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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 1 장_ 성형수술: 과거와 현재 제 2 장_ 전문 과목의 형성 제 3 장_ 소비문화와 열등 콤플렉스 제 4 장_ 중산층의 부상: 전후 미국에서 늙는다는 것 제 5 장_ 마이클 잭슨의 새 얼굴 제 6 장_ 미녀와 가슴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주 찾아보기 |
Elizabeth Hai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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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 수술은 의학과 소비문화의 연결 지점에 놓여 있다. 그것은 의학지식과 레저, 그리고 돈의 복합체로서 20세기 초 미국 무대에 등장했다. 그리고 교활해 보일 정도로 정교한 기술과 문화적 확신, 전후의 풍요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붐에 불을 붙였다. 뉴욕의 성형외과 의사 구스타프 오프리히트가 1957년 「미용 성형의 철학」이라는 논문에서 쓴 것처럼 누구나 암 환자의 재건수술과 같은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수술의 필요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삶의 욕구는 언제나 삶과 죽음, 빵과 굶주림과 같은 긴급한 문제만 좇는 것은 아니다. 〔……〕 더 나은 삶을 위한 과학의 공헌 중에서도 외과술은 절대적인 필수품 이상으로 기여한다.” (프롤로그, 21쪽)
미국 성형외과 의사의 “첫 세대”들에게 제1차 세계대전은 사실상 일종의 분기점이었다. 이들에게 재건 성형에 대한 관심은 미용 성형보다 우선했고, 때로는 미용 성형을 배제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야 일부 의사들이 남성 얼굴의 재건 성형에서 여성의 재건 성형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많은 환자들과 함께 이 같은 성적 간극을 이미 넘어선 의사들도 있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의학 문헌은 성형외과에 대한 요구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의사와 대중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 분야와 관련해 많은 쟁점들이 이미 제기되었다. 성형외과는 단지 의학적 맥락에서만 고찰할 수는 없었는데, 이미 그것은 의술 이상의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성형은 대중의 마음에서 자기 현시의 문화적 현상과 단단하게 얽혀버렸다. 따라서 초기 성형외과의 발전은 의학적 맥락에서뿐 아니라 문화적 맥락에서, 특히 미국의 미용 문화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20세기를 전후해 수십 년간 미국 문화는 “빅토리아 시대의 청교도 문화에서 세속적인 소비문화로” 전환했고, 미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도 그에 따라 변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는 아름다움이 내면의 자질과 건강에서 우러난다고 주장했지만, 1921년 대부분의 미국인(특히 미국 여성)은 육체적 아름다움이 외적이고 독립적인 - 그리고 바꿀 수 있는 - 특질이며, 미의 추구에는 상당한 시간과 관심, 그리고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제1장 성형수술: 과거와 현재, 28~29쪽) 성형외과 분야에서 전문직 단체의 임무는 광고와 수익 문제로 인해 매우 복잡했고, 이 새 전문 과목을 개척했던 이들은 미용 분야를 다른 이들에게 넘기고 자신들의 임무를 재건 성형이라는 대단히 전통적인 분야로 국한시킬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그러나 그들은 외모에 불만을 가진 미국인의 수가 선천성 기형이나 외상을 입은 이들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 그래서 다양한 훈련 배경과 상상력을 가진 야심찬 의사들이 앞 다투어 이 성장 산업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전화번호부와 신문에 광고를 냈고, 미용박람회와 백화점에서 대중 시연을 했으며, 자신의 기술을 홍보하는 책과 팸플릿을 펴내는 등 스스로 전문직이라 자부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혐오하는 방식으로 행동했다. 그러나 바로 이런 행동 때문에 미국의 대중들은 이들을 성형외과 의사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아무리 보수적인 외과 의사라도 이 전문 과목을 재건 성형으로만 한정 짓는다면 전문직으로서나 경제적으로나 파이의 가장 큰 몫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제2장 전문 과목의 형성, 69쪽) 미국성형외과학회의 창립은 최초로 성형외과 의사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를 제공했다. 1941년 이전 성형외과 의사의 자격 인정은 운에 좌우되거나 아니면 여론에 의해 이루어졌다. 1941년 이후에는 전문의 자격을 인정받은 사람만이 “진정한” 성형외과 의사였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돌팔이였다. 이 학회 창립자들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진지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들은 당연히 숙련되고 존경받는 의사들을 회원으로 인정하는 데 동의했다. 