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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김원우 장편소설
김원우
2008.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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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첫번째 이야기 달아나는 풍속도
두번재 이야기 참다운 거짓인생
세번째 이야기 당신이 미쳤대요

해설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소설가, 등단 이래 읽으면서 쓰고 쓰면서 읽는 한결같은 걸음을 걸어왔다. 그의 소설 문장은 이제 그 자체로 한국어의 개별 장르이자 계보가 되면서 우리 삶의 세부를 켜고 전망의 허실을 가늠하는 각별한 상징의 자리에 이르고 있다. 소설집 『무기질 청년』 『장애물 경주』 『세 자매 이야기』 『아득한 나날』 『벌거벗은 마음』 『안팎에서 길들이기』 『객수산록』 등과, 장편소설 『짐승의 시간』 『가슴 없는 세상』 『일인극 가족』 『모노가미의 새 얼굴』(전2권)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등이 있다. 한국창작문학상,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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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3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296g | 127*188*30mm
ISBN13
9788982181115

책 속으로

한쪽은 맷돌처럼 과묵하고 부지런했으며, 다른 한쪽은 참외처럼 아금받고 오사바사해서 집에서 큰소리가 날 일도 없었다. 평생토록 음식 투정이 없던 바깥양반이 밥상 앞에서 한쪽 엉덩이를 끄떡 쳐들고 소리도 맑은 줄방귀를 뀌면 안에서는 얼른 부채로 까붐질을 하거나 한겨울에도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손바람을 일구는, 그런 점잖은 호들갑을 부창부수 격으로 떨어대도 온가족이 웃지도 않았다.
--- p.145

뜻밖에도 유무식의 경계가 제법 선명하게 드러나고 만 것 같은데, 그 허술하기 짝이 없는 지식의 줄기찬 행진을 충동이는 동력원은 무엇인가. 그것을 알아야 미망의 탈을 벗어버릴 수 있지 않는가. 진리든 허위든 빨리 내놓으라는 시장의 아우성은 배고픔을 잊기 위해 목숨을 걸고 본능적으로 아무거라도 짓씹고 보는 원시인의 경지와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그런 세상 자체가 한시적으로 가짜, 허구이며, 그 속을 부유하는 인간들도 엄숙한 가식의 탈바가지를 덮어쓰고 살아간다. 어차피 세상과 인간은 항구적이면서도 제한적인 반(半)문맹상태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 p.113

소문난 과묵이었고, 장아찌와 고추장이 주빈인 단사호장(簞食壺漿)의 식사에 빨랫감도 만들지 않을 정도로 온갖 것을 다 아껴 썼고, 자기보신에 철두철미했으며 일상 전반을 자로 잰 듯 정확무비하게 꾸려간 사람이었다. 사무라이라는 별호대로 외과의로서 믿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칼 실력뿐이었다. 주군이 있다면 오로지 환자였고, 주위의 모든 사람은 언제 자기를 한칼에 벨지 모르는 적이었다. 배울 수 있다면 연하의 후배에게도 언제든 무릎을 꿇을 만큼 유일한 생존술로서 의술의 연마에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작가는 증언의 청취자 여박사의 시선을 통해 이렇게 묻는다. “사회와 이웃은 물론이고, 가족과 자신의 생업에조차도 온몸을 기대지 않으려는, 스스로 고립무원을 자초하는, 나 아닌 외부에의 의존도가 거의 제로 상태인 이런 인물을 어떻게 명명해야 옳은가?
--- p.197

(…) 새처럼 그랬어요. 간당거리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위태위태한 처지를 쉴새없이 살피는 그런 자세로 이 땅에서 사시다가 어느 날 훌쩍 새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이, 지저분한 자취도 안 남기시고 떠나가신 거예요. 돌아가시고 나자 우리 아바지가 새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이 땅에다 뭘 보탠 것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축내고 해 끼치는 일은 안했을 거예요.
--- p.197

자꾸 동란 전의 행적이 어떻고 하는데, 우리집 영감 할마씨의 생애를 돌아보면 허술하고 말고도 없어. 그 세대가 다 그래, 아니, 그럴 거야, 온통 구멍이 뻥뻥 뚫린데다가 어떤 구석은 송두리째 훌렁 빠져 있다니까. 억지고 천행이고 무슨 전설이야. 그러니 실물도 아니고 사람 같지도 않아.
--- pp.245,~246쪽

역시 만성적 후유증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닌 듯싶었고, 우리 사회의 저변마다에 가지각색으로 깔려 있는 그 뿌리 깊은 통증을 보는 족족 쓰다듬어가며 살아야 하는 사람의 본연의 임무가 너무 묵직해서 내 몸의 어느 부위가 또 저려왔다.

