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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버드
19세기 여성 여행가 세계를 향한 금지된 열정을 품다 양장
바움 2008.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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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젠더 top100 1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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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개정판 서문
서문

제1부 방황의 시절을 지나다
어린 시절과 첫 미국 여행│에든버러를 떠나 오스트레일리아로│열대의 꿈 하와이│로키 산맥에서의 환희│
콜로라도 여행 그리고 사랑
제2부 성공과 좌절의 나날이 이어지다
낯선 신세계 일본│홋카이도와 아이누 족│시나이 반도 순례 여행│예기치 못한 성공│헨리에타의 죽음과 사라진 열정│
비극적인 결혼
제3부 열정의 여행가로 다시 태어나다
홀로 아시아에│눈 속의 페르시아 탐험│알려지지 않은 땅으로│위험한 쿠르디스탄 여행│치마 입은 여행가의 놀라운 성취│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양쯔 강 너머 티베트 땅으로│마지막 나날들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이사벨라 버드의 주요 저서

저자 소개

저자 : 이블린 케이Evelyn Kaye
이블린 케이는 영국에서 학교를 마친 후 유럽, 스칸디나비아, 멕시코, 에콰도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남극을 여행했다. 그녀는 갈라파고스 섬들을 배로 일주하고, 아마존 열대 우림을 여행하고, 그랜드 캐니언에서 래프팅을 즐기고, 콜로라도의 상그레데크리스토 산에서 말을 타고 여행했다. 최근에는 1878년 이사벨라 버드의 여행 경로를 따라 일본을 여행했다.

그녀는 맨체스터 가디언 보도국 최초의 여성 기자였으며 프랑스 로이터 통신에서 일했다. 그 후 미국에서 『뉴욕 타임스』 등에 글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여행 관련 책을 저술하는 작가로 활동 중이다. 『Who's Who in America』에 이름을 올린 그녀는 미국 언론인 작가 협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역자 : 류제선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 TESOL 석사학위와 연세대학교 인지과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외대 및 서울시립대 교양영어 강의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외대부속외국어고등학교 영어과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5월 06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39쪽 | 582g | 148*210*30mm
ISBN13
9788958830566

책 속으로

1869년 이사벨라는 어떤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뭔가 도전해 볼 만한 일을 찾고 있었다. 그녀는 출판인 존 머레이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노스 브리티시 리뷰North British Review』나 『굿 워즈』 등에 기사를 쓰는 일보다 좀 더 진지하고 전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게 어떤 제안을 해 주신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그녀의 몸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이사벨라는 요통과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러 의사에게 가 보았다. 그녀가 수많은 증상들을 면밀하게 설명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요통과 다른 질병들이 왜 스코틀랜드 농부들의 이민을 준비하거나 미국으로 여행을 하거나 빈민촌의 좁은 계단을 올라갈 때는 완전히 사라지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뚜렷하게 나타나는 유일한 증상은 요통이었는데, 그것조차 변덕스럽게 나타나곤 했다.

건강에 대한 걱정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녀는 몸의 조그만 이상에도 몇 시간씩 걱정하면서 심한 우울증과 불행한 감정 상태에 빠져 들곤 했다. 심리학과 심리치료가 발달하기 이전의 시대였기에, 아무도 이사벨라의 병이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일 그때 누군가 그녀의 육체적인 고통이 그녀의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욕망과 그것을 계발할 기회가 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 현실 간에 생긴 정신적 마찰 때문이라고 말했다면 모두들 웃었을 것이다. 이사벨라는 젠트리 계급 여성의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했으며 에든버러의 안락한 중산층 생활 방식을 따르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녀의 모험 정신은 갈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몸이 아픈 것은 그 극심한 좌절에 대처하는 그녀만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즉 이사벨라 내면의 감정적 분노가 건강 악화를 초래했던 것이다. ---p. 74~76

