 논두렁에 처박히기도 했지만 언제나 돕는 손길이 나타났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자전거 수리점이 있었고, 지나던 차가 실어다주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뜻밖의 복병을 만나 사역을 접어야하는 게 아닐까 고민할 때면 어김없이 구원의 메시지가 도착하곤 했습니다. 성경말씀이나 상담 전문가의 조언, 동료 선교사, 네팔 교회 크리스천, 아름다운 자연 등 통로는 다양했지만 주제는 언제나 사랑과 평안, 위로였습니다.

진한 사랑 얘기를 들어보시렵니까?

어느덧 정상이 코앞입니다. 길고 긴 장정이 끝났습니다. 아이 엄마가 일등, 나머지 식구들이 공동 이등입니다. 선두와의 격차는 20분 남짓. 이만하면 우수한 성적으로 하이킹을 마친 셈입니다.

해발 2,190미터 높이에서 세상을 굽어보는 맛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합니다. 고된 행군의 대가로 얻은 기쁨이어서 더 그런지도 모릅니다. 멀리 보이는 카트만두는 여전히 탁한 공기에 잠겨 있습니다. 반대쪽으로는 척박한 산비탈을 깎아 세운 계단식 논밭들이 차곡차곡 겹쳐지며 흘러갑니다. 오늘 달려온 구불구불한 길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제법 긴 여정을 잘도 달려왔습니다.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내려다보는 기쁨을 어떻게 올려다보는 환희에 비하겠습니까? 고개를 들면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히말라야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다들 하얀 눈 모자를 뒤집어쓰고 점잖게 늘어 서 있습니다. 동구 밖까지 마중 나온 동네 어른들 같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는 붉은 노을빛까지 겹쳐져서 그야말로 장관을 이룹니다.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아내도, 진모도, 꼬마 인모도 말이 없습니다. 수많은 얼굴과 사건들이 떠올랐다 가라앉습니다. 어떤 이들, 무슨 일들이었냐고요? 자세히 말해보라고요?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바람결에 맛있는 음식 냄새가 섞여 있는 걸 보니 저녁 준비가 다 된 모양입니다. 잠깐 다녀와서 진한 이야기들을 들려드리겠습니다.
- 여는 글

“나이가 드는 걸까요? 개인적으로는 요즘 들어 지난 세월을 복기해보는 일이 부쩍 잦아졌습니다. 의과대학에 들어가고, 아내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병원에서 일하면서 크리스천 의료인들과 교제하고, 선교사로 지원하고, 뉴질랜드에서 훈련을 받고, 오지 병원에 부임했다가 카트만두로 나와 오늘에 이르는 과정을 마음속으로 하나하나 따라갑니다. 네팔에 들어와 적잖은 세월을 보내는 동안 무던히도 많은 언덕과 비탈길을 오르내렸습니다. 문득 선교사로, 외과의사로 이곳에서 지냈던 13년이 자전거 타기와 참으로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욕이 앞서서 무작정 달려 나갔다가는 지쳐 떨어지기 십상입니다. 앞만 보고 내달리면 속도는 다소 빠를지언정 주변을 일일이 살피기 어렵습니다. 목표에만 정신을 빼앗기면 목적을 잃어버립니다. 고생하러 자전거를 끌고 나선 게 아닌 것처럼 고행하러 선교지에 나온 것도 아닙니다. 지도를 잘못 읽으면 갔던 길을 한참이나 되돌아와야 합니다. 고단한 오르막 뒤에는 신나게 달릴 수 있는 비탈길이 기다립니다. 위험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때마다 도움의 손길이 나타납니다. 공기 펌프를 잃어버리고, 체인이 끊어지고, 논두렁에 처박히기도 했지만 언제나 돕는 손길이 나타났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자전거 수리점이 있었고, 지나던 차가 실어다주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뜻밖의 복병을 만나 사역을 접어야하는 게 아닐까 고민할 때면 어김없이 구원의 메시지가 도착하곤 했습니다. 성경말씀이나 상담 전문가의 조언, 동료 선교사, 네팔 교회 크리스천, 아름다운 자연 등 통로는 다양했지만 주제는 언제나 사랑과 평안, 위로였습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의사히말라야, 네팔에서 인술을 펼치고 있는 한국인 의사의 따뜻한 희망이야기 !
EBS 2007년 12월 27일 <명의> 송년특집 <히말라야에 심은 희망> 다큐멘터리 방영
KBS 2007년 3월 11일 특파원 현장리포트, ‘네팔, 가난한 자들의 희망’ 방영
KBS 2007년 2월 18일 KBS 9시 뉴스 ‘히말리야에서 꽃핀 ‘한국의 슈바이처’ 방영
KBS 2000년 5월 15일 <한민족리포트> 3주연속 다큐멘터리 방영

