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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고전 시리즈’에 붙이는 글| 블레이즈 파스칼 | 생애와 연표(1623-1662)
머리말 오스 기니스 | 파스칼의 회심 증언 팡세. 기독교 변증론으로 재배열되고 발췌된 내용 1. 머리말 Part Ⅰ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함 2. 인간의 자연 상태 3. 인간의 불행한 상태 4. 인간의 권태 5. 이성적으로 사는 사람 6. 인간의 위대한 위엄 7. 인간의 모순 8. 인간적인 기분전환 9. 철학자들의 행복 탐구 10. 최고선을 향한 탐구 Part Ⅱ인간 주도적인 사유 11. 머리말: 인간의 모순성에 관하여 12. 이성은 그 자체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인정함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13. 복종: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는 방법 Part Ⅲ하나님의 주도권 14. 인간적인 지식으로부터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의 전환 15. 인간본성의 부패성 16. 다른 종교들의 허위성 17. 참 종교를 매력적이게 하는 것 18. 신앙의 기초와 반론에 대한 답변 19. 구약 율법의 상징적인 의미 20. 랍비 문헌 21. 영속성, 또는 기독교 신앙의 지속적인 원칙 22. 모세의 증거 23.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 24. 성경의 예언 25. 특징적인 예언 형태 26. 기독교 윤리 27. 결론 팡세와 다른 명언 속의 금언들 파스칼의 기도 부록 1 : 시골 친구에게 쓴 편지들 Letter 1. A. 아르노를 질책하기 위한 소르본 대학 신학자들의 논의와 관련한 언급들 Letter 2. 충분한 은혜라는 주제에 관해 Letter 4. 실제적인 은혜와 무지의 죄에 관하여 Letter 5. 새로운 윤리학을 세운 예수회의 동기 Letter 10. 고해성사에 관한 예수회 측의 안이한 편의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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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즈 파스칼(1623-1662)은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후에 가족 모두 파리로 이사했다. 재기 넘치는 지성을 타고 났지만 평생 동안 건강은 극도로 약했다. 아르키메데스의 뒤를 이은 매우 탁월한 수학자이며, 물리학자, 철학자이면서 신앙심도 깊은 사람이었다. 수학 이론을 만들고, 물리학적으로 진공 상태를 연구하여 발견하였다. 유럽의 많은 훌륭한 과학자들과 대담을 나누던 사람이다.
1654년 11월 23일 밤에, 요한복음 17장을 읽던 중에 그는 황홀경을 체험했다. 신비하게도, 공허했던 그의 삶이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해졌다. 그 황홀경이 희미해지기 시작할 때, 그는 재빨리 종이를 찾아 “기념”으로 글을 남겼다(이 선집의 서두에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적은 양피지를 그의 재킷 안감에다 꿰매어 붙였다. 그 이후로 8년 후에 그가 죽기 전까지 그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그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날 밤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누구에게도, 심지어 여동생 자클린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파스칼은 기독교 변증서를 쓰기 시작했다. 1657년과 1658년에는, 제법 많은 분량의 원고를 완성했다. 이를 21개 묶음으로 추려낸 것이 ‘팡세’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는 줄곧 병마에 시달렸다. 그 병마는 24세 이후로 그의 짧은 일생을 계속 따라다녔다. 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 그는 몹시 쇠약했고, 1660년쯤에 본 선집의 결론부에 해당하는 “질병 선용을 위한 기도”를 썼다. ‘팡세’가 기록된 것은 그의 짧은 생애의 마지막 8년 동안이었다. 파스칼은 이성만으로 모든 실재를 이해할 순 없다는 것을 분명히 자각했다. 지식으로는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전체인 양 가장된 것으로써 전체를 대체할 수 있을 뿐이다. 파스칼의 고독한 용기는 병마와의 오랜 투쟁과 자신의 요절을 점차 짐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아기 때에 병에 걸려 죽을 뻔했고 성장 과정에서도 늘 병약했던 파스칼은 일평생 질병에 시달렸다. 그의 누이 질베르트의 기록에 의하면, “18세 이후로 단 하루도 고통 없이 지나간 적이 없었다고 이따금 그가 말하곤 했다.”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는 모습은 “자신의 삶 속에서 질병을 적절히 활용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그 내용은 본 선집의 끝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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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지성, 파스칼의 생애 마지막 8년간의 산물!
그의 마지막 고백은 기념비적인 기독교 신앙 변론이었다!! 파스칼은 어렸을 적의 조숙함으로 늘 교만이 그를 따라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겸손했다. 그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지 못하게 했고 자신의 묘지에 비문을 새기지 못하게 했다. (그의 누이의 말을 빌자면) 그에게는 “명성을 얻으려는 열정이 전혀 없었다.” 자신의 수학적 재능을 이용하여 돈을 벌려는 마음도 없었다. 파스칼이 죽을 때 그의 손에는 종이쪽지가 들려 있었다. 그가 자주 읽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그 글의 일부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누군가가 내게 애착을 갖는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결국 내게 실망하고 말 것이다. 내게는 그들을 만족시킬 만한 것이 없다.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즉 그들의 선망의 대상도 사라질 것이다.” 파스칼의 변증론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특징은 그것을 위해 파스칼이 쏟아 부은 담대한 헌신이다. 종종 사람들은 팡세가 미완성품임을 잊는다. 팡세는 ‘기독교를 위한 변론’의 스케치일 뿐이다. 아쉽게도 마감되지 못한, 기념비적인 기독교 신앙 변론이다. 먼저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뿌아뚜의 8인들”을 염두에 두고서, 글의 윤곽을 잡은 후에, 마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포로수용소에서 글을 썼듯이, 빠른 속도로 메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