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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극장 제3부
민족의 비극
김내성
정산미디어 200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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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아아, 향기 없는 인생이여
백영민의 도착
김준혁과 백영민
오창윤과 백영민
도적맞은 입술
선량한 실연자
굵다란 인생관
사랑의 방법론
애욕의 기상도
허운옥의 위치
어두운 인생들
나나의 아버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고양이와 새앙쥐
운명의 검은 손길
오오, 하늘이여
기연의 십자로
생명의 창조록
정야곡
암야행로
흉 보
죽음의 의의
민족의 고달픔
인류의 비극
오유경의 소식
비극의 주인공들
엘레지 · 아리랑
밤 정거장
법률적 양심
노루 사냥
무욕무사의 순간
최후의 밤
태극령을 넘어서
사랑 사랑 사랑
권력의 마당
아아, 무정

저자 소개 1

金來成

소설가. 호는 아인(雅人)이며 한국 추리소설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1909년 평안남도 대동大同에서 태어났다. 평양 공립 고등 보통학교를 마친 뒤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법학부 독법학과獨法學科를 졸업했다. 시에는 최고의 명문 학부를 졸업해 법관이나 변호사로 보장된 길을 갈 수 있음에도 추리소설가로서의 길을 선택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일이다. 동 대학교 독문과에서 공부하는 한편 일본의 추리소설 대가인 에도가와 란포에게 사사를 받는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추리 소설 전문지에 단편소설과 평론을 발표하여 일본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35년 일본 추
소설가. 호는 아인(雅人)이며 한국 추리소설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1909년 평안남도 대동大同에서 태어났다. 평양 공립 고등 보통학교를 마친 뒤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법학부 독법학과獨法學科를 졸업했다. 시에는 최고의 명문 학부를 졸업해 법관이나 변호사로 보장된 길을 갈 수 있음에도 추리소설가로서의 길을 선택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일이다. 동 대학교 독문과에서 공부하는 한편 일본의 추리소설 대가인 에도가와 란포에게 사사를 받는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추리 소설 전문지에 단편소설과 평론을 발표하여 일본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35년 일본 추리소설 잡지 [프로필]에 단편 『타원형의 거울』, 『탐정소설가의 살인』이, 일본 대중잡지 [모던일본]에 『연문기담』이 잇달아 당선되어 화제를 모으며 문단에 진출했다.

귀국 후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 전문 작가로 활약하면서 『백가면』과 『황금 굴』 등의 소년 모험 소설과 본격적인 추리소설 분야를 개척했다. 1939년 『마인』을 발표한 뒤 『백가면』, 『태풍(颱風)』을 발표하여 처음에는 탐정소설가로 등장. 광복 후에는 통속작가로 전향했다. 특히 장편 연재소설 『마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추리소설 전문 작가로서 독보적인 자리를 굳히며 명성을 날렸다. 그 밖에도 이든 필포츠의 대표작 『홍두 레드메인 일가』를 번역하여 출간했으며, 장편소설 『태풍』을 발표했다. 『마인』과 『태풍』에서 선보인 주인공 ‘유불란’은 한국의 명탐정을 일컫는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해방 직후에는 『똘똘이의 모험』과 『진주탑』을 비롯한 라디오 연속극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 선집 『심야의 공포』와 모리스 르블랑의 『보굴왕』, 에밀 가보리오의 『마심 불심』 등 장편 번안 소설을 잇달아 출간했다. 창작 소설집으로 『광상 시인』『행복의 위치』『비밀의 문』『부부 일기』『괴기의 화첩』이 있다.

한편 광복 후에는 1949년부터 3년간 [한국일보]에 연재된 남녀의 애정과 독립투쟁을 다룬 '청춘극장(靑春劇場)' 5부작은 큰 인기를 끌었고, 『인생 화보』『백조의 곡』『사상의 장미』『애인』 등 대중적인 장편 소설로 큰 갈채를 받았다. 또한 『검은 별』과 『쌍무지개 뜨는 언덕』 등은 청소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김내성의 장편소설들은 대부분 영화 및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극으로 제작되어 큰 호평을 얻었다. 그의 작품 활동을 높이 인정해 1957년 경향신문사에서 '내성문학상'을 제정하여, 정한숙, 박경리에게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 밖에 어린이물로 『황금굴』, 『쌍무지개 뜨는 언덕』, 『도깨비감투』 등을 발표하여 어린이들에게 먼 나라에 대한 동경과 꿈을 키워주기도 했다. 1957년 『실낙원의 별』을 연재하던 도중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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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63쪽 | 418g | 153*224*20mm
ISBN13
9788993117028