--- p.247

출판사 리뷰

김원우 소설을 읽는 즐거움―문장의 힘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은 2005년 『젊은 천사』 출간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김원우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한쪽은 맷돌처럼 과묵하고 부지런했으며, 다른 한쪽은 참외처럼 아금받고 오사바사해서 집에서 큰소리가 날 일도 없었다. 평생토록 음식 투정이 없던 바깥양반이 밥상 앞에서 한쪽 엉덩이를 끄떡 쳐들고 소리도 맑은 줄방귀를 뀌면 안에서는 얼른 부채로 까붐질을 하거나 한겨울에도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손바람을 일구는, 그런 점잖은 호들갑을 부창부수 격으로 떨어대도 온가족이 웃지도 않았다.”(145쪽)

“뜻밖에도 유무식의 경계가 제법 선명하게 드러나고 만 것 같은데, 그 허술하기 짝이 없는 지식의 줄기찬 행진을 충동이는 동력원은 무엇인가. 그것을 알아야 미망의 탈을 벗어버릴 수 있지 않는가. 진리든 허위든 빨리 내놓으라는 시장의 아우성은 배고픔을 잊기 위해 목숨을 걸고 본능적으로 아무거라도 짓씹고 보는 원시인의 경지와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그런 세상 자체가 한시적으로 가짜, 허구이며, 그 속을 부유하는 인간들도 엄숙한 가식의 탈바가지를 덮어쓰고 살아간다. 어차피 세상과 인간은 항구적이면서도 제한적인 반(半)문맹상태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113쪽)

두 인용에서 알 수 있듯, 김원우의 소설 문장은 맛깔스럽고 핍진한 우리말 구사에서 거의 천연덕스런 경지를 보이는 한편, 독설과 아이러니를 내장한 지적인 세계 성찰의 면모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개성을 구축하고 있다. 하고 보면 첫번째 인용은 풍성한 우리말 수집가로서 식민지 조선의 일상과 세태를 활수한 만연체 문장에 담아냈던 횡보(橫步)의 전통을 김원우 소설 문장이 적극적으로 잇고 있다는 가벼운 사례라고도 할 만하다. 그러면서 인간과 세계 일반의 뭇 현상들을 지극히 냉소적으로 씹어 돌리는 비판적 ? 지적 저작력(咀嚼力)의 두툼한 양감에 이르면 김원우의 소설 문장은 사유의 온축이나 신랄함에서 그 예를 찾기 힘든 산문정신의 정화를 득의의 영역으로 만든다. 바로 이 핍진하고 두툼한 살집의 언어와 문장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작가와 함께 한국사회 혹은 한국인의 심성에 대한 해부학적 발견에 이르는 과정에 동행하는 것은 김원우 소설을 읽는 크나큰 즐거움이다.

