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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독서욕을 불러일으키는 머리말 미셸 옹프레와 6문 6답 자연과 문화 조헨 제르네|자연은 풍요로운가? 의식, 무의식, 주체 엠마누엘 바야막 탐|변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인가? 파트릭 부베|우리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배워야 하는가? 언어, 의사소통 리샤르 모르지에브|사유는 언어의 포로인가? 시간, 존재, 죽음 알베르 자카르|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책임이 있는가? 기술 니콜라스 비트코브스키|기술적인 것에 지능이 있는가? 예술과 아름다움 미셸 가지에르|예술 작품은 해석하는 것이 더 나은가? 피에르 부르기아드|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포기해야 하는가? 조안 스파르|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있다면 예술은 쓸모가 없는가? 이성과 감성 프랑수아 다고네|나는 나의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의견, 지식, 진리 브루스 베구|나는 나의 환상을 벗어 버릴 수 있는가? 마리 도미니크 포플라르|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가? 테오 하콜라|진리는 시간에 종속하는가? 마르잔느 사트라피|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신경 쓰지 않고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가? 장 베르나르 푸이|우리는 무엇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가? 논리와 방법 엠마누엘 피에라|증거는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신화, 과학, 철학 티에리 엔체|실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과학적 지식으로 한정되는가? 자유 사비에르 듀렝게르|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자유로운가? 앙투안 피아자|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로 인해 비난받을 수 있는가? 노동과 교환, 역사 스파클 헤이터|노동이 없는 사회를 생각할 수 있는가? 프랑수아 뮤라테|역사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가? 2001년 일반 경쟁 주제 미셸 비토|실재와 실재가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옮긴이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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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포기해야 하는가? - 피에르 부르기아드
어떤 얼굴과 어떤 몸은 순간적으로 아름답다는 어렴풋한 인상을 준다. 이 인상은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할 수도 있는 어떤 모델에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이 인상은 그 얼굴이나 몸에 신비롭게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는 어떤 객관적인 데이터에서 비롯된 것인가? ---p.89 “긴 외투를 입은 어떤 사람이 엷은 안개 속에서 빠져나와 나를 향해 오고 있었는데, 나는 이 사람이 내가 만나기로 한 그 여성인 줄 알았다. 나는 그에게 손짓을 했고, 그 사람은 나에게로 왔다. 그런데 그는 남자였다. 내가 많이 존경했고 그래서 많이 사랑했던... 잘 알지는 못하지만....” ---p.90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있다면 예술은 쓸모가 없는가? - 조안 스파르 나의 만화가로서의 작업은 실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로부터 진행한다. 사물들을 바라보고, 그러고 나서 그것을 그린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내가 들은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상상한다. 우상 숭배자란 그림을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다. “실재보다는 이것을 바라보라.” 나는 이렇게 말한다. “실재를 보면서 이것을 그렸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p.94 만화가의 질문은 아름다운가 아닌가가 아니라, 정확한가 아닌가에 관한 것이 된다. 만화가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정확한 그림. ‘그건 19세기식 문제 의식’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주먹으로 당신의 아가리를 칠 것이다. ---p.95 노동이 없는 사회를 생각할 수 있는가? - 스파클 헤이터 아니, 그런 사회는 생각할 수 없다. 노동이 없는 사회가 있다면 그런 사회를 유지하고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노동이 필요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고, 또한 인간의 본성이 너무 게으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사회가 생겨난다고 하더라도 기업을 하는 말썽꾸러기들이 권태든 탐욕이든 자기 자신을 표현할 필요든 간에 어떤 이유를 개발하여 노동하는 방법을 발견할 것이다. ---p.201 역사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가? - 프랑수아 뮤라테 준비하세요. 철학 논쟁을 시작합니다. 시간은 10분. 시작하세요. 이건 정말 형편없는 질문이에요. 당연히 아니지요. 우리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어요. 자, 이제 끝났습니다. 점수를 나에게 주시고, 다른 질문을 하세요. ---p.204 역사라는 학문은 결코 그 신뢰성을 증명하지 못하면서도 예측에 의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건 정말 불가능한 임무입니다. 그리고 만약 앞으로 일어날 일을 확실하게 아는 반면 아무런 손을 쓸 수가 없다면 그것은 무서운 일일 것입니다. 역사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렇게 나쁜 건 아니지요. ---p.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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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만화가, 과학자, 변호사들이 철학적 물음에 답하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1808년 나폴레옹 시대에 도입된 프랑스의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 중에서도 철학 과목에서 출제된 문제에 대한 답안의 형태로 작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 답안들은 바칼로레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형식과 조건상에서의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가령 이 책에 실린 스무 명 남짓한 작가, 만화가, 과학자, 변호사, 철학자들의 답은 한결같이 정통적인 논술 형식을 거부한다. 