그녀가 탄 배 네바다 호는 마치 좋은 시절은 다 지난 퇴물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사벨라는 즐거운 마음으로 “크고 널찍하고 편안한, 오래된 미국식 노가 달린 증기선이었다. 갑판 위에 발코니가 있고 앞 돛대 위에 항로 안내인의 집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승객은 이사벨라 외에 일곱 명뿐이었다. 한 늙은 스코틀랜드 출신 의사와 네 명의 남자들 그리고 덱스터Dexter 부인과 그 아들이었다. 이사벨라는 승객들이 뜬소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네바다 호는 증명서 없이 항해하고 있다는 둥, 우측 현의 손잡이가 부분적으로 부러졌다는 둥, 손상이 너무 심각해서 몇 달 동안 배가 항구에 들어갈 엄두조차 못 냈다는 둥, 우측 현 바퀴에 달린 부표가 짧아졌다는 둥, 배에 물이 샌다는 둥, 그런 얘기들이었다. 이전 항해 중에는 배가 거의 가라앉을 뻔해서 승객들이 열악한 배 운항에 대한 항의서를 만들어 서명했다고도 했다. 급하게 수리한 지금도 가까스로 바다 항해를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수준이었다. 결국 대부분의 소문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위험한 현실과 위기의 징후는 풀 죽은 이사벨라를 자극했다. 태평양에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에 직면하자 그녀는 병 속의 코르크 마개처럼 벌떡 일어났다. ---p. 83~85

이사벨라는 눈이 더 내리기 전에 반드시 대륙 분수령을 넘어 덴버에 도착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맑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말을 타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해발 1만 2,000피트 고지대에 있었는데 그곳은 공기가 매우 희박했다. 그리고 수북이 쌓인 깨끗한 눈에 반사되는 햇빛 때문에 계속 눈을 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흘깃 올려다본 해는 조명등처럼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현기증과 탈진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어지는 통증으로 너무 괴로워서 눈 위에라도 누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죽을힘을 다해 네 시간 동안 발을 질질 끌며 걸었다. 주위에는 파란 하늘을 향해 번쩍거리며 사나운 모습으로 찌를 듯이 서 있는 봉우리들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정확히 어느 길로 가야할지 알지 못한 채, 그녀와 버디는 눈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가끔은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서 말에서 내려 걸어야 했다. 드디어 대륙 분수령의 정상에 도착했다. 말을 탄 채 그곳을 지나면서 그녀는 저 멀리 밑에 있는 초록의 대평원과 덴버로 가는 길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말을 달려 내려갔고, 도중에 말을 탄 남자 한 명을 만났다.

“그는 그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며 아주 좋은 말을 몰았다.” “그는 챙이 넓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었는데 그 밑으로 숱 많고 가느다란 곱슬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의 태도는 정중하고 솔직했다. 그는 사냥꾼들이 입는 구슬로 장식된 사슴 가죽 옷을 입고 있었고 놋쇠로 만든 유달리 큰 박차를 하고 있었다.”

이사벨라는 그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개의 무기도 보았다. 안장 위에 가로 놓인 엽총, 권총집에 들어 있는 권총 한 자루, 벨트에 매달린 연발 권총 두 자루와 칼 한 자루, 등 뒤에 둘러매고 있는 카빈총 한 자루. 그는 사냥과 인디언들 이야기로 그녀를 즐겁게 해 주면서 좋은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그가 다른 길로 떠난 후 이사벨라는 쉬기 위해 근처 오두막에 들렀다. 그 집의 여자는 “당신은 코만치 빌이 분명 신사라고 생각하셨겠지요.”라고 말했다. 이사벨라는 그 길동무가 서부에서 가장 악명 높은 무법자 중 하나로, 자기 가족을 학살한 데 대한 복수로 인디언들을 죽이는 데 일생을 바치고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고는 무척 놀랐다. ---p. 152~154

일본이 전쟁에 패한 중국에게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할 것을 강요하는 것으로 1895년 4월 청일전쟁은 마무리되었다. 불안한 침묵이 서울을 뒤덮었다. 변화에 대한 많은 공문이 나돌았으나 실제로 일어난 일은 거의 없었다. 당시 이사벨라는 중국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 있었는데, 그때 한국의 왕비가 일본인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자세한 사건의 전말을 들은 이사벨라는 공포에 떨었다. 10월의 어느 날 밤 일본 군사들이 궁으로 잠입해 들어왔다. 그들은 왕비를 만날 것을 요구했고 곧 방 안에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왕실의 대신이 왕비의 앞에 팔을 뻗치고 막아서서 왕비를 보호하려 했다. 일본 군사들은 그의 양팔을 칼로 잘라 버리고 다른 부위를 다시 한 번 칼로 내리쳤다. 그는 피를 흘리며 죽었다. 왕비는 자객들로부터 도망쳤으나 곧 붙잡혔다. 칼에 찔린 그녀는 마치 죽은 것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 자객 중 하나가 왕비의 가슴 위로 뛰어올라 칼로 그녀를 찌르고 또 찔렀다. 일본인들은 왕비의 시체를 비단 이불로 싼 후 나무판자 위에 눕혀 소나무 숲으로 옮겨 가서 불태워 버렸다.”

