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대한민국사 1945~2008
양장
임영태
들녘 2008.11.17.
베스트
역사 top100 2주
가격
39,000
10 35,100
YES포인트?
1,9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책머리에_ 대한민국의 건강진단서이자 미래의 나침반

제1장 대한민국 탄생의 모태 1945~1948
제2장 이승만 정부 1948~1960
제3장 장면 정부 1960~1961
제4장 박정희 정부 1961~1972
제5장 유신시대 1972~1979
제6장 전두환 정부 1980~1988
제7장 노태우 정부 1988~1993
제8장 김영삼 정부 1993~1998
제9장 김대중 정부 1998~2003
제10장 노무현 정부 2003~2008

참고문헌
찾아보기
사진자료

저자 소개 1

1959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거창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문제에 눈 떴고, 청년 시절에는 민주화·노동운동에 관계했다. 지금은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 인문·사회와 관련한 집필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사)현대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포괄적 과거사 정리기구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하며 공식 보고서 발간 작업을 총괄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역사·인문·사회 교양서를 쓰는 것에 관심이 많다. 멕시코·쿠바의 역사와 사회문제를 여행기와 결합한
1959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거창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문제에 눈 떴고, 청년 시절에는 민주화·노동운동에 관계했다. 지금은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 인문·사회와 관련한 집필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사)현대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포괄적 과거사 정리기구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하며 공식 보고서 발간 작업을 총괄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역사·인문·사회 교양서를 쓰는 것에 관심이 많다. 멕시코·쿠바의 역사와 사회문제를 여행기와 결합한 이번 책에 이어 동북아시아 역사와 평화문제를 여행기와 결합한 책을 구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내일을여는책, 2016), 『스토리 세계사 1~10』(21세기북스, 2014), 『두 개의 한국 현대사』(2014, 생각의길),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2013, 유리창),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2013, 유리창), 『대한민국사 1945~2008』(2008, 들녘), 『거꾸로 읽는 한국사』(공저, 2002, 푸른나무>, 『거꾸로 읽는 통일이야기』(공저, 2002, 푸른나무), 『북한 50년사 1, 2』(1999, 들녘), 『대한민국 50년사 1, 2』(1998, 들녘), 『1980년대 한국 노동운동사』(공저, 1988, 조국) 등이 있다.

임영태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1월 17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136쪽 | 1680g | 153*224*60mm
ISBN13
9788975278204

책 속으로

제1공화국은 이승만과 한민당의 연합정권으로 출범했다. ……그런데 이승만과 한민당은 정부가 수립되는 그 순간부터 권력배분문제를 두고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 1라운드는 권력구조를 둘러싼 헌법 제정 과정에서, 2라운드는 초대 내각 구성에서 벌어졌다. 이승만과 한민당의 연합이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 첫 시발은 정부형태를 결정하는 제헌헌법 제정에서였다. 한민당이 주도한 제헌의회는 권력구조를 내각제로 결정했으나, 이승만은 대통령제를 주장했다. 한민당은 내각제를 통해 의회에 기반이 있는 자신들이 정권을 장악하겠다는 속셈이었고, 이승만은 허수아비가 아니라 절대권력을 지닌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다. 이는 단순한 정부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배분의 문제, 헤게모니 장악의 문제였다. …… 이승만과 한민당의 권력투쟁 제2라운드는 초대 내각 구성에서 벌어졌다. 이승만은 예상과 달리 내각 구성에서 한민당을 철저히 배제했다. ……1?2라운드 모두 이승만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 앙금은 달랐다. 헌법 제정에서는 한민당이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넘어갔지만, 초대 내각 구성에서까지 당한 한민당은 이승만에게 등을 돌렸다. 이때부터 한민당은 야당이 되었고, 이승만으로부터 정치권력을 빼앗기 위해 기나긴 투쟁의 길에 나섰다. --- 2장 「초대내각 구성과 한민당의 도전」에서

