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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태도, 여행의 태도를 생각한다
자신만의 쪽빛을 찾아 10여 년간 동아시아를 돌아다닌 한 염색가의 여행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 업으로 삼은 것을 깊이 사랑하는 삶의 태도가 짙은 감흥을 전해오는 책이다. 사람과 색과 풍경을 만나가는 여행의 태도도, 그 순간을 기록하는 문장의 호흡과 온도도 너무나 멋진 책.
2016.08.09.
에세이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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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푸른색의 바다 구이저우로 첸둥난의 고개를 넘다 푸른색의 마을 화포를 만나다 색 위에 빛을 얹다 닭발나무 축제 먀오왕의 마을 흔들리는 푸른 꽃 펑황고성 염장染匠 유대포 몽족을 만나다 몽족의 푸른 기억 화포보다 아름다운 잃어버린 낙원 삶은 섞인다 안녕하세요 백 개의 주름이 진 치마 춤을 추다 개구리 무앙싱에서 아! 몽족 복사꽃 승냥이들 설 몽족 여인 쟈 국경을 넘는 일 화포의 그림자 사오싱, 화포의 그림자 항저우 우전 양저우 화이안 랑산 난퉁 창 강을 건너다 원저우, 이야기를 물들이다 춤을 물들이다 조선의 통신사, 화포를 기록하다 시모무라 도루 노렌을 산책하다 시보리 장인 다케다 고조 공동체를 꿈꾸다 나라의 시보리 쪽의 고향, 도쿠시마 아와오도리, 춤을 물들이다 순례의 길 나가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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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무명에 처음 푸른색이 스며들던 순간을 기억한다. 색도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올과 올 사이를 밀물처럼 파고들던 색의 움직임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올과 색소의 결합은 마치 흰색과 푸른색의 강렬한 소용돌이처럼 짜릿했다. 격한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도 보였다. 항아리 속을 떠돌던 푸른색은 천을 만나 비로소 온전한 자신의 자리를 얻었다.
--- pp.6~7 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산의 파도로 넘치는 바다다. 길은 산 능선을 따라 굽이친다. 구절양장의 길은 산속 마을을 지나고 머리를 틀어 올린 여자가 쪽마루만 한 논바닥에 괭이를 박는다. 버스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뱀처럼 산허리를 감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한참을 돌아 올라선 산마루 앞에 다시 산을 감고 회오리치는 길이 나타난다. 지나온 길인지 나아갈 길인지도 알지 못하겠다. 현기증이 인다. 가파른 능선에 검은 마을들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여러 번, 드디어 저 멀리 강물이 햇살 아래 반짝인다. 한 마리 커다란 은빛 뱀 같다. 두류 강(都柳江)이라고 했다. 드디어 먀오족의 땅으로 들어선 것이다. --- p.26 “이 색과 빛은 어디서 온 거라니” “보름달이 떠오른 웨량 산月亮山 밤하늘의 색!” 뜻밖의 대답이었지만 생각해보니 그것만큼 적당한 비유도 없지 싶었다. 보름달이 떠오른 밤하늘에는 색과 빛이 모두 있었다. 그걸 천 위로 옮겨 왔다는 말에는 어쩌면 나 같은 이방인은 짐작하기 어려운 이들만의 사연이 있을 법도 했다. 웨량 산은 며칠 전 지나온 두류 강 수계의 서쪽에 있었다. 그러니까 과장을 보태서 말하면 바사 마을의 먼 뒷산이기도 했다. 산 이름이 이미 ‘달빛 산’이었다. 짙푸른 쪽색 바탕에 여린 자주색을 얹고 그 위에 은은한 달빛을 입힌 것이 바로 양포였던 것이다. 짙고 푸른 밤하늘에 담긴 크고 밝은 보름달을 지상으로 옮겨 오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 pp.48~49 고장절을 치르는 마을은 일종의 먀오족들의 연합체였다. 