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후일을 위해 쓴 비밀의 역사 어린 임금의 첫 어명 “계동 군밤장수를 처형하라” 대원군의 보은 인사 가난한 날 신세진 쌀장수에게 관직 하사 배고픈 군인들… 임오군란 발생 “하늘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라” 명성황후 피란 사건 뱃사공에 금반지 주고 한강 건너 갑신정변 쿠데타 발생 왕은 어질고 착하기만 해 독립협회 해산 사건 “독립협회 무리는 내 백성이 아니다”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던 고종 밤과 낮이 뒤바뀐 세상이 되었다 종로 창엽문에 얽힌 숨은 뜻 “하늘에 빌면 왕조 운수 늘어날까?” 함녕전 화재 사건 ‘섣달 그믐 궁내 화재’ 예언 적중 고종 즉위 40년 백성은 굶어 죽는데 ‘지화자’ 타령만 월미도 매각 사건 “뇌물 먹고 나라 땅을 팔아먹다니…” 고종의 외도 중전 잠든 새 지밀상궁 불러 사랑 나눠 고종과 엄비 쫓겨났던 엄상궁 돌아와 비가 되다 고종의 지병 용한 의사 궁에 들이려 참봉 벼슬 내려 고종의 강병 의욕 ‘군함 제조’ 사기극에 국고만 축내 궁궐 안 정씨 정리해고 사건 “궁궐 안 정씨는 모두 해직시켜라”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는 신하들 “내가 저들에게 또 속았구나” 순종, 남자 구실 못해? 순명황후 독수공방 20년에 후사 없어 북간도 개척 “간도를 개간해 영유권을 회복하라” 고종의 부부싸움 엄비 졸도 사건의 진실 고종 부부싸움의 숨은 음모 영친왕 황태자 옹립 사건 기생 고부댁의 사랑 전국 수령의 3분의 2가 돈으로 벼슬 사 가장 권세 있는 네 여인, 천하장안 “뇌물은 상대가 놀랄 정도로 하라” 지방 수령 200명 탄핵 사건 “부정부패 때문에 나라 앞 일이 걱정이다” 간신들로 가득 찬 궁궐 “믿고 의지할 대신이 한 명도 없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 국치 “살아서 나를 돕는 것이 충성이다” 일제 침략 세계 고발… 헤이그 특사 파견 “재위 43년 동안 한 번도 편한 날 없어” 갑신정변의 역적, 박영효의 귀환 충신은 죽고 친일 매국노만 득실거리네 고종 강제 퇴위 말없이 눈물만 흘리시다 안중근 이토 총살 영웅의 가슴에 눈물이 가득하다 500년 조선 왕조의 최후 뉘라서 책임이 없다 말할 것인가? 고종의 가계도 |
박성수의 다른 상품
|
태조가 한양에 터를 잡을 때 5백년으로 왕조의 운명을 삼아 종묘의 문에 창엽(蒼葉)으로 현판을 써서 걸었다. 창(蒼)이라는 글자는 분명히 이십팔군(二十八君)이고 엽(葉)이라는 글자도 또한 이십 팔세(二十八世)를 뜻하는데 운수가 과연 그와 같은가? --- 「하늘에 빌면 왕조 운수 늘어날까?」 중에서
어느 날 궁중에 정씨 성을 가진 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국가에 유해하니 모조리 해직하여 쫒아내야 합니다. 라는 상소가 올라왔다. 내사해 본 결과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은 상궁이 6명, 내시가 10명, 무감이 3명, 주사가 3명이었는데 거기다 노비 28명을 합하면 궁중에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은 총 63명이나 되었다. 이 사람들을 모두 해직시켜 일시에 궁 안에서 내 쫒아버리라는 것이었다. 나(정환덕) 역시 거기에서 빠질 수 없었다. --- 「궁궐 안 정씨는 모두 해직시켜라」 중에서 영감께서는 요번 경선궁 사건을 실지로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중략)…근일에 궁중유언(宮중에서流言)이 돌고 있는데 민비 소생인 황태자(순종)를 폐하여 대군(大君)으로 강등하고 엄비 소생인 영친왕을 황태자로 모시고자 한다는 말이 돌고 있는데 황상 폐하께서 이 소리를 들으시고 크게 진노하셔 …(중략)… 어느 반역분자가 이런 일을 획책하고 있는가?’하시면서 엄비를 나무라셨습니다. --- 「영친왕 황태자 옹립사건」 중에서 짐이 보위에 오른 지 40여 년이 되었지만 본시 박덕한 사람이라서 왕위에 올랐으나 한 번도 편안한 해가 없었다. 1866년 병인양요를 겪은 뒤 10년 만에 병자왜란(1876년 강화조약)이 있었고, 그 뒤 6년 만인 1882년에는 임오군란이 일어났으니 이는 역대 성조(聖朝)에 없었던 일이다. …(중략)… 무술년(1898년)에 독립협회가 난리를 일으키고 갑진년(1904년)에 러?일전쟁, 1905년 을사5조약이 성립되었으니 어찌 참을 수 있는 일인가? --- 「재위 43년 동안 한 번도 편한 날 없어」 중에서 |
|
“왕조 500년이 하룻밤 꿈과도 같구나”
