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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의 여신을 흉내낸 승리의 여신 - 사모트라케의 니케
2. 신의 솜씨를 빌려서 세운 신전 - 델피의 원형신전 3. 레오나르도의 가짜 자화상 소동 - 주세페 보시의 레오나르도의 초상 4. 예수의 왼쪽 다리가 부러진 까닭은? - 미켈란젤로의 피렌체의 피에타 5. 볼품없고 땟국 흐르는 에로스 - 카라바조의 잠든 에로스 6. 계절의 바다에 시간의 그물을 던지다 - 얀 브뢰겔의 꽃병 7. 하늘에 영광, 땅에는 평화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아기 예수의 탄생 8. 17세기 회화에 헌정된 푸른 월계관 - 베르메르의 회화예술 9. 촌스런 자세에 눈부신 장식 - 피디아스의 아테나 파르테노스 10. 제 가슴에 칼을 겨누는 영웅 - 벨베데레 토르소 11. 메디치의 정치 게시판 -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12. 술잔이 비었다. 촛불이 꺼졌다 - 피터 클라스존의 바니타스 정물 13. 불후의 명작이 넝마쪼가리로 변하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14. 광고 간판을 걸쳐 입은 로마 황제 - 프리마 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15. 풍요는 평화의 품에서 자란다 - 에이레네와 아기 플루토 16. 짙은 관능 뒤에 숨은 따끔한 교훈 - 카라바조의 소년들의 콘서트 17. 아기 예수, 마리아의 뱃 속으로 날아들다 - 로베르트 캄핀의 메로드 제단화 18. 그리스 최초의 석조신전 -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19. 사위와 장인의 전차경주 -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박공조각 20. 미션 임파서블을 완수하다 - 파르네세의 헤라클레스 21. 세상의 배꼽을 눌러라 - 미켈란젤로의 캄피돌리오 광장 |
노성두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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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는 늘 빈곤하지. 촌스럽고 못생긴 건 덤이야. 상상 밖이지. 막돼먹은 데다 위아래가 없다니까. 신발짝도 못 얻어 신고, 잘 곳이나 있겠나, 아무 데서나 땅바닥 깔고 누우면 그게 안방이지. 남의 집 문간이나 길바닥에서 평생 풍찬노숙이야. 천성도 제 어미를 닮아서 빈곤이랑 벗하고 지내는 녀석일세. 그런데 말이지, 에로스가 제 애비도 한 턱 닮았다는 거 아닌가. 그래서 착하고 아름다운 걸 보면 사죽 못쓰고 달려간다네. 영리하고, 뱃심 좋고, 챙겨 입고 나사면 사냥꾼으로도 안빠진다니까... 그러니까 에로스는 부유하지도 빈곤하지도 않고, 지혜와 무지 어느쪽에도 기울지 않는 그런 존재인 셈이지." (향연, 199d~212)
바로크 화가 카라바조는 볼품없는 에로스를 그렸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을 통틀어서 이런 에로스는 없었다. 올림포스의 신성한 구름을 찢고 날아 내려와서 시끌벅적한 인간 세상의 시장 골목 어귀에 찾아들었다. 눈부신 순백의날개에는 꾀죄죄한 땟국이 흐른다. 사랑을 퍼주는 사랑의 지배자는 싫다며, 사랑에 애 끓이고 사랑에 목매다는 사랑의 노예로 변신했다. 그러나 에로스는 잠들어서도 사랑을 꿈군다. 신과 인간들 사이를 오가며 한 톨의 사랑을 찾아 걸식하는 고단한 존재다. 달빛 아래 잠든 에로스는 꺼진 촛불처럼 고독하고 마른 샘처럼 애처롭다. 그러나 에로스는 정말로 외로운 존재일까? 끊임없이 사랑에 목마르고 주린 사람이 있다면 혹시 자신이 사랑의 화신이 아닌지 의심해볼 것. --- pp.7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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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니케가 처음부터 루브르가 자랑하는 헬레니즘 조각의 얼굴 마담은 아니었다. 1863년 프랑스 영사 샹푸아소가 사모트라케 섬에서 캐낸 니케는 100토막이 넘게 산산조각 난 돌무더기에 불과했다. 