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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ji Maruyama,まるやま けんじ,丸山 健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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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candy@yes24.com)
마루야마 겐지의 신작장편 『도망치는 자의 노래』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시간과 장소에 읽어야 제 맛이 나는 소설이다. 자꾸 누가 옆에서 말을 걸어 대꾸를 해야 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이 오는 족족 체크를 해야 하거나 하여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게 되면 소설의 주인공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고 무슨 내용인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네”하며 투덜투덜대며 읽기를 포기한다 해도 그것은 당사자의 자유이겠으나 만약 정말 그렇게 한다면 이 소설로 인해 경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놓치게 될 셈이니 안타까움은 지울 수 없다.
『도망치는 자의 노래』는 작가의 사유의 힘으로 밀어붙인 소설이다. 한 정신의 완벽한 창조. 속박과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어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집과의 연락을 끊은 채 영화판의 스탭으로, 막노동꾼으로 전전하던 `나'가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고민하고 보았는지 작가는 꼼꼼하게 그리고 있다. 한 문장이라도 허투루 쓰여진 것이 없으며 이따금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교훈도 있다. 이를테면 다음 같은 단락. “자신이 맡은 일을 철저히 수행하되, 처지를 망각하여 제작 중인 작품에 신랄한 비평을 가하거나 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재미있게 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제 몫을 무난히 해나감에 따라 잘난 체 참견하고 싶은 유혹이 생겨나게 마련이라고, 그 길의 대선배가 일러주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누군가가 쓸데없이 훈수를 두는 바람에 동료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말싸움에서 멱살잡이로 이어지는 수도 있었다.” “자신을 돌이켜보는 것에서 태어나는 시는 제아무리 수준이 높더라도, 어차피 어리석음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새롭게 겨냥할 가치가 있는 시는 아니었다. 나를 버리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소설은 `나'의 고백들이 한 층 한 층 겹쳐지면서 하나의 원을 만들기 위해 달려나간다.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주려 하지도 않는다. 큰 재미나 감흥을 주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완벽하게 창조된 정신'이 경험하는 세계에는 어쩔 수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의미가 담긴다. 작가의 눈은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 모든 물건들, 모든 장소들에 미치고 그것에 대한 사유를 찬찬하게 풀어놓는다. 쌓여진 사유는 독자의 머리 안에 `나'가 속해있는 하나의 세계를 훌륭하게 만든다. 그 다음, 독자는 `나'가 되어 책 안의 세계를 무심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 느끼고 경험하게 된다. 책을 다 읽으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도달하고자 했던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독자도 다가갈 수 있을 터. 소설은 이 주제에 대해 독자의 동참을 종용할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 마루야마 겐지는 최연소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로, 일본 북알프스 산맥으로 들어가 글쓰기라는 오직 한길만을 걷는 소설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작가이다. 매일 자신의 머리를 삭발하며 심기일전의 자세로 글쓰기에 임하는 작가의 응집된 에너지를 11월에 느껴보시길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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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그럭저럭 8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때 격정에 휘둘려 저지른 일이라면 이렇게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으리라. 누나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아버지의 생사를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해서 자기 혐오에 빠지지도 않았다. 의리 없는 짓을 되풀이한 놈. 피도 눈물도 없는 불효자. 그러 의식은 터럭만큼도 없었다.
가족을 멀리한 채, 장래의 모든 것을 내손으로 떠안고, 무한대의 해방감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면서, 크게 거만을 떨며, 세상의 끝까지라도 달아난다. 그것이야말로 청춘의 묘미였다. 산골짜기 촌구석에서 썩고, 고향의 흙이 되기 위해 무엇보다도 체면을 중시하면서 조상의 묘와 토지를 지키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태어난 인간이었다면, 나는 애당초 죽은 자였다. 가는 곳마다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온갖 종류의 자유가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내 처지 따위는 대수롭지도 않았고, 방종에 흐르는 무절제한 생활이 얼마나 멋있는지는 실제로 겪어볼 때까지 몰랐다. 국가나 사회가 강요하는 규범이나 도덕, 관례 따위의 속박의 빈틈을 헤집고 나아가는 날들 속에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 pp 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