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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제1막_오십 번지 서쪽 제2막_라오서와 라오마 제3막_멍지앙뉘와 지앙 총재 제4막_라오마와 사회자 제5막_자애로운 어머니의 눈물 제6막_모방은 우수하다 제7막_변론대회 제8막_돌아온 라오마 제9막_색채 제10막_오십 번지 서쪽 옮긴이 해설 |
劉震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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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깁던 라오마, 돼지 잡던 백정 라오서, 지본가 라오지앙, 만리장성에서 통곡하는 멍지앙뉘, 목욕탕의 라오펑, 천하에 명성이 가득한 여자 앵커, 온갖 풍미가 있는 백골정, 배추 파는 샤오빠이, 가라오케 접대부 샤오스, 때밀이 라오양, 넝마주이 라오후가 다들 친인척이 아닌가. 지금 당신들은 흡사 담장 위의 육체와 그림자처럼 협조하지 않고 있는데, 비록 우리가 몇백 년간 헤어져 있긴 했지만 일체의 지난 일들이 역력하게 눈앞에 떠오르자 마치 어제 일인 듯하다. 나중에는 비록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것에서 농아가 되고 농아에서부터 의리도 없고 인정도 없는 존재가 되더니 의리도 인정도 없는 존재가 목재가 되고, 목재는 너덜너덜 썩어 문드러진 목재가 되더니 썩어 문드러진 목재는 폐품과 쓰레기가 되어서 넝마가 되고, 폐품과 쓰레기에서 멍청한 원숭이가 되고, 멍청한 원숭이는 멍청한 닭이 되더니 연달아 또 멍청한 닭에서 파리가 되더니 곧바로 마치 방금 전에 담장 위에서 바람직하지 못하게 암살되어버린 것처럼 현재 당신들은 지상의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원인을 찾을 수 없어 이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것이 장차 널리 확산되어나가려 했으나 점화가 되지 않고 있는데, 점화되지 않으면 다른 하나의 오십 번지 서쪽은 뿌옇게 된 대지에서 진정 깨끗한 신생(新生)을 얻을 수가 없게 된다.
--- p.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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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라오마(老馬): 신발 수선공. 라오서(老社): 정육점에서 고기 파는 자. 라오지앙(老蔣): 지본가(知本家). 지식으로 돈을 벌고 출세한 자. 멍지앙뉘(孟姜女): 통곡으로 만리장성을 무너뜨린 여자. 라오펑(老馮): 목욕탕 주인. 여사회자(女主持人): 텔레비전 앵커. 샤오스(小石): 가라오케 접대부. 샤오빠이(小白): 배추 파는 자. 라오꾸어(老郭): 변변찮은 잡탕을 파는 자. 백골 요정(白骨精): 음흉하고 악독한 여자. 라오양(老楊): 때밀이. 라오후(老侯): 넝마주이. 수정금자탑이 세워진 후…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오십 번지 서쪽 주민들 그들의 황당한 객소리에 진실과 거짓이 가면을 벗어던지다! 오십 번지 서쪽에 수정금자탑이 생겨난 뒤 주민들은 키가 십 센티미터 이상 자라고 열 살이나 젊어졌다. 신발 수선공 라오마는 라오서의 호출을 받고 수정금자탑을 찾는데, 라오서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오십 번지 서쪽에서 돼지 잡던 백정이었으나 지금은 수정금자탑 안에서 행동 지휘자 노릇을 하는 인물이다. 라오서는 라오마에게 오십 번지 서쪽이 거대한 정신병동으로 변화된 영상물을 보여주며 그 원인을 탐색해오라는 지시를 내린다.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곳은 오십 번지 서쪽뿐만 아니라 전 지구로 확산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원인을 탐색하게 되면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전 지구촌의 현상을 연구할 수 있는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탐색의 여정에 조수를 한 명 붙여주는데, 그녀의 원형은 통곡으로 만리장성을 무너뜨린 멍지앙뉘이다. 기록 영화는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간다. 천연색 화면이 흑백으로 바뀐다. 역사가 현실로 바뀐다. 라오마의 친숙한 친구들, 이웃 주민들, 선후배들이 영화의 화면을 향해 한 떼거리 걸어 나온다. 나란히 줄을 서 있지만 앞뒤가 분명하지 않고 대열의 끝도 보이지 않는다. 기뻐 신명이 나서 날뛰는 모습으로 바뀐 목전의 장면과 일상생활 모습은 동일하지 않고 주민들 모두 멍청이가 되어버린 듯하다. 