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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그대를 아파하고 꽃피우는 일 - 여름
체호프식 죽음을 곁에 두고 / 폭염 속 상처의 기억보다 선명한 일 / 홀로 대장과 길을 걸었다 / 여의나루(5호선 3번 출구) / 내 마음에 남은 절 / 은어 가시들의 몽유 / 나를 닮은 사내 / 꺼벙해진 푸른빛과 놀다 / 의욕에 반쯤 속아주는 일 / 이 여름, 무화과 / 공원묘지 / 사막의 비질 예술가 / 우리 그만 만납시다 / We were not there / 삑사리 난 상처의 연대 / 부다바의 어느 라운지 뮤직 / 나이트바자 / 3년 전 매실차 / 에곤 실레 그림을 넘기며 흐린 하늘을 바라본다 #02 다만 내가 잃고, 그대가 읽은 것들에 대해 - 가을 가을의 유서 / 애인의 애인에게서 배운 말 / 남자의 순정, 사랑과 상처 사이의 그 어떤 증상 / 슬픔과 냉소의 나르시시즘 / 내가 잃고 그대가 잃은 것들에 대하여 / 왜 난닝구에 손을 그러구 있어? 불쌍하게 / 소리 / 골목길에 펄럭이는 우리의 안녕 / CLOSER, 더 가까운 혹은 문 닫은 자 / 불륜의 느낌 / 쓰레기 산, 하늘공원에서 / 새 / 북한산 너럭바위에 앉는 일 / 거울 속 열심 동지 / 꽃 없이 갑시다 / 북한산 인터뷰 / 계절의 히치 포인트 / 손인호의 「울어라, 기타 줄」/ 전어 약속 / 가을 산사의 맹물(孟物) / 충고 듣던 날 / 살아온 날들이 어찌 한 빛으로 마감할까 #03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 겨울 그대들이 왜 나를 보고 허공의 깊이를 가늠하는지 / 얼음 / 눈 내리는 날 석포에서 그대 안부를 묻다 / 연기 속 연기 / 눈 속을 걸은 적이 있다 / 백수의 몸으로 광대한 공해 속을 걷다 /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 나선형 소용돌이 / 밤눈 / 마린 스노 / 겨울 공원 / 구름 해석 예술가 / 오래된 깊고 푸른 환청 / 걷지 않은 빨래 / 사라 본이 부르는 「Whatever Lola wants」 / 눈 속의 하모니카 / 별들의 고향 / 붕어 / 귤과 마을버스 / 김제의 머구 형과 거시기다방 송양 #04 살아 있는 것들이 풍기는 세속의 그 비린내 - 봄 그토록 명랑하고 슬픈 개나리 / 고다르의 자장가 / ‘불리우면서’ 울지 않다 / 베어버리기에는 너무 늦은 / 야인(野人)의 매화 / 성곽 너머 그 남자네 집 / 눈빛에 관한 무제 / 흰 그늘 / 허영의 달인 / 꿈속의 꿈속에서 본 새떼 / 사랑 없이 사는 기술 /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 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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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떠도는 여행자였으므로 내 생은 허방에 놓여있고 누군가 이곳에서 내 생을 대신 살아 주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 본문 중에서
어리석고 광대와 같아 외롭거나, 비열한 중에 버릇처럼 쓸쓸함 깃든 손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이여 부디 나의 삶으로 밀려들지 마라. 나의 위로가 아니어도 절망은 결코 그대들의 것이 되지 않으리. --- 본문 중에서 아코디언 : 김제 역전 ‘거시기다방’ 송양. 그녀가 거부하면 명동의 단골 술집 ‘섬’에 기부 성북동 초록 울타리집 : 여행에서 돌아올 최필수가 살다가, 전세금 1500만 원 빼서 못다한 여행 더 해라. 냉동실에 넣어둔 백만 원 : 곧 도착할 꺼벙아, 내 화장 비용으로 써주라. --- 본문 중에서 지구별 사람들아, 술 마시고 때때로 진지하지 마라. 인생에 갑자기 불어닥친 고난 앞에서 함부로 생의 의미를 논하지도 마라. 사랑의 발굴단으로 와서 사랑을 발굴하고 나는 떠난다. 더도 덜도 없이 고작 체험하고 가는 길, 위로를 구하지 말고 그 무엇도 의지하지 마라. 사랑과 우정으로 세상을 함부로 초월하려 들지 않아도 그대들에게는 믿을 만한 희망이 하나 건실히 남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아무도 좌절은 마라. 다만 반짝이지 말고 이 지구별 체험에 깊이 있으라.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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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여행과 일상의 접경지대를 떠돌다