〔……〕 1941년 무렵 성형외과가 확장일로에 있던 조직화된 의료의 우산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 분과는 20년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조직화 과정에서 이 분야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변형되었고, 그리프가 “미용외과”와 “진정한 성형외과”를 그토록 확신에 차서 구분했던 경계선은 사라졌다. 미국성형외과학회는 일단의 시술가들을 배제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은 그들의 본질 - 그들의 가치, 시술, 그리고 어느 정도는 대중에 대한 그들의 관계 - 을 통합함으로써 가능했다. 학회가 인정한 전문의들은 통제를 덜 받던 동료들의 뻔뻔한 자기선전을 가장 가혹하게 비난했지만, 그로부터 어느 정도 이득을 얻기도 했다. 크럼의 기괴퇇 행동이나 몰츠, 혹은 샤이어슨의 책으로부터 흥미를 느낀 미국인들이 공인된 의학 전문 과목으로궼 성형외과가 등장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재정적으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제2장 전문 과목의 형성, 118~20쪽) 외과 의사들은 심리학으로부터 자신의 환자, 전문 과목,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새로운 방법을 획득했다. 심리학적 해석에 의해 성형외과는 미국 전역에서 빠르게 신뢰를 얻어가는 이 새로운 과학과 연결되었다. 심리학에 의해 성형외과 의사들은 자기 전문 과목이 매우 진지하고 의학적으로 필요한 시술이라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성형외과는 더 이상 허영 외과가 아니었다. 대신에 그것은 정신 건강의 핵심인 “칼을 사용하는 정신의학”이었다. 심리학 이론을 적용하면서 성형외과 의사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 분야가 씨름했던 많은 복잡한 문제들을 대부분 우회할 수 있었다. 한때 도저히 좁힐 수 없어 보였던 차이 - 미용외과와 성형외과, 기형과 단순히 못생긴 얼굴의 구분 등 - 는 심리학의 렌즈로 보면 그 중요성이 덜한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모든 미국인이 콤플렉스 투성이라고 생각하던 시대에 초점을 마음에 맞춤으로써 성형외과 의사들은 자신의 전문 과목에 가장 방대한 환자 집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제3장 소비문화와 열등 콤플렉스, 145쪽) 심리학적, 혹은 정신의학적 개념으로서 열등 콤플렉스는 모호하며 단순하기조차 하다. 의학 개념으로서 이는 주관적이었다. 즉 의사에 의해 진단되기보다는 환자에 의해 정의되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관계적이었다. 즉 열등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정의될 수 있었다. 〔……〕 의학 잡지에서 외과 의사들이 열등 콤플렉스를 논하고, 이를 시술에 적용하면서 그들은 이 전문 과목의 성격뿐 아니라 자신의 역할도 재정의했다. 기형을 구성하는 객관적인 결정 요인을 만드는 대신, 이들은 자신의 얼굴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에 대한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판단하기보다는 중재하면서 이들은 이 지식을 점점 외모를 의식하는 사회의 맥락 속에서 견주어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 문화뿐 아니라 미국 의료의 한 요인으로 경쟁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성향을 인식했고 사실상 찬양했다. (제3장 소비문화와 열등 콤플렉스, 168쪽)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중년 여성들은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개인화하려는 경향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미미하고 불필요한 존재로 만든 문화 풍조를 비판했지만 많은 미국인들이 그랬듯이, 사회 자체를 변화시키기보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쉽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이에 대해 아무도 - 그들의 남편, 아이들, 그리고 특히 성형외과 의사들은 -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전쟁 이전부터 제기되었던 성형수술의 사회적·심리적 정당화의 논의는 전후의 사회적 변화 속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많은 미국 중년 여성들은 노화에 대해 문화적인 규범을 바꾸는 것보다 자신의 얼굴을 바꾸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의사들 여기 노화라는 사회적 문제에 대처하는 데 있어 안면거상술이 현명하고, 실질적이며, 상대적으로 쉬운 해결책이라고 환자들을 설득했다. 이렇게 해서 성형외과 의사들과 환자들은 “자아도취 문화”의 생산자이자 수용자가 되었고, 이들이 함께 만들어낸 성형수술 합리화의 논리는 오늘날까지도 그 위력을 잃지 않고 있다. (제3장 소비문화와 열등 콤플렉스, 175~76쪽) 여성들은 성형수술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전후 미국 가정의 일상용어들 - 재봉, 청소, 요리에 관한 - 을 사용함으로써 성형수술에 대한 여성들 나름의 이해의 틀을 만들기도 했다. 