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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첫째 날 - 성자
둘째 날 - 임무
셋째 날 - 기원들
넷째 날 - 현실이라 부르는 꿈
다섯째 날 - 철새 : 생명
여섯째 날 - 사유하기, 그리고 전부
일곱째 날 - 역사
여덟째 날 - 나는 있는자이다
에필로그

옮긴이의 글

저자 소개 2

장 도르메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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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d’Ormesson

1925년 6월 16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3대 엘리트 양성대학 중 하나인 파리 고등사범대학에서 문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철학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했지만 교단에 남지 않고 일간 《르 피가로》 주필로 정치 칼럼을 쓰고 오랫동안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활동했다. 『나는 영원히 살아있네』를 유작으로 남기고 2017년 12월 5일 9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는 철학자, 작가, 저널리스트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장네 집 쪽으로』, 『찢어진 우산을 들고 지나가는 방랑자』, 『괜찮았어』와 같은 자서전적 작품에서부터 샤토브리앙 전기인 『내 마지막 꿈은 당신을 위한 것』, 『또
1925년 6월 16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3대 엘리트 양성대학 중 하나인 파리 고등사범대학에서 문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철학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했지만 교단에 남지 않고 일간 《르 피가로》 주필로 정치 칼럼을 쓰고 오랫동안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활동했다. 『나는 영원히 살아있네』를 유작으로 남기고 2017년 12월 5일 9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는 철학자, 작가, 저널리스트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장네 집 쪽으로』, 『찢어진 우산을 들고 지나가는 방랑자』, 『괜찮았어』와 같은 자서전적 작품에서부터 샤토브리앙 전기인 『내 마지막 꿈은 당신을 위한 것』, 『또 다른 프랑스 문학사』뿐만 아니라『제국의 영광』, 『사랑은 기쁨이다』, 『신의 기쁨을 위하여』, 『유랑하는 유대인의 역사』, 『해상 세관』, 『나의 심장이여, 너는 왜 뛰는가』, 『보라 어떻게 춤추는지』, 『눈물 젖은 축제』 등의 다양한 소설들이 있다. 특히 1971년에 발표한 네 번째 작품 『제국의 영광』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의 영예를 안은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앵발리드에서 거행된 그의 장례식에서 “장 도르메송은 프랑스 문화의 정수”라는 애도사를 남겼다.
장 도르메송의 41번째 소설이자 유언장이 된 『나는 영원히 살아있네』는 유랑하는 유대인의 비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인류의 역사 무대를 새롭게 찾아간다. 저자 자신의 방대한 지적세계를 보여주는 이 서사시의 화자는 바로 ‘역사’이다. 책 속에서 우리는 인류사의 태동기에서부터 룩소르, 트로이, 비잔틴으로 옮겨가며 예수의 탄생까지도 지켜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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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同)대학원에서 「바로크 주제에 의한 코르네이유 초기 희극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설 불어문화권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며,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저 아래』, 『파리의 풍경』(전6권, 공역), 『세계창조』, 『돌의 후계자』, 『앙드레 말로, 소설로 쓴 평전』, 『눈뜰 무렵』, 『세비녜』, 『문화적인 것에서 신성한 것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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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0월 23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45쪽 | 346g | 128*188*20mm
ISBN13
9788981339029

출판사 리뷰

프랑스 최고의 지성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장 도르메송!