그러나 정호웅 교수가 이번 소설의 ‘작품해설’에서 정확히 지적한 대로 “탐구적이고 비평적이며 자기성찰적인 김원우 문학의 언어와 그 운용 방식은 말랑말랑한 감성의 언어, 우직한 사실(寫實)의 언어가 지배적인 우리 소설에서는 대단히 낯선 것”이다. 이 낯섦은 미로와 우회로를 통과해야 하는 김원우 소설 특유의 느긋한 서사 전개를 좀더 불편하게 만들면서 평단의 문학적 평가와는 무관하게 김원우 소설의 독자를 제한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소설의 현재적 활력을 어떻게 평가하든 소설의 언어와 문장이 그 자체 음미와 반성의 독립적 실체가 되지 못하고 단지 서사를 실어 나르는 도구에 그치거나 번쩍이는 순간의 지혜를 전시하는 데 머물고 만다면 그로부터 소설 독서의 온전한 즐거움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혹 우리는 어느 한 군데 걸리는 곳 없는 평평하고 납작한 소설의 문장을 경쾌함으로, 속도감으로 잘못 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느 면 독자의 수고를 요구하는 김원우 특유의 깐깐한 소설 문장은 그러한 사태에 대한 강력한 항의이자 항체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새처럼 살다 갔다―한 난민의 그려지지 않는 초상
장편소설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은 (대구로 짐작되는) 지방의 국립대학 의과대학의 교수로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뛰어난 외과의로 한 평생을 보낸 삼팔따라지 한 월남민 의사의 생애를 복원하는 이야기를 중심 서사로 하고 있다. 미수(88세)를 넘기고 세상을 떴으니 한국의 근현대사 한 세기가 고스란히 겹치는 관수(觀樹) 박성득이라는 의사는 그런데, 화려하다면 화려한 경력과는 달리 ‘근거의 자발적 소멸’이라 할 만큼 자신의 삶을 드러내고 선양할 일체의 믿을 만한 자료를 사후에 남기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유족과 후학들의 증언을 그러모아보지만 그의 경력은 곳곳이 텅 비어 있다. 어떤 지점은 아예 백지상태다. 추모문집을 준비하느라 대강이라도 은사의 생애를 복원해보려던 의대 제자 여(呂)박사와 최원장은 “자신의 살아온 경력 일체를 오자낙서(誤字落書) 지우듯이 새카맣게 먹칠을 해버린 어떤 의사의 흔적” 앞에서 자못 망연한 심정이 된다.

두번째 이야기 「참다운 거짓인생」에 담겨 있는 이 ‘생애 은폐’와 ‘생애 복원’ 사이의 줄다리기는 이번 장편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의 백미라 할 만한데, 유족을 포함한 몇몇 증언자의 다분히 부실할 수밖에 없는 기억은 증언 청취자인 여박사의 논평적 해석을 거치고, 이 소설의 또 다른 중심인물이자 증언의 간접 청취자인 정형외과 개업의 최원장(최원장 또한 삼팔따라지 부모를 둔 월남민 2세다)의 유년기 혹은 가족사에 대한 기억과 또 한번 중첩되면서 막연하나마 조금씩 박성득이라는 인물의 생애를 하나의 있음직한 실루엣으로 구성해내기에 이른다(이 지점에서 주관적 기억과 객관적 사실의 아득한 거리를 넘어 인간 진실의 불가해하고 보편적인 국면을 열어가는 문학적 상상력 혹은 소설 서사의 구성적 힘을 음미해보는 것도 이 작품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실루엣이 희미한 대로나마 비추어 보여주는 것은, 이른바 실제에도 그러하지만 그 은유적 의미에서도 철저히 ‘난민’의 삶을 살아온 한 인간의 처절한 생존기(生存記)다. 대충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1918년(호적상 생년일 뿐, 1915년 생으로 밝혀짐) 평북 신의주 출생. 아버지는 소금 장사였고 조부는 연경을 오가는 사신단의 짐꾼. 일본 본토의 한 제대 의학부 졸업. 졸업 후부터 귀국까지의 몇 년간은 공백으로 남음. 해방 직전 지방(대구)에 있던 의전의 강사로 임용되나 출강을 앞두고 종적을 감춤(원래 허약 체질인데다 해방 전후 황달 증세의 재발로 몹시 아팠다는 증언이 있음). 평양의 한 종합병원에서 한국동란을 맞음. 9월 중순 북쪽에 미군의 맹폭이 퍼부어지자 평양에서 원산을 거쳐 처가가 있는 함흥으로 피난. 흥남철수 때 월남. 휴전 무렵 지방(대구)의 국립의대(전신은 의전. 처음 강사로 임용되었던 곳) 외래강사로 부임(부임했으나 방은커녕 자리도 없이 동료 및 선임들로부터 한참 동안 따돌림을 당함). 이후 정식 임용을 거쳐 평생을 그곳 국립의대에서 교수이자 외과의로 봉직. 병원장 지냄. 슬하에 2남2녀를 둠. 부인은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말년을 보냄. 그러나 이력의 곳곳이 구멍투성이고 특히 해방 전후나 동란기의 행적은 캘수록 오리무중의 공백으로 드러남.