조봉암의 전향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과거 공산주의운동에 참가했던 인물들이 전향한 경우는 종종 있지만, 조봉암 같은 거물이, 그것도 인천 민전 의장과 같은 중요 현직에 있던 사람이 전향한 경우는 없었다. …… 그는 공산주의 사상을 버리고 개혁주의자로 변신했다. ……이승만의 초대 농림부장관 기용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승만의 절묘한 용인술이라는 점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 이승만은 조봉암을 등용함으로써 좌익진영의 정치선동에 대처하고, 자신의 개혁의지도 선전하며, 한민당의 물질적 기초도 허물겠다는 생각이었다. 조봉암이 주도한 농림부안은 한민당이 주도한 산업개발위원회안을 견제하는 역할을 충분히 했던 것이다. 그는 토지개혁에서 볼 수 있듯이 ‘혁명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 점은 진보당에서도 드러났다. …… 선거를 앞두고 신익희가 급사하는 바람에 그는 216만 3,808표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는 조봉암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계기가 되었다. --- 2장 「조봉암과 진보당 사건」에서

김형욱은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며 박정희에게 충성을 바쳤으나 결국은 ‘팽’당하고 말았다. 갓끈 떨어진 신세가 된 김형욱은 박정희에 대한 배신감과 후임부장 이후락에게 위기감을 느끼고 73년 4월 미국으로 도망쳤다. 미국으로 도망친 김형욱은 79년 10월 파리에서 실종되는 그날까지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물어뜯고 쥐어뜯었다.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김형욱에 의해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김형욱은 후에 박 정권 시대의 비사 『김형욱 회고록』을 남겼는데, 회고록은 그가 자연의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다. 박정희와 김형욱을 보면 박정희 시대 정치의 한 줄기가 보인다. 그들은 동지로 시작했으나 끝내는 물고 물리는 배신 속에서 서로의 파멸을 재촉하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김형욱 그는 60년대 숱한 악역을 도맡았지만 그래도 박정희 정권과 유신체제의 비행과 어두운 그림자를 회고록을 통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 5장 「유신시대 남산돈까스 김형욱」에서

현대는 70년대의 중화학공업화정책으로 가장 큰 혜택을 입었다. ……현대는 73부터 80년 사이에 연평균 81.1%의 성장세를 보였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현대가 그렇게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그룹의 중심기업들이 이 기간 동안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의 모기업은 현대건설이다. 현대는 60년대 국내 건설업에 활발히 참여하여 기반을 닦았다. ……정주영은 당시 잡초가 우거진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과 그 지역의 5만 분의 1 지도 한 장, 그리고 외국 설계회사에서 빌린 유조선 도면을 들고 배를 수주했을 정도로 뚝심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정주영은 박정희 대통령을 역대 정치가 가운데 가장 좋아한다고 했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정주영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부터 ‘죽이 맞았다’고 하니까 70년대의 경제개발 과정에서도 가장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정주영은 박정희 시대의 경제인 가운데 몇 안 되는 친위인사였다. 군부와 정치계에 이후락·차지철·박종규·윤필용·김재규가 있었다면 경제계에는 정주영이 있었던 것이다. --- 5장 「1970년대의 기업가」에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연 것은 정부가 욾니라 민간기업이었다. 98년 6월 16일 한국 최대의 재벌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500마리의 소떼를 이끌고 휴전선을 넘어 북한을 방문한 것이다. 정 명예회장의 방북사건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정주영의 소떼 방북 모습은 TV에 생생하게 방영되어 장관을 연출하였다. 정주영은 방북의 변으로 “강원도 통천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청운의 꿈을 품고 세 번째 가출할 때, 아버님이 소를 판 돈 70원을 가지고 집을 나섰”는데, “이제 그 소가 천 마리의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으러 고향산천을 찾게 됐다”고 하였다. 정주영 회장의 방북사건에 대해 일각에서는 “돈이 뚫은 것이지 소가 뚫은 것인가”라면서 냉소적으로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남북관계에서 새장을 여는 획기적인 대사건임이 분명하였다. 정주영의 자본가로서의 이악스런 행동에 매우 비판적인 리영희 교수조차도 그의 방북을 두고 ‘행위예술의 대연출’이라고 평가했을 정도였다. --- 9장 「소떼방북과 금강산 관광」에서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는 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였다. ……8월 15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제1차 이산가족상봉이 있었다. …… 북쪽 어떤 인사의 말처럼 ‘셰익스피어도 표현할 수 없는’ 인간 비극과 희극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한국전쟁 당시 16세의 어린 중학생으로 의용군에 참가해 50년 만에 어머니를 만나러 온 계관시인 오영재는 이미 한줌 재가 되어 땅속에 묻힌 어머니의 사진에 볼을 부비며 울부짖었다. 그는 …… 자신이 지은 시를 낭송하며 어머니 사진을 모시고 절을 올렸다. …… 83년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진행자였던 아나운서 이지연도 이곳에서 북쪽에 살고 있는 오빠 리래성을 만났다. …… 가족 한 가족의 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 한 편의 소설로 손색이 없었다. 그해 여름 한반도는 눈물의 바다가 되었다. 그러나 그 눈물은 슬픔보다는 기쁨의 표현이었다. --- 9장 「비극과 희극의 극치」에서