책 속으로

노루 사냥

1
오징어와 브랜디 한 병을 다 마신 최달근과 박준길은 어지간히 목이 갈했다. 그래서 기차가 개성역에 도착하자 최달근은 들창을 열고 머리를 내밀면서,
“오챠(차)!”
하고 고함을 쳤다.
그러나 차를 파는 애들이 모두 3등 찻간 앞으로만 모여들어 있 었다.
“오챠!”
하고 이번에는 박준길이가 고함을 쳤다. 그래도 애들은 들은척 만척으로 대여섯 객실이 주르르 달린 3등 찻간 앞에서만 분주히 오락가락할 뿐, 고함치는 소리에 이리로 달려온 것은 벤또(??도시락) 장수였다.
“우선 벤또부터 삽시다.”
준길이가 지갑을 꺼내 벤또 두 개를 사고 또,
“오챠!”
하고 고함을 쳤으나 좀처럼 차 장수는 오지를 않는다.
“자식들이 모다가 귀머거리야!”
“어물어물하다가는 차가 떠나네. 내려가서 사 갖구 오는 것이 빠를걸.”
그 말에 박준길은 몸을 일으켜 승강구로 나갔다. 승강구에서 홈으로 내려서려는데,
“아 박군, 이편쪽이 빠르겠네.”
하고 들창으로 머리를 내민 최달근이가 준길이에게 고함을 쳤다.
그 소리에 식당차를 한 칸 사이에 둔 3등 객실 앞으로 달려가려던 준길이가 발길을 돌려 또 하나 달린 바로 옆 칸인 2등 객실 앞에서 차를 팔고 있는 아이를 향하여 달려갔다.
그러나 준길이가 채 달려가기 전에 그 또 바로 옆 칸인 1등 차 손님이 들창을 열고,
“오챠!”
하고 불렀다.
“네이.”
아이는 자기 등 뒤에서,
“오챠! 오챠!”
하면서 따라오는 준길이의 목소리를 듣고도 1등 차 손님에게로 뛰어갔다. 1등 차 손님은 태반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아이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왕 따라 나선 김이니 준길이도 아이의 뒤를 그냥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3등 차가 달린 뒤꽁무니로 가는 것보다 1등 차가 달 린 앞대가리로 가는 것이 차가 떠나더라도 타기가 편리도 했다. 1등 차 손님은 50줄이 가까운 일본 사람이었다. 차를 한 종지 들고 거스름은 필요 없다며 아이에게 돈을 쥐어준다.
“고맙습니다.”
아이가 꺼북하고 인사를 하는데 준길이가 달려갔다.
“오챠.”
준길이는 돈부터 먼저 쥐어주면서 차를 청했다.
“네이.”
커다란 주전자에서 김이 물물 나는 뜨거운 차를 토병에다 따라 넣는다. 따라넣는 동안 준길이는 담배 연기를 후우하고 내뿜으면서 문득 찻간 안을 들여다보다가 애꾸눈이 얼굴이 후닥닥 놀라면서 양편 볼이 부르르 경련을 일으키었다.
“으, 으, 응?……”
그것은 50객이 머리를 도로 디밀은 바로 그 들창 안이다. 하나의 낯익은 얼굴이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는가!
“고맙습니다.”
아이가 쥐어주는 토병을 준길이의 손은 정신없이 받아들었다.
“영민이 자식 아닌가?……”
그렇게 의식하는 순간, 준길은 자기 몸을 차체에다 박쥐처럼 납작 붙여 버렸다. 자기의 존재를 감추고 상대자를 관찰하려는 것이다.
“음, 양복을 입고 중절모를 썼다?……”
처음에는 자기의 눈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혹시 착각이 아닌가고 생각한 준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착각은 아니었다. 그것은 백 초시의 아 들 영민임에 틀림이 없었다.
뚜우, 뚜우, 뚜우……
기차가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다음 순간, 준길은 홱 돌아서자 스름스름 다가오는 자기 찻간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갔다.
“오장!”
절반은 차를 쏟뜨리면서 찻간으로 뛰어들어간 준길이다.
“응……”
그러나 준길은 다음 말을 잇지 않는다.
“왜 그러는 거야?”
“히틀러의 ‘마인 캄프’를 읽고 있던 최달근이가 준길의 손에서 토병을 받아들고 종지에 한잔 따라 마시면서,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는 거야, 응?”
그때야 비로소 준길은 그 험상궂은 얼굴에 이상한 웃음을 히쭉하고 웃으면서,
“오장,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할까요?”
“재미있는 얘기?”
“네, 무척 재미있는 얘기!”
“옛말인가?”
“누가 그런 곰팡내 나는 얘길 합니까?” “그럼?……”
“흐, 흥……”
박준길은 또 한 번 이상한 웃음을 입가에 지었다.