방에 갇혀 있던 왕은 궁을 탈출하여 러시아 공사관으로 망명했고 러시아가 한국이 독립 국가로 존속되도록 도와줄 것을 희망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도록 외교적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이사벨라는 더 이상 중국 여행을 미룰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p. 392~394

어느 날 저녁 일꾼들이 이사벨라의 의자를 들고 마을의 여관으로 막 들어서려는 순간, 한 무리의 남자들이 막대기를 휘두르며 그녀의 뒤를 따라 오면서 “외국인 악마!”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사람!”이라고 소리쳤다. 이사벨라는 바로 앞에 있던 여관 주인이 현관문을 닫으려 하는 것을 목격했다. 일꾼들은 의자로 그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사벨라는 급히 방으로 들어가서 문에 달린 튼튼한 나무 막대기를 잡아 당겨 문을 걸어 잠그고는 안전해지기만을 기다렸다.

바깥에서 들리는 고함 소리가 점점 더 커져 갔다. 사람들이 현관문을 부수고 앞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강목으로 그녀의 방문을 내리치기 시작했고, 쿵 소리를 낼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문을 내리치는 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이사벨라는 침착했다.

“나는 문 앞에 앉아서 권총을 꺼내들고는, 방으로 들어서는 그들의 다리가 보이는 즉시 방아쇠를 당기려고 준비했다. 방문을 막아 놓은 나무 막대기를 수시로 점검하고 그 사이로 난 틈으로 밖을 내다보며 심각한 위기 상황임을 절감하고 있었다. 날은 어둡고 탈출할 가능성은 전혀 없고 호소할 수 있는 인간성도 없고 희망도 없었다. 폭도들은 악마처럼 무자비했다.”

문 위이 막 뚫리려는 찰나에 고함 소리와 강목 소리가 멈추더니 갑자기 침묵이 내려앉았다. 갈라진 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 지역 관리가 보낸 군대가 와서 그 폭도들을 해산시켰던 것이다. “그는 군대를 두 시간 이전에 보냈어야 했는데.”라고 이사벨라는 뾰로통하게 한마디 했다.

---p. 401~402

관련 자료

이사벨라 버드Isabella Bird

빅토리아 시대 영국 여성들의 우상 이사벨라 버드는 1831년 영국 요크셔의 버러브리지에서 영국국교회 목사인 에드워드 버드와 도라 로슨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건강이 좋지 못했던 그녀는 1854년 의사의 권유에 따라 캐나다와 미국을 차례로 여행했다. 건강을 회복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이사벨라는『미국에 간 영국 여인』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기대치 않은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여행과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사벨라는 여성에게 강요되던 사회적 한계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다시는 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의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욕망과 그것을 가로막는 사회의 편견 사이에서의 갈등은 이사벨라의 건강을 극도로 악화시켰고, 그것은 그녀가 다시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어 주었다.

이후 30여 년간 이사벨라는 오스트레일리아, 하와이, 일본, 인도, 티베트, 페르시아, 쿠르디스탄, 한국, 중국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였는데, 그녀는 매번 잘 닦여진 길을 피하고 그녀가 진정한 세계라고 믿는 오지로 여행했다.

이사벨라는 그 여행 이야기들을 모두 8권의 책에 담아냈다. 그녀는 이 책들에서 자신이 만난 사람들, 자신이 본 풍광, 자신이 경험한 모험을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강력한 호소력과 생동감 있는 묘사로 그려내 논픽션 여행기라는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여 대중적 성공을 거둠으로써 여행 작가로 인정받게 된다. 또한 그녀는 페르시아와 쿠르디스탄 여행 이후 1892년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영국 왕립지리학회의 회원이 되었다. 이사벨라의 성공은 ‘여성 세계 여행가라는 부류는 19세기 후반의 가장 끔찍한 현상들 중 하나이다.’라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낸 것이어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에도 등장하는 그녀는 우리에게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라는 이름과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는 19세기 말 격변의 시대를 맞이한 조선을 4차례에 걸쳐 11개월간 여행하며 고종과 명성황후를 비롯한 왕족에서 빈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당시 우리나라의 모든 것을 이 책에 기록했다.

