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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키어 사라피언. 헌신적인 아들이자 동생이며 의리 있는 친구이고 믿을 만한 동료선수이다. 그리고 여자가 싫다고 말하면 그게 진심이라는 것을 아는 아이이다. 그런데 지지 보다키언은 나에 대해 너무 큰 오해를 하고 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옳다는 걸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빠와 둘이 살고 있는데 아빠는 항상 나를 지지해 주며, 대학에 간 프랜 누나와 메리 누나도 내가 좋은 녀석임을 입증해 줄 만한 사람들이다. 또한 학교에선 인기 있는 미식축구 선수이고, 축구 팀 파티에 불려갈 정도로 믿음을 주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난 ‘킬러’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데 그 이유는 경기 도중 상대편 선수와 충돌해 그 선수가 다리를 절게 되고 더 이상 선수로 뛸 수 없게 된 사건 때문이다. 그런데 그 상대편 선수는 괜찮다며 내게 카드를 보내 왔고, 우리는 그렇게 그 문제를 잘 해결했다. 사실 난 규칙에 맞게 정당하게 부딪쳤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내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축구 팀 명예 회원으로 파티에 참석했을 때도 나와 동료들은 ‘사랑스러운 악당’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당시, 그 자리에 없었음에도 일이 벌어지고 나서의 결과만 놓고 우릴 판단했다. 도서관 창문을 깨뜨리고, 동상을 부수는 일 등이 있었지만 흔히 있는 일이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다. 하긴 이런 건 상관없다. 진짜 문제는 내 졸업식에 누나들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험을 핑계로 내 졸업식에 오지 않은 누나들이지만 난 이해했다. 대신 아빠가 나를 위해 롤로 아저씨의 리무진을 졸업 선물로 빌려 줬다. 그래서 난 졸업식 날 남자친구인 칼에게 바람맞은 지지 보다키언(나도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과 함께 누나들이 있는 노포크로 향했다. 그런데 누나들은 시험이 아닌, 남자친구와 데이트하고, 휴가를 가기 위해 내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이다. 난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프랜 누나가 내게 한 말들에 상처를 받았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배신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난 롤로 아저씨를 몰래 보내고 지지를 데리고 노포크 대학 풋볼 팀 방으로 갔다. 지지는 피곤해하며 옆 침대에서 잠들었고, 난 갑자기 너무 외롭고 우울해져 아까 파티에서 친구가 준 알약을 삼켰다. 지지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그래서 난 일어나 지지에게로 갔다. 난 지지에게 키스하고 드레스를 벗기고 다리를 침대 위로 치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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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소설에서 이런 주제를 다룬 책은 처음 접해 본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러는 이 주제가 거북하고 껄끄럽게 와 닿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렇게 수면 위로 내놓고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므로, 다소 충격적이더라도 신선한 소재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 작품은 데이트 강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한 번쯤 꼭 읽어 봐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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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 후보작
▶ 사랑이란 이름 아래 은폐된 ‘데이트 강간’ ‘데이트 강간’은 ‘부부 강간’만큼 낯설게 다가온다. ‘사랑’이란 이름 아래 벌어지는 폭력의 한 형태인 ‘데이트 강간’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남성들’이 저질러 온 은폐된 만행에 일침을 가하는 단어이다. ‘데이트’와 ‘강간’이란 말의 배치는 인간 감정의 왜곡되고, 일그러진 특성을 여실히 보여 준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청소년들 사이의 ‘데이트 강간’에 관심을 갖고 있던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졸업 ? 댄스파티에서의 성폭력, 치어리더들의 광란의 밤과 집단 임신중절,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못한 여성들의 데이트 피해 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왔다. 이런 현상은 소설에도 적극적으로 반영돼, 의례적인 남성의 데이트 습성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해 왔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데이트 폭력은 범죄’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데이트 폭력 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등 사랑이란 이름 아래 은밀히 자행돼 온 데이트 폭력에 점점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후보작에 오른 크리스 린치의 소설 『용서할 수 없는』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이며, 많은 이들이 기다려 온 시의적절한 이야기이다. ▶ ‘남자의 입’으로 말하는, 진실과 거짓말 그리고 책임에 대한 이야기 『용서할 수 없는』은 스스로를 착하고 좋은 녀석, 즉 헌신적인 아들이자, 동생이며 의리 있는 친구이고 믿을 만한 동료선수라고 믿고 있는 키어 사라피언의 입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작가는 완전히 ‘자기기만’에 빠진 인물을 내세워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들로 하여금 내내 ‘스토킹’을 ‘구애’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자기변명에 빠져 있는 키어의 이야기는 그가 짝사랑하는 지지 보다키언과 함께 보낸 ‘마지막 밤’에 산산조각 나 버린다. 키어에게 강간을 당한 보다키언은 키어라는 ‘잔인함 ? 폭력성’과 대조를 이루며 ‘우아함’으로 등극한다. 끝까지 키어를 믿고 있었던 지지는 ‘사랑’한다는 키어의 말에 굴복하지 않고 ‘성적 자기결정권’이 박탈당한 사람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우아함이나 잔인함 그리고 폭력은 이분법적이며 자극적인 소재에 덤으로 얹히는 빤한 말이 아니다. 작가 크리스 린치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관계에 초점을 맞춰 인간 사이에 서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책임에 대해 진지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용서할 수 없는』의 가장 독특한 점은 바로 ‘남성의 언어’로 이야기를 밀고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피해자인 여성이 느끼는 울분과 우울, 상처 등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진 않지만, 오히려 독자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여성의 언어를 이해하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특별한 시선을 통한 소설 읽기의 묘미와 더불어 소재주의를 넘어선 이야기 자체로써의 깊이와 진정성 역시 맛볼 수 있다. 『용서할 수 없는』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시로 맞닥뜨리게 되는 진실과 거짓말 그리고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고 강렬하게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