IMF체제와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일어난 재벌의 부침과 변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삼성의 독주, 현대의 분화와 위상 약화, 그리고 대우의 해체와 몰락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98년 초까지 현대?대우?삼성은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1·2·3위의 재벌그룹이었지만, IMF를 거치면서 그 운명이 완전히 달라졌다. 재계 2위 대우그룹은 해체되어 개별기업으로 분산되었으며 김우중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손을 떼고 범법자 신세로 세계를 유랑하는 처지가 되었다. 재계 1위 현대그룹은 유동성 위기 때문에 그룹의 상징이며 중추였던 현대건설과 현대전자를 처분해야 했으며, ‘왕자의 난’, 정주영 명예회장 타계, 대북사업의 지체 등 우여곡절 끝에 세 조각으로 분리되어 위상이 크게 약화되었다. 반면, 삼성은 삼성자동차로 인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재무구조개선에 빠르게 성공해 IMF를 무난히 넘겼다. 삼성은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호조 등에 힘입어 그룹 전체의 덩치와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고, 그 결과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확대해 삼성 독주체제를 굳힐 수 있었다. --- 9장 「재벌의 부침」에서

이날의 토론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검사들의 오만한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고, 비판여론이 쏟아졌다. 그래서 한동안 ‘검사스럽다’는 말이 유행어가 되어 세간에 떠돌게 되었다. ……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의 토론은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다. 검사들의 논리는 허술했고 억지스러웠던 반면, 대통령의 논리는 여론의 지지를 받을 만하였다. 하지만 이날의 토론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노 대통령은 격식을 없애고 권위주의를 탈피한다는 의도로 평검사들과 격정적인 토론을 벌였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권위가 떨어지는 부담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 10장 「검난파동과 대통령의 권위」에서

한국 영화는 2003년 전국 기준으로 51.6%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서울 기준으로는 49.97%였다. 이는 3년 연속 40%를 넘어선 기록이었다. 그 후 한국 영화는 2007년까지 5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한국 영화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08년 상반기에는 37.8%까지 떨어져 한국 영화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의 여파가 영향을 미친 것인지 한국 영화가 근본적인 한계 때문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한국 영화는 이처럼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시장점유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한국 영화가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며, 헐리웃 영화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 영화의 이런 경쟁력,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문제점은 없는 것일까?