그 마을들이 돌아가며 13년마다 축제를 받았다. 조상을 기리는 제례이기도 했다. 의식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소를 잡았고 찹쌀떡을 쪘고 그 위에 말린 물고기를 올렸다. 수소 뿔로 만든 잔에는 미주를 담았고 암소 뿔에는 단술을 담았다. 옆에 작은 나무 의자를 놓고 새로 지어 쪽으로 물들인 옷을 올려놓았다. 조상님께 바치는 것이다. 고장절이 열리면 외지로 나가 사는 사람들도 마을로 돌아왔다. 반드시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어둠이 내리면 마을 문을 닫아걸었다. 고장절 기간에는 누구도 마을을 나갈 수 없었다. 마을에서는 참가한 모든 사람에게 고루 음식을 나누었다. 특별히 소의 내장을 먹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조상을 생각했다. --- p.66 조부는 한족이었지만 심종문에게도 먀오족의 피가 흘렀다. 이곳 펑황은 원래 이 지역의 토족 세력과 먀오족의 땅이었다. 조모는 먀오족이었고 토족 여인을 어머니로 둔 탓이었다. 이곳 펑황 사람들은 아직도 스스로를 후난 성이 아닌 샹시湘西 사람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후난 성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샹 강湘江의 서쪽 지역이라는 말이다. 이들에게서는 스스로를 강의 동쪽과는 다른 민족이라는, 그래서 전통도 문화도 다르다는 어떤 묘한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다. 그렇게 심종문은 여러 다른 문화가 섞인 이 지역에서, 가정에서 성장했고 그것을 토대로 소설 『변성』을 썼다. 소설의 배경을 묘사하는 부분에 그는 지극히 토속적이고 지역적인 정서를 담았다. 그는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담는 데 공을 들였다. 그 묘사에서도 화포에 관련된 장면이 빠지지 않았다. --- p.79 윈난 성(雲南省) 다리(大理)의 거리에는 이제 봄바람이 분다. 아직 잎을 달지 않은 가지에 매달린 분홍빛 꽃봉오리와 그새 참을성 없이 성급하게 잎을 열어버린 대책 없는 꽃들이 거리의 풍경을 바꾸어가는 중이다. 미세한 계절의 변화를 눈이 아닌 몸으로 먼저 알아듣는 자들이 있어서 청춘이라 부른다. 생의 충동은 나무나 사람이나 매일반이다. 어디선가 흡사 비명과 같은 웃음소리가 날카롭게 울리고 누군가는 달아나고 누군가는 쫓는다. 쫓는 자나 달아나는 자나 모두 몸도 발걸음도 가벼운 청춘들이다. 봄은 어디서나 젊음을 환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생 최고의 날은 언제나 순간이고 오늘일 뿐 그 갈급함이 꽃이 되고 청춘으로 눈부시다. 그래서 봄이 온다. 다리든 어디든 봄이 오는 길목은 숨이 가쁘다. --- p.88 ‘강남’은 대략 창 강(長江)의 중하류 일대를 말한다. 저장 성(浙江省)과 안후이 성(安徽省) 그리고 장쑤 성(江蘇省)이 그 중심 지역이다. 현재의 상황과는 좀 다르지만 이 지역은 오래도록 중국 남부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였다. 농토가 넓고 비옥해서 물산이 풍부했고 인구도 많았다. 도시화도 빨랐고 상업도 일찍부터 발달했다. 인염화포가 태어나고 발전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했던 셈이다. 그러한 물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조건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교통이다. 상업지역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은 도로를 통해 생성되고 또 퇴락한다. 근대 이전 이곳 강남과 수도 베이징을 잇는 가장 중요한 길은 바로 ‘경항(京杭)대운하’라 부르는 인공의 수로였다. 운하를 따라 도시가 생겨났고 화포가 만들어졌다. 강남에서 화포의 무늬들은 비로소 적극적인 욕망의 형태로 나타났다. --- p.209 루쉰은 문장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내겐 그의 미술과 관련된 행적이 아무래도 먼저였다. 