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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lie Nothomb,파비엔 클레르 노통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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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은 걸핏하면 울어 댔다. 플로랑과 노라는 번갈아 아이에게 달려갔다. 젖병을 물려 주고, 품에 안아 주고, 울음을 그치게 할 방법을 몰라 허둥댔다.
소아과 의사를 찾아가 물어봤지만, 의사는 당시의 속설만 읊어 댔다. 「그냥 놔두세요. 울자마자 달려가면 더 울 겁니다. 버릇만 나빠질 거예요.」 문제는 아이가 빽빽 우는 소리가 벽을 통해 들린다는 점이었다. 울음소리가 빤히 들리는데 그냥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어느 날 밤, 태어난 지 2주쯤 되었을 아이를 붙들고 플로랑이 단호하게 말했다. 「트리스탄, 네가 날 닮은 것 같아 말하는데, 그만 울어. 엄마도, 나도 널 사랑하니까 아무 문제 없어. 이제 질질 짜는 건 끝.」 그는 침대로 돌아갔다. 「당신, 아이를 아주 호되게 꾸짖었네요.」 노라가 속삭였다. 「저 녀석,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아.」 그 후로 트리스탄은 절대 울지 않았다. --- pp.11-12 집으로 돌아오면 끝없는 이별이 다시 시작되었다. 목욕은 아빠와 엄마가 번갈아 시켜 주었고, 젖병을 물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그토록 두려워하던 순간이 찾아왔다. 그들은 그녀를 잠자리에 눕혔고, 무엇보다도 방문을 닫아 버렸다. 방문 너머로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아빠와 엄마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기에 그 순간은 더욱 끔찍했다. 트리스탄은 질투나 시샘이 많거나 소유욕이 강하지 않았다. 그녀의 욕망은 아빠나 엄마,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았다. 다만, 자신도 축제에 참여하고 싶을 뿐이었다. --- p.16 「레티시아.」 그토록 아름다운 소리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던 트리스탄이 자기도 모르게 반복했다. 「한번 안아 볼래?」 「그래도 돼요?」 「그럼. 네 동생이잖아. 내가 널 위해 낳았어.」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끼면서 트리스탄은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3킬로그램을 품에 안았다. 두 영혼이 서로를 발견했고, 서로의 내부에서 공명했다. 두 행성이 너무나도 정확한 방식으로 정렬해서 두 아이에게만 들리는, 절대 희미해지지 않을 음악이 피어올랐다. 반은 소리고 반은 빛인 그 현상은 분당 예순 번, 천년만년의 세월을 향해 서로에게 메아리쳤다. --- p.48 자매는 약속이라도 한 듯 결국 함께 잠들었다. 함께 나누는 잠만큼 사랑에 어울리는 것은 없었다. 부모의 방에서도 비슷한 기적이 일어났다. 플로랑은 죽음처럼 깊은 부부의 잠을 위해 모로 누운 노라의 몸을 얼싸안았다. 하지만 부부의 만족이 아무리 크다 해도 잠든 아이들의 그것에 비견될 수는 없었다. 부부의 잠자리에는 〈여보, 내일 쓰레기통 바깥에 내놔야 하니까 알려 줘. 지난주 목요일에 깜빡했어〉와 같은 일상의 진부한 예견들이 섞여 있었다. 반면에 트리스탄과 레티시아는 현재의 순간만을 살았다. 창세기에는 저녁이 있었고, 아침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시간에는 오로지 지금만 존재했다. --- p.57 나중에 플로랑이 레티시아를 안고 있는 트리스탄을 봤을 때, 그녀는 아기에게 말들의 움직임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플로랑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제발, 어린 천재 시늉 좀 그만두지 않을래?」 트리스탄은 설명을 멈췄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고 말았다. 플로랑은 그 말이 얼마나 큰 무게로 큰딸을 짓눌렀는지 결코 알지 못했다. 이튿날, 트리스탄은 눈이 잘 안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사실을 알리자, 노라는 그녀를 안과에 데려갔다. 안과 의사는 심한 근시라는 진단을 내렸다. 트리스탄은 그날부터 안경을 썼다. 그녀는 속으로 그 장애를, 아빠가 자신을 심하게 꾸짖었을 때 느낀 부끄러움과 결부시켰다. --- pp.64-65 〈나는 왜 이다지도 슬플까?〉 그녀는 스스로 물어보았다. 해답이 마음에서 저절로 솟아났다. 그건 아빠와 엄마가 늘 자기들끼리만 따로 놀기 때문이다. 그들의 태도에서는, 그들에게 그녀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녀가 자기들 삶의 핵심이라는 암시를 드러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 p.75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레티시아는 언니의 성스러운 평판이 학교에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네가 트리스탄의 동생이구나.」 