소문난 과묵이었고, 장아찌와 고추장이 주빈인 단사호장(簞食壺漿)의 식사에 빨랫감도 만들지 않을 정도로 온갖 것을 다 아껴 썼고, 자기보신에 철두철미했으며 일상 전반을 자로 잰 듯 정확무비하게 꾸려간 사람이었다. 사무라이라는 별호대로 외과의로서 믿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칼 실력뿐이었다. 주군이 있다면 오로지 환자였고, 주위의 모든 사람은 언제 자기를 한칼에 벨지 모르는 적이었다. 배울 수 있다면 연하의 후배에게도 언제든 무릎을 꿇을 만큼 유일한 생존술로서 의술의 연마에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작가는 증언의 청취자 여박사의 시선을 통해 이렇게 묻는다. “사회와 이웃은 물론이고, 가족과 자신의 생업에조차도 온몸을 기대지 않으려는, 스스로 고립무원을 자초하는, 나 아닌 외부에의 의존도가 거의 제로 상태인 이런 인물을 어떻게 명명해야 옳은가?”(197쪽)

90년대 이후 김원우 소설이 중구난방의 저열한 생존 욕망이 충돌하는 부박한 한국사회의 세태로부터 무의식적 집단심성으로서 ‘난민 의식’을 도출해냈음은 두루 아는 바다. 이 경우, 한국 근현대사 전(全) 시기의 파행적 전개가 한국인에게 난민적 삶과 강박적 난민 의식을 강요한 실체라는 점을 이해한다는 것은 문제의식의 출발선에 불과하다. 김원우 소설이 당대 한국사회를 ‘난민하치장’으로 명명하고 그 세속의 지리멸렬을 특유의 산문정신으로 풍속화할 때, 그 배면에서 정작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저 도떼기시장에서라도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향한 기율과 윤리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하는 깊은 탄식과 근심의 질문일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절벽 끝 세상의 한 모서리에서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고립무원의 암중모색을 평생 이어갔던 한 외과의사의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 삶의 초상화는 잠정적일지언정 김원우 소설이 그 질문에 맞서 찾아낸 최저선의 인간 윤리 같은 것은 아닐까. 유족인 둘째딸의 회고에서 우리는 그 최저선의 윤리를 살다 간 기막힌 생의 이미지와 만난다.

정호웅 교수는 해설에서 “지금까지의 한국 소설 어디에서도 그 비슷한 경우를 찾을 수 없는 개성이라 할 수 있는 이 인물을 통해 이 작품은 성격 창조의 한 모범을 보였으며, 나아가 한국 근현대사 백 년의 한 측면을 반영하고 해석하는 깊은 차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쓰고 있거니와, 이는 단순히 한 인물의 문제적 성격만을 강조하고 있는 진단은 아니리라. 그것은 또 다른 삼팔따라지 난민이기도 한 최원장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외삼촌들의 이야기가 거기에 겹치면서 서서히 그 실체를 짐작게 하는 ‘어떤 세대의 슬픈 초상을 마침내 돋을새긴 김원우 소설의 문학사적 성취에 대한 기림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보면 같은 난민이라 하더라도 새처럼 조용히, ‘숨은 꽃’ 같은 생애를 남기고 간 인물이 있는가 하면, 신앙조차도 자신의 지칠 줄 모르는 탐심의 영역 안에 가두어버린 채 평생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만을 아등바등 모셔온 최원장의 모친(세번째 이야기 「당신이 미쳤대요」에 집중적으로 그려져 있다) 같은 또 다른 난민의 삶도 있다. 이 두 극단은 어떤 윤리적 대비항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로부터 한국인이 살아온 지난 한 세기의 시난고난이 가까스로 그 허실의 풍경을 드러내고 있음을 김원우 소설은 장인적 풍속화가의 손길로 담담히 그려놓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만큼 생애 복원 전말기를 최원장의 옆에서 지켜본 이 소설의 일차 화자 김교수가 그 자신 교통사고 후유증을 착실히 앓고 있는 또 한 명의 정신적 난민으로서 모종의 저회를 삭이는 대목은 막막한 대로 차라리 실다운 느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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