이사벨라 버드는 1901년 마지막으로 모로코를 여행한 후 1904년 에든버러에서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이사벨라 버드의 주요 도서
『미국에 간 영국 여인』(1856) 『샌드위치 제도의 야자 숲, 산호초 그리고 화산에서 보낸 여섯 달』(1875)
『로키 산맥에서의 한 여인의 삶』(1879) 『인적미답의 일본 여행길에서』(1880) 『황금 반도』(1883)
『페르시아와 쿠르디스탄에서의 여행』(1891) 『티베트 인들 사이에서』(1894)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1898) 『양쯔 강 저 너머에』(1899)

출판사 리뷰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에 저항하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한 이사벨라 버드의 놀라운 이야기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거대한 뿌리」의 한 구절이다. 시인 김수영으로 하여금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고, 이 나라의 역사가 더러운 진창이라 해도 좋다고, 그것은 그조차 상상하지 못하는 우리의 거대한 뿌리이기 때문이라고 뜨거운 외침을 토해내게 만든 버드 비숍 여사는 누구인가?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은 이사벨라 버드,
그녀의 이야기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19세기 후반 세계를 탐험했던 메리 킹즐리, 이다 파이퍼, 패니 불럭 워크맨, 알렉산드라 데이비드 닐 등 여성 여행가는 “숙녀 탐험가? 치마 입은 여행가? 그 표현은 너무 거룩하다. 그들에게 우리의 떨어진 웃옷이나 깁게 하라.”는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들이 이러한 비난을 받았던 이유는 경직된 사회의 좁은 영역에 갇혀 있었던 다른 수많은 여인들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이사벨라 버드 역시 이러한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과연 이사벨라 버드는 여성들이란 무력하고 수동적인 존재여야 했던 시대에 어떻게 혼자서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하와이, 일본, 말레이시아, 시나이 반도, 인도, 티베트, 페르시아, 한국, 중국을 여행하며 돌아다녔을까? 그녀가 대외적으로 내세운 여행의 목적은 ‘건강의 회복’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의사들의 권고에 따라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로 여행을 떠났고 건강을 회복하여 돌아왔다. 덕분에 이사벨라 버드는 사회적 비난과 조롱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사벨라 버드는 자신의 여행이 단지 그것 때문만이 아님을, 첫 미국 여행 이후에 발견한 여행과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욕망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녀의 개인적이고 깊은 고민이 시작된다. 여자는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믿음 속에서 성장한 이사벨라는 여행에 대한 자신의 강렬한 열망에 대해 죄의식을 느꼈다. 게다가 여행 후에 쓴 책의 상업적인 성공은 그녀에게 죄의식을 더욱 깊어지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동생 헨리에타의 죽음, 존 비숍과의 비극적인 결혼과 그의 죽음을 겪으며 고통의 시간을 지나온 그녀는 마침내 “이제 내게는 아무런 구속이 없어요. 그러니 어느 정도 기운을 추스르게 되면 나의 남은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면서 살고 싶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사회적 편견과 자신의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을 정리하기까지 무려 58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했다. 적지 않은 나이 58세의 이사벨라 버드는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여행은 어려움과 위험이 많고, 모든 편의 시설이 없고, 그리고 대부분 완전한 고립 상태에 놓이는 그런 형태예요.”라고 말하며 인도, 중국, 페르시아, 티베트,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여행가로서, 작가로서, 지리학자로서 세상의 인정을 얻게 된다.

이사벨라 버드는 평생 동안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승리했고 그 이름을 역사에 새겼다. 이사벨라가 살았던 시대보다는 여성의 활동 영역이 놀라우리만치 확장된 오늘날이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회적 편견과 스스로 만들어낸 굴레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여성이 존재한다. 이사벨라 버드의 뿌리는 빅토리아 시대에 있지만 그녀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호소력을 지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9세기 여성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의 눈을 통해 본
100년 전 한국과 전 세계의 낯설고도 생생한 모습이 펼쳐진다!

