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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야의 이벤트

음반소개

디스크

Disc

  • 01 Prelude X:Xvii In E Minor / Suite No.4 In E Minor
  • 02 Dowland: Lachrimae Antiquae / Lachrimae Or Seaven Teares
  • 03 Marais: Les Folies D’Espagne / Deuxieme Livre De Pieces De Viole
  • 04 Rameau: Les Sauvages / Nouvelles Suites De Pieces De Clavecin
  • 05 Casals: El Cant Dels Ocells
  • 06 Dutilleux: Trois Strophes Sur Le Nom De Sacher
  • 07 Purcell: Dido’S Lament / Dido And Aeneas
  • 08 Ligeti: Sonata For Solo Cello
  • 09 Marais: Les Voix Humaines / Deuxieme Livre De Pieces De Viole
  • 10 Telemann: Allegro Vivace / Sonata For Viola Da Gamba Twv 40:1
  • 11 Escaish: Cantus
  • 12 Grieg: Chanson De Solveig / Peer Gynt
  • 13 Sollima: Lamentatio
  • 14 Chaplin: Love Theme / Modern Times
  • 15 Lennon / McCartney: Yesterday

아티스트 소개 8

작곡John Dow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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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다울랜드

영국 또는 아일랜드 르네상스의 작곡가, 류테니스트,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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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Marin Mar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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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랭 마레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비올 연주자. 그는 Jean-Baptiste Lully와 함께 작곡을 전공하고 종종 오페라를 지휘하며 6개월 동안 베이스 비올 Monsieur de Sainte-Colombe의 주인과 함께 작곡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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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Jean-Philippe Ram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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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필립 라모

장 필립 라모는 화성법을 이론화한 최초의 이론가이자 작곡가이다. 교회 오르가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나 17세 무렵부터 프랑스 각지의 교회 오르가니스트를 전전하면서 이론과 창작에 힘썼다. 1722년(39세) 파리에서 유명한 '화성론'을 출판해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여기에 정착한다. 1726년에는 다시 '신음악 이론 체계'를 출판, '화성론'과 함께 3도 음의 누적에 바탕을 둔 화음 연결의 원리를 확립했다. 후에는 대표작 「이폴리트와 아리시 Hippolyte et Aricie」(1733)를 비롯한 많은 오페라와, 쿠프랭의 뒤를 이어받아 클라브생(하프시코드 또는 쳄발로라고도 부른다)곡을
장 필립 라모는 화성법을 이론화한 최초의 이론가이자 작곡가이다. 교회 오르가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나 17세 무렵부터 프랑스 각지의 교회 오르가니스트를 전전하면서 이론과 창작에 힘썼다. 1722년(39세) 파리에서 유명한 '화성론'을 출판해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여기에 정착한다. 1726년에는 다시 '신음악 이론 체계'를 출판, '화성론'과 함께 3도 음의 누적에 바탕을 둔 화음 연결의 원리를 확립했다. 후에는 대표작 「이폴리트와 아리시 Hippolyte et Aricie」(1733)를 비롯한 많은 오페라와, 쿠프랭의 뒤를 이어받아 클라브생(하프시코드 또는 쳄발로라고도 부른다)곡을 작곡해 갔다. 후에 궁정 실내악 작곡가로 임명된 라모는 당시의 프랑스 악단 최대의 지도자가 되고, 죽음 직전에는 귀족 지위에 올랐다. 라모의 음악은 일반적으로는 「암탉 La poule」이나 「탕부랭 Tambourin」과 같은 극소수의 소품에 의해 사랑받고 있을 뿐이지만, 그 작풍은 동시대의 작곡가에 비해 훨씬 진보적이었다. 특히 '선율은 화성에서 태어난다'고 하는 그의 기본적인 음악관은 이미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시대를 앞서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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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Pablo Cas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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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카잘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해낸 것으로 유명한 첼리스트다. 에스파냐 카탈루냐 마을의 가난한 오르간 연주자의 장남으로 태어나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가 되기까지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음악을 통한 봉사였다. 약소민족인 카탈루냐인으로 에스파냐 내전과 제1·2차 세계대전, 그리고 종전 후의 혼란기를 겪어야 했던 그에게 첼로는 악기이기보다는 무기였으며, 그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은 그의 사랑을 인류애로 확대시켰다. 바르셀로나에서 파우 카잘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지휘자로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평화를 위한 오라토리오 「엘 페세브레」를 비롯, 70여 편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해낸 것으로 유명한 첼리스트다. 에스파냐 카탈루냐 마을의 가난한 오르간 연주자의 장남으로 태어나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가 되기까지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음악을 통한 봉사였다. 약소민족인 카탈루냐인으로 에스파냐 내전과 제1·2차 세계대전, 그리고 종전 후의 혼란기를 겪어야 했던 그에게 첼로는 악기이기보다는 무기였으며, 그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은 그의 사랑을 인류애로 확대시켰다. 바르셀로나에서 파우 카잘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지휘자로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평화를 위한 오라토리오 「엘 페세브레」를 비롯, 70여 편의 창작곡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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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Henri Dutille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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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뒤티외

