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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문명의 가치는 의심되지 않는가 ─ 집단의 중력은 강하다
왜 문명의 이기(利器)는 여유를 빼앗는가 ─ 빠를수록 느려지는 딜레마 위선자를 위한 변명 ─ 인간은 가면을 필요로 한다 박테리아가 허락한 인간 세계 ─ 문명과 박테리아의 영원한 숨바꼭질 너무 단단한 1등의 신화 ─ 인간에게 서열을 매기는 것이 가능한가? 신을 창조한 인간의 진실 ─ 신은 그 사회의 방향이다 도시는 인류의 고향이다 ─ 도시의 서로 다른 두 얼굴 행복한 미래는 존재하는가 ─ 미래의 가치는 현재를 담보로 한다 불멸을 향한 문명의 다른 이름, 쓰레기 ─ 인간만이 쓰레기를 남긴다 편리를 추구할수록 불편해지는 딜레마 ─ 불편함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천국과 극락은 왜 존재할까? ─ 사후 세계를 바라는 인간의 이야기 고정관념을 위한 변명 ─ 고정관념은 문명과 일상의 창조자 가치는 클수록 좋은가 ─ 거대함의 축복과 저주 아름다움의 새로운 정의들 ─ 미(美)의 권력을 넘어서 왜 문명은 섹스에 관대하지 않은가 ─ 금기와 억압의 역사 너머에서 진화는 없다 ─ 인간의 편견을 거부하는 자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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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문명의 이기(利器)는 오히려 여유를 빼앗는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를 운전해서 가는 사람은 걸어서 가는 사람보다 분명 빨리 도착한다. 그렇다면 부산에 더 일찍 도착한 운전자는 남은 시간을 여유롭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일까?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를 보면 라다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현대적인 도시로 시집간 언니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면서도 오히려 삶의 여유를 잃고 더 바쁘게 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은이 송상호가 부산에 더 일찍 도착한 운전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은 이렇다. 그 운전자는 남은 시간을 자동차를 구입하고, 보험료를 벌어야 하며, 새로운 길도 살펴야 하고, 자동차 정기검사도 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도로와 자동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전자뿐만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이러한 노력들은 궁극적으로 인간 진화의 모든 것과 관련된다. 문명을 유지하려는 갖가지 노력들과 맞물려서 자동차가 운행되는 체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피와 땀은 여행객들이 걸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보다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 본문 중에서 * 불멸을 향한 문명의 다른 이름, 쓰레기 지구촌 곳곳이 쓰레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태평양만 해도 미국 언론 「샌프란시스코 게이트」가 ‘대륙 크기의 쓰레기 스튜’라고 불렀던 거대한 쓰레기 더미들이 떠다니고 있다. 지구의 극지(極地)라고 할 수 있는 에베레스트산은 물론 심지어는 우주 공간도 이제는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쓰레기를 줄이고,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그런데 지은이는 쓰레기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자연에는 쓰레기가 없는데, 오로지 인간의 유용성이란 잣대가 쓰레기 여부를 판가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손을 거친 자연물은 언젠가 그 유용함이 사라지면 모두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고 강조한다. 즉 인간이 문명을 만드는 작업은 한편에서 쓰레기를 만드는 작업으로, 자연적이지 않은 것들의 공통의 최후라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쓰레기 문제를 근원적으로 푸는 길의 시작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 본문 중에서 * 위선자를 위한 변명 위선적인 행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위선적인 행위는 왜 없어지지 않는 것일까? 심리학자 칼 융에 따르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페르소나(persona)라고 하는 사회적 인격을 지니고 살 수밖에 없다. 사회적 인격은 우리가 흔히 아버지답다, 선생님답다, 어른답다 할 때의 ‘답다’에 해당하는 태도이다. 사회가 한 개인에게 기대하는 역할인 셈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러한 페르소나와 자신의 삶을 늘 일치시키고 살 수만은 없다. 내적인 인격을 억압하며 딸이자,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했던 여인들이 한이 맺히고 화병에 걸리는 것은 이와 관련된다. 사회는 한 개인에게 사회적 인격에 충실하라고 요구하지만 그 길은 다양하고 끝이 없다. 결국 한 인간은 내적인 인격(그리고 욕구)과 사회적인 인격(페르소나) 사이에서 위선적인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다. 칼 융은 이러한 분열과 갈등을 이해하는 사람이 오히려 건강하다고 한다. --- 본문 중에서 * 고정관념은 문명과 일상의 창조자 고정관념을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서점에 가더라도 고정관념을 고발하고 이를 극복하는 지침을 담은 책들뿐이다. 하지만 고정관념은 한편에서 인간에게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안정된 문명을 이루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물의 고정된 정체성을 부정하는 순간 인간의 인식 활동은 불가능해진다. 몸의 인식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갖가지 신호와 순간순간 파편화된 정보에 빠져 극도의 혼란을 경험할 뿐이다. 