사람들은 마치 그녀가 명문가에 속하는 사람이라도 되는 양 말했다. 그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레티시아는 상황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총명했다. 그녀는 자신이 수없이 많은 걸 알고 있어도 사람들이 그리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랬다, 그녀는 이미 2년 전부터 글을 읽고 썼다. 그래도 전혀 우쭐대지 않았다. 트리스탄의 동생이라는 자존심을 훨씬 더 높은 곳에 올려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p.85 「언니는 책을 좋아하니까 내 작사가가 될 수도 있을 거야.」 「내 느낌으로는, 넌 그런 걸로 내가 필요하지 않아.」 「어쨌거나 내가 그룹 이름을 이미 생각해 뒀어. 레 프뇌(일반명사로는 〈타이어들〉이라는 뜻), 어때?」 「왜 레 프뇌야?」 「귀에 착착 감기잖아.」 「그래. 하지만 의미가 없잖아.」 「아무렴 어때. 록에서 중요한 건 소리야.」 트리스탄은 그 명언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나중에 설명해 줘. 난 록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니까.」 --- p.114 「걔는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 말을 했어. 너도 잘 알잖아.」 「〈침울한 여자애〉. 단어에는 우리가 그것에 부여하는 만큼만 권능이 있다는 걸 언제쯤 이해할 거야?」 --- p.138 1991년에, 서로를 너무나 그리워하는 자매가 대화를 나누는 방법은 유선전화밖에 없었다. 모뵈주와 파리 사이의 통화료는 비쌌다. 레티시아는 부모에게 감시받는다고 느꼈고, 마음에 있는 말을 함부로 털어놓지 못했다. 그러자 트리스탄은 편지를 쓰자고 제안했다. 「언니가 먼저 써.」 동생이 말했다. 트리스탄은 수문을 열기만 하면 됐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거의 18년 전부터, 쏟아낼 기회만 엿보는 사랑의 말들을 켜켜이 쌓아 두고 있었다. 물론 동생에게 말로 표현하기는 했다. 하지만 쓰는 건 다른 문제였고, 언어의 다른 기능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말한 다음에 노래를 부르는 일과 같았다. 노래는 영혼을 열어젖히는 다른 목소리에서 나왔다. --- pp.161-162 셀레스탱은 이상적인 연인으로 드러났다. 그가 워낙 종잡기 어려운 타입이어서, 트리스탄은 그를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모든 걸 부정적으로 보는 그녀의 면모를 바꿔 놓는 재주가 있었다. 「너와 나는 불가능해.」 「누나 말이 맞아. 우린 불가능할 정도로 잘 맞아.」 「나는 우리 관계가 1분 후에 끝날 거라는 느낌을 견딜 수가 없어.」 「그럼, 우리 관계가 1초 후에 끝날 거라는 느낌을 지어내자. 그러면 훨씬 나을 거야.」 「너하고 있으면 난 사는 게 아니야. 살아남는 거지.」 「너무 멋지네. 그럼, 사랑의 다윈주의인 셈이잖아.」 --- p.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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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어떻게 구원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하는지 보여 주는
〈인간 탐구의 걸작〉 가족이라는 기묘하고도 복잡한 굴레를 지적이고 독창적인 시선으로 파헤친다. 단연 올해 최고의 걸작.—「르 파리지앵」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새로운 작품으로 자기 문학 세계를 새롭게 경신하며, 어느덧 〈노통브 신드롬〉의 아이콘에서 프랑스 4대 문학상 〈르노도상〉 수상 작가가 된 아멜리 노통브의 「자매의 책」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아멜리 노통브는 잔인함과 유머를 탁월하게 다루며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다. 문화 충돌, 신체 담론, 지적 오만, 권력 관계, 신화의 재해석 등 심도 깊은 주제들을 쉽게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서사화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녀는 이번 책에서 모두에게 친숙한 〈가족〉을 탐구한다. 안식처이자 따뜻한 품이 되어야 할 가족을 노통브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것은 무엇일까? 소설은 1970년대에 열병 같은 사랑에 빠진 남녀를 비추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딸 트리스탄이 태어난다. 하지만 둘은 서로에게 사랑을 쏟느라 바빠 트리스탄을 방임한다. 말도 떼지 못한 시절부터 부모의 사랑 없이 자라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한 트리스탄은 스스로를 돌보며 성장한다. 이를 대리 보상하려는 듯, 트리스탄은 5년 뒤 태어난 동생 레티시아에게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노통브는 유년의 부조리가 만든 이 배타적이고 애절하면서도 기묘한 자매 관계를, 본질을 직시하는 도발적인 문체로 아름답게 그려 낸다. 30년에 걸친 〈문학적 투쟁〉이 무엇으로 향하는지 보여 주는 아멜리 노통브 문학의 현주소! 