단편 소설이나 시, 소희극, 대화, 만화 등 도저히 시험의 답이라고는 볼 수 없는 기발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또 글의 분량이나 문체에서도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 단 몇 줄로 끝나는 답안이 있는가 하면, 십여 쪽에 이르는 답안도 있다. 문체에서도 그렇다. 유머러스한가 하면 진지하고, 참여적인가 하면 서정적이고, 직설적인가 하면 반어적이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절대로 논술 답안의 모범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독자들은 다양한 형식과 문체를 통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철학적 질문에 답을 하는 필자들에게서 철학적 영감의 원천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답안들이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상태에서 쓰여진 만큼 돛에 부는 바람처럼 독자들의 등을 떠밀어 사유의 길 위에 세우면서도, 억압하지 않고 자유를 선사하는 미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을 하려는 욕망이 없다면 철학도 없다! 철학은 철학사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사용한 개념 및 이론을 외우는 학문이 아니다. 철학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이미 주어진 답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을 비판하고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자기만의 답을 찾아 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여정에는 불가피하게 여러 가지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과 철학적인 글쓰기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두는 도구일 뿐이다. 더군다나 철학을 학문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선, 삶에서 철학이 왜 필요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는 데 지표가 되는 것으로 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철학을 하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 가는 여러 가지 방법을 보여 주려는 시도이다. 어떤 의미에서 위대한 철학자들은 끊임없이 순진함, 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직접성, ‘사물 자체’로의 회귀, 다시 말해 새로운 시선을 추구해 왔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 즉 그 유명한 ‘철학적 놀람(etonnement philosophique)’이란 어린이나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할지도 모르는 것을 다시 찾아내려는 우회인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표현 자체가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순진함의 또 다른 형태는 바보짓일 수 있으니까.) 이렇듯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본질적인 의미에서 철학자들이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배울 수 있다. 늙고 성마른 철학의 근엄한 가면을 벗겨라! 이 책의 필자들은 여기에 실린 글들이 철학에 대한 진정한 욕구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늙어 버린 철학이라는 부인의 관습적인 근엄한 가면 때문에 철학에 지레 낙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그 때문에 필자들은 늙고 성마른 부인네 같은 철학을 비틀어 내쫓는다. 추상적인 개념으로 무장한 철학적 논의 앞에서 철학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철학에 흥미를 잃는 철학 초심자들이 철학의 길에 즐겁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철학자를 훈련시키기에 충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매일 매일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일이니까. 이들의 목적은 단순하다. 이 책의 독자들 중 단 한 명에게라도 철학을 하도록 용기를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즐거움이라는 개념이 이 책의 핵심이 된 것도 그래서이다. 이 책의 다양한 텍스트들은 유쾌하다. 철학적인 질문에 접근하는 방법은 삐딱하다는 말 그 자체이다.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다루기도 하고, 위장된 동작을 취하기도 하고, 문제에 뛰어들기도 하고, 은밀하게 접근하기도 하고, 습격하기도 하고, 전면전을 벌이기도 하고, 뻔뻔스럽게 다가가는 식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저자들은 재미와 지적인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쓰고 또 그렸기는 하지만….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유쾌한 철학 교실 여기에 제시된 철학 논제들은 바칼로레아에서 실제 출제된 것들이다. 그것도 1997년 이전의 논제는 찾아볼 수 없고 모두 최근의 주제들이다. 또한 저자들은 몇몇만이 직업적인 철학자이고, 대부분은 과학자거나 예술가, 그리고 작가들이다. 이 중 철학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재미있게 읽도록 하기 위해 다른 텍스트들과 마찬가지로 허구의 형태로 글을 쓰거나, 더욱 전통적인 철학적 담론의 형태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 놀이에 가담했다. 철학자 이외의 저자들은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세계와 친밀한 주제, 또는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연구 주제를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해서 탄생된 이 책의 텍스트나 그림들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 줄 뿐이다. 그것들은 모범이 되고자 하는 오만함이 없는 일련의 ‘경험들’이며, 어떤 ‘이론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이 거의 없는 현재 진행 중인 살아 있는 다양한 사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일찍이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차이와 반복』에서 “이제 아주 오래전부터 해 오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철학 책을 쓸 수 없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 이제 원래 의미의 철학이 부활되어야 한다. 지식 체계로서의 철학이 아닌 근본적 사유로서의 철학이. 삶과 동떨어져 혼자만의 유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구석구석에서 철학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이 유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철학의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을 아주 삐딱한 태도와 파격적인 스타일로 제시하기 때문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