2
“오장.” “응?”
“영민이가 말야요.” “영민이?……”
“그 영민이가 이번 졸업을 했을 텐데, 오장의 생각으로선 지원 을 했을 것 같습니까, 안 했을 것 같습니까?”
“안 하구야 견데 배기나?”
“왜 내빼는 수는 없는가요?”
“아, 그건 모르지만……”
“흐흐흥!”
“뭐가 흐흐흥이야?”
“그런데 오장께서는 이번 학병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다니?……”
“찬성이십니까?”
“아따 이 양반 보게. 찬성 안하고 헌병 노릇 해 먹을 수 있어? 내가 직접 가정 방문을 해서 지원을 시킨 게 몇 사람이나 되는 줄 알아? 무려 한 타스는 될 거네.”
“참 오장께서는 용하세요.”
“왜 또 갑자기 비행기야?”
“제가 말이에요. 제 친척이나 친구가 지원을 거부하고 내빼는 걸 보구두 슬쩍 눈을 감아 준다면 오장께서는 저를 어떡하시겠습니까?”
“당장에 이거지!”
하고 최달근은 손으로 제 모가지를 베어 보인다.
박준길이가 이러한 다짐을 받아 최달근을 꼼짝도 못하게 밧줄로 동여매 놓는 데는 이유가 있다. 5년 전 만주서 아편 장사를 하던 준길이와 관동군에서 일을 보던 최달근이가 우연히 합작을 하여 다소간의 돈을 잡은 후부터 오늘날까지 두 사람이 걸어나가는 인생의 길에는 별로 이렇다 할 의견의 충돌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 겨울 최달근이가 천일관에서 장일수를 살짝 빼돌린 백영민과 신성호를 그대로 놓아 줘 버린 후부터 준길은 최달근의 태도에 불만을 품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두 달 전 허운옥이를 놓쳐 버린 것이 아무리 생각하여도 준길이에게는 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최달근이가 자기 앞에서 쓰러진 것도 쓰러진 것이지만 금방 일어나서 따라 올라간 최달근이가 운옥의 그림자를 놓칠 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 최달근이가 운옥을 동정할 하등의 이유도 없을 것 같아서 준길이의 의혹은 다만 하나의 의혹대로 마음속 깊이 간직해 온 것이다.
어쨌든 지금 박준길은 최달근을 옴짝달싹 못하게 동여매 놓았 다. 동여매 놓고 준길은 비로소 영민의 이야기를 꺼냈다.
“오장, 심심한데 사냥이나 한번 해 볼까요?”
“사냥?”
최달근은 후딱 주위를 돌아다보면서,
“무슨 일이 생겼나?”
“술두 한잔 얼근히 걸친 김이니 어디 노루 사냥이나 한번 해 보지요.”
“노루가 어디 있어?”
“노루가 한 마리 1등 차 안에 앉아 있답니다.”
“뭔데?”
“학병 기피자! 두 주일 후에는 황송하옵게도 천황의 적자로서 출정하지 않으면 안 될 작자가 아주 멋진 신사 양복을 입고 1등 차 안에 호화롭게 앉아 있는 노루 한 마리! 어떻습니까? 식욕이 동하지 않습니까?”
“누군데? 아는 이야?”
“백영민!”
“누구?”
최달근은 놀란다.
“오장과 중학 동창인 백영민!”
“음……백, 영, 민!”
그 순간, 최달근의 눈초리가 그 어떤 격렬한 투지를 싣고 번쩍 빛났다. 빛나는 그 눈동자 앞에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가는 한 토막의 장면은―달빛 어린 부벽루 앞 마당에서 영민의 패에게 무참하게도 패해 버린 자기의 무기력이었으며 땅개 최달근의 불명예였다.
지나간 겨울 천일관에서 백영민과 신성호를 관대히 처분한 것을 준길은 나무랐다. 그러나 그것은 영민이나 신성호의 직접적인 죄과는 아니었고 단지 장일수와 동석을 했다는 데서 더 깊은 죄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영민의 입장은 그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지원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인지두 모르지 않는가?”
“천만에! 내 육감에는 틀림이 없지요! 두고 보면 알지만 자식이 평양역에서 내리지는 않을 거니까요.”
최달근도 실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물은 질문이었다. 신사복 을 입고 1등 차를 탔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였다.
“하여튼 절 한번 따라와 보시오. 그늘 밑에서 안식처랍시고 숨어 있는 노루 새끼의 모양을 한번 보아 둘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 말에 최달근도 따라 일어섰다.
“너무 가까이 가면 노루 새끼가 호닥닥 놀랄 테니까 먼 발로만 보기로 합시다.”
2등 차 한 칸을 더 지나고 조그만 차장실을 하나 지나서 두 사람은 마침내 1등 찻간 문 밖에 다다랐다.
준길은 손잡이를 돌려 문을 방싯 열었다. 방싯 열어 잡은 그 문틈으로 네 개의 눈동자가 사냥꾼의 그것처럼 살기를 띠고 번쩍 빛났다.