저자 장 도르메송은 1925년에 태어나 젊은 시절부터 철학자로서, 유명 일간지인 〈르 피가로〉의 편집장으로서 활약을 해왔다. 비록 한국에서는 그 인지도가 낮지만 장 도르메송이 지금까지 펼친 행보는 저자가 철학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보여준다. 국립사범대학의 철학교수 시험을 통과한 이래로 유네스코의 철학 인문과학 국제 심의회 사무총장과 회장, 철학 관련 잡지 『디오게네스』의 편집장, 일간 신문 〈르 피가로〉지 사장 등을 거치면서 자신의 철학 세계를 구축했다. 이때의 경험은 이미 일반인에게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장 도르메송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56년부터 『사랑은 기쁨이다』라는 책을 시작으로 『신의 기쁨을 위하여』, 『방황하는 유대인의 역사』, 『내 마지막 꿈은 당신을 위한 것』, 『해상 세관』, 『보라 어떻게 춤추는지』, 『괜찮았어』, 『나의 심장이여, 너는 왜 뛰는가』, 『눈물 젖은 축제』 등 많은 저술을 했다. 펴낸 책은 소설, 에세이 등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으며, 그 주제도 다양하다. 하지만 장 도르메송은 다양한 주제와 다른 형식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다양한 주제를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며, 저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세계관이나 가치관 등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가는 것이다.
장 도르메송은 자신의 생각을 사변적이면서도 정확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지성인 움베르토 에코와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모두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지만 움베르토 에코는 장 도르메송에 비해 보다 철저한 문헌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장 도르메송은 이러한 문헌 위로 자신의 생각을 더 소설 속에서 피력하고 있다.
끊임없는 학구적인 태도와 저자 자신만의 철학관으로 인해 1972년 쥘 로맹의 뒤를 이어 ‘불멸의 지성’이라고 일컬어지며, 회원 수를 늘 40명으로 유지하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선출된다. 이는 프랑스와 유럽 내에서 장 도르메송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2006년작인 『세계창조』는 장 도르메송의 사상과 철학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1965년부터 2007년까지 신문에 기고한 글을 모아 발표한 『시간의 향기』를 통해서 여러 방면에 걸쳐 변화하는 저자의 생각을 살펴볼 수 있지만, 한 권의 소설을 통해서 다양한 주제를 섭렵할 수 있는 책은 『세계창조』이다. 『세계창조』는 소설에서 흔히 쓰이는 액자식 구성으로 이뤄졌지만, 현실과 허구로 보이는 ‘시몬 라케뎀’의 이야기에 대한 정확한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모호한 경계가 바로 이 책에 대한 재미를 더해주고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사고의 여지를 주고 있다.

신의 존재는 역사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한다!

절친한 친구 네 명 에드가, 앙드레, 프랑수아, 화자인 ‘나’는 매년 하는 것처럼 동지중해의 섬으로 여름휴가를 왔다. 이들 네 명은 모두 현대 사회의 지성 혹은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분석의, 전직 장관, 수리물리학자, 소설가인 이들은 에드가가 가지고 온 녹색 노트에 적힌 이야기를 읽으면서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녹색 노트에는 ‘시몬 라케뎀’이라고 하는 사람이 적은 수기가 있었다. 여기에서 시몬 라케뎀은 스스로를 마호메트와 같은 신의 사자(使者)이자, 천사라고 밝히고 있으며, 스스로 ‘하느님’을 만나 이를 확정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들은 시몬 라케뎀의 이러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허풍쟁이, 정신이상자, 사기꾼이라는 등의 각자 의견을 내놓는다.
시몬 라케뎀을 통해서 저자는 우주의 기원, 시간과 역사, 사유와 같은 큰 주제를 말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철학부터 현대의 빅뱅 이론까지 많은 사상과 이론을 섭렵하고, 호메로스부터 사르트르 등에 이르는 문학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다.
시몬이 하느님을 만나서 우주의 기원을 설명할 때 하느님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이 너희들을 돌볼 때 하느님 자신도 풍습과 시대의 흐름과 역사의 조류에 따르지. 과거 위대한 선조들의 시대는 세도가와 왕자들, 영예와 존경이 지배하는 시대였지. 오늘날은 민주주의와 대중, 기회와 평등, 가장 헐벗은 자들의 권리, 조소와 반어의 차례야. 스스로에 대해 말하면서 “모든 인간들로부터 만들어지고, 그들 모두 다 필적할 가치를 갖고 있으며 어느 누구든지 간에 동등한 기치를 갖고 있는 인간”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지?
- 혹시 사르트르인가요? 나는 기어드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본문 중에서

