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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18
슬픔이 있기에 행복이 있고 불안으로 인해 위안이 있다. 불완전함이야말로 실은 가장 완벽한 균형이리라. 2부 … 124 삶은 피어오른다. 허기지고 목이 마를 적에 꽃이 아니라 뿌리를 갈구할 적에 포근한 햇살이 아니라 오직 눅눅한 어둠의 품에서 생명은 그 뿌리를 내리고 이 땅에 오롯이 피어날 자격을 얻는다. 3부 … 196 결과가 끝내 이별이라 하여도 사랑했던 그날의 우리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글쓴이의 말 259 그린이의 말 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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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아마도 마지막인 것이 거의 확실한 첫눈과 재회했다. 하얗게 야윈 손에 조금은 낯선 온도로 떨어지는 눈송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마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겨울이었지만 어딘가 포근했다. 세상이 온통 조용했고 그것은 분명, 내가 기다리던 고요함이었다. 삶의 마지막이 이토록 수수한 독백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 p.53
창밖으로 그녀가 보였다. 비바람 속에서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다가서서 그녀의 머리 위로 손바닥을 펼쳐주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저 함께 걸어주는 이가 되고 싶을 뿐이었다. 주변 상황이야 어떠하든, 내가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든 없든 힘들면 힘든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그녀와 함께 빗속을 걸어보고 싶었다. --- p.70 “이렇게 손 내밀어봐.” 나는 그녀의 말대로 오른손을 탁자 중앙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여진이가 내 손등을 토닥토닥 그녀의 손바닥으로 다독여줬다. “자, 이제 따라 해봐.” 그다음엔 나를 다독이던 그 손을 가슴으로 가져가서 스스로 자기 마음을 쓰다듬어주었다. “남이 해주는 위로만큼이나 스스로 자신을 안아주는 것도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 대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칭찬하고 안아주는 일에 인색하지만, 사실은 그것만큼 중요하고 따뜻한 행동도 없을 거야.” --- p.141 실은 누구도 나무에게 꽃을 피워야 한다고, 비를 머금어야 한다고, 싹을 틔워야 한다고 가르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세상 모든 식물은 자연스레 볕으로 고개를 돌리고 뿌리로 비를 안음으로써, 꽃으로 살아 있음을 말하지 않던가. 누가 알려줘서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조금씩 깨우쳐가는 것일 뿐. 사려 깊은 햇살도, 보드라운 빗소리도, 국 살고자 노력하는 이에게 스며들기 마련이다. --- p.216쪽 분명히 사랑을 하던 순간, 우리는 아름다웠다. 진실로 서로를 대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는 상대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세상이었다. 결과가 끝내 이별이라 하여도 사랑했던 그날의 우리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p.217 숨을 참고 물속에 깊이 잠겨도 심장이 멈추는 것은 아닌 것처럼 당신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 안에 있어요. --- p.219 오직, 사랑만이 소유하지 않고 지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모든 것들에게 그런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대답 없는 화분에서 꽃이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선을 건네주면 좋겠다. 꽃에게 물을 주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면 아마도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것이다. 분명하게 변한 것은 없다고 해도 은은한 꽃향기라도 남았을 것이다. --- p.233 세상에 태어나 첫 번째로 하는 일은 눈물을 흘리는 일이지요. 그것은 어떤 의미의 눈물일까요? 혹시 그것은 탄식이 아닐까요? 우리는 그렇게 지구라는 이 별에서 매 순간 나와 이별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그리하여 못내 서글픈 일이지요. 간간이 느껴지는 이름 모를 공허함과 마땅히 있어야 할 자기 존중의 부재, 그것은 슬프지만 요즘은 너무도 흔한 비극입니다. 동시에 그 비극이야말로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가장 큰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혜원과 연우, 여진과 연수는 각자의 한계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들은 나이면서 동시에 당신입니다. 누군가의 무책임으로 인해 받은 마음의 상처, 꿈과 현실의 너무도 큰 괴리감, 그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가슴 아픈 한계였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일은 무엇일까요? 글을 써 내려가면서 감히, 그것이 ‘더는 희망이 없는 삶’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당신은 누구입니까? 사전을 아무리 찾아봐도 인터넷 검색창을 아무리 뒤져봐도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그 어떤 해답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철저하게 나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셈이지요.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를 다 알아가기에 삶은 너무도 짧은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더는 미루지 말고 스스로의 의지로 찾아 나서기를 바랍니다. 결국 모든 해답과 희망은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글쓴이의 말」중에서 하루에 한 번씩 스치듯 지나가는 감정들을 기억하세요. 이른 새벽을 깨우는 찬 공기, 버스를 눈앞에서 놓쳐버린 뒤 짧게 뱉은 한숨, 창밖을 보며 들었던 음악 소리. 