KBS <한민족리포트>가 뽑은 자랑스런 한국인 의사, 양승봉 선교사가 네팔에서 보냈던 13년간의 의료사역 이야기.

“가난한 이들을 돕고 싶다는 건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품이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환자를 돌보기 시작한 뒤에도 늘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눈을 제 3세계로 돌리게 됐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제3세계에 나가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을 해야 할 바에야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투자하고 싶었습니다.”

“네팔에 내가 와서 대단한 일을 한다거나 위대한 사람이 된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저 내 눈에 보이는 구멍난 곳을 메워주고 싶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 자리를 채워주고 싶었습니다.”

추천의 글

[ 추천의 글 1 ]
닥터 양의 탐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상은 (안양샘병원 의료원장, 누가회 이사장)

우리는 모두 멋진 유람선을 타고 천국으로 항해하는 승객들과도 같다. 갑판에 나와 일광욕을 하며 바깥 경치를 구경하노라면 간간이 섬도 보이고 갈매기가 날아가는 풍경도 접하며 여행의 운치를 느끼곤 한다. 그런가 하면 스킨스쿠버들은 배 위에서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바다로 뛰어든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 보니 선상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멋진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해초 사이를 헤엄치는 형형색색의 열대어들과 아름다운 산호섬을 바라보며 해면 위로 나와 선상 위의 우리들을 향해 뛰어내리라고 손짓을 한다.

의사 양승봉. 그는 의사에게 보장된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미지의 바다로 뛰어내린 것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네팔을 가지고 있다. 두 팔로 수술하고 두 팔로 네팔 사람들을 껴안고 있다. 보이지 않지만 닥터 양 뒤에서 그를 통해 내미는 두 팔은 하나님의 것임이 분명하다. 네팔 산골에서 그가 쓴 14년 섬김의 일기를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히말라야 산골짜기의 탄센 마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세르파의 도움으로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것처럼, 닥터 양은 이 책을 통해 우리를 주님과 함께 거하는 아름다운 삶으로 인도한다.

25년 전 수련의 시절, 그는 대학교수를 꿈꾸며 장기려 박사의 마지막 제자로 지독히 열성적으로 학문을 연마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정말 그를 네팔의 장기려로 만드셨다. 양승봉 선교사는 훌륭한 외과의로 환부를 도려낼 뿐 아니라,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삶의 가운데 토막을 잘라내 네팔사람들에게 내놓았다. 그는 네팔의 수많은 젊은 의사들을 기독 의료인으로 길러냈을 뿐만 아니라, 네팔기독의사회를 발족시켰다. 환자를 사랑하는 임상의이면서, 잘못된 사회 제도를 바꾸고 의료보험제도를 네팔에 도입하기 위해 그는 백방으로 뛰고 있다.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는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 신경희 사모의 헌신적인 동역이 있었으며, 진모, 경모, 인모 세 아들의 고통 분담의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삼형제는 이 책을 통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으리라.

우리는 모두 닥터 양 가족이 일구어낸 네팔 선교 현장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위대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후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 닥터 양을 따라 우리도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해본다.

