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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파블로 카잘스 스페셜 에디션 (Pablo Casals Special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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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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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9 : Best of his Acoustic & Electric Recordings

CD 10 : Best of his Acoustic & Electric Recordings

아티스트 소개 1

연주Pablo Cas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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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카잘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해낸 것으로 유명한 첼리스트다. 에스파냐 카탈루냐 마을의 가난한 오르간 연주자의 장남으로 태어나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가 되기까지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음악을 통한 봉사였다. 약소민족인 카탈루냐인으로 에스파냐 내전과 제1·2차 세계대전, 그리고 종전 후의 혼란기를 겪어야 했던 그에게 첼로는 악기이기보다는 무기였으며, 그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은 그의 사랑을 인류애로 확대시켰다. 바르셀로나에서 파우 카잘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지휘자로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평화를 위한 오라토리오 「엘 페세브레」를 비롯, 70여 편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해낸 것으로 유명한 첼리스트다. 에스파냐 카탈루냐 마을의 가난한 오르간 연주자의 장남으로 태어나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가 되기까지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음악을 통한 봉사였다. 약소민족인 카탈루냐인으로 에스파냐 내전과 제1·2차 세계대전, 그리고 종전 후의 혼란기를 겪어야 했던 그에게 첼로는 악기이기보다는 무기였으며, 그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은 그의 사랑을 인류애로 확대시켰다. 바르셀로나에서 파우 카잘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지휘자로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평화를 위한 오라토리오 「엘 페세브레」를 비롯, 70여 편의 창작곡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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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매일
2008년 11월 05일
시간/무게/크기
1254g | 크기확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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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리뷰

첼로의 성인(聖人) 파블로 카잘스 서거 35주년
-열정과 지성으로 새겨진 한 세기의 기록(1876.12.29 - 1973.10.22)


파블로 카잘스는 "연주가의 시대" 라는 20세기에 우뚝 솟은 위대한 산맥이다. 그로 하여금 이전의 첼로 연주가 집대성 되었으며 그에 따라서 이후의 모든 첼로 연주의 흐름이 갈라져 나왔다. 카잘스는 첼로 연주사상 최대의 인물일뿐만 아니라 고향이 같은 피카소와 병칭되는 금세기 예술계 굴지의 거인이다. 187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남쪽에 있는 카타로니아의 시골에서 태어나 1973년 백세에 가까운 나이에 타계하기까지 세계 전역을 무대로 부단한 연주활동을 펼치며 클래식 역사에 커다란 한 획을 그은 그야말로 진정한 '첼로 바이러스'이자 '클래식 바이러스'라 할 만하다.

어린 시절 오르간 연주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이 음악을 접한 카잘스는 음악공부를 위해 바르셀로나로 떠났고 아직 어렸던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하여 댄스며 음악 공연을 하는 카지노에서 연주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카잘스의 연주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은 스페인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여왕이 그를 왕궁에 초빙하여 연주를 하게 하였다. 그 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도 그를 초빙하였다.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899년 프랑스의 지휘자 라무르의 독주자로 데뷔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1919년 카잘스는 바르셀로나에서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약 10년 동안 활약하다가 1936년 스페인에 내란이 일어나자 자선 음악회를 유럽에서 개최하기도 하였다. 1939년 그는 조국의 프랑코 독재정권에 항의하여 프랑코가 스페인을 지배하는 한 절대로 첼로를 연주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피레네의 외진 마을 프라도에 은둔했는데, 그 후 10년 동안 음악에는 아랑곳없이 프랑코가 다스리는 스페인에 피난해오는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온갖 힘을 기울였다. 이 때문에 10년 동안은 그의 첼로 연주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 고장에서는 이윽고 그를 흠모하여 모여든 세계의 음악가들에 의한 음악제가 탄생했다. 1950년, 바흐 서거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바흐의 대가"인 카잘스를 위한 모임이 발족되어 프라도에서 축전을 열었다. 바이올린의 왕이라고 불리는 크라이슬러를 비롯하여 역시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과 시게티, 그리고 피아니스트 제르킨과 같은 세계 일류 연주가가 이 자그만 도시 프라도를 찾아온 것이다. 그는 독주자로서도 많은 연주회를 갖고 레코드도 녹음했지만 프랑스 사람인 피아니스트 코르토와 바이올리니스트 티보와 함께 트리오르 만들어 활약했다. 이 트리오는 세계에서 으뜸 가는 것이었으나 티보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코르토는 병으로 죽었기 때문에 그 뒤에는 홀로 남아 활동해야 했다. 만년은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으로 이주, 100년에 가까운 생애를 그곳에서 마쳤다. 파블로 카잘스, 그야말로 양심의 소리에 따르는 강하고 의연한 생활 자체가 그대로 더없이 훌륭한 예술의 경지와 결부된 보기 드문 인물이다.

"우리는 우선 인간이어야 한다. 예술이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인간으로서 내가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인류의 복지를 염원하는 일이었다. 세계 평화에 대한 나의 기여는 보잘것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이념에 대해서 온갖 힘을 다할 것이다." - 파블로 카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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