3
영민은 들고 있던 신문을 옆에 내려놓고 어둠이 총알처럼 흐르는 캄캄한 창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었다.
서울이 자꾸만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유경이가 호흡한 공기가 그 거리와 정반대로 그만큼 희박해지는 것 같아서 영민은 서글퍼지는 것이다.
“나의 의욕과는 정반대로 기차는 무신경하게도 자꾸만 달리는구나!” 자기의 욕망과 정반대로 자기의 몸이 움직인다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다.
“살아선 무엇하느냐? 유경일 이대로 서울 바닥에 혼자 남겨 두 고 갈 바엔 차라리 전장에 나가서 쓰러지는 편이 얼마나 마음 편한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영민의 생리를 형성하고 있는 감정의 몸부림일 따름이요, 그의 의욕과 지성까지를 포함시킨 영민의 전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결론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민은 유경을 내버려두고 탈주를 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 영민은 생명에 대한 애착보다도 무고한 사람에게 총부리를 내댐으로써 취해질, 자기의 가치 없는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관념이 더 한층 큰 것 같았다.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을 영민으로서는 도저히 취할 수가 없었다. 영민에게는 항시 자기의 행동을 옆에서 감시하는 또 하 나의 자기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강렬한 자의식이 항상 영민의 행동을 장작개비처럼 탄력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 이다.
콘사이스의 감상이 영민에게 없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영웅주의가 영민에게 결핍된 것이 아니다. 땅개의 출세주의가 영민에게 없는 것이 아니다. 허운옥의 순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영민에게는 그러한 모든 요소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 을 선택해서 취하고자 하는 가치 판단이 항상 자기의 의식 세계 속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간 백영민은 운옥의 순정을 버리고 유경의 지성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늘에 와서는 유경에게 대한 연연한 심정을 억제하고 좀더 커다란 가치 의식의 명령에 복종하여 국경을 탈출하려는 것이다.
그때 네 개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던 문이 홱 열리면서 차장이 뚜벅뚜벅 들어왔다.
“야나기 상, 야나기 게이가꾸 상 안 계십니까?”
하고 영민의 가명이 불려진다.
“아, 제가 야나깁니다.”
영민은 명상에서 깨어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봅니다.”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영민은 전보를 받았다.
차장은 전보를 내주고는 다시금 네 개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는 문으로 나가 버렸다.
“오 선생께서 갑자기 무슨 전볼까?……”
유경학이라는 가명을 알고 있는 것은 오창윤 씨밖에 없었다.
“―평양에 도착할 때까지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말라. 오―”
영민은 후딱 전보문에서 머리를 들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평양에 도착할 때까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거라―바꾸어 말하면 그 말인데……그러니까 또 한 번 바꾸어 말하면 자리를 비우면 이롭지 못하다는 말이 아닌가! 음……”
영민은 머리를 돌려 휘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평양을 지나면 그 이롭지 못한 것―다시 말하면 그 어떤 위험이 사라진다는 뜻인데……가만 있자!”
영민은 전보를 친 시간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자기가 경성역 을 떠난 지 약 10분 후의 일이었다.
“그러면 그 동안에 그 어떤 돌발적인 위험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연을 구체적으로 쓰지 못하고 이처럼 추상적으로 쓴 것은?……”
그 순간, 영민은 그 어떤 강력한 권력을 가진 한 개의 위험이 자기 신변에 절박한 사실을 충분히 알아차렸다.
그때까지 방싯 열렸던 도어가 가만히 닫히면서, 박준길과 최달 근은 바로 자기 등 뒤에 달린 차장실로 들어갔다.
박준길은 자기의 신분증명서를 차장에게 내보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오.”
“아, 그러십니까?”
차장은 굽실하였다.
“인제 그 전보를 받는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지요?”
“야나기 게이가꾸 상입니다.”
“야나기 게이가꾸! 흥, 백 초시 영감이 언제 창씨를 했었던가?
……흐흐흥……”
준길은 회심의 미소를 최달근에게 싱긋이 웃어 보였다.
“탑골동에서 창씨를 안 한 건 백 초시 고집쟁이 한 사람뿐인 걸 오장은 모르시겠지요.”
“음……”
“야로오(자식), 변성명을 하면 무사히 빠져나갈 줄 알구?…… 흥, 잘 안 될걸!”
전보를 칠 때 잘 하노라고 사용한 변성명이 이처럼 도리어 영민의 입장을 불리하제 만들 줄을 전연 몰랐던 오창윤이가 아니었던가.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청춘극장’5부작 완간

