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슬픈 아일랜드
역사와 문학 속의 아일랜드
박지향 저
새물결 2002.06.30.
베스트
서양사/서양문화 top100 3주
가격
16,000
10 14,400
YES포인트?
160원 (1%)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우측 관련상품을 참고해주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책소개

아일랜드와 한국, 두 겹의 역사읽기

목차

프롤로그

제1부
1장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나라?
2장 영국계 아일랜드인의 고독
3장 두 문명의 전투 : 영국계 아일랜드 문화와 게일 문화
4장 아일랜드 문예부흥 운동 : 문학과 민족주의
5장 신화에서 역사로

제2부
6장 런던으로 간 더블린 작가들
7장 와일드, 쇼, 예이츠 : 우정과 갈등
8장 '재치의 로빈후드' 와일드
9장 버나드 쇼의 '두 개의 섬'
10장 '안티테제적 민족주의자' 예이츠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박지향
1953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서양사학과 석사와 뉴욕주립대학(스토니브룩 소재) 철학박사를 마쳤다. 뉴욕 프랫대학(Pratt Institute)(1985~1987)과 인하대학교 교수(1987~1992)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 교수(1992~)로 재직중이다.

저서로 Profit-Sbaring and Industrial Co-Partnership in British Industry 1880~1920 : Class Confilict or Class Collaboration?(NY:Garland, 1987), <영국사:보수와 개혁의 드라마>(까치,1997), <제국주의:신화와 현실>(서울대학교 출판부,2000)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01쪽 | 68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55591118

예스24 리뷰

--- 박상준 laughter@yes24.com
가령 일본이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그 식민지 지배가 수백 년간 이어졌다고 가정해보자. 조선은 일본의 막부 혹은 천황이 직접 관할하는 영토가 되고,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이주해온 일본인들은 정착의 과정에서 본국의 지원 아래 실질적인 지배층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지배가 수십 년이 아닌 수백 년간 지속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일본계 지배층과 대다수를 차지할 피지배층 조선인 사이의 구분은 면면히 지속되겠지만, 수백 년의 시간이 강제하는 힘에 의해서 서로간의 동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속국으로서 조선은 제도와 문화 전반에 일본화의 흔적이 뿌리 내릴 것이고, 일본인의 혈통을 지녔지만 조선 땅에서 태어나 자란 이주자들의 후손은 본토의 일본인과는 뚜렷이 다른 정체성을 가질 것이 분명하다.

식민 지배의 역사가 아무리 오래여도, 그에 저항하여 독립적인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여러 차원의 노력이 있을 것이고, 그 힘이 결실을 이루어 마침내 조선이라는 나라로 독립하는 순간이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과정이 그렇게 수월해 보이지는 않는다. 명실상부한 조선의 혈통을 지닌 조선인들만의 독립된 민족국가를 건설하자는 주장이 대세가 되겠지만, 독립 자체를 거부하고 계속 일본의 속국 혹은 연방 정치체로 남아 있을 것을 요구하는 일본계 조선인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일본에는 더 이상 그들이 되돌아 갈 고향이 없을 뿐더러, 조선이라는 땅은 이미 수백 년 동안 발 딛고 살아온 삶의 근거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 방안은? 분리를 거부하는 일본계 조선인들의 근거지 경상도만을 일본령에 남겨둔 채, 나머지 땅덩어리만으로 이뤄진 독립국가가 만들어질 것인가?

20세기 초 실제로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경험한 우리의 정서에 비춰볼 때 말도 안 되는 가정이겠지만, 이러한 역사를 실제로 체험한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섬나라가 있으니, 바로 아일랜드이다.

12세기 후반 헨리 2세 시대이래 시작된 영국인에 의한 아일랜드 지배는 16세기초 크롬웰의 침공을 계기로 본격화된다. 청교도 혁명의 총아 크롬웰이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인을 인종적, 종교적으로 철저히 억압하고 그들에게서 토지를 빼앗아 이주한 영국인 신교도들에게 나누어준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영국의 지배에 대한 카롤릭계 아일랜드인들의 저항은 백만 명이 넘게 굶어 죽은 19세기의 '감자 대기근(1845~1849)'을 계기로 정점에 이르고, 마침내 1920년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의 뜻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그 독립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는데, 오랜 세월 아일랜드 땅에 발 딛고 살아왔던 영국계 아일랜드인의 거센 반발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하여 그들의 근거지인 북동부 얼스터 지방은 북아일랜드라는 이름으로 영국령으로 남게 된다.