신이란 바로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 책의 저자인 장 도르메송이 기독교적인 가치관에 따라 설명하고 있음을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기독교적이고 종교 혼합주의의 면모를 보이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잠깐 『세계창조』의 구성을 말하면 성경에서 보이는 천지창조의 대목처럼 첫째 날, 둘째 날 순으로 시몬 라케뎀의 수기는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하느님이 7일 동안 세계를 창조한 것과 달리 이 수기는 여덟째 날까지 있다. 이는 저자가 의도적으로 7일에 하루를 더하고, 그 뒤에 에피소드를 가함으로써 철저하게 기독교적 정신을 따르고 있음을 피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저자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지만, 그 신의 존재는 유일신의 존재가 아닌 절대 진리와 같은 존재로서의 신을 인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수(數), 물, 불 등의 요소 속에서 신의 존재를 구현하다!

절대 진리로서의 신을 주장하면서 저자는 인간의 지식이 매우 불완전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 라케뎀에게 수(數)와 같은 기호 체계를 통해서 자신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고대부터 인간이 발전시켜온 과학 등을 통해서 신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는 결국 이러한 결과는 자신으로 귀결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대목에서 수리물리학자인 프랑수아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인간들은 오만하게도 우주를 설명해줄 수학의 유례없는 찬란함을 자신들이 만들어낸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간들이 결코 수학을 창조해낸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것을 발견한 것이다. 수는 사물과 사물의 구성 중심에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수는 정신에 속하고, 무와 전체 사이에 관계를 맺어준다. 수는 너희들의 세계에 앞서 있으며, 너희 세계의 원동력이자 모태이다. 수는 이데아의 하늘 속에 기록되어 있다.
너희들 중 어떤 사람들은 전체의 창조자가 하나의 방정식으로 요약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물론 헛소리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우주와 우주가 존재하게끔 하기 위해 내가 사용한 도구들에 정당한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수는 하느님의 상징이다.” - 본문 중에서

그러나 한편으로 저자는 수를 통해서 신의 존재를 나타낼 수는 있지만 현재의 과학적인 진리와 같은 것과는 별개로 절대 진리가 존재하고 있음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현재 설명할 수 없는 문제, 관념의 문제들은 결국 이성이나 과학이 아닌 철학을 통해서 풀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는 ‘사유’의 문제로 넘어간다.

“과학은 너 이전으로 150억년을 거슬러 올라가 우주의 최초의 순간들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과학은 너의 세계와 너의 삶을 지배하고 있고, 기원의 문제에서 ‘어떻게?’라는 문제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것을 밝혀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왜?’라는 문제를 밝히는 데 있어서는 손톱만큼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과학은 진전을 이루지 못했고, 앞으로도 결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과학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과학과 인간의 천재성과는 다른 질서에 속하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과학적으로는 규명할 수 없는 것을 통해서 저자는 우주의 근원이 바로 ‘정신’에 있음을 보이고 있다. 장 도르메송은 결국 과학보다는 철학이 우위에 있음을 암암리에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을 통해서 과학이니 수의 발전이니 하는 것들이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을 등한시하지 않고 있음을 수리물리학자인 프랑수아를 통해서 나타낸다. 프랑수아는 ‘과학이 인류의 미래’라고 주장을 하며, 때때로 프랑수아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결국 저자는 과학의 우위에 관념을 사유하는 철학을 두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우주의 근원에 있는 것은 바로 정신이고 너는 그것에 에너지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열정과 재능으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공간과 시간은 아무것도 창조할 수가 없다. 그것들은 하나의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정신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배경이고, 그 전체로부터 연이어 물질과 생명과 사유가 솟아나게 된다. 그리고 오직 인간의 정신만이 공간과 시간의 엉클어진 광채를 이해할 수 있거나 이해하려고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인간은 시간과 역사를 통해서 그들의 운명을 발전시킨다!