자기 자신을 찾아나선 자의 내밀한 기록을 담은 『여행생활자-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여행기』의 작가 유성용이,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그러나 일상을 여행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기록을 담아, 『생활여행자-일상에 안착하지 못하여 생활이 곧 여행이 되어버린 자의 이야기』를 펴냈다. “여행은 생활의 반작용이 아니라,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말을 실천하듯, 생활의 중심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고자 하는 저자 유성용은 언제든 집을 나서면서 자신의 이름자가 박힌 문패를 보고 짧은 인사를 건넨다. 그러니까 마치 자신을 두고 여행을 떠나오는 기분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여행생활자』가 생경한 공간을 빌어 자신이 겪어온 시간들을 거슬러 여행한 흔적이라면,『생활여행자』는 일상 속의 시간들을 빌어 이미 떠나온 공간과 그 속에서 닿았던 사람들 사이를 여행한 기록이다.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 채 시간을 보내고, 같은 일을 반복하고, 늙고, 죽어가는 이들로 가득한 세상의 시간들을 여행하며 저자는 경계를 아는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생의 비릿한 진실들을 보여준다. 비겁하지 않아 인생을 망쳐 본 ‘당신’이란 존재의 쓸쓸함 여기 하나의 놀이가 있다. 모인 사람의 숫자보다 한 개가 모자란 의자들 주위를 아이들이 노래에 맞춰 빙빙 돌다가 노래가 멈추면 의자로 달려가 앉는 놀이다. 가장 느리고, 가장 덜 난폭하고, 어쩌면 가장 재수 없는 아이 한 명만이 홀로 남게 된다. 안착하지 못했다함은 이런 상태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둘러싼 나머지 것들은 시스템 속에서 착착 잘 굴러가는데, 오직 ‘나’만이 안주할 곳을 찾지 못한 상태. 유성용은 시종일관 세상이 굴러가는 법칙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그에게는 원래부터 ‘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무심하게 일상 속을 떠돌지만, 그를 통해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악착같이 의자를 누리려 했으나 결국 그 밖으로 밀려나고 마는, 혹은 요행히 의자를 차지했으나 다음 게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냉소 뒤에 묻어나는 따뜻한 웃음 저자는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신세 진 것 없이 충고를 들어야 하는 일이기에 ‘교양적인 충고’들 앞에서는 일단 딴청 부리는 기술이 필요함을 말하며 무리하게 세상과 싸우기보다는 우선 자신의 능력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그는 철원 평강고원에서 냉면을 먹으며 통일을 생각하고, 남당항에서 국화빵을 먹으며 “하루 살면, 하루 고통이지”라는 국화빵 장수의 말에 자신의 삶을 가늠해보곤 한다. Eva Cassidy의 「Autumn leaves」를 듣고 유서를 써달라는 기이한 청탁 전화에 자살에 관한 짤막한 유서와 가난한 몇몇 살림살이에 대한 소유 관계를 적어두기도 한다.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하는 불편한 카타르시스 그러나 그에게도 익살과 냉소로만으로 지울 수 없는 아득한 풍경이 있다. 그와 그의 아이들은 고수부지에서 연을 날리며 엄마를 기다리다, 벤치에 앉아 엄마가 출장길에 사온 귤을 먹는다. 바람이 없는 날 연을 날리느라 아이들의 얼굴엔 땀이 흐르고 그러다 문득 이어지는 글은 오래된 노래 「메기의 추억」의 원문이다.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처음 고백했을 때 메기, 당신도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했지요.”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돈다. 한때 누군가를 사랑하여 그 부질없음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안다. 시간은 흐르고 맹세는 소용없다는 것을. 특별한 사건이 없는 이 글의 행간을 이동하며 가슴이 저미어오는 것은,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우리 생의 남루함 때문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아버리지 못하는 변치 않는 것들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유성용은 우리가 애써 잠재우고 있었던 아프고 슬픈 기억들, 심지어 자신이 경험한 감정의 특이함을 몰라 그저 ‘슬픈’줄로만 알았던 어떤 느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쑤시고 파고들어 불편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불편하지만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