영국으로부터의 자치, 더 나아가 독립된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기운이 융성했던 1880년에서 1920년 사이, 이 시기는 독립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독립 주체로서 "진정한 아일랜드인이란 과연 누구인가"를 놓고 카톨릭계 아일랜드인들과 신교도인 영국계 아일랜드인들간에 벌어진, '아일랜드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책 『슬픈 아일랜드』의 초점이 맞춰진 지점이 바로 이 '아일랜드성'을 둘러싼 정체성 논쟁이다. 영국의 지배 이전에 이미 아일랜드에 있었던 것들(켈트 문화, 아일랜드어, 혈통)만이 진정한 아일랜드성을 이루는 것이라는 카톨릭계 아일랜드 세력의 주장에 대해, 과거의 것만을 추종하는 낭만주의적 민족주의를 지양하고, 이미 아일랜드 땅에 깊이 스며 있는 영국적인 것―영국계 아일랜드인을 포함한―까지 수용하는, 보다 열린 아일랜드성을 꿈꾸는 영국계 아일랜드인들의 주장이 대립된다.

역사학자로서 저자는 새로운 아일랜드 민족의 일원이기를 바랐지만, 완고한 배타적 민족주의의 흐름에서 소외되고 만 '영국계 아일랜드인'에게 연민의 시선을 던진다. '슬픈' 아일랜드의 역사에서 슬픔의 주체는 영국의 지배하에서 멸시의 고통과 피의 희생을 견뎌낸 아일랜드인뿐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갈 곳이 없어 공중에 떠버린 '영국계 아일랜드인'들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2부에서, 개개인의 성향과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입장은 달랐지만 영국계 아일랜드 문인을 대표하는 세 명의 인물(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월리엄 예이츠)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유도 그러한 맥락에서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곳은 진정 어디인가라는 물음을 떨칠 수 없었던 그들의 애매한 정체성이 그들을 항상 긴장시키고, 세상과 사물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을 견지하게 했다는 것이다.

책 속으로

잉글랜드 인들이 '아일랜드의 민족성'이라고 부른 것은 실은 잉글랜드성이 투사되어 나타난 굴절된 이미지였다.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아이러니는 이러한 앵글로-색슨의 태도가 아일랜드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의 인종적 문화적 신화를 만들어내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 p.42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필자가 아일랜드의 역사에서 우리의 역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만일 유럽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 한국과 가장 비슷한 나라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단연 아일랜드일 것이다.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관계는 야나이하라의 말대로 한일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한다.

잉글랜드 사람들이 아일랜드 사람들을 바라본 시각은 일본인들이 한국사람들을 본 시각과 비슷했다. 잉글랜드인들이 '하얀 검둥이', '하얀 침팬지'의 이미지로서의 아일랜드인을 만들어내었듯이, 일본인들도 '옷 잘입는 아이누', 두바로 서서 걷는 원숭이'라는 한국인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었다.

--- p.25

출판사 리뷰

아일랜드와 우리 : 두 겹의 역사 읽기

우리에게는 감자 대기근이나 북 아일랜드를 둘러싼 정치적 분쟁 등 몇몇 부정적인 이미지를 제외하고는 미지의 섬으로 알려져 있는 아일랜드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서가 처음으로 소개된다. 보통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아일랜드를 자연 풍광이 수려한 아름다운 섬나라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데, 사실 아일랜드의 역사를 조금만 들춰보면 놀랍게도 우리 나라와 닮은 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국이라는 강대국 곁에서 겪은 수난의 역사, 맹목적인 애국심, 음악과 춤, 술을 즐기는 성향, 정열적이고 감정적인 민족성 등 유럽과 일본의 일부 관찰자들이 한국을 ‘아시아의 아일랜드’라고 부를 정도로 우리 나라와 아일랜드는 닮은꼴인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실제로 최근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한일 월드컵을 맞이하여 “화끈한 한국인, 예절바른 일본인”이라는 제목으로 양국의 국민성을 비교하면서 “한국인들은 ‘아이사이의 아일랜드인들”이라고 별명이 붙은 만큼 음악, 춤, 술을 즐긴다“는 기사를 게재하고 있기도 하다. 동시에 최근 월드컵 축구에서 인구 400만의 나라인 아일랜드 축구가 4강까지 진출하는 ‘작지만 매운 고추’같은 모습도 두 나라는 똑같이 공유하고 있다.
더욱이 19세기 중반 감자 마름 병으로 백만 명이 넘는 인구가 아사해버린 못사는 나라에서 최근 일약 세계의 IT 강국으로서 세계 속에 새로운 위상을 차지하게 된 아일랜드의 현재 역시 언뜻 오늘날 우리 나라의 역사나 발전상과 흡사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역사란 과거와 미래의 대화인 동시에 타자와 나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럽의 변두리에 있지만 우리와 너무나 닮은 아일랜드라는 타자를 통해 우리와 가장 비슷하지만 여러모로 다른 아일랜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여행을 바로 우리의 자화상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줄 것이다.

20세기 들어 서구와 동일한 ‘근대화’를 지상 과제로 삼아온 우리는 프랑스나 독일 등 가장 근대화된 국가를 이상으로 삼았고, 또 이들 나라의 역사를 우리가 나가야 할 모델로 삼아 왔다. 하지만 역사의 승리자들에 대한 무한한 동경은 동시에 역사의 이면과 어두운 부분에 대한 무관심과 과도한 민족주의라는 (부정적인) 유산을 낳은 것 또한 사실이다. 자기 민족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순결하다고 믿는 맹목적 애국심, 자신들의 역사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전통적이라는 자부심, 강대국 곁에서 겪은 수난의 역사 등.