한 여성 환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내 얼굴을 보기 좋게 고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 낭비했던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억울하다. 〔……〕 이제 얼굴을 고칠 시간이다.” 1971년 에이미 밴더빌트는 자신의 안면거상술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요리와 재료 다듬기의 은유를 사용했다. “의사는 작은 수술 칼로 피부를 절개했는데 마치 휘틀러(나무껍질 벗기는 사람) 같았다. 그는 과다지방과 조직을 노출시킨 후 핀셋으로 끄집어냈는데 이는 우리가 스위트브레드를 만들 때 미리 껍질을 벗겨내는 것과 비슷했다.” “다듬기” “정리하기” “수선하기” 등과 같은 용어들은 중산층 여성들에게 성형수술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켜주었고 덜 위협적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동시에 그들은 가사의 영역을 확장시켜 그 안에 성형수술을 포함시켰다. (제4장 중산층의 부상: 전후 미국에서 늙는다는 것, 200쪽) 마이클 잭슨의 수술은 또한 이러한 기준이 형성되는 데 있어 미국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20세기에 걸쳐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아름다움이란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며, 패션 분야에서 유행이 바뀌듯 아름다운 얼굴 역시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그들의 의식 깊은 ?에서는 변하지 않는, 그리고 변할 수 없는 어떤 미적 기준이 있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즉 어떤 얼굴들은 결코 유행이 될 수 없다는 믿음이었다. 20세기 초부터 지배적인 미의 문화적 규범은 의사들이 말하는 특정한 인종·민족적 낙인(특징)의 부재였으며, 미용 수술은 언제나 앵글로색슨인이나 북유럽인의 외모적 기준에 맞추어 환자의 인종적 혹은 민족적 특징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제5장 마이클 잭슨이 새 얼굴, 237쪽) 인류학자 유지니아 코는 최근 논문에서 외과 의사들과 환자들이 부인하기는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미용 성형은 객관적인 미적 기준에 부합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유대인의 코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들의 함의를 분석했을 때 대부분의 유대인 코 성형이 민족 배경의 가시적인 징표를 제거하기 위한 것임이 드러났듯이, 아시아인의 쌍꺼풀 수술에 대한 용어들 역시 그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인종이 문제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아시아인들에게 “인종과학”의 오랜 전통은 - 유대인의 코가 유대 민족의 부정적인 성격적 특징에 대한 편견을 유발한다고 여겨지듯이 -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워왔다. 성형을 원하는 아시아인들은 대체로 미국 사회가 아시아인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아시아인의 외꺼풀 눈이 “전형적인 ‘아시아계 책벌레,’ 즉 재미없고 즐길 줄 모르는 인간형”을 연상시킨다고 코에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외과 의사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유지니아 코가 인터뷰한 한 의사는 “외꺼풀 눈은 졸리고 지루한 인상을 준다. 또 콧날이 낮고 코끝이 납작한 것은 성격이 나약하고, 심지어 의지가 박약하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얼굴 모양새를 가지고 성격을 판단하는 수백 년의 관행이 외과 의사와 환자 모두의 관점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다. 〔……〕 1989년 외과 의사 로널드 마츠나가는 자신의 환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잡지를 보고 영화나 모델들을 본다. 그들이 보는 것은 서양의 세계이다.” 의사 토비 메이어도 자신에 대해 “나의 판단 기준이 서양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제5장 마이클 잭슨이 새 얼굴, 281~82쪽) 실리콘 주입 사태의 배경에는 이처럼 여러 특수한 상황이 있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은 아름다움과 허영을 바라보는 당시 미국 사회의 관점이었다. 실리콘에 대한 의료계의 초기 반응, 이 문제에 일관성을 보이지 못했던 FDA, 그리고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언론의 모습은 역사적으로 아름다워지기 위해 미국 여성들이 감수해야 했던 위험한 줄타기의 일면을 보여준다. 당시 미국의 사회풍토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이를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그리고 그런 과다한 노력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효과를 반감시킨다고 여겼다. 