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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나일 강의 신왕들
서론 : 고대 이집트의 연대기 1. 최초의 파라오들 2. 피라미드의 건설자들 3. 혼돈과 재생 4. 제국의 지배자들 5. 파라오 권력의 약화 파라오의 다섯 가지 이름 참고 문헌 도판 저작권 역자 후기 인명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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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명 : 투탕가텐("아텐의 살아 있는 이미지")
개칭(재위 2년) + 통칭 : 투탕카멘(헤카이우누셰마)("아멘의 살아 있는 이미지, 상이집트 헬리오폴리스의 통치자") 별칭 : 투탕카몬 즉위명 : 네브케페루레("나타나는 신은 레") 아버지 : 아크나톤? 어머니 : 키야? 부인 : 안케센파아텐(나중에 안케세나멘으로 개칭) 아들 : 없음 매장지 : 왕들의 골짜기의 무덤 KV 62호(테베) 1922년 11월에 왕들의 골짜기에서 투탕카멘의 거의 말짱한 무덤(KV 62호)가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제18왕조 후기의 잘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왕이었다. 그는 무덤에서 발견된 내용물 때문에 더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다. 투탕카멘이라는 이름은 20세기 초에 몇 가지 자료에 의해서 알려졌으나, 그가 "아마르나 왕들" 가운데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는지는 불확실했다. 아크나톤이나 아이처럼 그의 이름 역시 아비도스나 카르나크의 왕의 이름표에는 누락되어 있었다. ---p. 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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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여 개의 원색과 흑백도판, 도표, 연표 그리고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고대 이집트 왕조들의 역사 박물관이자 역사개설서
이집트 고대사의 시발점이 된 나르메르의 통일은 네켄에서 출토된 나르메르 팔레트라는 점토판에, 호루스 밑에 꿇어 앉아 있는 하이집트 왕이 나르메르에게 항복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고왕국 시대의 중앙집권의 강화와 효율적 행정체계로 굳건해진 이집트 문명은 피라미드 건축에서 빛을 발했다. 이 책에는 조세르의 계단 피라미드, 평균 2.5톤짜리 돌 230만 개가 들어간 쿠푸의 대(大)피라미드, 카프레를 표현했다고 여겨지는 스핑크스 등 많은 기념물의 단면도와 배치도뿐만 아니라 건축법과 그것들의 발굴과정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신왕국 시대의 주요 파라오의 미라들이 왕실 보관소 DB 320호와 KV 35호에서 발견되어 그들의 진짜 얼굴 가운데 다수를 실제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이 책에 컬러 도판으로 나와 있다) 이 시기의 흥미로운 파라오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하트솁수트 여왕은 회화나 조각에서는 남장을 하고 수염을 단 모습을 하고 있으나 문헌에서는 여성형 어미로 표현되고 있다. 후에 왕위에 오른 투트모세는 그녀의 신전을 파괴하고 거기에 자신을 신전을 세웠으며 왕의 이름표에서 그녀의 이름을 삭제했다. 70여 년간 다스린 위대한 정복자이자, 건설자인 람세스 2세는 아부 심벨의 사암 바위를 깎아 거대한 신전을 세웠으며 18미터가 넘는 좌상을 네 개나 세웠다. 그는 사망 후 코에 후추열매를 넣어 미라의 형태를 온전하게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람세스 3세는 마디나트 하부의 무덤 신전 벽에 자신이 해양민족을 물리치는 전투장면을 새겨두었고, 하렘 음모 파피루스라고 하는 파라오 암살모의와 그 재판에 관한 자료를 남겨 그 시기의 법체계를 증언하고 있다. 아크나톤은 테베의 오랜 수호신 아멘을 버리고, 태양신의 구체적 형상 아텐을 숭배해 유적에 이를 상징하는 태양 원반을 새겼다. 황금가면으로 유명한 투탕카멘은 이외에도 채색된 무덤 현실과 사냥장면을 새긴 석고상자 유물, 석비 등을 남겼다. 그러나 후대에 호렘헤브는 투탕카멘의 업적을 기록한 석비에 자신의 이름을 덧붙이고 그의 석영암 거상도 빼앗아 가졌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이의 무덤 신전을 차지하고 아크나톤의 아텐 신전을 해체해 블록들로 텅 빈 탑문을 내부를 채웠다.이렇듯이 이 책에서는 어떤 한 위대한 인물의 업적이나 기념물을 강조해 전성기의 파라오들만 중점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이집트 각 왕조의 흥망에 따른 이집트 역사를 통시적으로 개괄하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