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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n Sa,본명:옌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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쳰훵 광장. 하얀 서리를 뒤집어쓴 채 바둑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눈사람을 닮았다. 코와 입에서 연신 하얀 김이 뿜어져나온다. 모자와 차양 가두리에 맺힌 바늘 같은 고드름들이 땅을 향해 자라고 있다. 진줏빛 하늘 저편으로 진홍빛 해가 끊임없이 기울어만 간다. 해의 무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 이곳이 바둑꾼들의 약속 장소가 되어버렸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화강암 탁자에 새겨진 바둑판들도 수천 버을 오간 수담(手談)에 닳아 이젠 얼굴들이, 생각들이, 기도들이 되어버렸다. 나는 토시 속에 든 청동 보온기를 두 손으로 꼭 쥔 채 꽁꽁 언발을 녹이기 위해 끊임없이 발을 굴러댄다. 내 상대는 역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이곳으로 달려온 외지인이다.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내 내부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끓어오른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돌들을 잘 구분할 수가 없다. 갑자기 누군가 성냥을 켠다. 내 상대의 왼손에서 초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거의 다 자리를 뜨고 없다. 이렇게 늦도록 귀가하지 않는 딸 때문에 어머니가 노심초사하고 있으리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둠이 깔리자 바람이 인다. 사내가 장갑 낀 손바닥으로 불꽃을 가려 보호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한 모금만 들이켜도 목이 화끈거리는 배갈 한 병을 꺼낸다. 나는 그것을 상대의 코앞에 내민다. 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병을 바라본다.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이라 도통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눈썹 위에서 시작된 긴 흉터가 꼭 감고 있는 오른쪽 눈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가 찡긋 인상을 쓰고는 단숨에 술병을 비워버린다. 오늘 밤은 달도 없다. 바람이 갓 태어난 아이처럼 앵앵거린다. 하늘 저 위에서도 신이 별들을 밀어젖히며 여신과 대결을 벌이고 있다. 사내는 돌을 세고 또 센다. 열여덟 집을 진 그가 한숨을 내쉬고는 초를 나에게로 내민다. 그가 추위에 굳어버린 거구를 일으키더니 가방을 주워서는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린다. 나는 돌을 집어 통에 넣는다. 손가락 사이에서 돌들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난다. 이제 광장엔 나밖에 없다. 내 병사들과 더불어. 가슴이 뿌듯하다. 오늘로 100승째를 올린 것이다. -- pp 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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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프랑스에서는 공쿠르 아카데미 회원들이 추천한 책들을 읽은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이 ‘가장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한다. 그렇게 전문가들에게 작품성을 인정받고, 젊은 독자들의 예민한 감수성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읽는 재미를 겸비한 책에게 돌아가는 상이 바로 <공쿠르 데 리쎄앙 상>이다.
<현대문학북스>는 2001년 <공쿠르 데 리쎄앙 상> 수상작인 샨사의 《바둑 두는 여자》를 출간했다. 20세기 초의 역사적 격변기, 일본군 점령하에 있는 만주의 한 자그마한 도시, 막 성에 눈을 떠가는 한 중국 소녀와 일본 천황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기를 꿈꾸는 한 일본군 장교가 그들을 이어주는 운명의 언저리에서 비극적 사랑의 이중주를 펼친다. 그 슬프고도 안타까운 몸짓의 이중주는 쳰훵 광장의 차가운 바둑판 위에서 매일같이 벌어진다. 봉건적 이데올로기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소녀와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청년은 바둑을 통해 서로의 영혼을 읽으며, 숨 막히는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의 대국에는 승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묘한 마음의 떨림과 그것을 제어하는 방어벽들로 세워진 바둑알들은 죽음으로 적을 포위해야 하는 길을 차단한 채 점점 미로 속으로 빠져든다. 성장의 아픔에 지친 소녀는 운명적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청년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끓어오르는 사랑의 욕망을 창녀들을 통해 해소한다. 《바둑 두는 여자》는 ‘위선적이고 틀에 박힌’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 한 반항적인 소녀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몰락해가는 청조 귀족 집안의 규수인 주인공은 아직 봉건적 관습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일찍이 외국 유학을 다녀온 부모 밑에서 현대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유롭게 성장했다. 대담성과 분방함을 지닌 소녀는 모순과 위선으로 점철된 어른들의 세계를 증오하며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지배하고자 한다. 이 소설에서 바둑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흐름 속에 처한 소녀가 한 나라의 역사를 읽고, 자아를 발견하며, 사랑을 감지해가는 성장의 거울로 등장한다. 이 소설이 출간되자 프랑스의 언론들은 앞 다투어 지면을 할애하여 수학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한 형식에 절제되고 섬세한 문체로 소설의 완성도를 높였다며 작가인 샨사를 극찬했다. 1972년생의 젊은 여성인 샨사는 중국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보이며 급기야 프랑스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파리에 입성했으며, 프랑스어로 소설을 쓴 지 3년 만에 문단의 정상급 대열에 합류했다. 소설뿐만 아니라 시, 서예, 그림으로도 자신의 세계를 표출하는 샨사는 결벽에 가까우리만치 단어와 문체를 갈고 다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저에겐 진주들만 남도록 끝없이 낱말들을 줄이려는 결벽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종의 음악으로 그것들을 꿰어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어내려고 애쓰죠.” 샨사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바둑 두는 여자》는 관능과 이성의 대립 항이 한 올 한 올 꿰어져 눈부신 문체의 무늬를 그려내고 있는 수작이다. 또한 그 무늬들은 바둑이라는 ‘대결’의 구도 속에서 더욱 치밀하고 극적인 만남을 이루어낸다. 전통과 현대성, 중국과 일본, 여자와 남자, 현실과 몽환이라는 지평이 서로 다른 존재들의 궤도를 따라 흘러가다보면 독자들은 어느 새 샨사가 쳐놓은 바둑판의 그물망 속에 떨어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일본군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마지막 황제 푸이의 괴뢰정권이 다스리던 만주는 만주인을 비롯해 일본, 한국,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다양한 인종들이 우글거리며, 동양적인 관습과 서구적인 문화가 강력하게 충돌하던 혼돈의 도시이다. 온갖 변종문화가 파생되는 혼돈의 퓨전 도시에서 소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녀는 아직 여물지 못한 감정의 폭풍우에 휘말려 순결을 버리고 끝없는 악몽의 심연 속으로 추락해가지만 한 수 한 수 그녀의 영혼 속으로 바둑을 두며 내려오는 일본 청년은 ‘죽음’의 방법으로 마침내 그들의 사랑을 건져올린다. 자신과 대면한 남자들의 심리를 꿰뚫은 척 짐짓 사랑의 게임을 리드하는 당돌한 소녀는 샨사 자신의 사춘기 경험에서 나온 것일까? 각 장마다 번갈아 바둑 두는 소녀와 그 적수에게 내레이션을 맡긴 샨사는 마치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듯 고통스럽고 우울한 문장으로 1930년대 불운의 중국 역사를 읊조린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장면들을 연상시키는 고감도의 이미지를 로마네스크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소리 없이 자신의 가슴속에 들끓는 열정의 실체를 찾아 삶의 자그마한 메시지에도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삶이란 지극히 상징적인 것이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