즉 노력 없이도 아름다워야 정말로 아름다운 것이라는 식(아니면 최소한 겉으로 그렇게 보이든지)이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이는 허영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딜레마에 대해 정치적이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대응하면서(이후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이런 사고방식에 제동을 걸기는 했다) 많은 미국 여성들은 이 곤혹스러운 싸움을 혼자서, 그리고 가능하면 남모르게 치러내야 했다. 실리콘 주입으로 감염되고 손상된 가슴을 언론에 공개했던 여성들은 당시 미국 여성들이 안고 있던 이런 딜레마를 노출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사회의 반응, 즉 실리콘을 주입할 정도로 어리석은 여자는 그런 벌을 받을 만하다는 식의 비난은 냉담하기만 했다. (제6장 미녀와 가슴, 340~41쪽) 결론적으로 의사와 환자 모두 미용 성형의 이미지를 현실적이고, 상식적이고, 저렴한 시술 - 미국 사회에서 미용 성형의 이미지 - 이 되도록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미용 성형을 현대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미국적 해결책으로 만들었다. 시작부터 미용 성형은 의료계뿐 아니라 미국 문화의 다양한 압력과 기준에 의해 형성되었고, 그 역사는 의료와 문화적인 요구들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드러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형수술의 미국적 고유성은 희미해질지 모르나 여전히 미용 성형은 미국 문화의 본질적 특성을 안고 있다. 거기에는 개인적 변모와 희망, 재창조와 재발명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이 크게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그 본질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미용 성형은 의료와 문화적 가치가 한데 뒤엉켜 결국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꿈을 실현시켜주는 듯하면서 궁극적으로 무산시키고, 더 큰 차원의 변화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신념을 파괴하는 원인과 결과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필로그, 404~40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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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성형수술을 통해 바라본 의학사이며 인종 문제와 젠더 문제를 중심으로 본 사회사이자 의학으로 대표되는 기술문명과 사회와의 관계를 논하는 문화 비평이다”
“성형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미용 수술은 의학과 소비문화의 연결 지점에 놓여 있다. 그것은 의학지식과 레저, 그리고 돈의 복합체로서 20세기 초 미국 무대에 등장했다. 그리고 교활해 보일 정도로 정교한 기술과 문화적 확신, 전후의 풍요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붐에 불을 붙였다.”---「프롤로그」에서 성형을 권하는 책은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성형을 비판하고자 목소리 높이는 책도 아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출간된 『비너스의 유혹―성형수술의 역사』(문학과지성사, 2008)는 그동안 선정적인 대중매체의 기삿거리로, 혹은 흥미진진한 가십거리로만 주로 다루어져온 ‘성형수술’이라는 주제를, 진지한 인문학적·역사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 흥미롭게 풀어쓴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 하이켄은 역사학자이자 의사학자로서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미용 성형수술 자체에 대한 가치판단은 유보한 채 그 탄생과 성장과정 및 변화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특히 각종 자료와 문헌의 인용, 다양한 사례와 위트 넘치는 문장이 돋보이는 이 책은, 한 편의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써내려가듯 독자들을 성형의 세계로 스스럼없이 이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성형수술 자체가 아니라 바로 성형수술이 담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 함의다. 사실 이 주제에는 얼마나 많은 생각거리가 놓여 있는가. 의료기술의 문제는 접어두고도 소비문화와 경제, 의료비용, 젠더, 인종, 전문직 집단과 사회와의 관계,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인간의 자유와 권리의 문제까지. 이 모든 주제가 책 전체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사실 성형외과가 아니라 20세기 미국이라는 거대한 실체의 윤곽이다.” 