그중 하나가 책이었다. 스스로도 그림에 소질이 있어 자신의 책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특히 관심을 기울인 것은 표지를 장식하던 서체와 그림이었다. 붓글씨 일색이던 서체와 그림은 루쉰으로 인해 현대 디자인적인 요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체뿐만 아니라 표지의 도안과 색에도 변화가 생긴다. 서체든 색이든 한결 경쾌하고 발랄해 도시적인 감성이 물씬 묻어났다. 이전과는 다른 시각과 감성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 pp.211~213 화이안을 지나는 강은 화이허(淮河)다. 북쪽의 황허와 남쪽의 창 강 사이에 화이허가 있다. 강남의 귤이 강을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그 강이 화이허다. 화이허는 창 강과 황허 사이에서 조용하다. 창 강이나 황허처럼 가파르게 물길을 바꾸지도 않았다. 두 거대한 강 사이에 마치 넙치처럼 엎드려 있다. 화이허의 본류로 모여드는 지류의 물길은 살을 발라놓은 가시처럼 일정하고 규칙적이다. 그렇게 모여든 강물은 바다로 달리지 못하고 훙쩌 호(洪澤湖)에 모여 잠시 숨을 골랐다. 훙쩌 호는 말하자면 넙치의 위나 아가미처럼 보였다. 호수가 차올라 물은 길을 만들어야 했지만 거칠 것 없는 너른 평야에서 물은 방향을 잡지 못했다. 강물은 흐르지 못하고 뒷물에 밀려 들판으로 흩어졌다. 바다로 흐르지 못한 물은 흩어져 수로로 스미거나 운하의 물길에 보태져 강물로서의 생을 마감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 화이허는 들판을 서성이고 있었다. --- pp.240~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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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쪽빛을 찾아 동아시아를 돌아다닌 염색가
이 한 권의 여행을 통해 ‘푸른 바다’를 마신다 저자 신상웅은 염색가다. 어린 시절부터 색에 취해 미술대학을 나왔고 대학생 때부터 벌교의 염색 공방을 드나들다가 졸업 후 아예 고향 괴산에 눌러앉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염색 일을 해왔다. 그의 주 종목은 푸른색, 그중에서도 ‘인디고 블루’라 불리는 짙은 푸른색이다. 자연염료인 ‘쪽’을 길러 수확하고 그 색을 천으로 옮기는데, 그의 손에 쪽물이 짙게 배어갈 즈음 시시각각 천차만별인 푸른색들을 보며 그는 의문에 빠졌다. 쪽에서 풀려나온 색소들은 물을 들이는 횟수와 천의 두께 혹은 내가 가늠하기 어려운 다른 조건들에 의해서 저마다의 푸른색으로 살아났다.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그 차이를 실감하기 어려웠지만 한곳에 모아놓고 나면 같은 것이 없었다. 저 푸른 것들 사이에 다른 누군가 쪽물을 들인 천을 섞어놓는다면 내 것이 아닌 것을 골라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멈칫했다. 어림없었다. (…) 내 손으로 물을 들인 것이 분명한데도 내 것이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는 산모가 아니라 산파인 셈이었다. -「들어가며」에서 그가 안다고 생각하던 푸른색은 없었다. 그만의 푸른색은 없었다. 모아놓고 보면 자신이 뽑아낸 색조차 가려내기 힘드니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요컨대 색이란 본래 자연의 것이고, 그는 산파나 영매처럼 색을 받아낼 뿐이었다. 그는 염색가로서 자신의 고유한 색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화포, 즉 ‘짙은 남빛에 흰무늬를 박은 무명’을 알게 되었다. 흰무늬, 그것은 천에 자신의 의견을 남기는 것과 같았다. 물을 들일 부분과 들이지 않을 부분을 아는 것은 곧 자기 색을 갖는 일이었고 장인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 뒤로 그는 동아시아의 화포들을 찾아다녔다. 