한 번도 웃지 못한 하루를 보냈더라도, 기억나는 좋은 일이 없더라도 당신의 하루에는 수많은 감정과 느낌이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당신의 하루를 완성합니다. 하루가 모여 1년이 되고, 평생이 되고,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겠지요. (…)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른 선을 그으며 다른 형체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혜원, 연우, 여진, 연수. 그들에게 스스로를 이입해보았고, 누가 나와 가까울까 고민했습니다. 그들은 옅게 혹은 짙게, 얇게 혹은 굵게 선을 긋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중 무엇이 좋은 선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때로 옅게, 짙게, 얇게, 굵게 살아갑니다. 우리에겐 스스로가 그려가는 각자의 선이 있습니다. 지나간 아픔과 행복, 지금의 사소한 감정들을 소중히 하세요. 모두 당신의 선이 될 점들입니다. 지금 그리는 선을 믿고, 서로의 선을 아껴주세요. 어떤 멋진 그림이 완성될지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그린이의 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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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선線으로 그린
삶과 죽음, 사랑에 관한 우리들의 이야기 어느 날, 절실하게 끝을 희망하는 한 여자의 품 안에 낯선 일기장이 날아든다. 누가 그녀에게 그 일기장을 전달한 것일까? 그것은 간절하게 삶을 희망하는 한 남자의 일기장이었다. 'D-100'부터 시작된 그의 일기는 ‘D'가 ’Death'를 의미하기라도 하는 듯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죽음에 다가서고 있는 한 남자의 애틋한 시선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녀는 호기심과 외로움에 이끌려 그가 세상을 써 내려간 서체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여자는 남자의 삶을 향한, 사랑을 향한 진심에 노을처럼 물들기 시작하는데…. 과연 일기장의 주인은 누구일까? 그는 아직 살아 있을까? “D-100일부터 시작한 일기는 조금씩 날짜가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일기 속의 남자는 괴로워했다. 그는 무언가를 그리워했다. 한 사람을 그리워했다기보다 그 시절 그 순간 그 자체를 그리워했다. 누군가에게 하지 못한 말들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간절했다.” _44쪽 아직도, 여전히 세상은 우리를 위한 계절이다 만약 사람들의 한숨이 뿌연 먼지처럼 보이게 된다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을 살게 되지 않을까? 마음으로 바라보자면, 우리는 이미 눈앞이 희미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때로 그림 같은 풍경을 스쳐 지나가지만, 일상을 살아가며 진심을 담은 ‘시선’으로 서로가 눈 마주친 시간은 얼마나 될까? 결국 버거웠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가 흘러가고, 희뿌연 공허함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어간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 사이엔 무언가 ‘벽’이 있다.” _37쪽 “단 하루라도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보는 것, 그저 일 분 일 초라도 더 내가 사랑한 것들과 함께 존재하고 싶다.” _40쪽 이 책은 『계절에서 기다릴게』(2015)와 『니 생각』(2015)의 저자 김민준의 신간이다. 그간 발표했던 시, 에세이와 달리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소설 속에는 20-30대로 보이는 네 남녀가 등장한다. 이들은 녹록하지 않은 현실의 위기와 해묵은 상처들, 죽음의 그림자, 이별의 아픔을 제각기 끌어안고 씨름한다. 실제 20-30대로서 살아가는, 그들과 동일한 고민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저자의 상상력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상황 속으로 독자를 이끈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한참을 고뇌하던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아직도, 여전히, 세상은 우리를 위한 계절”이라고.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를 다 알아가기에 삶은 너무도 짧은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더는 미루지 말고 스스로의 의지로 찾아 나서기를 바랍니다. 결국 모든 해답과 희망은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_작가 김민준 시時를 쓰러 왔다가 시時가 되어 돌아가는 삶, 삶은 끝이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 김민준 작가 특유의 시적 표현들이 소설의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시인의 감수성을 고스란히 담은 문장들은 직접적인 애절함이 아닌 은유적인 애절함으로 독자의 마음을 깊이 파고든다. 더불어 SNS를 통해 주목받고 있는 그림 작가 성립의 ‘선’ 일러스트레이션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흰 여백마저 서정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그의 그림은 독특한 매력으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인생은 결국 한 편의 ‘시’이고, 삶이란 점과 점이 모여 만들어낸 ‘선’이 아닐까? ‘시’처럼 써 내려간 이야기들과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들로 네 남녀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 『시선』은 시와 소설, 그림의 경계를 허물며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은 곧 형체를 이룹니다. 선을 그으며, 저는 그것이 우리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찍고 있는 점들은 어떤 선이 될까요? 어떤 형체를 이룰까요?” _작가 성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