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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의 말
- 역학계몽 해제 - 역학계몽서易學啓蒙序 本圖書第一 제1장 「하도」와 「낙서」를 본뜨다 原卦書第二 제2장 괘의 획들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明蓍策第三 제3장 시초점에 대해 밝히다 考變占第四 제4장 변효로 점침을 살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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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생 동안 단지 <대학>과 <역학계몽> 두 저작의 글들만을 투철하게 보고서 이전의 현인들께서 이르지 못한 것들을 터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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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이산이 탐독했던 최고의 주역 입문서
<역학계몽(易學啓蒙)>은 ‘성리학의 집대성자’로 일컬어지는 주희(朱熹, 1130-1200)가 57세 때 펴낸 역학(易學) 입문서로, <주역본의(周易本義)>와 함께 역학에 관한 주희의 대표적 저서로 꼽히는 책이다. <주역본의>가 주희의 역철학 관점을 반영하여 실제로 <주역>에 주석을 붙인 것이라면, <역학계몽>은 그에 대한 이론틀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초학자들도 쉽게 역학에 입문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주희 이전의 역철학사는 <주역>을 점서(占書)로 보아 술수를 중시하는 상수역학(象數易學)과 <주역>을 철학서로 보아 거기 담긴 사상적 의미를 중시하는 의리역학(義理易學)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주희는 <역학계몽>을 통해 술수에만 치중하여 매우 복잡하고 작위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상수역학과 점서(占書)로서의 <주역>의 본질을 무시하고 근거 없이 견강부회하는 의리역학의 폐단을 바로잡고 두 역학이 양립, 병존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으며, 실제로 주희 이후의 동아시아 역철학사는 그의 이러한 관점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역학계몽>은 ‘주자학의 왕국’ 조선에서도 역학 입문서로 널리 읽혔는데, 선비들은 물론이고 왕실에서도 역대 왕들의 필독서로 꼽혔다. 세조는 잠저(潛邸)에 있을 때 <역학계몽>을 탐독하고 여러 학자들에게 문의하여 <역학계몽요해(易學啓蒙要解)>(1466년)라는 해설서를 지었고, 정조(正祖) 이산은 왕세손(王世孫)으로 있을 때 <역학계몽>을 강독하면서 세조가 지은 <역학계몽요해>와 퇴계가 지은 <계몽전의(啓蒙傳疑)>가 서로 다른 체제로 되어 있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서명응(徐命膺)에게 명하여 이 두 책의 내용에 여타의 다른 주석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역학계몽집전(易學啓蒙集箋)>(1772년)이라는 주석서를 펴내기도 하였다. 이번에 출간된 <완역 역학계몽>은 호광(胡廣)을 비롯한 42명의 학자가 명나라 영락제(永樂帝)의 명을 받고 1415년에 완성한 <성리대전(性理大全)> 본 <역학계몽>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세주(細注)까지 완역한 노작(勞作)이다. 이 <성리대전> 본 <역학계몽>은 가장 권위 있고 널리 통용된 판본으로 조선의 유학자들도 대부분 이 책을 읽었다. 특히 <역학계몽> 원문과 주희의 자주(自註)는 물론 <성리대전> 편찬 당시까지 <역학계몽>과 관련하여 발표된 저작들이 세주(細注)의 형식으로 거의 망라되어 있다. 따라서 <역학계몽> 원전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그 이후 주역철학자들의 연구 성과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