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파리는 여자였다
베스트
인문 top100 3주
가격
14,000
10 12,600
YES포인트?
7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등장인물 소개
들어가는 말: 파리는 여자였다

1장 책의 나라: 아드리엔느 모니에와 실비아 비치
2장 작가와 뮤즈: 거트루드 스타인과 앨리스 B. 토클라스
3장 아마존과 세이렌
- 파리의 유혹: 나탈리 바니
- 로메인 브룩스: 영혼의 도둑
- 시간을 벗어난 살롱
- 콜레트의 문학과 사랑
- 한 아마존의 명상록: 전쟁과 페미니즘
- 세기의 충돌: 나탈리 바니와 거트루드 스타인
- 숙녀들의 모임
- 고독의 우물: 래드클리프 홀
- 그리지 못한 초상화
4장 어두운 밤의 도시: 주나 반스, 셀마 우드, 그리고 미나 로이
5장 파리에서 온 편지
- 재닛에서 주네로: 재닛 플래너
- 흑백 사진 속 파리: 베러니스 애벗
- ≪리틀 리뷰≫: 마거릿 앤더슨과 제인 히프
- 가까이 그리고 멀리: 브라이어와 H. D.
- 친근감과 적대감

나오는 말: 잃어버린 레프트뱅크
감사의 말

저자 소개 2

안드레아 와이스

관심작가 알림신청
 

Andrea Weiss

안드레아 와이스는 역사학 박사이자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다. 그는 미국의 뉴욕대학교와 영국의 국립영화텔레비전학교에서 국제 영화학과 사진학을 가르쳤으며 현재 뉴욕시티대학교 시티칼리지 미디어 & 커뮤니케이션학과의 영화/비디오 프로그램 부문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가 직접 극본을 쓰고, 감독한, 영화『삶으로의 탈출(Escape to Life)』은 소설과 다큐멘터리의 접목으로 주목을 받으며, 2001년 로트르담/베를린 영화제에서 초연되었고 그 후 유럽 전역의 극장과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영화 상에서의 그 외 주요 작품으로는『나는 폭발 지점에 산다(I Live at
안드레아 와이스는 역사학 박사이자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다. 그는 미국의 뉴욕대학교와 영국의 국립영화텔레비전학교에서 국제 영화학과 사진학을 가르쳤으며 현재 뉴욕시티대학교 시티칼리지 미디어 & 커뮤니케이션학과의 영화/비디오 프로그램 부문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가 직접 극본을 쓰고, 감독한, 영화『삶으로의 탈출(Escape to Life)』은 소설과 다큐멘터리의 접목으로 주목을 받으며, 2001년 로트르담/베를린 영화제에서 초연되었고 그 후 유럽 전역의 극장과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영화 상에서의 그 외 주요 작품으로는『나는 폭발 지점에 산다(I Live at Ground Zero)』,『돌담 앞에서(Before Stonewall)』(이 작품으로 두 개의 에미상을 받았다.),『티니와 루비, 못된 성녀들(Tiny & Ruby: Hell Divin' Women)』가 있으며, 최근에는『유엔 열기(U. N. Fever)』를 내놓았다.

저서로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한『파리는 여자였다(Paris Was A Woman)』 이외에도,『뱀파이어와 바이올렛(Vampires and Violets: Lesbians in Film)』,『마술 산의 그림자 안에서(In The Shadow of The Magic Mountain)』등이 있다. 이 책들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서, 프랑스,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 일본, 크로아티아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
197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199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태리어과를 졸업하고 파키스탄 대사관에서 영사 보조관으로 근무했다. 현재 전문 변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붉은 중국의 공포 파룬궁》《아이아코카》《우리에게 필요한 12시간》《돌하우스 머더스》《내 치즈는 내가 옮긴다》《Nordstorm Way》등이 있다.

