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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01. 샤넬, 사랑을 하다 02. 샤넬, 패션왕국을 세우다 03. 샤넬, 전설이 되다 옮긴이의 글 |
Megan H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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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을 다른 디자이너와 차별화시킨 것은 그녀의 순수한 의지와 독창성이었다. 이 두 가지 덕분에 그녀는 미래의 희망을 굳건히 믿고 거기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코코의 디자인과 인생과 사랑은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안 된다’는 답을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자신의 길을 막는 여러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믿으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 p.6「머리말」중에서 “패션은 옷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패션은 아이디어, 즉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 pp.92-93「02. 샤넬, 패션왕국을 세우다」중에서 “이 책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부분은 샤넬이 추구했던 패션의 방향이다. 샤넬은 모자 가게를 시작했던 초창기부터 여성의 사회활동에 적합한 단순하고 활동적인 디자인에 주목했고, 남성용 스포츠 의류의 디자인과 옷감을 과감하게 여성 의류에 적용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어나던 시대 상황을 적극 고려한 샤넬의 발 빠른 행보,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일 때의 탁월한 마케팅 능력은 남성이 주도했던 패션계를 샤넬이 어떻게 수십 년 동안 지배할 수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그 어떤 디자인보다도, 종아리를 반쯤 덮는 길이의 치마와 치렁치렁한 진주목걸이를 걸친 채 담배를 물고 옷을 가봉하는 짧은 머리의 샤넬 자신이, 여성스러움에 갇히지 않고 활동적이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은 현대 여성의 전형이자 샤넬의 패션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p.206「옮긴이의 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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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의 삶과 사랑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어린 시절은 참으로 불행했다. 사생아로 태어난 샤넬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맡겨져 궁핍한 생활을 했다. 바느질에 타고난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샤넬은 고아원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생존 기술을 터득했다. 수녀원의 삶은 지루하고 비참했지만 흰색 블라우스와 검은 주름치마로 대표되는 수녀원의 엄격한 의복은 훗날 그녀를 상징하는 패션의 실루엣이 되었다. 어린 날 겪었던 어려움이 카페 가수로 시작해 모자 제작자로, 그리고 마침내 패션 디자이너라는 혁신적인 길을 추구하도록 샤넬에게 영감을 준 것이다. 타고난 미모와 재능 덕분에 그녀는 에티엔 발장, 아서 카펠,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공작 등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눴으며, 장 콕토, 디아길레프,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스트라빈스키, 처칠 같은 20세기 가장 유명한 인물들과도 각별한 우정을 나눴다. 드라마틱한 삶을 산 코코 샤넬의 과거는 비록 불행했을지 모르지만 독보적인 패션 브랜드의 트레이드마크로 영원히 기억되는 한 디자이너로서의 삶은 행복했을 것이다. 코코 샤넬의 패선 브랜드 코코 샤넬은 혁신적인 콘셉트로 여성들을 짓누르던 과거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불필요하게 화려하고 무거웠던 모자 장식들을 없애고, 코르셋과 레이스와 주름 장식이 주를 이루던 치마에 남성 의류의 스포츠웨어 기능성을 가미해 여성들을 위한 승마용 바지를 만들었다. 당시 그녀의 디자인은 거침없을 정도로 혁명적이었다. 여성용 바지를 디자인한 선구자였던 샤넬은 검은 드레스를 상복에서 야회복으로 변모시켰으며, 스포츠웨어에만 사용되던 저지로 호사스러운 드레스를 만들었다. 그녀의 편안하면서도 우아한 미의 기준은 수십 년 동안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은 샤넬이라는 브랜드와 동의어로 여겨지는 샤넬의 말괄량이 실루엣과 짧은 치마 길이는 당시 여성이 코르셋을 버리고 현대적 경향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샤넬은 여성을 위한 디자인을 했던 디자이너로, 여성의 달라진 사회적 역할을 반영하는 의상을 세상에 내놓았다. 트위드 원단과 흑백의 색조, 황금 체인과 퀼트 가죽, 그리고 서로 맞물린 C자 로고 등 샤넬만의 고유한 상징은 오늘날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그녀가 패션계에 미친 영향력과 천재적인 능력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코코 샤넬의 전설 코코 샤넬은 1971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명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샤넬하우스는 필리프 기부르주의 지휘 아래 계속해서 오트 쿠튀르 의상을 제작했고, 1978년에는 처음으로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출시했다. 칼 라거펠트는 1983년에 샤넬을 맡은 이후 혁신을 단행했고 샤넬하우스는 패션 사업의 선두를 지켜왔다. 이 창의적인 디렉터는 창고를 샅샅이 뒤져 샤넬이 선도했던 고전적 의상들을 부활시켰다. 트위드 재킷부터 리틀 블랙 드레스까지 샤넬만의 고유한 제품들은 새로운 세대에 신분의 상징이 된 진주목걸이와 퀼드 핸드백 등 샤넬의 아이콘과도 같은 장신구들과 함께 여전히 주요 상품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샤넬은 남녀 의상과 향수, 화장품과 보석류를 대표하는 화려한 제국이다. 코코 샤넬은 여전히 패션계의 거물로 남아 있으며 실패가 없는 스타일의 사례로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다. 샤넬은 다음과 같은 말로 현대 여성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패션은 사라진다. 영원한 것은 스타일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