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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In-hwan,朴寅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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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키의 달밤
기복(起伏)하던 청춘의 산맥은 파도 소리처럼 멀어졌다 바다를 헤쳐 나온 북서풍 죽음의 거리에서 헤매는 내 성격을 또다시 차디차게 한다 이러한 시간이라도 산간에서 남모르게 솟아나온 샘물은 왼쪽 바다 황해로만 기울어진다 소낙비가 음향처럼 흘러간 다음 지금은 조용한 고르키의 달밤 오막살이를 뛰어나온 파펠들의 해머는 눈을 가로막은 안개를 부순다 새벽이 가까웠을 때 해변에는 발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정박한 기선은 군대를 끌고 포탄처럼 내 가슴을 뚫고 떠났다. --- p.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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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박인환 시인의 타계 50주년을 기념해 『박인환 깊이 읽기』를 펴낸 바 있는 맹문재 교수가 『박인환 전집』을 새로 엮었다. 이번에 간행된 전집에는 엮은이가 발굴한 작품 열다섯 편이 수록되었으며 이를 통해 박인환의 작품 세계를 연구하는 데에 한층 더 유용한 기초자료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열다섯 편의 발굴작 그리고 박인환의 행적 바로잡기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1956년 3월 20일 서른한 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현재까지 엮은이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시 여든한 편, 산문 일흔두 편, 번역시 한 편, 번역소설 여섯 편, 서간 열세 편 등 총 173편의 작품을 남겼다. 혼란한 정국과 전쟁 등의 당대 상황을 감안해보건대 결코 적지 않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집에는 시 여든한 편, 산문 일흔 편, 서간문 열세 편, 번역 시 한 편 등, 미발굴된 작품과 번역소설 소수를 제외한 모든 작품을 망라해 수록하여, 가히 정본(定本)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했다. 특히, 동인지 『신시론』(산호장, 1948)을 발굴해 시 「고르키의 달밤」과 산문 「시단 시평」을 수록했는데, 『신시론』은 박인환 및 양병식, 김차영, 김규동, 김수영, 김경희, 김병욱이 함께한 동인지로 지금까지 한국전쟁 발발로 간행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런데 『신시론』의 발굴로 인해 박인환의 시작 활동이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함께 간행한『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도시문화사, 1949) 이전에 이미 이루어진 것을 밝혀냈다. 이 외에 산문과 번역시까지 총 열다섯 편의 발굴작이 수록되어 있다. 엮은이는 또한, 박인환의 등단시기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박인환은 1946년 12월 『국제신보』에 「거리」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정답처럼 여겨지는 이 사실은 재고되어야 한다. 지금의 『국제신문』의 전신 『국제신보』는 1947년 9월 1일 『산업신문』이라는 제호로 창간되었는데, 『국제신보』는 1950년 8월 19일 바꾼 제호이다. 창업주인 김형두 씨는 『수산신문』과 『동아산업시보』를 병합해 『산업신문』을 창간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볼 때 박인환의 등단년도, 등단매체, 등단작품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번 전집에서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어 박인환의 등단사항을 정확하게 규명하지 못했지만, 재고할 필요가 있음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기존의 시집에서 박인환의 작품으로 소개된 두 편의 작품에 대해서도 바로잡았다. 『한국대표시인 101인선집―박인환』(문학사상사, 2005)에서는 「얼굴」, 「술보다 독한 눈물」 이상 두 편을 박인환의 시로 수록하고 있고, 그 바람에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엮은이에 따르면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해당 작품을 박인환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웹상에 공공연히 떠도는, 이 두 편의 시는 우리에게 숙제를 던져준다. 모더니티와 리얼리티를 동시에 쟁취하고자 했던 시인 박인환은 문학사에서 상이한 빛깔의 두 가지 이름으로 거론된다. 그에 대한 평가는 감상적 모더니스트인가, 그렇지 않다면 역사에 대한 치열한 각성을 형식 모험 속에 담아내려 했던 리얼리스트인가 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는 문단사를 모더니즘 혹은 리얼리즘의 양대 계보로 정리해온 우리 인식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일단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대립하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으로 이해하는 방식이 박인환에게도 적용된 것이다. 편자는 이같은 단선적 시각을 지적하며, 박인환의 문학을 “모던한 리얼리즘의 시 세계”로 명명한다. 가령, 이번에 발굴된 시를 보자. ‘죽음의 거리’로 명명된 세계의 한복판에서 ‘샘물’과도 같은 미래를 꿈꾸는 시인의 자의식이 핍진하게 드러난 시다.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도저한 혁명성을 암시하는 ‘해머’와 ‘포탄에 뚫려버린 가슴’으로 표현된 비극적 자아 인식이다. 시인은 ‘눈을 가로막는 안개’를 부수고자 하지만, ‘군대’와 같은 근대적 폭력 기구에 의해 그 의지가 실패할 것을 희미하게나마 예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실패는 아름다운가. 시인은 ‘해변의 발자국’을 기억하는 방식을 통해 ‘죽음의 거리’에 대한 부정이 계속될 것을 넌지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박인환의 시는 해변에 남은 그 발자국과 같다. 파도에 씻기고 안개에 지워져버린 꿈의 기획을 통해 우리는 미학과 역사성이 결합하는 접점을 확인하게 된다. 박인환은 『선시집』 후기에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지지할 수 있는 마지막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 말에서는 도달하고 싶은, 그러나 도달하지 못한 세계 저편을 가리키며 예민하게 떨리는 나침반 바늘과도 같은 긴장을 읽을 수 있다. 도달하지 못한 자의 긴장은 우리에게 꿈꾸어야 할 세계를 환기시킨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에 박인환을 거듭 호출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