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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기이한 환상의 세계
포송령은 과거를 통해 뜻을 펴려던 꿈이 좌절되면서 젊은 시절부터 『요재지이』의 창작에 몰두하였으며, 강희 18년(1679) 처음으로 책의 면모가 갖추어져 자서를 쓰기도 하였다. 자서에도 썼듯이 그는 신기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면 즉시 붓을 휘둘러 기록해 두곤 하였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의 취지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이야기들 또한 더욱 풍성하게 쌓여나갔다. 이렇게 그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보충해 나갔으며, 마침내 엄청난 분량의 대작을 완성할 수 있었다.
『요재지이』는 분량으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대단히 광범위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데, 당대의 사회상 및 가정 생활, 남녀간의 애정, 천상의 세계, 자연물들의 황당한 변화, 자연 재해 등등 온갖 사건과 현상들을 망라하고 있다. 궁중에서 귀뚜라미놀이를 즐겨 향리의 서민들이 받는 고통을 그린 「촉직」이라든가 과거 시험장의 폐단이 저승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신랄하게 파헤진 「석방평」, 고급 관료의 악덕을 그린 「속황량」 등의 작품에는 부패하고 혼란스런 당대 현실을 향한 작가의 울분이 고스란히 토로되어 있다. 또한 남녀의 진실한 사랑을 묘사하여 봉건 예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작품들도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안씨」, 「황영」, 「교나」, 「편편」, 「청봉」 등의 작품에서 작가는 여성을 멸시하던 당대의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고귀한 품성과 재능을 지닌 여성상을 그려내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과감한 애정 표현도 서슴지 않고 묘사한다. 귀신이나 여우가 사람과 다름없는 성품을 지니고 사람과 어우러지는 등 환상적인 설정이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본성을 긍정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한편 이 책에 수록된 수많은 일화와 민담들은 그대로 당시의 야사가 되어 명말 청초 격변기의 사회상을 증언하는 중요한 사료로 취급된다. 지금의 역사가들은 민초들의 삶에 대한 기록으로서도 이 책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원문을 바탕으로 10년에 걸쳐 세심하게 번역한 완역본 『요재지이』는 중국인의 구어인 백화(白話)가 아니라 전통적인 문어체인 고문으로 씌어 있어 오랜 세월 학문과 언어를 연마한 사람이 아니면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지식인 문학이었다. 따라서 그러한 고급 문체를 제대로 소화하여 번역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기존의 판본들은 중문학자가 번역했다 해도 선집에 그치거나, 전체를 옮겼다 해도 역자들이 충분한 중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여 『요재지이』의 면모를 제대로 되살려주기에 불충분했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출간되는 판본은 기존의 것들과는 달리,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중문학자 김혜경 선생이 원문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완역하였다. 또한 김혜경 선생은 약 10년에 걸친 번역과 퇴고 과정을 바탕으로 독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요재지이』는 작가가 타계한 지 50여 년이 지나 책으로 완성되어 나왔다. 그러나 이미 작가의 생존 당시 필사본의 형태로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었다. 『요재지이』의 판본은 60여 종이나 되는데, 포송령이 직접 작성한 수고본은 현재 절반가량만 전해지고 있으며, 여러 필사본들의 교감을 거쳐 1963년에 상해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출간된 『회교회주회평본요재지이(會校會注會評本聊齋志異)』이 가장 완비된 것으로 꼽히고 있다. 1989년에 북경 인민문학출판사에서 출간된 『전본신주요재지이(全本新注聊齋志異)』는 기존에 간행된 책 모두를 참고해 정확한 원문과 주석을 되살리려고 힘쓴 노작이며, 1991년 광서 인민출판사에서 펴낸 『요재지이대조주역석(聊齋志異對照注譯析)』은 외국인이 『요재지이』를 학습하기에 적당한 참고서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김혜경 선생은 위의 세 책을 참고하여 번역하였으며, 목차는 이 책들과 달리 포송령이 원래 정해 놓은 순서에 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