장인들의 숨결을 보고 듣고 느끼며 그만의 색을 찾으려는 여정이었다. 『쪽빛으로 난 길』은 염색가 신상웅이 10여 년간 중국, 태국, 베트남, 라오스, 일본 등을 돌며 그 지역의 염색과 민족과 문화와 일상을 두루 관찰한, 목적이 분명한 기행서다. 어느 날 연암의 아들 박종채가 쓴 『과정록』에서 연암의 화포에 관한 언급을 발견하고 떠날 채비를 하게 된 이 여행은, 합성염료와 공장이 들어서면서 나날이 자취를 감춰가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전통 화포의 흔적을 쫓는 여정이 주축이다. 중국의 거대한 산과 강과 평야를 건너 베트남으로, 라오스로 또 일본 교토로 걸음을 옮기는 사이, 저자는 여러 소수민족과 장인들을 만나며 전통과 현대, 그 정서와 변화하는 세월을 엿본다. 염료, 공기, 햇빛의 조화에 따라 매번 다르게 물드는 무명처럼 『쪽빛으로 난 길』은 사람과 장소의 검질긴 교감을 다룬 여행기로서, 화포를 쫓는 추리물로서, 그리고 여러 민족의 일상과 역사를 담은 민족지로서 다채로운 읽기 경험을 선사한다. ‘화포와의 인연’들을 녹인 이 책은 꿈틀거리며 압도하는 인류의 오래된 기억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 안속에서 지워져 없어진 ‘푸른 바다’를 이 한 권의 여행을 통해 마실 수 있다니 벌써부터 속이 특별해진다. -이병률(시인) 쪽물로 들인 푸른색이 바래기 전에 중국-베트남-라오스, 소수민족의 삶을 따라서 『쪽빛으로 난 길』은 크게 네 개의 여정으로 이루어졌다. 그중 1부 「푸른색의 바다」와 2부 「몽족의 푸른 기억」은 중국 소수민족인 먀오족과 먀오족에서 파생한 것으로 짐작되는 몽족의 푸른색, 화포,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언젠가 저자는 장샤오숭의 『민초들의 노래草根絶唱』라는 책을 접한다. 그 책에는 먀오족이 아직도 진한 쪽물을 들인, 흰무늬를 박은 푸른 천으로 옷을 지어 입으며 구이저우 성, 윈난 성, 후난 성 등에 퍼져 산다고 쓰여 있었다. 시골 오지까지 근대화가 밀려와 전통 염색이 거의 모습을 감춘 지금, 저자는 화포가 일상인 먀오족의 삶을 더 늦기 전에 눈에 담아 와야 했다. 이곳의 먀오족은 지금도 여전히 쪽을 심어 물을 들이고 그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고 했다. 게다가 화포라니……. 공예가나 몇몇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벼를 키워 쌀밥을 먹듯 일상 속에 푸른 쪽 염색과 화포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그것이 가능한 삶이란 어떤 것일지 상상조차 어려웠다. -23쪽 레이궁 산을 넘고 두류 강을 건너 첸둥난의 먀오족 마을에 닿은 저자는 “웨량 산 밤하늘의 색”을 옮겼다는 먀오족의 화포를 만나지만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버스와 택시에 올라 중국의 넓고 굴곡진 땅덩이를 이동하는 육체도 고되지만, 첸둥난에서도 그리고 내친김에 찾은 후난 성의 펑황고성에서도 먀오족의 수난의 역사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먀오족은 중원의 세력에 대항해 수없이 반란을 일으켰다. 명나라 중기에 먀오족은 또 다른 소수민족인 야오족瑤族과 합세해 구이저우 성과 광둥 성 일대까지 세력을 넓힌다. 하지만 몇 년 뒤 명나라가 보낸 몽골의 기마병과 군사 들에게 패하고 만다. 이 지역에 진군한 명의 군대는 그들에게 대항한 먀오족과 야오족은 물론 토착 세력까지 무참히 도륙한다. 포로로 붙잡힌 수천의 먀오족 소년들은 거세되어 명 황실의 노예가 되었고 토벌에 참가한 병사들은 땅을 하사받고 이 지역에 정착했다. 먀오족 여자들은 그들과 강제로 결혼해야 했다. -75쪽 이런 수난들 속에서도 먀오족의 어떤 이들은 그 자리에 남아 끈질긴 생명력으로 고유한 염색 문화를 이어가고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은 국경을 넘어 더 남쪽으로 안정된 삶을 찾아 떠났다는 소문을 남겼다. 