인간은 수와 같은 상징성을 통해서 그들의 존재가 신의 존재보다 우월한 것을 보이려고 했으며, 시간의 존재를 규명하려고 했다. 그러한 행동을 반복해서 인간은 역사를 발전시킨다. 역사 속의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인류는 발전하고 몰락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소설 속의 하느님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했고, 인간의 사유의 변화 속에서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인류와 존재를 같이 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과 함께하는 물, 바람, 불 등이 존재하는 공간 속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면서 인간과 같이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역사 속의 철학자, 사상가, 문인이나 과학자들이 보이고자 했던 것이 바로 신 혹은 절대진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속에서 장 도르메송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글로써 명확하게 보이고 있지만 문학이나 역사의 한 장면을 예로 들면서 자신의 주장을 유머러스하게 드러내고 있다.

“공간은 동시성과 공존이라는 방식으로 현상들을 구분하고 통합한다. 시간은 연속이라는 방식으로 그것들을 구분하고 통합한다. 영원한 무와 견주어볼 때 공간과 시간은 근본적인 창조이자 새로움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물질, 생명, 사유, 역사, 이것들이 차례로 전개되고 잇달아 솟아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될 텐데, 너희들에게는 그것들이 우연과 필연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언제든지 가능할 것이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간이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게다가 시간은? 시간이란 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시간이라는 존재가 아무런 문제도 야기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누가 감히 주장할까? 시간 역시 우연과 필연의 영역에 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누가 감히 주장할까? 시간이란 내가 무에서 추출해낸 그 모든 것에 심혈을 기울여 새긴 상표이다.” - 본문 중에서

이러한 역사와 시간, 공간의 흐름 속에서, 사유와 무에서 출발한 세계 속에서 인류는 생각하고, ‘사유’라는 개념을 만든다. 그리고 사유를 통해서 인간은 역사라는 개념을 만들고, 말과 글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을 기록한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창조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저자 역시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이는 결국 자신에게 해당하는 말일 수 있다.

“인간은 사유하기 때문에 말을 한다. 그리고 인간은 말을 하기 때문에 사유한다. 말과 사유 사이에서 우선권의 순서를 결정짓는 것이 무엇인지는 간단하지가 않다.
말이란 소리로 변환된 사유이다. 그것은 발성됨과 동시에 폭발하고 축소된다. 말보다 더 부서지기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 기술의 발전으로 그것을 고착시키고, 기록하고, 마음대로 재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말의 본질과는 무관한 요소가 필요하다. 말의 지위는 사유의 지위와 거의 같은 정도로 기이하다.“
- 본문 중에서

인류의 미래는 스스로 결정한다!

저자는 시몬 라케뎀과 네 명의 주인공을 통해서 세계 창조, 시간과 역사, 공간, 인간의 사유 등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얼핏 신의 존재를 통해서면 이 세계와 인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결국 인간은 이러한 절대 진리로서의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스스로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최초의 시작부터 보면 저자가 매우 종교적이고, 인간의 운명은 신의 섭리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스스로의 사유를 통해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너를 그들에게 돌려보낸다. 내가 너와 함께 머물 수 있다는 것을 너는 전혀 믿지 않았다. 나는 다시 나의 부재로 돌아간다. 너는 네 동족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이 역사와 시간 속에서 일시적인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내가 네게 가르쳐주었기를 바란다. “주님! 주님!” 이렇게 소리쳐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항상 다른 곳에 있는 존재를 사랑하기란 너무나 쉬운 일이다. 네 주위에, 너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나를 닮은 네 동족들을 사랑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에피소드를 통해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의문을 남겨준다. 무엇을 선택하든 이 책을 읽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각자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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