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차례
작가의 말 004 제1부 산만해도 괜찮아 산만해도 괜찮아 013|취업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021|고양이와 산다는 것 029|비성년에 대한 변호 037 일기를 빙자한 소설놀이 중 044|요리 말고 요리책 중독 051|흰 종이 속, 검고 작은 씨앗들 058 중요한 건 앞이 아니라 뒤에 064 제2부 이토록 뜨거운 결핍 마침표를 쉼표로 바꿀 수만 있다면 075|이토록 뜨거운 결핍 081|허무와 친구 되기 089 우리, 조금씩만 어른이 됩시다 096|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을이다 102|시작이 별건가? 108 질서가 없는 게 질서 115 제3부 나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씁니다 125|자급자족 위로 132|나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136|매력적인 무심함 143 잘 알지도 못하면서 148|금지된 질문 154|조금 조금씩 바뀌어가면서 159|좀 말 같은 말을 해보고 싶어 164 제4부 두려움을 이길 필요는 없다 미워하는 사람이 있나요? 175|한 접시의 여행 181|길 잃은 흉터들을 생각한다 187|결국은 다 맛있어요 196 두려움을 이길 필요는 없다 202|내게 무계획을 안겨줘요 209|불안의 쓸모 217 |
전아론의 다른 상품
|
▶ 책 속으로
일정한 패턴에 맞춰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삶을 더 효율적으로 만든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살려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생각들, 그때에만 마주칠 수 있는 장면들, 쓸데없어 보이지만 재미있는 것들을 놓치면서 살아야 한다. 그게 더 좋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기꺼이 산만한 사람으로 사는 걸 택하겠다. 덜 효율적인 대신 더 사랑스러운 삶일 거란 믿음으로. - <산만해도 괜찮아>에서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는 건 장밋빛 미래가 아니다. 무척이나 방대한 양의 업무들이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 안에 들어가기만 했는데도 사회라는 아주 거대한 시스템 속에 완전히 붙들린 기분이 든다. 훌륭하게 일을 해내는 것은, 물론 나를 발전시킨다. 하지만 내가 나로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주지는 않는 것 같다. 전화 업무에 능숙해진다거나 사내 오피스 프로그램을 실수 없이 척척 해나가는 건 그렇지 않은 것보다야 낫겠지만, 나라는 존재에 있어서는 과연 얼마나 유용할까? - <취업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에서 쫓기듯 이뤄내려고 했던 것들을 가만히 훑어보면, 이것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의아해질 때가 있다. 내가 되고 싶던 어른이 바로 그런 모습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어쩌면 다들, 애초부터 어른이란 게 어떤 건지 깊이 생각해본 적 없을지도 모른다. ‘어른스럽다’는 것, 그 훌륭하고 좋은 이미지, 그런 것만을 좇으려다 마음의 무릎이 다 까져버렸는데도 말이다. 어른이란 어느 날 ‘짠’ 하고 레벨업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카츄가 라이츄가 되는 것처럼 한순간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거다. 세상에 완벽한 어른이 어디 있겠나? 오히려 있다고 상상하면 조금 불행하다. ‘백 퍼센트 어른’이 되어 버린다면, 그건 ‘그냥 어른’이지 더 이상 나일 수 없을 테니까. - <우리, 조금씩만 어른이 됩시다>에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을이다. 상대에게 서운해서, 미안해서,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의지되고 싶고, 의지하고 싶어서. 나를 을로 만드는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를 을로 만드는 건, 사랑 그 자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어마어마한 감정을 갑으로 두고, 매일을 헤쳐 나가는 두 사람의 을이다. 영원히 갑이 될 수는 없겠지. 그래도 좋다. 사는 마지막 날까지 을이고 싶다. -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을이다>에서 나의 이야기들을 전부 통제하려고 하면 매일을 살기가 팍팍해질 게 분명하다. 저 사람은 날 어떻게 생각할지 전전긍긍하고, 늘 끼어드는 우연들로 어그러지는 계획 하나하나에 괴로워하게 될 테니까. 어쩌면 원했던 방향이 틀어졌다는 이유 때문에 실패한 삶을 사는 기분에 휩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소한 사건들을 내가 정할 순 없는 걸 어쩌나. 그건 신인지 창조주인지 운명의 거대한 힘인지가 결정할 일이고. 단지 주인공으로서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살아가는 태도, 그러니까 이야기의 성격 정도일 것이다. - <나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에서 |
|
일정한 패턴에 맞춰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삶을 더 효율적으로 만든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살려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생각들, 그때에만 마주칠 수 있는 장면들, 쓸데없어 보이지만 재미있는 것들을 놓치면서 살아야 한다. 그게 더 좋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기꺼이 산만한 사람으로 사는 걸 택하겠다. 덜 효율적인 대신 더 사랑스러운 삶일 거란 믿음으로. ---「산만해도 괜찮아」중에서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는 건 장밋빛 미래가 아니다. 무척이나 방대한 양의 업무들이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 안에 들어가기만 했는데도 사회라는 아주 거대한 시스템 속에 완전히 붙들린 기분이 든다. 훌륭하게 일을 해내는 것은, 물론 나를 발전시킨다. 하지만 내가 나로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주지는 않는 것 같다. 전화 업무에 능숙해진다거나 사내 오피스 프로그램을 실수 없이 척척 해나가는 건 그렇지 않은 것보다야 낫겠지만, 나라는 존재에 있어서는 과연 얼마나 유용할까? ---「취업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중에서 쫓기듯 이뤄내려고 했던 것들을 가만히 훑어보면, 이것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의아해질 때가 있다. 내가 되고 싶던 어른이 바로 그런 모습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어쩌면 다들, 애초부터 어른이란 게 어떤 건지 깊이 생각해본 적 없을지도 모른다. ‘어른스럽다’는 것, 그 훌륭하고 좋은 이미지, 그런 것만을 좇으려다 마음의 무릎이 다 까져버렸는데도 말이다. 어른이란 어느 날 ‘짠’ 하고 레벨업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카츄가 라이츄가 되는 것처럼 한순간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거다. 세상에 완벽한 어른이 어디 있겠나? 오히려 있다고 상상하면 조금 불행하다. ‘백 퍼센트 어른’이 되어 버린다면, 그건 ‘그냥 어른’이지 더 이상 나일 수 없을 테니까. ---「우리, 조금씩만 어른이 됩시다」중에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을이다. 상대에게 서운해서, 미안해서,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의지되고 싶고, 의지하고 싶어서. 나를 을로 만드는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를 을로 만드는 건, 사랑 그 자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어마어마한 감정을 갑으로 두고, 매일을 헤쳐 나가는 두 사람의 을이다. 영원히 갑이 될 수는 없겠지. 그래도 좋다. 사는 마지막 날까지 을이고 싶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을이다」중에서 나의 이야기들을 전부 통제하려고 하면 매일을 살기가 팍팍해질 게 분명하다. 저 사람은 날 어떻게 생각할지 전전긍긍하고, 늘 끼어드는 우연들로 어그러지는 계획 하나하나에 괴로워하게 될 테니까. 어쩌면 원했던 방향이 틀어졌다는 이유 때문에 실패한 삶을 사는 기분에 휩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소한 사건들을 내가 정할 순 없는 걸 어쩌나. 그건 신인지 창조주인지 운명의 거대한 힘인지가 결정할 일이고. 단지 주인공으로서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살아가는 태도, 그러니까 이야기의 성격 정도일 것이다. ---「나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