황정연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4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03쪽 | 620g | 148*210*30mm
ISBN13
9788996089018

책 속으로

1920년대 초 ≪토론토 스타≫의 젊은 통신원이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거트루드를 숭배했다. 그들이 처음 친구로 지내던 시절에 헤밍웨이가 거트루드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스승과 제자 관계가 드러난다. ‘1923년 11월 9일, 기자 일을 때려치우려고 합니다. 지난겨울 당신은 나를 망쳐버렸지요. 그 이후로 전 형편없었어요.’그는 1924년 8월 거트루드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중편 소설 두 개를 마쳤는데, 하나는 별로지만 다른 건 꽤 마음에 듭니다. …… 그런데 글쓰기가 너무 힘이 드네요. 당신을 만나기 전엔 쉬웠는데.”---p.79

파리 생활을 다루는 기자로서 재닛이 ≪뉴요커≫의 격주로 연재한 “파리에서 온 편지”에 때때로 등장한 내밀한 이야기들은 재닛이 나탈리의 친구들과 넓은 프랑스 사교계 인맥에 의존해 쓴 것들이었다. 나탈리는 재닛에게 마타 하리가 총살당한 날 어떤 옷을 입었는지 같은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마타 하리가 알몸에 밍크코트만 걸치고 있었다는 전설과 달리, 실제로 마타 하리는“그날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아마존 스타일의 깔끔한 맞춤 양복을 입고, 새 흰 장갑을 낀 채 죽었다.”---p.154

미나 로이는 1917년 시인이자 권투선수, 병역 기피자였던 아르튀르 크라방을 만났다. 그는 파리의 초현실주의자와 다다이스트들의 영웅이기도 했다. 자유분방했던 아르튀르와의 사랑은 그녀에게 또 다른 아이와 엄청난 아픔을 남기고 끝났다. 결혼 직후 아르튀르는 사막에서 실종됐고, 그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미나는 “당신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이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르튀르 크라방과 함께한 모든 순간.” “가장 불행했던 순간은?”이라는 다음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남은 시간.” 그녀에게 그 시간은 40년이었다. ---p.186

1922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출판됐을 때 그것은 모더니즘의 걸작으로 여겨졌다. ≪리틀 리뷰≫에 연재된 일부분을 읽은 주나 반스는 작가로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절망했다. “이젠 한 줄도 쓰지 못할 거야. 이 작품 이후에 누가 그런 용기를 가질까?”훗날 평론가들은 주나가 조이스의 문체를, 그것도 형편없이 모방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녀의 글 역시 조이스의 글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나이트우드』보다 3년 뒤에 출판된 『피네간의 경야』가 그렇다. 조이스 자신은 주나의 글이 자기 글을 모방했다고 느끼지 않았다.

---p.192

관련 자료

이 책의 등장인물

● 아일린 그레이
75년 동안 파리 레프트뱅크에 거주한 아일랜드인 디자이너 겸 건축가로 자신만의 격조 높은 모더니즘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 힐다 둘리틀(H. D.)
주로 런던에 거주하면서 파리를 오간 미국 시인이자 소설가. 에즈라 파운드의 영감의 원천이었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분석대상이었으며 '이미지즘'을 지지했다.

● 마리 로랑생
나탈리 바니와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을 출입한 프랑스 화가.

● 미나 로이
영국 태생 모더니즘 시인이자 디자이너로 많은 문학잡지에 작품을 발표했다.

● 조젯 르블랑
마거릿 앤더슨과 20년 동안 함께 산 프랑스 오페라 가수.

● 노엘 머피
미국인 가수, 파리 근교 오르주발에 있는 그녀의 집은 많은 여성 외국인거주자들의 주말 모임 장소였다.

● 아드리엔느 모니에
프랑스 작가이자 편집인으로 프랑스 아방가르드 문학을 선도한 서점 '라 메종 데자미 데 리브르'를 운영했다.

● 나탈리 클리포드 바니
미국 작가. 엄청난 부자이자 악명 높은 레즈비언. 살롱을 주최했다. 고대 그리스 시인 사포를 동경해 평생 동안 아름다움과 관능을 사랑하며, 질투나 도덕적 판단에 얽매이지 않고 살았다.

● 주나 반스
소설가, 언론인, 풍자작가이자 미술가.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언더그라운드의 고전"이라 불리는 ≪나이트우드(Nightwood)≫가 있다.

● 제르맨 보몽
프랑스 언론인이자 소설가, 유명한 테오프라스트 르노도 문학상을 받았다. 콜레트의 절친한 친구로 그녀의 후원을 받았다.

● 브라이어(위니프레드 엘러만)
영국 최고의 부자였던 존 엘러만의 상속녀로 출판인, 작가, 예술 후원자이자 반파시스트 레지스탕스. 시인 H. D.의 일생의 벗이었다.