동일한 표정에 동일한 템포 그리고 동일한 분장 세트와 헤어스타일에다 심지어 천편일률적인 자세로 웃어댄다. 그들 중에 목욕탕의 라오펑과 배추 파는 샤오빠이, 때밀이 라오양, 변변찮은 잡탕과 구운 과자를 파는 라오꾸어와 가라오케 접대부 샤오스가 있다. 한데 뒤섞인 열등품 같은 존재들. 그런 대열 속에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이동생과 형님까지 줄 서 있는 것을 보고 라오마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15~16쪽) 여정에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던 라오마는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그들이 정신 나가고 미쳤는지 아니면 무슨 몹쓸 병이 들었는지 묻는다. 그러나 그들은 일제히 아무 병도 없고 막힘없이 소통되는 정상 상태라고 합창하고, 라오마는 라오서의 지시가 함정이 아닐까 생각하며, 탐색하지 않겠노라 선언한다. 그런데 다시 새벽 네시가 되자 라오마는 수정금자탑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한 것은 라오서가 푸른곰팡이가 슨 한 조각의 케이크가 되어 있고, 이제 수정금자탑의 지휘자는 지본가(知本家) 라오지앙으로 바뀌어 있다는 것이다. 라오지앙 왈, 자기 시대가 지나면 인간도 곰팡이가 슨 케이크가 될 수 있다고 답변하면서 어떤 사물이든지 최고조에 달하면 반대 방향으로 전화(轉化)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태까지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하던 라오마가 신발 수선공이 아닌 다른 존재로 개변한 듯한 느낌이 들자 오십 번지 서쪽은 갑작스레 시간의 흐름이 빨라져 불과 얼마 전의 일도 객관적인 수치로는 이미 일 세기 전의 일이 된다. 제4막에는 여자 앵커가 진행하는 텔레비전 간담 프로그램이 전개된다. 내빈으로 초대된 인물은 오십 번지 서쪽에서 목욕탕을 운영하는 라오펑. 현장 중계 관람자들은 오십 번지 서쪽의 주민들이며, 몇몇 국가의 대통령이나 수상 그리고 황실의 구성원들이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서 동시 참여한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전에 만성 정력제와 여성 생리대와 여성 질 세정액 광고가 삼 분간 방영되자 라오펑은 방송국에서 이윤 창출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며 격분한다. 광고가 끝나고 간담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간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여자 앵커는 목욕탕이 세례식을 거행하는 장소라고 주장하는 라오펑에게 생중계 방송을 빌미로 전 지구촌에 목욕탕을 광고하는 게 아닌가 추궁한다. 라오펑이 다시 자기 논리를 강하게 펼치자 여자 앵커는 라오펑을 질타하면서, 앞뒤 논리가 결여된 학술을 계속 전개한다면 사회자로서의 위신을 되찾기 위해 그 자리에서 상의를 벗어던지겠다고 경각심을 일깨운다. 그리고 옷을 벗어보라고 라오펑이 태연하게 응수하자 여자 앵커는 과연 자신의 상의를 한 가지씩 벗다가 결국 브래지어까지 벗어버리자 중계방송을 관람하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간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두 사람이나 무대에서 생중계 방송을 지켜보는 오십 번지 서쪽의 관중들까지 모두 생중계 장소가 목욕탕이나 술집으로 변모했다는 착각에 빠져들면서 둥둥 북을 치고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함께 어우러진다. 그런데 이쯤에서 라오펑은 오십 번지 서쪽 주민들이 바야흐로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것은 목욕탕의 물이 전부 고갈되어 무려 일 세기 동안 폐업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한다. 심지어 오십 번지 서쪽 주민들은 이제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단계에서 갈증으로 인해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었으며, 이런 오십 번지 서쪽은 전 세계의 축소 경관이라는 것. 제5막에서는 나이가 백두 살인 늙은 부인이 서른두 해씩이나 아들을 찾아 심산유곡을 헤매고 다니다가 백골(白骨) 요정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백골 요정은 늙은 여인을 대뜸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아들을 찾게 되면 자신과 결혼을 시켜달라고 생떼를 부린다. 