--- 10장 「위기 속에서도 전진하는 한국 영화」에서

출판사 리뷰

대한민국 성장에 관한 보고서
대한민국이 환갑을 맞았다. 공자는 60세가 되어 이순(耳順)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과연 대한민국도 그 단계에 와 있을까? 아무래도 대한민국은 이순은커녕 지천명, 혹은 불혹의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듯 보인다. 이제 겨우 이립의 수준이라고나 할까? 물론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는 이미 지난 듯하다. 성년의 단계에 들어선 것만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사 1945~2008』은 우리나라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대한민국의 성장에 관한 꼼꼼한 보고서이다. 오로지 한국근현대사에 관한 저서만을 집필해 온 임영태가 대한민국 탄생의 산고와 성장기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대한민국이 이룬 성취와 희망의 이야기, 좌절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또한 대한민국이 부끄럽게 여기고 반성해야 할 이야기도 포함됐다.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로 태어나 걸음마 상태에서 전쟁과 맞닥뜨렸다. 전쟁 후에는 오랫동안 비민주적인 권위주의 체제를 겪었다. 분단이 고착화되고 반공이데올로기와 국가보안법체제가 대한민국을 지배했다. 국민들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뒷거래와 유전무죄의 비정상적인 사회에 적응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국민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화도 이루었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적인 성과도 거두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적대적 남북관계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는 물꼬도 텄다.
이 같은 대한민국의 성장 과정을 역사라는 이름의 촘촘한 그물로 엮은 책이 바로 『대한민국사 1945~2008』이다. 이 책은 1945년 해방에서부터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까지를 다루었다. 대한민국의 모태가 되는 해방정국을 제1장으로 하고 이승만 정부, 장면 정부, 박정희 정부, 유신체제, 전두환 정부,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10개의 장으로 나누었다.
그간 출간된 한국현대사 관련 책들은 대부분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통사의 경우는 정치적 사건조차 너무 압축해 다루어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반면 이 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두루 다루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각 정부마다 개별적으로 정리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중요 사건에 대해서는 그 이면까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도록 인과관계에 중점을 두었다.

국민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역사교과서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일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국민 교양서로 읽을 만한 대한민국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대한민국사 1945~2008』은 자의적인 평가나 해석을 애써 비껴가면서 사건 자체를 충실히 재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좌우의 구분과는 다른 제3의 시각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조망하고자 애를 썼다. 처음부터 저자는 역사적 사건을 충실히 재현하는 해설자를 자처하며, 자의적인 평가나 해석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물론 역사서술에서 완전히 가치중립적인 객관은 존재할 수 없다. 사건의 취사선택에서부터 사실 정리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관점이 어떤 식으로든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사 1945~2008』은 가급적 한쪽으로 치우친 편향과 도식적 판단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고, 그 결과 흔히 말하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구분과는 다른 관점에서 현대사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사 1945~2008』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을만한 역사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이 책은 대한민국 역사에 참여한 무수한 인간들의 다양하고 생생한 이야기가 녹아 있다. 김구, 여운형, 이승만, 조봉암,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한국현대사를 수놓은 정치가는 물론 이범석, 김형욱, 이후락, 김재규, 차지철 같은 정권의 막후실력자들,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이건희 같은 기업가들, 윤이상, 김지하, 황석영, 이미자, 조용필, 정태춘, 안성기 같은 문화예술인들, 그리고 이름 없는 민초들의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가 함께 버무려졌다. 역사는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종합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우리 미래를 위한 소중한 나침반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지만 현재의 반영이고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사람의 건강상태를 알려면 그 사람의 과거 병력이나 이력을 알아보는 것이 필수이다. 그런 점은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국가야말로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는 현재 상태를 전혀 알 수 없다. 예를 들면, 침략의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을 통해 우리가 참전했던 베트남 전쟁을 진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70~80년대 일본인의 몼매춘 관광을 통해서 현재 동남아에서 성매춘 관광에 열을 올리는 우리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진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서독에 파견되어 돈을 벌었던 광부와 간호사를 보면서 현재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노동자의 현실도 성찰할 수 있을 터이다.
『대한민국사 1945~2008』에는 대한민국의 과거 행적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다. 그 소소한 기록들을 들춰보면서 지금 우리의 건강을 체크해보자. 진단만 제대로 한다면 적확한 처방전은 쉽사리 나오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대한민국의 건강진단서이자 우리 미래를 위한 소중한 나침반이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