20세기 후반에 주로 활동했던 프랑스 작곡가이다. 앙리 뒤티외는 1916년 1월 22일에 프랑스의 멘에루아르주 앙제에서 태어났다. 그는 두에 콘서바토리에서 화성, 대위법, 피아노를 공부하였으며, 이후 1933년부터 1938년까지 파리 음악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뒤티외는 1938년에 자신의 칸타타 < L'anneau du roi >로 로마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해 로마에서 연수 기간을 다 채우지 못 했다. 그는 부대에서 1년동안 근무하고 1940년에 파리로 돌아왔다. 파리로 돌아 온 이후 그는 피아니스트, 편곡가, 음악 교사로 일했으며 1942년
20세기 후반에 주로 활동했던 프랑스 작곡가이다. 앙리 뒤티외는 1916년 1월 22일에 프랑스의 멘에루아르주 앙제에서 태어났다. 그는 두에 콘서바토리에서 화성, 대위법, 피아노를 공부하였으며, 이후 1933년부터 1938년까지 파리 음악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뒤티외는 1938년에 자신의 칸타타 < L'anneau du roi >로 로마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해 로마에서 연수 기간을 다 채우지 못 했다. 그는 부대에서 1년동안 근무하고 1940년에 파리로 돌아왔다. 파리로 돌아 온 이후 그는 피아니스트, 편곡가, 음악 교사로 일했으며 1942년에는 파리 국립 오페라에서 합창단을 지휘하였다.

1945년부터 1963년까지는 라디오 프랑스에서 음악국장으로 일하였으며, 1961년부터 1970년까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음악원(Ecole Normale de Musique de Paris)에서, 1970년에는 파리 음악원의 작곡과 객원 교수로 임명되어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2013년 5월 22일에 뒤티외는 9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뒤티외는 작곡을 신성에 준하는 영역으로 간주하였으며, 자신의 작품들을 끊임없이 개정하였고 작곡가 자신이 엄선한 소수의 작품들만 출판하였다. 1948년에 피아노 소나타를 출판한 이후, 뒤티외는 주로 대규모 편성의 관현악곡을 많이 작곡하였다. 관현악곡에는 교향곡 1번과 2번, ≪메타볼≫(Metaboles), ≪별이 빛나는 밤≫(Timbres, espace, mouvement) 등,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에는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득한 전 세계..."≫(Tout un monde lointain...), 바이올린 협주곡 2곡 - ≪꿈 나무≫(L'arbre des songes), ≪하나의 화음에≫(Sur le meme accord)이 있고, 그 외에도 현악 사중주 ≪밤으로≫(Ainsi la nuit), 성악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신≫(Correspondances), ≪시간과 시계≫(Le temps l'horloge) 등이 있다.

뒤티외는 클로드 드뷔시, 모리스 라벨, 알베르 루셀과 같은 프랑스 작곡가의 계통을 이어갔으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벨러 버르토크의 영향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와 드뷔시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를 언급한 바 있다.[8] 뒤티외는 동시대에 활동했던 작곡가들인 앙드레 졸리베, 다리우스 미요, 프랑시스 풀랑크와 종종 교류를 나누었지만, 그는 자신을 어떠한 학파와도 연관지으려 하지 않았다. 뒤티외는 전 시대 작곡가들의 전통과 2차 세계 대전 후의 나타난 다양한 음악 사조를 조화시켜 자신만의 음악 어법을 형성하였다. 또한 뒤티외의 작품 가운데 미술과 문학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는데. 빈센트 반 고흐, 샤를 보들레르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관현악곡 ≪별이 빛나는 밤≫(Timbres, espace, mouvement),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득한 전 세계..."≫(Tout un monde lointain...)를 각각 작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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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Henry Purc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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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퍼셀