그리고 늙은 부인에게 강술(講述)하기를, 이제 이 세상에 인간의 주관으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목木이고, 오십 번지 서쪽의 주민들은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단계에서 이차로 귀가 멀고 벙어리가 되더니, 드디어 나무로 만든 목각 인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늙은 부인과 백골 요정은 서로 합심해서 십육 년간 여정에 나서 바야흐로 목재국에 도착한다. 목재국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강물이 흐르고 있는데, 백골 요정은 나무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신랑을 맞이하려다가 하혈을 한다. 강물의 색채는 선혈로 바뀌고, 뒤늦게 나타난 라오펑은 피로 범벅된 백골 요정을 삼켜버린다. 늙은 부인과 라오펑은 목재국과 목재 강물을 떠날 결심으로 뒷걸음치는데, 두 사람 앞에는 여태까지 존재하던 목재국은 간데없고 오십 번지 서쪽이 연극 무대처럼 떡 나타난다. 제6막에는 오십 번지 서쪽에서 변변찮은 잡탕이나 팔던 라오꾸어가 수정금자탑 안의 몽환극장 감독으로 등장한다. 몽환극장에 도착해 모방을 시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오십 번지 서쪽의 배추 장수 샤오빠이. 그녀는 낮에는 시장에서 고단하게 배추를 팔고 저녁이면 장부 정리를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듣고 남편에게 두들겨 맞는 신산한 삶을 연명하던 여자이다. 감독 라오꾸어는 유럽의 왕족이나 현대판 귀족인 유명한 스타를 모방하라며 은근히 그녀를 유도하지만 샤오빠이가 모방하고 싶은 사람은 오십 번지 서쪽 가라오케 접대부인 샤오스이다. 그러자 라오꾸어는 샤오빠이이자 샤오스인 새로운 실존에게 배추 팔던 야채 시장에서 가라오케로 이동했을 뿐 때때로 몸까지 팔아야 하는 고단한 심연을 예시로 든다. 손님을 제대로 모시지 않으면 가라오케 주인의 채찍이 기다리고 있으니, 과거 남편에게 얻어맞던 신세에서 크게 이탈한 바 없으리라는 것. 그러나 몽환극장의 모방 시간은 전날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 네시까지로 한정되어 있기에, 감독 라오꾸어의 수중에 들려 있던 채찍은 한순간 새끼줄로 변해버리고, 여자는 다시 오십 번지 서쪽의 야채 시장에서 힘차게 ‘배추 사려’ 고함을 친다. 제7막에선 오십 번지 서쪽에 변론대회가 열리고, 변론대회장의 주석으로 오십 번지 서쪽에서 넝마주이를 하던 라오후가 등장한다. 정방(正方) 변론 대변인은 산타클로스 복장의 백 년 노인 샤오스이고, 반방(反方)의 변론 대변인으로는 과거 오십 번지 서쪽의 목욕탕 때밀이 라오양이 등장한다. 이제 오십 번지 서쪽 주민들은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단계에서 벙어리가 되고 귀머거리가 된 단계를 거쳐 혼도 없고 마음도 없으며 아무런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 목재의 단계에서 나아가, 너덜너덜해진 폐기물 단계에서 넝마주이 라오후의 분류에 따라 어떤 존재는 쓰레기통으로, 아직 다소 쓸모 있는 존재는 폐기물 처리장으로 보내지는 단계에 이른다. 정방의 대표인 백 년 샤오스는 오십 번지 서쪽 주민들이 쓰레기통 속으로 혹은 폐기물 처리장으로 보내지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 데는 꿈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며 몽파(夢派) 이론을 주장하고, 반방의 대변인 라오양은 자신의 관점은 황파(?派)이고, 황당한 거짓말이 존재할 때 진리의 원형이 존속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제8막에서는 이백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오십 번지 서쪽에 라오마가 돌아오는데, 그는 자신이 라오예라고 주장하면서 이때의 ‘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라고 언급한다. 라오예가 나타나자 오십 번지 서쪽은 일순간에 폭염에 휩싸이게 된다. 이때 라오예가 서늘하고 상쾌한 바람을 몰고 오는데, 주민들은 그 서늘하고 상쾌한 바람이 결국 풍습병과 관절염을 몰고 오는 병원체인 줄 알면서도 그의 서늘한 바람에 길들여진다. 라오예는 획일성을 강조하고, 이제 한 패거리의 병든 닭이 된 주민들은 언젠가는 우윳빛과 유백색이 찬란한 단계로 도달하고 거뜬히 일어설 수 있다는 그의 구령에 따라 수련의 단계로 들어간다. 제9막에선 그동안 사라졌던 존재들이 다시 오십 번지 서쪽으로 돌아오게 된다. 