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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니별
용초도 동백꽃 임진강 남기고 싶은 이야기 카타콤 화가의 집 작품해설 신성한 생명, 거룩한 사랑(차미령) 작가의 말 |
金源一, 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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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항심의 43년
등단 43년째를 맞는 소설가 김원일의 일곱번째 소설집으로,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2004) 이후 4년 만의 신작 소설집이다. 그런데 그사이 연작소설 ??푸른 혼??(2005)과 장편소설 ??전갈??(2007)이 새로이 작품 목록에 추가된 사실을 상기해보면 작가의 쉼없는 문학적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 사정이 이럴진대, 이번 소설집 ‘작가의 말’을 접한 독자라면 자못 숙연한 감정에 휩싸이지는 않을까. “새 책을 내며 소회가 있다면, 첩첩한 산골 옹달샘에서 시작된 물이 강으로 스며들어 있듯 없듯 희석된 끝에 저물녘에야 바다에 당도한, 적적한 마음이다. 소설이 무엇인가를 붙잡고 사십여 년을 심사숙고해온 결과, 문득 앞을 보니 어느덧 종착점 언저리에서 서성이고 있다.”(‘작가의 말’에서) 참으로 한결같은 보폭으로 걸어온 사십여 년이었다. 그간 작가적 근면과 성실에서 김원일 문학이 보여준 항심의 행보는 묵묵한 구도(求道)의 그것이었다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길에 ‘종착점’이 어찌 있으랴. 다시 말없이 새로운 문학적 도정을 준비하고 있을 대가의 겸양과 조용한 결의를 읽어 마땅하리라. 그렇긴 해도 문학적 조로와 타협이 드물지 않은 세상에서 소설가 김원일이 새 책을 내며 들려주는 작가적 소회를 어떤 숙연함 없이 마주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역사의 수난을 인간의 위엄으로 되돌리는 환한 순간들 신작 소설집 ??오마니별??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모두 여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전쟁과 분단이 빚어낸 민족의 고통과 그늘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여전히 작가의 중요한 문학적 관심사이다. 그러나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역사적 수난의 소설적 증언에 충실하면서도 고통의 세월 속에서 인간적 선의가 이루어내는 환한 순간을 기어코 찾아 보여준다. 레토릭을 억제한 간결하고 수수한 문장은 이야기를 들려주듯 소설 서사의 리듬을 대범하게 이끄는데, 소설의 감동이 모여드는 장면에서 작가는 언어를 아끼고, 남은 이야기가 좀더 있을법한 자리에서 소설은 무심하게 멈춘다. 그렇게, 축적된 고통의 기억 속에서 인간의 위엄을 찾아내는 작가의 손길은 번다하지 않고 평명하다. 반세기를 바라보는 작가적 성심과 성의의 곡진한 행보가 도달한 문학적 혜안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야기’의 풀림을 견제하는 소설적 아이러니의 적절한 작동도 있다. 그 아이러니는 큰 이야기를 작게 만들고, 작은 이야기는 크게 만들면서 인간적 진실의 신뢰할 만한 양감을 구축해낸다. 가령 ?용초도 동백꽃?의 경우를 보자.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용초도 포로수용소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며 전쟁의 한복판을 지나온 주인공 ‘김노인’의 수난사는 기억을 잃고 창졸간에 전쟁고아가 된 ?오마니별?의 조노인 못지않게 고비고비의 곡절이 깊고 아프다. 맨정신으로 헤쳐온 그 세월은 차라리 더 신산했을 수도 있겠다. 용초도 민박집 ‘민이네’를 앞에 두고 하룻밤 야화(夜話)로 펼쳐지는 곡절 많은 인생담은 반공과 친공으로 갈린 포로수용소의 처절한 실상이나 미군의 무책임한 방기를 증언하고 수용소 담벼락을 사이에 둔 이산의 슬픔과 거기에 얽힌 김노인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크고 넘친다. 그러나 ?용초도 동백꽃?의 소설적 근거가 마련되는 곳은 이야기의 숭고한 크기를 냉연한 시간의 아이러니로 뒤집는 사소한 지점들인지도 모른다. 두 가지만 말해보자. 용초도 앞바다에서 김노인이 친공포로 ‘송시혁’의 누이 ‘송순임’과 후일을 기약하는 장면. “기다릴 테니 오 년 후 삼월 첫 주에 여게서 만나자꼬. 그때 못 만나면 또 오 년 기다려 다시 용초도로 오겠다고…… 왜 그런 쓸데없는 말만 소리쳤을꼬. (……) 어디든 정착하는 대로 금릉군 구성면 평전리로 연락하라꼬, 그래 말했으면 될 텐데…… 순진때기 바보 맹꽁이 같은 녀석 하고선, 겨우 씨부린 말이 철부지 기집아들 연애편지질도 아이고, 귀신 씻나락 까묵는 소리를 미친 듯이 외쳐댔으이……” 이 순진한 미망의 세계를 포로수용소를 둘러싼 이런저런 비극의 역사와 대면시키는 감각이야말로 ?용초도 동백꽃?의 소설적 리얼리티가 이야기의 지배를 뚫고 새롭게 생성되는 대목이 아닐까. 역사와 시간의 횡포가 ‘귀신 씻나락 까묵는 소리’에서 차라리 선연한 역설의 웃음으로 전경화되는 느낌이다. 