[ 추천의 글 2 ]

타고난 의사가 아닌 다듬어진 명의
이상규(고신대학교 교수, 신학대학장)

양승봉 선교사를 처음 만났던 건 1981년 1월이었다. 꼭 27년 전이다. 그때 나는 부산 삼일교회 대학부 담당 교역자로 부임했고, 양 선교사는 의대를 갓 졸업한 청년의사로서 대학부의 선배였다.

이때부터 함께 대학부를 섬기면서 나는 그의 수련의 과정, 결혼, 군의관 복무, 외과의사로서의 활동, 뉴질랜드에서의 선교 훈련, 그리고 네팔에서의 의료 활동 등 그의 삶의 여정을 때로는 가까이에서 때로는 먼발치로 지켜보게 되었다.
나는 지난 27년간 그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선교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자명한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되었다. 이 책 속에도 부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만 양승봉 선교사가 오늘의 존경받는 의료선교사가 되기까지는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내면의 고투를 거쳐야 했고, 더 좋고 더 높은 신분으로의 부단한 요구를 거절해야만 했다. 카트만두의 비탈진 언덕길이나 문명의 빛으로부터 소외된 산막(山幕)의 거처, 이국에서의 불편한 생활, 그것보다 더 고통스런 아픔은 선교지로 떠나는 순간부터 의사로서 의료적으로 첨단 지식과 기술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들은 촉망받던 외과의사인 그로서 감수하기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단 한번 의료봉사로 알게 된 네팔에서의 부름을 거절하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동료 의사들의 비상(飛上)은 그만두고라도 안식년으로 돌아왔을 때 변변한 거처조차 없는 현실에서 국내에서의 부름을 마다하고 의료선교를 계속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때로 그는 절망하거나 유실(流失)의 아픔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3년 동안 오직 한 길, 가난한 네팔사람들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탄센과 카트만두를 오가며 저들의 상한 육신을 어루만지는 선한 의사의 길을 간 것은 자기 부정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선교사로 태어나지 않았고 선교사로서 자신을 다듬어갔다.

양승봉 선교사의 마음에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이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 사랑은 항상 그를 매는 줄이었다. 그는 하나님 사랑이 무엇인가를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부서지는 육체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치료 한번 받기 위해 일주일, 아니 한 달을 와야 하는 사람들, 우리 돈으로 치자면 고작 몇 만 원이 없어 고통을 숙명으로 알고 평생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이들을 위해 하루에도 크고 작은 수많은 수술을 하며 그들에게 베푼 인술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희생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일 수 없다. 사랑은 자기 희생이다. 주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 때문에 양 선교사는 이 시대의 가치로부터의 절맥(絶脈)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의 한 토막을 GNP 200달러도 되지 않는 오지의 열악한 환경에 헌신적으로 드렸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유수한 병원의 외과과장직이나 의대 교수직은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니었다.

이 책 속에 기록된 선교일기는 네팔에서 보낸 13년간의 사역의 일부일 뿐이다. 그는 밀려오는 고통의 긴 행렬을 보면서 휴식 없는 삶을 살아왔다. 자신의 전공인 일반외과 외에도 정형외과, 성형외과, 심지어는 산부인과 환자까지 수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분주한 일상 가운데서도 의학서적을 뒤지며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는 근면함 때문에 그는 헌신된 의사로서만이 아니라 ‘명의’라는 명성을 함께 얻었다. 선교지로 향하는 순간 의사로서 뒤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극복하게 된 것은 그의 근면함으로 얻은 결실이었다.

내가 지켜본 양승봉 선교사는 관후한 인격의 사람이다. 그저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신에 대해 요란하지도 않다. 그의 신실한 섬김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줌으로써 점차 알려지게 되었을 뿐이다. 그는 유창하게 말하지 않지만 그의 말에 감동이 묻어나는 것은 그의 삶이 신실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그의 소박한 인간미와 변함없는 주님 사랑에 늘 감동했다. 의대생 때부터 말씀을 묵상하고 언제나 자신의 집을 개방하여 동료 의사들과 성경공부를 하며 살아왔던 그 일관된 생활이 가져온 결과일 것이다.