오십 번지 서쪽으로 복귀된 이들은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색채인데, 각종 색채가 혼합된 염료로서 기실 이들은 일종의 부호와 대명사로 이루어진 그림자이며 하나의 단체사진이다. 단체사진은 관중인 우리들에게 머리카락 안에 밀령이 숨겨져 있다고 말하며 머리카락 안에다 눈물로 밀령을 써두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수백 년을 내려오는 동안 이미 눈물이 없었다는 걸 갑자기 깨닫는다. 우리는 이미 골수를 잃어버린 단계에서 발전해 눈물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결국 오십 번지 서쪽으로 복귀한 그 몇몇의 근본 인간과 근본 신체는 우여곡절 끝에 수련을 거친 새로운 그림자가 된다. 이 그림자는 다시 단체사진으로 되돌아가고, 이것으로 연극 레퍼토리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며 손을 맞잡고 관중의 앙코르에 응답한다. 그런데 이때 단체사진이 갑자기 자객의 형상으로 나타나 오십 번지 서쪽을 점화하자, 활활 불꽃이 타오르던 오십 번지 서쪽의 수정금자탑은 기이하게 변화된다. 오십 번지 서쪽의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원인을 찾긴 찾아야 하는데, 그전에 당장의 임무는 먼저 필수적으로 사람을 파견해 우리의 눈물에 소금기가 없어진 이유를 찾아내야만 한다는 것으로 이 작품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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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것들만 남은 세상─
“우리를 지배하는 진짜 권력자는 누구인가?” 중국 최고 작가 류전윈이 작정하고 쓴 세태 풍자극 현재 중국 문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손꼽히는 작가 류전윈(劉震云)의 장편소설 『객소리 가득 찬 가슴(一腔廢話)』이 박명애씨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그간 류전윈은 중국 신사실주의의 선두주자이면서 당대 최고의 지적인 작가로 알려져왔다. 한국에는 격변기 중국의 세태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 『닭털 같은 나날』 『핸드폰』 『고향 하늘 아래 노란꽃』 등이 번역·출간되어 중국 문학의 변모한 양상을 신선하게 보여준 바 있다. 류전윈의 소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자본주의 시장 개방 이후 중국 인민들이 겪는 혼란상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하고 있다는 것. 혁명정신이나 계급의식을 다루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을 넘어서 중국 소시민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이른바 ‘신사회주의 계열’의 작품을 묵직한 주제의식으로 형상화했다는 것일 터. 그러나 2005년 발표한 『객소리 가득 찬 가슴』은 그 주제의식은 오롯하되 과감한 형식 실험을 통해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문제작이다. 작게는 중국을, 크게는 전 세계를 알레고리 삼은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오십 번지 서쪽’ 주민들의 모습은 당대 중국을 넘어서 21세기 전 지구의 권력 메커니즘을 과감하게 해부해 보여주며, 점점 더 보잘 것 없어지는 소시민의 삶을 극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시장 개방을 비유했을 듯한 ‘수정금자탑’이 세워진 후, 오십 번지 서쪽의 주민들은 정신이 나가고 멍청해졌다. 이에 백정 출신 라오서가 신발 수선공 라오마에게 그 원인을 알아오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류전윈의 이른바 ‘객소리’는 시작된다. 지식으로 돈을 벌고 출세한 지본가(知本家) 라오지앙이 등장하고, 텔레비전 간담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목욕탕 주인 라오펑과 여자 앵커가 설전을 벌인다. 이후에도 잡탕 팔던 라오꾸어와 가라오케 접대부 샤오스, 그리고 넝마주이 라오후 등등이 등장해 각기 오십 번지 서쪽의 정신 나감과 멍청해짐을 분석한다. 연극 무대를 연상케 하는 공간을 종횡무진 누비는 동안, 이들 오십 번지 서쪽 주민들은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것에서 농아가 되고, 의리도 없고 인정도 없는 존재가 되더니, 심지어 목재가 되기도 한다. 