작곡Gyorgy Lig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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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르지 리게티,Gyorgy Ligeti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고전음악 작곡가 중 하나로 꼽히며,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아이즈 와이드 셧》에 삽입된 음악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리게티 죄르지는 루마니아 왕국 시절의 트란실바니아에 태어나 그곳에서 음악을 배웠다. 1943년, 나치에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음악 공부를 금지당했다. 그의 가족과 친척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수감되었고 그의 어머니만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음악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코다이 졸탄을 사사했다. 1949년에 졸업하고 나서 교수가 되었다. 그는 루마니아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고전음악 작곡가 중 하나로 꼽히며,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아이즈 와이드 셧》에 삽입된 음악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리게티 죄르지는 루마니아 왕국 시절의 트란실바니아에 태어나 그곳에서 음악을 배웠다. 1943년, 나치에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음악 공부를 금지당했다. 그의 가족과 친척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수감되었고 그의 어머니만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음악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코다이 졸탄을 사사했다. 1949년에 졸업하고 나서 교수가 되었다. 그는 루마니아 민족음악에 관심이 있었지만, 공산주의 정권은 서유럽과의 교류를 막았기 때문에 연구가 어려웠다. 1956년, 공산당에 대한 헝가리 시민들의 항거 이후 리게티는 비엔나로 탈출하여 1967년에 오스트리아 국적을 얻었다. 그곳에서 그는 동유럽에서 접하지 못했던 아방가르드 음악을 접했다.

그때부터 리게티는 작곡가로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작품 중 많이 알려진 것은 시대적으로 《Apparitions》(1958~9)부터 《Lontano》(1967) 사이의 것이지만 그 시대 이후의 오페라인 《Le grand macabre》(1978)도 역시 잘 알려져 있다.

리게티는 함부르크에서 1973년부터 1989년까지 음악을 가르쳤다. 1980년대에는 건강이 나빠졌지만, 2006년 빈에서 사망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브누아 망델브로의 프랙털 기하학, 그리고 루이스 캐럴과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글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리게티의 아들 리게티 루카스는 작곡가이자 타악기 연주자이다.

리게티의 초기 작품은 같은 나라 사람인 벨러 버르토크의 작품을 확장시킨 것이었다. 피아노를 위한 작품인 《Musica Ricercata》(1951~53)와 같은 경우 종종 버르토크의 미크로코스모스와 비교된다. 이 작품은 11개의 곡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곡은 가 음만을 옥타브를 왔다갔다하며 연주하고 맨 마지막을 라 음으로 끝낸다. 두 번째 곡에는 첫 번째 곡에 음 하나가 더해지고, 세 번째 곡에는 다른 음 하나가 더해지고, 이런 식으로 음을 덧붙여 마지막 열한번째 곡에는 반음계에 나타나는 12음이 모두 들어가게 된다. 공산주의 정권은 이 작품의 10번째 곡을 ‘퇴폐적’이라 하여 연주를 금지시켰다. 이는 이 곡에서 나타나는 단 2도 음정의 자유로운 사용 때문으로 보인다.

헝가리를 떠나 쾰른에 살면서 리게티는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과 함께 전자 음악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Glissandi》(1957)와 《Artikulation》(1958)을 포함한 세 곡만을 쓰고 연주 음악으로 돌아섰다. 그의 음악에서 전자 음악의 느낌이 나타나는 것은 그당시 전자 음악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Apparitions》(1958~59)은 리게티를 주목받게 만든 첫 번째 곡이었다. 그 다음 작품인 《Atmospheres》(1961)는 《Lux Aeterna》와 《Requiem》과 함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삽입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는 작곡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인용한 것이다.

《Atmospheres》는 큰 관현악단을 위한 곡인데, 선율, 박자, 화성 어느 것도 부각되어 있지 않지만 sound mass라는 기법을 써서 음색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 곡은 음악사상 가장 큰 음괴로 시작하는데, 반음계로 5옥타브가 넘는 음역에 해당하는 음을 동시에 연주한다. 그리고 화음과 음악의 질감이 천천히 바뀐다. 그는 《Atmospheres》, 《Apparitions》를 포함한 그의 몇몇 작품에 쓰인 기법을 설명하기 위해 마이크로폴리포니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이는 화성이 급작스럽게 변하지 않고 서로 융합하면서 진행하는 다성 음악 기법이라고 리게티는 설명한다.

1970년대 이후 리게티는 선율과 박자를 가진 음악을 쓰기 시작했다. 또한 아프리카 음악, 특히 피그미족 음악의 박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피아노 연습곡》(제1권 1985, 제2권 1988~94, 제3권 1995~2001)와 같은 작품은 인도네시아의 가멜란 음악과 아프리카의 polyrhythm, 버르토크, Conlon Nancarrow, Bill Evans 등의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호른과 관현악을 위한 《Hamburg Concerto》(1998-99, 2003 개작)와 song cycle인 《Sippal, dobbal, nadihegeduvel》(파이프, 드럼, 피들과 함께, 2000)이다.

그는 70년대 이후 후진들을 양성하는 데 집중했다. 많은 유명한 작곡가가 그로부터 작곡을 배웠는데, 진은숙도 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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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Christian-Pierre La Mar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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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피에르 라 마르카

품목정보

발매일
2021년 01월 06일
시간/무게/크기
크기확인중
KC인증

음반 속으로

Christian-Pierre La Mar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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