건국 60주년 기념출판 특선 5부작 대하소설 : 파란 만장한 우리 수난사
언제나 다시 새로운 ‘청춘극장’―건국 60주년과 때를 같이하여 새롭게 태어났다.

‘청춘극장’ 제3부 ‘민족의 비극’ : 파란 만장한 우리 수난사
파란만장한 민족 수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 끓는 청춘 남녀의 뜨거운 정열과 우리의 장렬한 독립운동이 교차하는 일대 민족 서사시요 희비 쌍곡선의 인생드라마.

‘청춘극장’에 대하여

‘청춘극장’은 우리 나라 광복 전후의 파란만장한 현실상을 파노라마같이 핍진한 필치로 보여 주는 그림 같은 소설이다. 일제 말기의 청춘 남녀의 애정과 독립투쟁 양상 등을 다루었다. 그리고 추리소설에서 익힌 치밀한 구성력과 대중적 흥미를 융합하였다.
꿈 많은 대통령 장일수, 꼬마신랑 백영민, 콘사이스 신성호 등 삼총사를 세로축으로 하고 땅개 최달근, 애꾸눈이 박준길과 허운옥, 오유경, 박춘심, 나미에 등 개성이 다른 여인들을 가로축으로 등장인물의 변화 무상한 활약상을 통하여 흥미진진하게 엮어 간 애정소설이요 사회소설이기도 하다.
‘청춘극장’은 신문에 연재 당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밤을 새워 읽게 하고, 독자들을 울리고 웃긴 명편 인기소설이며, 지금도 지속적인 재미를 지니고 있다.
‘청춘극장’은 김진규, 김지미, 황정순, 최무룡, 이민자, 김동원, 장동휘, 윤정희, 김희라, 신영일, 김창숙 등 화려한 인기배우들이 기라성같이 출연한 스펙터클 영화로도 여러 차례 제작, 상영되어 관객들의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청춘극장’은 1949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구 ‘한국일보’에 연재되었고, 이해 11월에 1, 2부가 단행본으로 청운사(靑雲社)에서 간행되었다.
‘청춘극장’은 1953년에 전5부작이 단행본으로 처음 간행된 이래 거의 10년마다 다시 간행되어, 시대를 초월하여 그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관심과 호응이 지속되는 유별난 작품이다.
이번 특선 5부작 ‘청춘극장’은 원전을 다시 발굴하여, 현대적 편집과 제작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신판 ‘청춘극장’이다.
‘청춘극장’은 추리소설과 대중소설과 본격소설이 아울러 잘 조화를 이룬 보기 드문 5부작 장편소설이다. 또 요즈음 말하는 대하소설의 원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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