카비로이 성소를 발굴하다 우연히 얻은 성과였다. 카비로이(Kabiroi)는 원래 시리아와 페니키아로부타 렘노스와 사모트라케로 옮겨온 난쟁이 괴물 신들이다. 성소의 돌무더니 니케는 곧장 나무궤짝에 담겨 루브르 복원실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자태를 뽐내며 눈부시게 부활한다. 프랑스 정부는 남은 유적을 긁어오려고 3년뒤 2차 발굴단을 파견하지만 인근에 흩어져 있던 건축 파편과 입강의 명문 토막 따위를 긁어왔을 뿐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니케 여신이 뱃머리에 올라 서 있는 자세로 있었다는 사실은 1873년과 1875년 콘체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발굴팀이 밝혀냈다. 성소에서 나온 대리석 뱃머리를 조각상하고 붙여 보았더니 꼭 들어맞았던 것이다. 체계적인 학슬 발굴의 성과였다. 그 뒤에도 어딘가 파묻혀 있을 여신의 머리를 찾느라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눈에 불을 켰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 p.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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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곰브리치는 인류 역사상 세 차례의 큰 혁명을 꼽는다. 신석기 혁명, 그리스 미술 혁명, 산업 혁명이 바로 그것. 이 가운데 미술의 혁명은 단 한 차례, 고대 그리스에서 일어났다. 수천 년 동안 경직된 자세로 굳어 있던 이집트 미술이 처음으로 봉인을 뜯고 일어나 숨을 내쉬며 걷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미술은 곧 진보의 예감에 사로잡힌다.
고전 미술은 모든 후대 미술의 모태요, 요람이라는 점에서 본 받을 만한 본보기가 되는 옛 미술이라고 부를만하다.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는 중세 시대에도 고전 회복을 꾀한 수많은 ‘르네상스들’이 있었다고 단언한다. 하물며 고대 미술의 후폭발이라고 일컫는 르네상스 미술은 더할 나위도 없다. 독일의 시성 괴테는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도시 아시시를 방문했을 때 화가 조토의 벽화가 아름다운 성 프란체스코 교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신 도시의 시장 한 구석에 이끼가 퍼렇게 낀 채 방치되어 있던 미네르바 신전의 폐허를 서둘러 답사했다고 한다. 괴테에게는 가장 탁월한 르네상스의 영광보다 까마득히 영락한 고대의 폐허가 더 눈부셨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17세기 고전주의자들이 꿈꾸었던 고대 미술의 신기루를 답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전이 왜 고전의 이름에 값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한번쯤 제기해봐야 하지 않을까? 노성두의 <고전미술과 천 번의 입맞춤>은 ‘하나의 밝은 달이 천 개의 강물에 입술 도장을 찍듯’(<월인천강지곡>) 고전 미술의 그림자를 더듬으며 예술의 능선과 역사의 고랑을 배회한 기록이다. 2500년의 시간을 거슬러서 그때 예술가들의 땀과 수고를 기억하고, 그들의 망치 소리와 안료냄새를 주워담은 하릴없는 이야기들이다. 하늘을 본떠서 지은 대리석 원형신전의 흔적에서 호메로스의 코끝을 스쳤던 솔잎냄새를 맡는가 하면, 200년 동안 원작 행세를 했던 레오나르도의 유명한 자화상이 사실은 위작자가 왼손잡이 흉내를 내서 그린 가짜 그림이라는 사실을 추리소설을 방불케 하는 긴박한 글 솜씨로 풀어낸다.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후 17세기까지 건축, 조각, 회화를 가리지 않고 서양 미술의 굴곡 많은 지형을 발길 닿는 대로 써내려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흥미진진한 미술의 숲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