이런 면에서 흔히 우리 나라가 이탈리아와 닮았다는 속설과는 달리 우리는 아일랜드와 너무나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유럽에서 우리와 가장 닮았으면서도 또 다른 아일랜드에 대한 성찰은 20세기의 우리 역사에 대한 반성인 동시에 21세기를 전망하는 작업의 새로운 단초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책은 아일랜드의 역사와 문학을 우리 나라에 최초로 본격적으로 소개한다는 차원을 넘어, ‘타자’를 통해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두 겹의 역사 읽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커다란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이웃’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나라’라는 말은 흔히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말할 때 사용되는 수식어지만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관계에도 똑같은 표현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대서양 동쪽 끝, 대영 제국이라는 강대국 옆에 위치한 아일랜드는 유럽의 변두리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도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옆에 위치한 우리와 똑같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일랜드 또한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잉글랜드라는 강대국에게 지배당했던 ‘한 많고 슬픈’ 민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한 많고 슬픈 민족’은 동시에 그에 대한 반대 급부로 ‘민족’과 민족의 전통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표출하는데, 민족주의와 민족 문화 운동, 민족 문학 등이 그것이다. 이 점에서도 두 나라는 거의 동일한 역사적 궤적을 그려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1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 또한 이러한 민족주의를 둘러싼 논의로서, 저자는 아일랜드에서 민족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된 갈등과 충돌을 살펴보고 있다. 아 책에서 저자는 아일랜드의 역사적 흐름과 함께 민족주의의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자세히 살펴보는데, 특히 최근 과도란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수정주의 역사학까지 소개하고 있어 우리의 근대사 인식에도 많은 참조가 될 것이다.

저자는 민족의 운명을 둘러싸고 가히 백가쟁명 비슷한 열기를 띠었던 1880~1920년대의 기간을 중점적으로 고찰하는데, 이 시기는 아일랜드 역사에서 문화적, 정치적 혼란과 충돌이 가장 격렬히 전개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민족주의의 기치 아래 각종 연맹과 단체가 창설되고, 사회주의와 노동 운동이 등장했다. 그리고 자유국과 북아일랜드가 탄생하는 등 그야말로 근대 아일랜드가 ‘만들어진’ 격변의 시기였다. 이러한 격동기를 중심으로 필자는 아일랜드의 복잡하게 얽힌 근대사와 현재까지도 진행중인 민족 정체성(‘아일랜드성’)을 둘러싼 갈등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일랜드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필자가 지적한 대로 우리의 근대와 식민지 역사를 둘러싼 논쟁을 다시 한번 반성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즉, 필자는 과거 아일랜드 민족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비참한 나라’ 라는 이미지에 집착하여 오랫동안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지금 일부 아일랜드 지식인을 중심으로 이러한 편협한 역사 의식을 버리고 자국의 역사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강조하는데(소위 수정주의 역사학), 이런 점에서 아일랜드는 여로 모로 우리가 가장 많이 배워야 할 유럽 국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런던과 더블린 사이에 선’ 세 명의 영국계 아일랜드 작가들
이 책의 두 번째 이야기는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마치 일제 시대에 우리 나라 지식인들이 ‘현해탄 컴플렉스’에 시달렸듯이 ‘런던과 더블린 사이에 서 있던’ 영국계 아일랜드 작가들의 고뇌를 추적하고 있다. 멀리는 스위프트를 비롯해 특히 20세기 초에 들어서 제임스 조이스, 예이츠, 와일드, 쇼, 베케트 등 유럽의 변방 중의 변방이었던 아일랜드야말로 세계 문학의 중심지이자 보고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낸 작가들도 드물 것이다. 예를 들어 제임스 조이스는 ‘문학적 망명’을 떠나 파리와 트리에스테를 떠돌았으며 베케트는 파리를 창작의 본거지로 삼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니스프리의 섬?이라는 시로 유명한 예이츠하면 누구나 그가 아일랜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오스카 와일드나 버나드 쇼가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이스의 작품은 거의 언제나 더블린의 거리를 떠나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필자는 이를 ‘영국계 아일랜드인’이라는 이중적 정체성 속에서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영국계 아일랜드 문인 가운데 와일드, 쇼, 예이츠의 삶과 작품을 영국계 아일랜드라는 관점이라는 새로운 틀로 분석하고 있다. ‘재치에서는 로빈후드’ 감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민족, 언어, 성 정체성이 복잡하게 뒤얽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와일드, ‘두 개의 섬’ 사이에 끼어 있었던 버나드 쇼, 그리고 ‘안티테제적 민족주의자 예이츠’ 등 이 책에서 조명되는 세 ‘영국계 아일랜드’ 작가들의 삶과 문학은 전통과 근대를 살아낸 세 겹의 삶으로서 우리에게도 많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리뷰/한줄평6

리뷰

7.6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