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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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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조선 3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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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序

김홍도 - 조선 민중의 숨결을 그리다
「씨름」에 감춰진 천재성의 비밀
18세기, 풍속화의 시대
선線들이 품고 있는 음악
숨소리까지 들리는 그림
35밀리 렌즈로 포착한 진경산수
카메라 옵스큐라와 조선 화단
기법도 마음도 뛰어넘은 경지
시간 속으로 사라진 천재

신윤복 - 색色으로 조선을 흔든 불온한 화가
조선 사회의 에로틱 판타지
‘색’ 다른 유토피아
가마에서 탈출한 여인들
서민의 눈에 담긴 양반의 이중성
색채에 숨겨진 아름다움의 비밀
그림 속의 프레임
여색과 채색의 절정, 「미인도」
조선의 색을 되살려내다

김준근 - 19세기 조선, 세계를 만나다
가면 속 삽화가의 정체
김준근, 역사의 기억에서 떠오른 이름
이국을 떠도는 조선의 얼굴
개항장의 페인트 게릴라
조선의 풍습을 담은 1급 사료
기산 팩토리, 시대가 낳은 새로운 스타일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돌아온 화가

종綜

수록 도판 목록

저자 소개

저자 : EBS 화인 제작팀
‘풍속화,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김홍도, 신윤복, 김준근’은 김광호 PD가 기록으로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근대를 살다 간 세 풍속화가의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근대라는 격동기를 붓과 색으로 살다 간 그들에 대한 헌사이며, 그들이 일찍 깨닥고 이야기하던 우리의 근대에 대한 회상이다.
김광호 PD는 어느 날 서점에서 우연히 조선 후기 풍속화가를 다룬 책을 만난다. 그리고 이제까지 몰랐던 그림과 거기에 얽혀 있는 이야기들에 충격과 감동을 받는다.
“집으로 오는 길에 그 그림들을 떠올래며 생각해보니 고작 교과서에 실린 그림을 본 게 전부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런 그림들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2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404g | 148*210*20mm
ISBN13
9788952754134

책 속으로

정조와의 인연은 확실히 김홍도의 삶에 있어 운명과도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중인인 그에게 어떤 의미로든지 날개를 달아준 이는 정조였다. 예술을 사랑하는 임금을 만난 ‘환쟁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김홍도는 처음에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정조를 위해 더 뛰어난 풍속화를 그려내려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서민들의 생활상을 관찰하고 화폭에 담아내면서 점점 자신의 그림 속 주인공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애착이 생겨났을 것이며 그에 따라 풍속화 자체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이 살아낸 시대의 무수한 표정들을 그림으로 남기는 일은 진정 행복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단원풍속화는 격변하는 시대적 배경과 임금의 요구, 화가의 재능과 노력이 합쳐져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김홍도의 빛나는 천재성이 조선풍속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 p. 37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 그림과 함께 보냈을까. 단원은 실바늘보다 가는 선을 수천 번 반복해서 그었다. 그 과정은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인내의 고통을 수반하였으리라.
그 선들이 품고 있는 음악은 오랜 기간 숙성된 깊이와 장엄함을 뿜어낸다. 그림을 보고 있던 내 머릿속에는 음표들이 빽빽하고 치밀하게 자리 잡은 오페라 대곡의 악보가 떠올랐다. 적절한 비교이든 아니든, 그것이 단원의 인내가 빛을 발하는 대작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다.
단원의 작품 속에서 살아 꿈틀대는 선들은 여전히 춤을 추듯 자유롭게 변화하며 그의 예술성과 천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러나 그 빼어난 선을 바라보는 내게 와 닿은 것은 천재 김홍도의 숨결보다도 더 뜨거운 그의 땀 냄새였다. --- p. 46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날, 나는 다시 「씨름」을 보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림 전체가 눈 안에 들어왔다. 긴장되고 흥분되는 그 현장의 기운은 물론이고, 구경꾼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 응원하는 소리, 그리고 샅바를 움켜쥔 선수들의 숨소리까지 내게 전해오는 느낌이었다. 작가의 숨결까지 도 느껴지는 작품. 걸작이란 그런 것이다. 「씨름」은 과연 우리나라 풍속화의 정점이라 평가받을 만한 그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단원이 지닌 천재성의 비밀을 더욱 상세히 밝히고 싶은 욕심이 비로소 커져가고 있었다. --- p. 57

눈으로 보기에도 겸재가 그린 구룡폭포는 실제와 꽤 차이가 있었다. 그는 각각의 위치에서 본 모습을 한 화폭에 그리는 다시점 방식을 취해, 폭포는 정측면에서 웅덩이는 위에서 본 모습을 그렸고, 폭포의 능선 너머로 보이는 구정봉은 아래쪽에서 볼 때와 같이 아예 생략했다. 그에게는 실제 풍경보다 그것을 본 느낌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때문에 시점을 이동하기도 하고 부감하기도 하면서 그릴 대상을 변형시켰던 것이다.
그와 달리 김홍도는 단 하나의 시점만을 채택해 구룡폭포의 모습을 그려낸 듯 보였다.
“35밀리나 50밀리 렌즈에 해당하는 화각으로 대상을 잡고 있네요. 한 번 보시겠어요?”
이정수 작가가 손짓을 하기에 가까이 가서 뷰파인더에 눈을 대보았다. 그 안에 담긴 풍경은 단원의 그림과 거의 90퍼센트 이상 일치했다. 김홍도는 폭포 위 봉우리는 물론이고 암반의 질감까지도 눈에 들어오는 사실 그대로를 포착해 묘사하고 있었다.
“그림을 보니까 시점의 폭도 45도 정도로 좁혀지는 것 같아. 보통 사람의 시선도 그렇거든. 정말 눈에 담은 걸 화폭에 그대로 담았구먼.”
P는 뷰파인더를 연신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 p. 64