이 책은 한 의료선교사 부부가 네팔에서 겪었던 선교 기록이지만 이 책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승봉·신경희 선교사 부부가 어떤 종류의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사람은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기(成於中形於外) 마련인데, 이 책 속에 기록된 감동적인 기록들은 양 선교사 가족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빚어낸 결실이다. 말하자면 사랑과 헌신과 희생이 얼마나 큰 힘을 지니는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양승봉 선교사를 쓰신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동시에 이 책은 선교가 무엇이며, 주님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줄 것이다. 나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오늘의 한국교회에 소중한 가르침을 줄 것이라 믿는다. 양승봉 선교사와 같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의 기쁨이자, 아프카니스탄 사태로 야기된 기독교 선교에 대한 일반인의 오해와 반감을 불식시킬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믿는다.

추천평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양승봉 선교사님은 네팔의 희망일 뿐 아니라, 한국의 희망이기도 하다. 그의 이웃 섬김은 개인을 넘어, 과거에 한국이 이웃 나라에 진 사랑의 빚을 상환하는 의미가 있다. 이 책이 전하는 휴먼 드라마가 한국과 네팔, 그리고 지구촌의 모든 열방을 이웃으로 엮는 새 희망이기를 기도하고 싶다.”

박수홍(방송인)
“한국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뒤로하고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네팔의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14년 째 봉사하고 있는 양승봉 선생님의 이야기를 접하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정말 자랑스런 한국인입니다.”

박상은 원장(안양 샘병원 의료원장, 한국누가회 이사장)
“양승봉 선교사는 네 개의 팔을 가지고 있다. 두 팔로는 수술을 하고, 두 팔로는 네팔 사람들을 껴안는다. 보이진 않지만, 그를 통해 내미는 두 팔은 아마 하나님의 것임이 분명하다. 히말라야 산골에서 14년 동안 기록한 이 섬김의 일기는 우리를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희망으로 인도해 줄 것이다.”

손봉호 총장(동덕여대)
“가난한 네팔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고난을 감내하면서도 오히려 즐거워하는 양 선교사는 정말 멋지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오늘날 의료사역만큼 효과적인 선교전략은 없다. 그의 사역과 생각을 기록한 이 책은 읽는 이에게 진한 감동을 줄 뿐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자극과 교훈을 줄 것이다.”

박중식 목사(평촌새중앙교회)
"의료혜택의 오지, 네팔에서 보여준 양승봉 선교사의 사역은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인해 오해를 받고 있는 기독교 선교의 참모습을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한국교회 모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상규 목사 (고신대 신학대학원장)
“나는 지난 27년간 그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선교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자명한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지켜본 양승봉 선교사는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신에 대해 요란하지도 않다. 그의 신실한 섬김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점차 그의 활동이 알려지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그의 소박한 인간미와 변함없는 주님 사랑에 늘 감동했다.”

박유준 PD (EBS)
“하늘 아래 가장 높은 나라, 그러나 삶의 질에 있어서는 가장 낮은 나라인 네팔에서 저자가 보여준 사랑과 희생의 정신은 ‘히말라야에서 꽃피운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기에 충분했다.”

정필도 목사 (수영로교회)
“양승봉 선교사는 무지와 가난 때문에 수많은 환자가 장애인이 되어야 하는 네팔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14년간 자신과 가족의 편안함도 포기하고 사랑을 베풀며 네팔에 희망을 주었다. 모든 이들이 양승봉 선교사의 믿음과 사랑의 실천에 도전받고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더 뜨겁게 감당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박은조 목사 (분당샘물교회)
“의사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대우 받는 직업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교사로 떠나는 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강력하며,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한번 실감합니다. 양승봉 선교사의 삶과 사역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모습을 이 책에서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김형국 목사 (나들목교회 대표 목사)
"한 사람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도하는 것은 큰 축복이다. 더군다나, 이 화려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소박하게 주님께 드리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준다. 이 귀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읽힐 것을 생각하니,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땅 끝에서 소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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