성형수술, 욕망과 아름다움에 관한 그 내밀한 역사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이 많은 미국인들이 20세기를 지나면서 수술을 해서라도 완벽한 외모를 갖는 것을 일종의 자기 계발이라고 정의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20세기 초 의료 전문직의 품위를 해친다는 이유로 미용 수술을 경멸했던 의사들이 이를 포용하고 그 장점을 강조하게 된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성형수술의 역사, 그리고 성형외과가 오늘날과 같은 전문 과목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날카롭게 분석함으로써, 이를 통해 20세기 미국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모두 여섯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먼저 의학사적 측면에서 성형수술의 과거와 현재를 살핀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발전을 거듭한 성형외과는 이후 다른 의학 분과와 마찬가지로 전문 학회를 설립했고, 전문의의 기준을 설정했으며, 전문의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각종 돌발 변수를 통제하려고 애를 썼다. 특히 성형외과는 그 발전 동력이 “의료적 필요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꿈과 열망이었다는 점”에서 특수한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갖는다. 이렇듯 성형외과는 일반 대중의 영역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전문적 권위를 획득하는 과정이 분명치 않았다. 미용 성형의 경우에는 의사뿐 아니라 환자 역시 직업적 권위의 형성에 일조했으며, 더욱 광범위하게는 “환자가 그 안에 살면서 체화한 소비자 문화의 영역을 통해서였다.” 제2장에서는 이와 같이 성형외과가 전문 과목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묘사하는 한편, 헨리 주니어스 샤이어슨, 존 하워드 크럼, 맥스웰 몰츠, 조지프 이스트먼 시핸, 자크 맬리니악, 그리고 빌레이 블레어라는 초창기 여섯 의사의 서로 다른 모습을 통해 “신뢰할 만한 성형외과 의사”와 “돌팔이” 간의 경계가 불분명했음을 잘 보여준다. 제3장에서는 ‘심리학’이 외과 의사들에 의해 미용 성형수술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열등감은 미용 성형수술에 절대적인 정당성을 부여하고, ‘자부심’의 개념을 확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제4장에서는 여성들이 미용 성형외과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음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획득한 경제적 부로 말미암아 여성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었으며, 그중에는 “팽팽한 얼굴, 커다란 유방, 그리고 날씬한 허벅지가 있었다.” 제5장에서는 성형외과 의사와 그 고객들이 민족과 인종 문제를 개념화하고 타협하면서, 미국의 인종 구분이라는 더 넓은 맥락 속에서 성형의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 흐름을 추적하며, 제6장에서는 유방 수술을 통한 여성적 형태의 조형사(造形史)를 탐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젠더 문제와 만나게 된다. 이뢷듯 『비너스의 유혹―성형수술의 역사』는 “미용 성형수술을 통해 바라본 미국 의학의 역사이자, 20세기 미국 대중문화의 역사이면서 인종 문제와 젠더 문제를 중심으로 본 미국의 사회사일 뿐 아니라, 의학으로 대표되는 기술문명이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묘사한 문화 비평”이며, 특히 어떤 관점에서 읽어도 그 나름의 가치와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의학과 인문학, 그리고 사회와의 소통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 하이켄은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어조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성형수술’이라는 주제를 통해 20세기 미국 사회 전반을 두루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역사학자이자 의사학자로서 20세기 미국의 의학과 문화, 젠더, 몸의 현상 등을 역사학의 관점에서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저자의 전문지식과 인문학적 소양이 빛을 발한다. 이와 비슷하게 의과대학을 나와 임상의사의 길을 택하는 대신 의사학과 의료윤리라는 인문사회의학을 전공한 이 책의 역자 권복규는, 이 책을 통해 ‘의학’이 ‘인문학’ 그리고 우리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는 단지 ‘성형수술’과 ‘성형외과’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학은 “과학과 인문, 사회학이 만나는 교차점이자 삶과 죽음, 욕망과 병고의 문제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도 사회의 일면을 가장 잘 보여준다”라는 그의 말에서 나타나듯, 이 책이 단지 ‘성형수술’을 통해 보는 20세기 미국 사회라는 남의 나라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는 까닭이 여기 있다. 이 책은 바로 미국 사회라는 큰 거울을 통해 너무나 익숙해서 문제제기가 어렵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모르는, 우리 사회 전반의 모습을 되짚어보게끔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