● 로메인 브룩스
어두운 색채의 강렬한 초상화로 유명한 미국인 화가. 나탈리 바니의 평생지기였다.

● 르네 비비앙
천부적 재능을 지닌 시인으로 콜레트의 이웃이자 나탈리 바니의 연인이었다. 31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 실비아 비치
장로교 목사의 딸로 서점 '셰익스피어와 친구들'을 설립했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es)≫를 처음 펴냈다.

● 솔리타 솔라노
편집인, 소설가, 시인이자 기자. 작가로서 자신의 경력을 뒤로하고 50년 동안 재닛 플래너를 정서적, 실질적으로 뒷바라지했다.

● 거트루드 스타인
파리의 여성 모더니즘 작가들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 당대 무명의 피카소, 마티스의 미술품 수집가로도 이름을 남겼다. 자신의 집에서 매주 살롱을 열었다.

● 베러니스 애벗
미국 사진작가, 만 레이의 스튜디오에서 암실 조수로 일하던 중 점심시간에 친구들의 인물사진을 찍으면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 마거릿 앤더슨
양차 세계 대전 사이 가장 중요한 아방가르드 문학잡지 가운데 하나인 ≪리틀 리뷰(The Little Review)≫ 창간인이자 편집인.

● 돌리 와일드
영국인 작가로 삼촌 오스카 와일드를 많이 닮았고 또 존경했다. 그녀는 약물과 술을 남용해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 셀마 우드
실버포인트 화가이자 조각가. 주나 반스와 고통스런 연인 관계를 지속했다.

● 콜레트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 받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수백 편의 단편 소설과 장편소설, 수필을 썼다.

● 낸시 큐나드
영국의 큐나드 기선회사 가문의 딸로 부모의 상류계급 가치관을 무시하고 시인이 됐고, 급진주의에 눈떴다. 아방가르드 출판사인 '아워스 프레스'를 설립했다.

● 릴리 드 클레르몽-토네르
나탈리 바니와 거트루드 스타인의 절친한 벗이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좌파로서, 말년에는 우파로서 극단적인 정치적 견해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가였다.

● 앨리스 B. 토클라스
거트루드 스타인의 뮤즈로 평생의 동반자이자 비서, 발행인이었다.

● 지젤 프로인트
독일 태생 유태인 사진작가, 히틀러 집권 뒤 프랑스로 망명했다. 프랑스의 많은 유명 작가들과 유망 작가들의 인물사진을 찍었다.

● 재닛 플래너
≪뉴요커≫에 40년 동안 파리 생활에 대해 글을 쓴 미국인 기자.

● 래드클리프 홀
영국 작가로 레즈비언을 옹호하는 내용 때문에 1948년까지 영국에서 금서였던 논쟁적 소설 ≪고독의 우물(The Well of Loneliness)≫(1928)을 썼다.

● 제인 히프
마거릿 앤더슨과 ≪리틀 리뷰≫를 공동 편집했고, 거트루드 스타인의 비공식 저작권 대리인이었다.

출판사 리뷰

출간의 뜻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한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로 꼽히는 작가들은 대개 남성들이다. T. S.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기욤 아폴리네르, 폴 발레리,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장 콕토, 루이 아라공 등. 여성들은 그들의 정부(情婦) 혹은 뮤즈로 이야기되곤 한다. 그러나 이 매혹적인 시대를 빛낸 사람들 전부가 남성이었을까?

요즈음 1920-1930년대의 시대사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지금껏 우리가 갖고 있던 파리에 대한 신화나 고정관념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이 책은 당시의 '여성 모더니스트'들의 인생과 작품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역사 속에서 파리와 여성의 역할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생각이 드러난다.

레프트뱅크의 여자들
레프트뱅크(Left Bank)는 파리 센 강의 좌안을 일컫는다. 센 강은 서쪽으로 흐르면서 도시를 반으로 나누는데, 북쪽으로는 라이트뱅크, 남쪽으로는 레프트뱅크라 한다. 오늘날까지도 파리에서 가장 로맨틱한 지역으로 꼽힌다. 이곳에는 여러 시대의 파리가 공존한다. 세계가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곳에는 자유를 꿈꾸는 수많은 예술가와 문인, 철학가와 학생들이 둥지를 틀었다.

