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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동아시아 ‘예술’ 개념의 재구축과 다양한 변이
1부_동아시아의 ‘예술’ 개념 횡단 1장_ 다이쇼기 일본·식민지 조선의 민중예술론, 로맹 롤랑의 ‘제국’ 횡단 2장_ 홍명희의 ‘예술’, 개념과 운동의 지반: 일본 경유 톨스토이의 비판적 수용 3장_ 파괴의 예술과 건설의 예술: 카프 초기 프롤레타리아 미술 담론 4장_ 근대 중국의 ‘美術’ 개념과 1929년 전국미술전람회 5장_ 문학용어사전을 통해 본 문학·예술 관련 개념 정립 과정: 1910~1920년대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에서 편술된 용어사전을 중심으로 2부_ 식민지 조선의 ‘예술’ 개념 수용과 문학장의 변동 6장_ 1920년대 초기 김찬영의 예술론과 그 의미 7장_ 1920년대 초 동인지 문인들의 예술: 예술의 미적 절대성 획득과 상실 과정 8장_ 1920년대 후반 임화 평론에 나타난 아방가르드 수용과 예술의 정치화 9장_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예술 개념의 탈경계적 사유와 그 가능성 10장_ 일제 말기 최재서의 예술론과 정치의 미학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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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발표된 이기호의 소설 「수인」(『문학동네』, 2005년 여름호)에는 심판관 앞에 서 있는 소설가 수영이 나온다. 외부와 관계를 끊고 폐가에 들어가 소설을 쓰던 수영은 원자력 발전소 두 곳이 폭발해 한국이 폐허가 되어버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폐가에서 나온 수영은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이주하고 싶어 하지만, 심판관들은 그가 이주할 자격이 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수인」에서 심판관들이 소설가 수영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면은 소설 창작과 같은 예술활동, 더 나아가 인문학 전반의 존립 필요성에 의혹을 던지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시선을 연상하게 한다.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당신을 받아줄 나라가 어디에 있겠냐고 물어보는 심판관에게 수영은 소설이 예술 영역에 속한다는 점을 애써 강조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곧 소설 역시 일종의 발명품이 아니냐는 심판관의 반문과 충돌하게 된다.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심판관과 수영의 모습은 1919년 『창조』1호에 실린 김환의 소설 「신비의 막」에 등장하는 세민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겹친다. 도쿄미술학교에 진학할 뜻을 밝힌 세민에게 어버지 역시 “대체 미술이란 무얼 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신비의 막」 속 아버지는 “노동이 없는 곳에 소설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심판관과 달리 근대적 예술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아버지(「신비의 막」)와 심판관(「수인」)은 소설가(혹은 화가 지망생)에게 ‘예술’의 존재 근거를 대답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때 눈여겨볼 것은 아버지와 심판관의 질문에 대답하는 예술가들의 태도다. 2005년 소설가 수영이 대답하는 모습은 1919년의 미술가 세민과 기묘하게 대조된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환쟁이라고 부르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예술가라고 강조하던 1919년 세민의 발화에서 ‘예술’은 마법적인 힘을 지니는 개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러나 2005년 소설이 발명품과 다르다는 것을 주저하듯 대답하는 수영의 말에서 그 마법은 이제 더는 시효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진다. --- pp.9-10「머리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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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예술’ 개념 횡단