‘고종’과 ‘순종’을 최측근에서 모셨던 환관이 직접 목격했던 조선 최후의 48년… 그 급박하고 숨가뻤던 시간의 기록 지워진 역사…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조선 왕조의 멸망과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한 추측에 불과하다. 알다시피, 그 시대의 역사와 기록을 담은 많은 기록물이 일본에 의해서 불태워지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학창시절 국사 교과서에서 본 ‘명성황후’의 사진 한 장을 두고도 ‘명성황후가 맞니, 맞지 않니.’하는 논란이 계속 되고 있다. 고종 역시 마찬가지다. 무능한 군주로만 알려졌던 그가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일본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그 시대의 상황을 좀 더 면밀하고 생생하게 담은 기록은 전하지 않는 것일까? 『남가몽』은 황현의 『매천야록』, 송상도의 『기려수필』과 함께 구한말 3대 비사로 유명하다. 『매천야록』과 『기려수필』이 궁 밖의 선비들에 의해 기록된 반면, 『남가몽』은 고종과 순종을 최측근에서 모셨던 시종원 부경(現 대통령 비서실 차장) 정환덕이 궁중에서 직접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고종 시대 궁중 비사를 비롯해 논란이 되고 있는 고종과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순종에 관한 생생한 기록과 만날 수 있다. 조선 최후의 48년… 그 급박하고 숨가뻤던 시간의 기록 고종과 순종을 최측근에서 모셨던 시종원 부경 정환덕은 『남가몽』이란 비망록을 남겼다. 시종원 부경이란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 차장 정도에 해당한다. 그가 고종과 순종을 최측근에서 보필했던 만큼 『남가몽』에는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풍부한 궁중 비사가 기록돼 있다. 이와 함께 그가 궁중 생활을 하면서 직접 보고 들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비교적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를 끝냈다면 다른 기록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남가몽, 조선 최후의 48년』은 그 『남가몽』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에서 가장 숨가빴던 조선의 마지막 48년과 조선의 멸망 과정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던 순간순간마다 그 이면에 있었던 숨은 이야기들을 함께 담고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예를 들면, 임오군란이 구식군대에 대한 차별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계속되는 흉년 탓에 8달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한 병사들이 있었고, 그 와중에도 연일 궁중에서 풍악잔치를 벌였던 명성황후가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종로 ‘창엽문’과 관련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다. 종묘에 창엽문이 있었고 그 글자는 정도전이 쓴 것이라 전한다. 창蒼자의 초두는 쌍십자로 20이란 뜻이요, 그 밑에 여덟팔八자와 임금군君자가 붙어 있으니 28대라는 뜻이고 엽자 또한 초두 쌍십자에 인간세世 그리고 나무목木자에 여덟팔자가 들어 있어 28세로 읽을 수 있다. 정도전이 어쩌면 그렇게도 조선 왕조의 운명을 알아맞혔는지 모두 탄복하고 있다. 고종은 26대, 다음의 순종은 27대, 그리고 영친왕이 28대인 셈이다. 명성황후 소생이었던 순종을 폐위시키고 엄비가 낳은 영친왕을 황태자로 옹립시키려다, 이를 눈치 챈 고종과 엄비가 큰 부부싸움을 벌였다는 일화 역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 밖에도 파란만장했던 고종과 순종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과 궁중 비화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많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그 시대의 상황과 역사적 진실과 조우할 수 있다. 나아가 정사를 통해 알 수 없었던 불우했던 왕, 고종과 순종이 당시 느꼈을 답답한 심경을 읽을 수 있다. 강한 무기를 내세워 조선을 강탈했던 일본이라는 외부 침략자와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았던, 의지할 대신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던 내부의 적, 대신들 사이에서 고종과 순종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또 무너져가는 500년 조선 왕조의 종묘사직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