1920~1930년대 이곳에는 후에'레프트뱅크의 여자들'로 알려지게 되는, 아주 특별하고 독특한 여성 사회가 있었다. 그들은 시와 소설을 썼고,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렸으며, 책을 출판하거나 서점을 열었고, 기사를 타전했다. 작가인 콜레트, 주나 반스, 거트루드 스타인과 시인 H.D., 나탈리 클리포드 바니, 화가인 로메인 브룩스와 마리 로랑생, 출판인 또는 편집인인 브라이어와 앨리스 B. 토클라스, 마거릿 앤더슨과 제인 히프, 사진가인 베러니스 애벗과 지젤 프로인트, 서적상 실비아 비치와 아드리엔느 모니에, 그리고 저널리스트 재닛 플래너가 주축이었다.

파리는 왜 여자였을까?
창조적 에너지와 갖가지 재능을 가진 여성들, 예술과 문학을 향한 열정을 품은 여성들, 남편과 아이에게 구속 받지 않는 여성들이 특히 파리 레프트뱅크에 끌렸다. 자유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국적과 계급, 경제력과 재능, 섹슈얼리티,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었지만, '자유'를 위한 자의식적 공동체 안에서 우정을 나누고 작품에 경의를 표하면서 오랫동안 친구와 연인, 동료와 후원자로 남아있었다.

'여자들의 특별한 네트워크', 결국 파리는 정부도 아니었고 뮤즈도 아닌, 단지 다른 종류의 여자였을 뿐이다.
주요 내용
1920년대 파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자유와 방종, 예를 들어 카페에서 나른한 오후를 보내거나 몽파르나스 술집에서 광란의 밤을 지새우는 남과 여의 모습이 아닐까? 새무얼 퍼트넘(1892-1950, 미국의 번역가로서 로망스어의 권위자였다. 그가 12년에 걸쳐 번역한 후 1949년에 출판한 <돈키호테>는 최초의 현대 영어판본으로 꼽힌다.)은 '파리는 우리의 정부였다'(Paris Was Our Mistress)라고 썼다. 당시를 기억하는 남성들이 집필한 다수의 역사책과 회고록에서, 파리는 마초에 술꾼인 예술가들이 벌이는 음주와 도박, 섹스의 과장된 연대기 속의 배경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술과 섹스에 대한 동시대 여성들의 경험은 매우 달랐다. 실비아 비치는 전혀 술을 마시지 않았다. 나탈리 바니는 이따금 훌륭한 프랑스 와인을 몇 모금 마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취한 채 태어났기 때문에 물만 마신다"라고 말했다. 거트루드 스타인과 앨리스 B. 토클라스는 술꾼들에게 일말의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작가이자 출판인인 브라이어는 와인보다 물을 더 좋아했고, 파리에 도착한 이후 "술과 순수시는 섞이지 않기" 때문에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기로 결심했다. 재닛 플래너는 카페 되 마고에서 아페리티프로 마시는 과일 주스 이외에는 분명 거절했을 것이다.

성적 자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오직 이성애'라는 원칙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뜻했다. 자신들이 선택한 사랑을 할 자유,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지 거리낌 없이 사랑할 자유였다. 일부 남성이나 남성 일반을 거부한 여성에게 불쾌한 문학적 결과는 필연적이었으리라. 에즈라 파운드는 주나 반스의 문학적 명성이 과대 평가됐고 "기를 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남성들은 낸시 큐나드에게 '색녀'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조롱거리로 삼았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나탈리 바니의 살롱에서 만난 레즈비언이란 존재에 충격을 받고 아드리엔느 모니에와 브라이어에 대해 부당한 표현으로 혐오감을 드러낸 글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이 여성들이 작가나 시인, 화가, 출판인, 사진가,'동인지'편집인, 서적상으로 쌓아 올린 업적을 살펴보면, 지금껏 끊임없이 조장되어 온 신화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역사 속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잊힌 예술가였다는 것도 부당해 보인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많은 여성 예술가, 작가, 학자, 출판인들이 레프트뱅크의 여성들에게 매력을 느끼고 영감을 얻고 있다. 곳곳에서 주나 반스의 저작물에 대한 학회가 열리고, 거트루드 스타인의 원고가 새로운 편집과 복원 과정을 거쳐 출판되기 시작했다.