목재는 너덜너덜 썩어 문드러진 목재가 되고, 폐품과 쓰레기가 되어서 넝마가 되더니, 나중에는 멍청한 원숭이, 멍청한 닭, 파리, 숯검정이 되기에 이른다. "객소리는 좋은 말이다!" 류전윈의 사뭇 달라진 작풍을 보여주는 『객소리 가득 찬 가슴』은 객소리를 통해 현실을 더욱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작가는 객소리의 유용(有用)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파한 바 있다. “만일 쓸모가 없다면 어째서 하나님은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객소리를 나열할 수 있을까? 객소리는 현실에서 유익할 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해서도 상당히 유익하다. 객소리는 좋은 말이다. 객소리는 인류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말이고, 이것이 바로 『객소리 가득 찬 가슴』을 창작하게 된 동기이다.” 온갖 소시민들이 등장해 쏟아놓는 객소리가 아무 생각 없이 자동기술한 작가의 헛소리가 아님은 물론이다. 『객소리 가득 찬 가슴』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중국의 이른바 최하층에 속할 신분들이지만 나름의 식견을 통해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세태에 대해 온갖 자유분방한 철학들을 쏟아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컨트롤하는지, 궁극적인 진실은 알 수 없고 허상에 불과할 온갖 현상들만 난무한다. 우리들의 오십 번지 서쪽은 이제 유토피아가 아니다. 신발 수선공 라오마는 ‘혼’을 상실했고, 가라오케 접대부 샤오스는 ‘꿈’을 상실했으며, 백골 요정은 ‘한’을 상실했고, 때밀이 라오양은 ‘거짓말’을 상실했다. 오십 번지 서쪽의 주민들은 외관상으로는 지식과 신체가 나날이 증강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들의 정신세계는 나날이 미쳐간다. 신은 죽었고, 이제 남은 것은 한바탕의 저급한 유희밖에 없다고 외치던 작가는 그것은 곧 자신의 ‘객소리’라고 변명하듯 둘러댄다. __꾸어빠오량(郭寶亮: 중국 평론가) 원숭이, 목재, 파리, 숯검정으로 전락한 현대의 군중 그러나 소설 『객소리 가득 찬 가슴』은 작가 류전윈의 객소리만을 좇아가다 보면 은막 위에 뿌옇게 투사되는 영상들처럼 모호하고 불분명해 보이기도 한다. 온갖 형태의 사람들이 함께 찍은 단체사진이지만 각각의 형상들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결국 오십 번지 서쪽으로 돌아온 몇몇의 ‘근본 인간’과 ‘근본 신체들’은 우여곡절 끝에 원형을 드러내고, 그 순간 그들은 다시 그림자가 되었다가 단체사진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단체사진은 갑자기 자객의 형상으로 나타나 오십 번지 서쪽을 점화하고, 활활 타오르던 오십 번지 서쪽의 수정금자탑은 기이한 모습으로 변화된다. 수정금자탑은 각종 염료와 혈흔이 얼룩덜룩한 담장 위에서 몸부림치며 일어서는데, 기실 수정금자탑이야말로 오십 번지 서쪽의 진정한 감독이다. 일어선 금자탑의 거죽에서는 숯검정이 뚝뚝 떨어지며 하염없이 울고 있는데, 금자탑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에는 소금기가 없다. 오십 번지 서쪽의 정신 나가고 멍청해진 주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눈물에서 소금기가 없어진 이유부터 찾아내야 한다는 것으로 이 작품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 소설을 번역한 박명애씨는 『객소리 가득 찬 가슴』에 대해 “첨단기술과 정보화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실존가치를 상실하고 송두리째 정신 나가고 멍청해져가는 우리 시대의 초상을 고전 문학 작품과 접목해가면서 일목요연하게, 흥미 있게, 시종일관 블랙 유머를 곁들이며 독자의 시선을 매료시키는, 근자에 보기 드문 뛰어난 작품”이라 평한다. 사실 인터넷을 필두로 한 ‘도구 혁명’을 통해 누가 누구를 컨트롤하는지 누가 누구에게 컨트롤 당하는지도 모르는 현대의 군중들은 이미 ‘원숭이’ ‘목재’ ‘파리’ ‘숯검정’ 같은 존재, 또는 그 이하의 형편없는 존재들로 전락해 있는지도 모른다. 복잡한 컴퓨터 회로와 칩 사이에, 또는 인터넷 그물망 사이로 알 수 없는 존재들로 변신한 우리의 분신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가? 『객소리 가득 찬 가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