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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소개의 말 서문 1. 신성한 자들과 그들의 무덤 2. "지극히 사적인 장소" 3. 보이지 않는 동반자 4. 아주 특별한 사자 5. 현존 6. 권능 주요 사료 주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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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고대의 사람들은 성인 숭배의 성장이 자신들의 심성 깊은 곳에 있는 경계선을 거의 다 무너뜨렸다고 느꼈다. 그것은 고대 인간들이 천상과 지상, 신과 인간, 산 자와 죽은 자, 도시와 묘지 사이에 설정한 상상의 경계선을 무너뜨렸다. 성인 숭배와 관련된 명백한 장벽 붕괴 현상을 언제까지 대중 신앙이라는 잔잔하고 거대한 대양 표면에 일었던 몇 방울의 거품으로만 다룰 수 있을 것인가? 성인 숭배가 후기 로마 사회 전반에 걸쳐 인간 관계의 변화와 맞물린 '심성 구조의 변화'를 가져왔는데도 말이다. 성인 숭배는 죽은자를 존경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죽어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자를 너무나 눈에 띄고 잘 보이는 장소와 연결시켰고 또 그들을 많은 지역에서 살아 있는 대리인들과 연결시켰다. 이러한 사실들은 적지않은 변화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한 변화의 세목들을 모두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분 모델"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성인 숭배의 출현을 소수와 다수 사이의 대화라는 관점에서 제시하기보다는 더 큰 전체의 일부분으로서 고찰해보자. 후기 고대 사회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경배의 형태를 급격히 추구하게 되었다. 경배의 대상은 새로운 장소에 안치된 새로운 것이었고 새로운 지도자들이 편성한 것이다. 변화하는 세계에서 소수와 "저속한 서민들" 모두가 권력 행사와 인간 유대의 새로운 형태를 추구하고 보호와 정의를 간절히 희망했던 것이 바로 이 변화의 동력이었다.
---p. 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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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파울리누스가 놀라에 정착하기로 결정한 이후부터 서유럽에서 로마의 지배가 무너지고 투르의 그레고리우스가 유년의 추억을 되새기게 되었을 때까지 위대한 네 세대가 내린 결단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 오래된 세계에는 한계가 있었다. 즉 『황금가지』에서 프레이저가 말했듯이 "하느님은 죄를 용서할 수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느님과 그의 친구들은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만난 사람들에게 당대의 의존 관계를 본떠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기대를 형상화하려는 강박적인 시도는 항상 권력과 보호의 행사와 관련된 언어를 선택하는 것 이상을 의미했다. 후기 로마의 상황에서 '권능'은 상당이 부드러운 이면을 가지고 있었다. 보호와 의존, 심지어 귀족적인 '우호'의 절박함은 우리에게는 딱딱하고 구속적인 관계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후기 로마인들은 바로 이러한 관계들을 통해서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 행동과 자유를 얻기를 희망했는데, 정의라는 기적과 자비와 또 동료 인간과의 연대는 바로 그러한 자유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정의와 자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후기 로마 공동체에서 성인들의 '현존'과 관련된 은사를 입는 은혜로운 순간만큼이나 드물고 일시적인 것으로, 그렇게 하려면 사회에서 준수되고 있는 법 집행을 중단해야 할 형편이다. 이러한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기들 세계 안에 동료 인간이면서 철저히 자비로운 존재가 머물 자리를 마련하고자 애썼던 후기 고대 그리스도교인들을 살펴보는 데 보다 진지한 공감과 보다 세심한 배려를 갖춰야 할 것이다.
---p. 285~2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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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숭배 - 사회의 응집된 열망, 그 안의 협상과 갈등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 전도를 위하여 선택한 12사도를 비롯하여 전도에 공이 컸던 사람들, 특히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몸을 바친 순교자들을 엄격한 교회 심사를 거쳐 '성인'으로 받들고 있다. 신도가 세례를 받을 때 성인의 이름을 따서 세례명을 지어주는 카톨릭 교회의 제도, 그 밖에도 성당이나 병원에 성인의 이름을 붙이는 관례, 성인에게 소원을 기원하도록 부탁하면 효과가 있다고 밑는 민간신앙이 있을 정도로 성인은 오랫동안 널리 민중의 숭앙을 받고 있다. 이러한 신앙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리스도교 신앙이 급속도로 전파되던 '후기 고대'에 이르게 되는데, 이 성인의 유체, 또는 그것에 접촉된 물건(옷, 소지품)을 성유물이라 하여 숭배하거나 그들 무덤 주변에서 치료를 구하고, 구마하는 관습이 생겨났다. 특히 4세기경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유물이 발견되고, 콘스탄티노플로 성유골이 이전하게 된 것을 계기로 그 숭배열이 왕성해지면서 교환 · 수집 · 순례가 행해졌다. 이들 성유물은 보통 유골함(성유물함)에 넣어서 제단 등에 안치했고 성인들의 무덤 주변에는 큰 교회(바실리카)들이 들어서기도 했다. 브라운은 무엇보다 이 '성인 숭배'를 민중들의 미신과 교회의 권력 의지에 의해 탄생된 것으로 바라보는 단순화되고 도식적인 이분 모델을 버릴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는 이 성인 숭배가 하나의 우주관은 무너지고 새로운 우주관은 채 탄생하지 않은 참으로 고단한 시대에 새로운 지도력을 창출하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 나온 역사적 산물임을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단순히 종교라는 관념의 역사에 머무는 대신 경제사와 사회가 그리고 상징 형성의 역사를 종횡무진으로 파고 들어가고 결합시킨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성인 숭배는 한때 대중적인 미신으로 폄하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줄곧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리고 이 성인 숭배는 교회의 제도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성인의 무덤 앞에서 사람들은 울부짖고 기도하며,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았다. 하지만 이 열정적인 신앙을 구성했던 사람들은 과연 얼굴 없는 대중들일 뿐일까? 대중들의 맹목적 멸망과 지적 엘리트들의 우울한 성찰이라는 안이한 이분법적 도식을 거부하며, 브라운의 저작은 이 얼굴 없고 이름 없는 대중의 욕망에 뚜렷하고 아름다운 형체를 부여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성인과 그의 유골을 활용하여 만인 앞에서 힘을 인정받고, 성인들의 무덤을 남성의 지배를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했던 여성들이 있다. 또 성인과 그들의 무덤에서 더 큰 자비를 구했던 가난한 자들도 보인다. 어떤 귀족들은 성인들의 존재를 사유화하고, 다시 그것을 공중(公衆)에 베풂으로써 더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과 존경과 충성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들은 시대의 새로운 지도자로 떠오른 사제들인데, 그들 중에는 성인을 가장 고귀한 정신을 교감할 수 있는 대상으로 삼아 그처럼 이상적인 개별적 관계를 훌륭한 문예 형식으로 표현했던 이들도 포함된다. 이들은 당대 사회 관계들의 복잡한 그물 속에서 성인 숭배를 능숙하게 조직함으로써 안정된 지위를 확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