이사벨라는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시대에 여행했다. 텔레비전과 영화가 생겨나기 전이었던 그 시대에는 책과 잡지기사들이 머나먼 세계의 모습을 전해 주었다. 영국 사람들은 영국과는 전혀 다른 신비한 동양과 이국적인 열대 정글에 대한 글을 매우 좋아했다. 그리고 이사벨라의 책들은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와이의 마우나로아 활화산에서 하늘로 치솟는 시뻘건 불덩이, 수천 마리 벼룩이 뛰어다니는 일본의 여관방, 총을 쏘아대며 여행단을 위협하는 쿠르디스탄의 유랑 부족, 시나이 반도의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과 모래 폭풍 그리고 초록의 오아시스, 눈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눈조차 뜰 수 없는 페르시아의 빛나는 설원, 콜로라도의 파란 하늘을 향해 번쩍거리며 사나운 모습으로 찌를 듯 서 있는 봉우리들의 바다, 지도에조차 표시되지 않은 이름 없는 호수, 양쯔 강을 거슬러 오르는 집배를 절벽 위로 끌어올리는 중국인들, 바닷물을 이용해 소금을 만드는 한국의 염전, 멀리서 온 상인들로 북적이는 티베트의 고대 도시 레. 그녀가 책에서 묘사하는 세계 곳곳의 풍광들은 하나같이 낯설고 그래서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사벨라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 자신이 본 풍광, 자신이 경험한 모험을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강력한 호소력과 생동감 있는 묘사로 그려냈는데 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이사벨라와 함께 여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녀의 책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어떤 것도 평범하거나 담백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이사벨라 버드는 다른 유럽의 탐험가들과 달리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당시의 세계를 묘사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서양식 사고를 가진 우리들이 마주치는 것들이 미개함이나 윤리의 타락이 아닌, 정교하고 고풍스러운 또 하나의 문명이라는 것이다. 이는 타락한 것이 아니며, 비록 불완전하기는 해도 우리가 존중하고 감탄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는 기본적인 생각의 차이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역시 제국주의가 팽배했던 19세기라는 시대적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녀의 여행서 중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은 출판 당시 영국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이사벨라 버드는 19세기 말 격변의 시대를 맞이한 조선을 4차례에 걸쳐 11개월간 여행하며 고종과 명성황후를 비롯한 왕족에서 빈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한강을 거슬러 오르고 금강산과 원산 등지를 여행하면서 알게 된 당시 우리나라의 모든 것을 기록했다. 이 책은 이후 오랫동안 유럽 사회에서 한국을 이해하는 기본서가 되었다.

이사벨라 버드의 목소리가 살아 있는 『이사벨라 버드』.
이 책 『이사벨라 버드』는 19세기 여성 세계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의 어린 시절과 첫 미국 여행에서 60대 후반까지 계속된 여행과 죽음의 순간까지 그녀의 인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써내려간다. 그녀의 인생에서 여행이 갖는 중요성만큼 이 책에서도 여행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거기에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끼진 동생 헨리에타와의 친밀한 관계나 비극적인 존 비숍과의 결혼과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깊이 있게 다루어진다. 이 책이 이사벨라 버드의 삶과 생각을 이처럼 세밀하고 깊이 있게 재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사벨라가 남긴 수많은 편지와 책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이사벨라의 성공적인 삶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서 이루어진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요구가 만들어낸 갈등 그리고 그녀의 개인적 생각과 고민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는 점이다. 이블린은 이사벨라가 동생 헨리에타나 가까운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영국, 스코틀랜드, 콜로라도, 뉴욕, 하와이 로 가서 일일이 찾아냈고, 거기서 이사벨라의 내밀한 감정과 생각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신의 교양이 모자란다고 고백하고, 여자보다 남자와 여행하는 것이 편하다고 털어놓고, 자신의 숙녀답지 못한 행동을 변명하고, 함께 여행했던 사람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고, 로키 마운틴 짐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등의 지극히 개인적 생각들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바로 옆에서 얘기하는 듯한, 바로 눈앞에 광경을 펼쳐놓는 듯한 이사벨라의 글쓰기 스타일이 이 책에서도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블린 케이는 이를 위해 책의 구석구석에 이사벨라의 생생한 목소리를 녹여냈다. 덕분에 독자들은 100년 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직접 이사벨라의 목소리를 듣는 듯한 기쁨을 느끼며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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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기사1

  • 평생 자신과 갈등하며 여행한 사람, 이사벨라 버드
    평생 자신과 갈등하며 여행한 사람, 이사벨라 버드
    2013.12.27.
    기사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