여기에, 김노인의 인생유전에 귀를 기울이던 민이네가 노인과 송순임의 후일담에 인간적 질투의 마음으로 개입하는 대목들이 살갑게 더해지면서 ?용초도 동백꽃?은 현재적 감각의 소설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피난길에 어머니와 누이를 잃은 충격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상실한 채 전쟁고아로 평생을 살아온 한 노인이 죽은 줄 알았던 누이와 반세기를 넘어 혈연을 확인하고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표제작 ?오마니별?에서도 작가는 주인공인 조노인의 캐릭터를 그 실제 인생의 비극성으로부터 일정하게 분리해놓는 아이러니한 묘사에 성공함으로써 감상적 동일시를 적절하게 견제하고 있다. 조노인은 분단문학의 이른바 ‘진지한’ 인물로 구축된 것이 아니라, 어느 면 너무 답답한 생활세계 속에 갇혀 있거나 희화화된 인물로 그려져 있어 독자는 그를 비극의 무대가 아니라 희극의 무대에서 만나는 것 같은 착각에 싸인다. 이것이 그의 수난과 비극을 역설적으로 더 크게 곱씹게 하는 세련된 소설적 고안임은 물론이다. 결말에 이르러 조노인의 망실된 기억의 밑바닥에서 기적처럼 끌어올려진 한마디 말, ‘오마니별’을 통해 노년의 남매가 서로를 확인하고 만나는 장면이 자칫 지나친 극화의 위험을 벗어나, 있을 수 있는 인간 진실의 실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 모두는 ‘사랑의 윤리’를 이야기하는 작가의 시선에 의해 부드럽게 감싸여 있다. 생사를 걸고 임진강을 넘나드는 북파공작원을 다룬 소설 ?임진강?에서 우리는 분단의 역사가 숨겨온 외면하고픈 진실과 만나지만, 정작 작가의 시선이 깊숙이 닿아 있는 곳은 북파공작을 둘러싼 이러저러한 사실의 증언이 아니라 전쟁고아였다가 북파공작원이 되었던 두 젊은이의 너무도 맑은 우정의 마음이다. “그러고 보니 여태 나뭇등걸과 함께 매달려 있던 영규가 보이지 않았다. 노도와 같은 흙탕물 속에서 살아야겠다고 사투를 벌이던 그를 잃자 울컥 눈물이 솟았다. 그가 없는 세상을 살고 싶지 않을 만큼 갑자기 친구가 그리웠다. (……) 나는 차라리 이대로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임진강?) 조금 분명해진다. ?오마니별? ?용초도 동백꽃? ?임진강?, 이 세 편을 함께 놓고 읽어보면 ‘사랑의 윤리’(혈육의 정―?오마니별?, 연인 간의 사랑―?용초도 동백꽃?, 생사를 같이한 친구 간의 우정―?임진강?)가 지켜내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적 진실이야말로 작가가 반세기 가까운 문학적 탐구의 도정을 거쳐 지금 새삼 놓치고 싶지 않은 문학적 전언임이. 분단소설이자 종교소설의 면모를 함께 갖추고 있는 작품 ?카타콤?에서 우리는 이 점을 가장 감동적으로 확인한다. 정통보수교단 소속 교회에서 청년부 교육목사로 일하고 있는 소설 화자 ‘나’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북한 잠입 선교에 나선 강시욱 목사의 행동에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그런데 북한 주민에게 전달할 구호품을 가지고 지안으로 떠난 강시욱 목사 일행이 연락 두절 상태에 놓인 가운데 소설 화자가 찾은 강목사의 선양 거처에는 사마리아인의 선행을 기록한 누가복음의 한 구절이 매직펜 글씨로 큼직하게 붙어 있지 않던가. 북방 선교 현장에서 강목사의 종교적 헌신을 화자의 눈으로 담담하게 기술해가던 작가는 작품의 결말에 이르러 누가복음의 그 물음을 소설 화자 ‘나’의 마음의 한 귀퉁이에서 기어코 울려오게 만든다. “너는 여리고로 길을 나선 제사장과 레위 사람과 다른 점이 없지 않은가?” 문학평론가 차미령은 이 대목에서 소설집 ??오마니별??을 일관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는다. “유대인들에게 멸시의 대상이었던 사마리아인이 실천했듯, 타인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 그 사랑만이 인간을 진정한 윤리적 주체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 이는 비단 ?카타콤?뿐만 아니라 ??오마니별?? 전체에서 배어나오는 나직한 울림의 목소리라 해도 좋다. 그리고 또한 바로 그 사랑의 윤리가, 아마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휴머니즘의 참모습일 것이다.”(차미령, 작품해설 ?신성한 생명, 거룩한 사랑?에서) 매년 가용에 쓸 양식만 남기고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곡간을 철저히 비우는 베풂의 삶을 살았고, 죽음에 이르렀을 때 ‘영양실조’가 사망의 원인으로 밝혀졌던 지방 대토호 종부(宗婦) 평촌마님의 한평생을 그리고 있는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카타콤?의 또다른 한편에서 사마리아인의 선행을 양심을 향한 외면할 수 없는 물음으로 만들고 있는 이번 소설집은 그렇다면, 고통과 수난을 넘어 구원과 초월을 향해 열려 있는, 김원일 문학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비장의 경외성서(經外聖書)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