이 책의 1부 ‘동아시아의 예술 개념의 횡단’에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예술’ 개념이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 한국, 중국, 일본에 역동적으로 유통된 양상을 살펴본다. 첫 번째 글 박양신(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연구교수)의 「다이쇼기 일본·식민지 조선의 민중예술론」과 두 번째 글 이예안의 「홍명희의 예술, 개념과 운동의 지반』은 각각 로맹 롤랑의 ‘민중예술론’과 톨스토이의 예술론이 제국 일본을 경유하여 식민지 조선에 유입된 양상을 추적한다. 이예안은 메이지 시기 일본에서 톨스토이가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세밀하게 탐색하며 홍명희가 그러한 경향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했음을 부각했다. 세 번째 글 홍지석(단국대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교수)의 「파괴의 예술과 건설의 예술」은 ‘프롤레타리아 예술’ 개념을 거론하는데 예술 활동의 주체가 미술 담론을 어떻게 재구성해냈는지를 보여준다. 네 번째 글 김용철(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의 「근대 중국의 ‘미술’ 개념과 1929년 전국미술전람회」는 국가의 통치 권력이 ‘미술’ 개념 정립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했다. 이 글이 미술전람회에 초점을 맞춰 예술 제도와 예술 개념의 관계를 고찰했다면 강용훈의 「문학용어사전을 통해 본 문학·예술 관련 개념 정립 과정」은 제도적 기반으로서 용어사전에 주목한다. 특히 1924년 『개벽』에 연재됐던 박영희 편술의 『중요술어사전』의 의의를 조명한다. 식민지 조선의 ‘예술’ 개념 수용과 문학장의 변동 1부가 ‘동아시아’로 지평을 확대하여 예술 개념의 재구축 양상을 다루었다면, 2부 ‘식민지 조선의 ‘예술’ 개념 수용과 문학장의 변동’은 1920년대부터 일제 말기까지 식민지 조선에서 미학적 주체들의 활동 양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김찬영, 김동인, 염상섭, 임화, 김기림, 최재서 같은 지식인들이 ‘예술’ 개념을 어떻게 전유했는지와 그 전유 과정이 식민지 조선의 문학장에 미친 효과를 보여준다. 송민호(홍익대 국문과 교수)의 「1920년대 초기 김찬영의 예술론과 그 의미」는 1920년대 초반 동인지 문학에 나타난 김찬영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김찬영이 『창조』를 통해 근대적 예술론을 넘어서려는 인상주의, 입체주의를 시도했다는 점을 들어 저자는 높이 평가한다. 박슬기(한림대 국문과 교수)의 「1920년대 초 동인지 문인들의 예술」은 ‘자기가 창조하는 세계’로 예술을 규정한 김동인, ‘개성의 표현’으로 예술을 개념화한 염상섭의 문제의식을 새롭게 해석한다. 이성혁(한국외대 강사)의 「1920년대 후반 임화 평론에 나타난 아방가르드 수용과 예술의 정치화」는 당시 임화가 가장 첨단적 기술복제 예술이었던 영화 장르의 선전적 힘을 이용하여 예술의 정치화 작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고 강조한다. 김예리(강원대 국문과 교수)의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예술 개념의 탈경계적 사유와 그 가능성」은 김기림 예술론의 의의를 재해석하고 이를 오늘날 문학연구에 대한 문제제기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최현희(한국외대 한국학과 교수)의 「일제 말기 최재서의 예술론과 정치의 미학화」는 최재서의 예술론을 통해 ‘미학의 정치화’를, ‘정치적인 것’ 안에 ‘미학적인 것’을 완전히 포함시키는 ‘정치의 미학화’로 전도되지 않게끔 하는 반성적 지점을 탐색한다. 『동아시아 예술담론의 계보』는 이렇듯 열 편의 글을 통해 동아시아의 ‘예술’ 개념이 다층적 경계 위에서 재구축되었음을 드러낸다.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저자들은 예술 개념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드러낸다. 어떤 지점에서는 마주치치만 또 다른 지점에서는 충돌한다. 그 마주침과 충돌은 ‘서구적 art’ 개념과 동아시아 삼국의 ‘예술’ 개념 사이, 정치적 현실과 미학적 원리 사이, 제도화된 예술과 제도를 탈구축하려 했던 예술운동 사이의 경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대표 저자 강용훈은 “예술이 존립해야 할 이유를 묻는 질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 역시 바로 그 부단한 성찰 과정을 보여주는 일일 것”이라며, 동아시아 예술담론의 계보를 다시 인식하는 작업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예술’이라는 용어, 우리가 영위하는 예술 활동을 되돌아보는 작업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