아멜리 노통브는 눈물을 자아내지는 않지만 가슴을 찢어지게 하는, 슬픈 이야기를 만드는 수수께끼 같은 능력을 가졌다. —「텔레라마」 아멜리 노통브는 한 사건에 대한 상이한 반응과 인식으로 말미암아 서로 다른 인생의 결과를 만들어 가는 인물들 속에서, 레티시아의 입을 빌어 〈단어에는 우리가 그것에 부여하는 만큼만 권능이 있다〉(138면)는 전언을 제시한다. 이는 생애가 관계, 운명, 기질 등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복잡하고 부조리한 요소로 가득한 가운데 우리가 〈나〉로 충만한 삶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그 〈관계, 운명, 기질〉등을 자기 욕망을 마주하는 언어로 치열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통브는 이를 장황하게 설명하거나 강하게 역설하는 대신 서늘할 정도로 경쾌하고 직관적인 장면, 대화를 통해 서사의 깊은 바닥에서부터 의미가 명징하게 떠오르게 한다. 「자매의 책」은 〈절대적인 열정, 죽은 자와의 대화, 소외된 유년, 거식증〉 등 아멜리 노통브가 천착해 온 문학적 모티프를 탁월하게 변주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노통브 문학의 핵심은 가장 비참한 상황조차 유머러스하게 뒤틀어 〈희망〉을 발견하는 화자와 인물 들의 태도일 것이다. 특히 작가 개인의 역사를 재구성하여 자신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이야기가 그런 특색을 긴장감 있게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노통브만이 가진 〈자기 객관화〉 능력의 특권을 보여 준다. 이 책의 역자 이상해 번역가는 「옮긴이의 글」에서 〈세상 모든 이야기가 가족사라 해도,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책 한 권씩을 바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적었다. 〈나〉를 이루는 토양이자 상처의 근원인 가족을 소설적 객체로 치환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애증에 함몰되기 쉬운 가족의 얼굴을 끝내 보편적인 문학의 언어로 직시하는, 이 지독한 〈문학적 투쟁〉이 펼쳐지는 「자매의 책」은 삶의 부조리를 예술로 연성하는 가장 품격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세상 모든 이야기는 가족사라는 말이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우주가 저토록 광활한데도 우리가 티끌만 한 지구에 모여 살듯이, 세상이 이토록 드넓은데도 우리 삶은 가족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족은 우리 삶의 뿌리다. 그런데 가족사는 대개 비극적이다. 이 또한 그럴 만하다. 눈과 귀만 열어도 지구촌에서 비극은 일상이라는 걸 알 수 있으니까. 그래도 우리는 꾸역꾸역(꿋꿋하게) 살아가고, 그 삶의 의미를 더듬는다.(중략) 아멜리 노통브는 전작 『첫 번째 피』를 아버지에게 바쳤고, 이 작품을 트리스탄처럼 자신을 돌봐준 언니 쥘리에트에게 바친다. 그리고 앞으로 출간될(프랑스 현지에서는 2025년에 출간되었다) 후속작 『잘됐네Tant mieux』는 어머니에게 바칠 것이다. 세상 모든 이야기가 가족사라 해도,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책 한 권씩을 바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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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의 경이로운 사랑 이야기 - 「렉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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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통브만의 모든 주제 — 절대적인 열정, 죽은 자와의 대화, 소외된 유년기 — 를 이 작품에서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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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기묘하고도 복잡한 굴레를 지적이고 독창적인 시선으로 파헤친다. 단연 올해 최고의 걸작. - 「르 파리지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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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고도 강렬한 감정의 불꽃을 담아내고 있다. - 「르 피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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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는 눈물을 자아내지는 않지만 가슴을 찢어지게 하는, 슬픈 이야기를 만드는 수수께끼 같은 능력을 가졌다. - 「텔레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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