◇ 아드리엔느 모니에와 실비아 비치
아드리엔느 모니에는 1915년 파리 6구 오데옹 가에 서점 '라 메종 데자미 데 리브르'를 열었다. 머지않아 이곳은 프랑스 아방가르드 문학의 중심이자 다양한 모더니즘 운동의 탄생지, 그리고 많은 유명 작가들과 곧이어 유명해질 작가들의 자생적 문학 살롱이 되었다. 이들 중에 앙드레 브르통, 폴 발레리, 콜레트, 기욤 아폴리네르, 쥘 로맹, 장 콕토, 레옹 폴 파르그, 앙드레 지드가 있었다. 아드리엔느는 라틴어와 프랑스어, 철학, 수학, 역사학을 공부했고, 서점 운영 이외에도 시와 산문, 논평을 발표하면 스스로 아방가르드 문학의 선구자로 널리 인정을 받았다.

실비아 비치는 1919년 아드리엔느의 서점 가까이에 영어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열었다. 그리고 1922년 당시 어느 기성 출판사도 손대려 하지 않았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출판했다. 그 후 약 20년 동안 실비아는 그의 작품들의 산파 노릇을 했다. 그러나 제임스 조이스는 실비아 몰래 미국의 랜덤하우스와 판권 양도 계약을 체결했다. 이것은 실비아를 감정적 재정적으로 엄청나게 고갈시켰고, 투옥 위협에 시달리게 하다가, 결국 파산으로까지 이어졌다.

◇ 거트루드 스타인
거트루드는 피카소의 큐비즘 초상화에 깊이 공감했고, 시도 소설도 희곡도 아닌 독특한 문학 형식의 '언어초상'을 창안했다. 거트루드는 단어 사이의 새로운 관계, 심지어 같은 단어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창조했다. 그녀는 이것을 반복이 아니라 강조라고 불렀는데, 되풀이하면서 의미가 변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거트루드의 글은 갈수록 추상적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트루드는 뼛속까지 미국인이었지만 1934년 출판한 『길 잃은 세대를 위하여』(The Autobiography of Alice B. Toklas)의 갑작스러운 성공 때문에 30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58세에야 비로소 그토록 오랫동안 염원했던 정식 출판 계약을 맺었고 작가로서 인정을 받았다. 평생토록 자기 정체성 문제에 집착했던 거트루드가 다른 사람(앨리스 B. 토클라스)의 목소리를 빌려 쓴 글로 유명해진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앨리스 B. 토클라스와 거트루드 스타인과 1907년 9월에 파리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부터 거트루드가 죽음을 맞기까지 40여 년을 함께 살았다. 앨리스는 거트루드와 만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미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독자, 뮤즈, 편집인, 사건 사고에 대한 기억의 촉매가 되었고, 그리고 심지어 사실상의 '공저자'로서 일생 동안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 나탈리 클리포드 바니
나탈리 클리포드 바니는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수많은 시와 13권의 책을 썼고, 다른 작가들이 펴낸 6편 이상의 소설과 다양한 회고록을 통해 불멸의 존재가 됐으며, 20세기의 선구적 작가, 미술가, 지식인 들을 위한 국제적 살롱을 주최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어떤 것도 그녀가 전설로 남은 결정적 이유는 아니었다.

그녀는 "의문의 여지없는 당대 최고의 레즈비언"이었다. 나탈리는 레즈비언의 기쁨을 칭송하고 레즈비언의 의식을 고무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나탈리는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들은 거의 모두 과거, 현재, 미래의 연인들이었다. 그녀를 사랑의 예술가라고 한다면, 엄청난 다작가였다.
나탈리는 출판사에서 너무 충격적이라서 출판 불가라고 판정한 ≪아는 여자에게 보내는 편지(Lettres ?une connue)≫ 등을 썼다. 그녀가 명상록이라고 부른 에피그램에는 페미니즘적 논리가 담겨있었다.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적 재치를 통해 이성애적 편견을 뒤집었듯이 그녀는 여성적 재치를 통해 남성적 편견을 뒤집는다.

리뷰/한줄평5

리뷰

9.4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