신생아가 눈의 기능은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사물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이를 처리하는 고정된 정체성을 부여하는 뇌의 훈련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정관념은 우리 뇌가 수많은 정보를 인식하고 분류하며 재생하는 과정에서 한정된 뇌의 용량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그리고 고정관념은 인간의 경험이 담긴 소중한 그릇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사회적으로도 유용한 면이 있음은 물론이다. 한 사회가 공유하는 고정관념이 없다면 그 사회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 미래의 가치는 현재를 담보로 한다 열심히 살아라, 하면 된다는 말은 우리 사회에 익숙하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이룬 고도성장은 이러한 삶의 가치관에 기댄 바가 크다. 지금도 이러한 삶의 태도는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신성한 가치이다. 그렇다면 오늘을 열심히 살라는 말이 왜 문제라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라는 말은 현재를 중시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중시하는 태도이다. 청소년들이 좋은 대학 입학이라는 미래의 목표를 향해 오늘도 밤잠을 줄이면서 청소년기가 갖는 정체성이나 가치를 희생시키고 있는 것은 그 좋은 예이다. 우리는 열심히 자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열심히 산다고 하지 않는다. 미래의 가치와 연결되는 부분만 집중적으로 할 때 열심히 산다고 한다. 즉 미래의 성공과 연결되지 않은 삶의 다른 부분은 희생하며 하나의 목표에 집중할 때 열심히 산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는 그만큼 다른 가능성과 가치를 잃어버리기 쉽다. 삶의 여유와 지금의 행복을 누리는 기술, 다양한 인간들의 다양한 삶의 태도는 무시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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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세상은 생각처럼 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사람들이 꿈꾸는 삶을 여러 가지로 이야기해 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는 더 행복하고 편리한 삶이라고 하겠다. 정치가는 물론 학교에서도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를 이야기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첨단 제품 광고들은 제품만 구입하면 바로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보장할 것처럼 광고한다. 그렇지만 세상일이 생각처럼 되고 있다고 그 누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덜 행복하고, 삶은 더 번잡하고, 갈수록 여유를 잃고 있다. 세상은 지금도 위선적인 행위들로 넘치고, 고정관념을 타파하자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완고한 사고의 틀은 좀처럼 물러갈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이때 우리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이를 성찰할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우리의 방향 그 자체는 잘못된 것이 없지만 각자의 노력 자체가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개인들은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우리의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 책은 후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문명의 방향과 가치에 대해 돌아보고 있다. * 왜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문명의 가치는 의심하지 않는 것일까? 역사를 돌이켜보면 역사의 방향을 잘못 잡아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던 민족이나 사회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는 독일 제3제국을 이끌며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히틀러를 단죄하지만 당시 독일 국민은 히틀러가 제시한 길에 동의하며, 열광적인 지지를 넘어 그를 숭배하기까지 했다.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를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들은 다른 역사에도 종종 있었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그 사회나 문명의 가치를 의심한다는 것은 사실 외롭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소속감을 집단이 공유하는 가치에서 찾는다.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윤리는 각 개인에게 선악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복종과 순종을 요구한다. 그 속에서 개인은 될 수 있는 한 그의 동료와 유사해짐으로써 안전을 느낀다. 그의 최고의 목표는 타인에 의해 인정받는 것이며, 그의 주된 두려움은 그가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기존의 가치를 의심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던 인간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그것은 인간들이 끊임없이 자유를 확대할 수 있었던 힘이기도 했다. 이 책은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간직하고 있는 문명의 가치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뒤집어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