저자는 그들을 찾아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중국 윈난 성의 창 산과 란창 강을 건너 태국과 라오스와 베트남으로, 흙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와 마약왕이 살았던 마을과 도시 자체가 하나의 사원인 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사람들에 섞여든다. 이 모든 게 먀오족에서 몽족으로 이어지는 전통과 거기 서린 희로애락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오직 푸른색과 흰 문양 때문에 촉발된 저자의 여행은, 이렇게 소수민족의 삶과 섞이며 은은하고 그윽해져갔다. 타인들의 삶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무리하게 보정하지 않고, 함께 사귀고 마시고 대화하며 날것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최부와 조선통신사가 걸었던 중국과 일본 책과 염색과 역사가 어우러진 그 길 조선의 관리였던 최부는 1488년 정월 제주도에서 부친의 부음을 듣고 고향인 나주로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 표류한다. 그와 마흔두 명의 사람이 배에 타고 있었다. (…) 밀감 쉰 개와 청주가 동이 나자 마른 쌀과 오줌을 받아 먹으며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정처 없이 파도에 떠밀리던 바다에서 ‘긴 기와집 행랑’ 같은 고래를 보기도 했다. 최부가 중국에 표류하여 우여곡절 끝에 조선에 도착하기까지 6개월간의 기록이 『표해록』이다. -210쪽 저자는 전통과 단절되지 않았던 시대의 진짜 화포에 여전히 목이 말랐고, 그래서 다시 중국을 찾았다. 염색은 물길 주변에서 성했다. 저자는 3부 「화포의 그림자」에서 ‘경항대운하’가 있는, 일찍부터 교통과 상업이 발달했던 중국 저장 성의 사오싱에서 다시 여행을 시작한다. 사오싱은 루쉰의 고향이며 조선의 관리였던 최부가 바다에서 표류하다 밟은 땅이다. 저자에게는 최부가 쓴 표류일지 『표해록』보다 더 참고가 되는 것이 없었다. 저자는 『표해록』의 여정을 따라 저장 성의 물류가 모여들던 항저우, 창 강과 대운하가 교차하며 부유한 염상들이 문화예술을 부흥시켰던 양저우, 북쪽 황허 강과 남쪽 창 강 사이에 넙치처럼 엎드린 화이안, 그리고 랑산, 난퉁, 원저우 등을 끊임없이 옮겨 다닌다. 화포와 『표해록』과 즉흥적인 만남들이 뒤섞인 기행 속에서 저자의 세상은 넓어지고 색은 더욱 깊어갔다. 전통과 관습 전에 삶이 있음을 여행 속에서 알아갔다. 푸른색이든 화포든 누군가의 손에 의해 이리저리 옮겨 갈 것이고 다시 누군가의 손에 의해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다. 최부는 청천벽력 같은 바다의 풍랑을 만나 낯선 땅으로 흘러들었고 그 길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적어 조선에 전했다. 그렇게 이곳의 것들이 저곳으로 번져갔고 저곳의 다른 것들이 또 다른 세상으로 흩어졌다. 그것들이 굳어버린 관습에 어떤 균열을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잡탕의 혼돈과 무질서가 겨우 내가 믿는 것들이었다. -277쪽 4부 「춤을 물들이다」는 일본 교토의 장인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다. 저자를 일본으로 떠나게 만든 것은 조선통신사 서기들의 기록이 실린 『해행총재』. “곳곳에 깃발이 바람에 어지러이 날리는 것을 물어보니 술집과 염색집이라 한다”던 그 기록에 저자는 뛰는 마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길로 저자는 조선통신사가 걸었던 교토부터 나고야, 나라, 그리고 일본 최대의 염료 생산지였던 도쿠시마 등을 돌았다. 그리고 일본의 고유한 거리와 사람과 축제, 대중교통과 료칸과 스치는 인연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 섬세하게 기록했다. 어쩌면 고유한 색이란, 스스로 실올이 되어 세상이라는 염료를 “격한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빨아들인 뒤에야 얻어지는 것이리라고, 저자는 쪽빛처럼 아스라한 여정을 통해 이야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