초상화 속 유언호의 몸길이를 재보면 84센티미터이다. 그러니까 원래 키가 1미터 68센티미터 정도 된다는 것이다.
신체를 원래의 비례대로 정확히 축소해 그리는 것은 카메라 옵스큐라와 같은 기구의 도움 없이는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카메라 옵스큐라를 축용경, 즉 사람의 모습을 줄이는 거울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며 인물화 등에 많이 사용하고 있었으니, 이명기 또한 그런 방식으로 유언호 초상을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 p. 74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나 그림을 그릴 때의 마음가짐 같은 것을 모두 뛰어넘은 초월의 상태. 불교 사상으로 말하자면 너와 나의 경계도 사라지고 ‘나’라는 것도 의식하지 않는 그런 단계에 김홍도가 올라서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란 삶과 따로 놀 수 없는 법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단원의 예술세계에도 당연히 그의 생애가 반영되고 있을 것이다. 그의 그림 세계는 말년으로 갈수록 마음의 이상을 승화시키는 쪽으로 변해갔다.
어쩐지 슬픈 생각이 든다. 「늙은 매화」 속 매화가지가 거침없어 보이면 서도 쓸쓸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킬 수 없는 것이다!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나는 아랑곳없이, 창밖으로는 수많은 별들이 아름다운 모험의 길을 비추고 있었다. --- p. 95

먹먹한 구름 사이로 둥근 보름달이 어스름하게 빛난다. 으슥한 골목 한쪽, 담벼락 옆에 서서 부둥켜안고 있는 두 남녀가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면 두 남녀의 포즈는 꽤나 대담하다. 여인의 허리를 거칠게 감고 있는 음흉한 표정의 남자와 그 남자의 몸을 끌어안고 있는 여자. 둘의 얼굴은 금방 입이라도 맞춘 듯 가깝다. 서로의 뺨을 간질이고 있을 숨결이 내게도 느껴지는 듯하여 괜히 부끄러워진다.
그 둘을 지켜보며 홀로 서 있는 또 한 명의 여인이 있다. 무슨 일일까? 깊은 밤, 비밀스러워 보이는 만남의 주인공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 p. 113

그가 어떤 계기로 인해 사대부 여인이나 일반 아낙네들, 그리고 그들의 애정행각에 집중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자유로이 꾸미고 돌아다닐 수 있었던 기생들을 그리다 보니 그보다 훨씬 억압되어 있던 여성들에게까지 눈길을 주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조금씩 흐트러지는 사회 질서, 그 속에서 조금씩 솔직해지는 여성들의 심정을 그림으로 대신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혜원의 그림 속에 그려진 여인들을 볼 때마다 그녀들이 사방이 막힌 가마에서 탈출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마의 문을 가만히 열어주는 신윤복의 모습과 그 안에 앉아 있던 여인들이 봄빛처럼 눈부시게 웃으며 걸어 나오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것은 혜원의 꿈속에도 자주 등장했던 장면이 아니었을까? --- p. 128

후원에서 양반들이 기생들과 함꼐 유희를 즐기고 있다. 담장을 넘어온 소나무 가지 밑에서 가야금을 타고 있는 한 기생과 그 옆에 앉아 담뱃대를 물고 음악을 감상하는 남자. 연잎이 잔뜩 올라온 연못가 뒤에는 또다른 남자가 어린 기생을 무릎에 앉힌 채 희롱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즐거운 유희의 현장과 어울리지 않는 잔뜩 지푸리고 서 있는 양반의 얼굴이 눈에 확 들어온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양반들이 이 모양이니 나라가 잘 돌아갈 리가 있나!’ 뒷짐을 진 인물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작가의 생각이기도 했으리라. 그림 속 한 인물의 몸을 빌려 신윤복은 자신의 시선을 그림 속에 집어넣은 것이다. --- p. 139

신윤복은 자연의 숨결과 사람의 정성으로부터 나오는 고운 색들로 화폭을 아름답게 채웠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단지 색 자체만으로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빨간색과 파란색, 노란색 등의 컬러를 그림 속에 다 등장하도록 적절히 배색하는 것은 물론, 농담을 이용해 같은 색을 다른 느낌으로 사용한 것이 바로 신윤복 색채의 또다른 비밀이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단오풍정」에서 컬러를 빼보면 색채의 농담이 확연히 드러난다. 신윤복이 똑같은 색의 물감으로도 그 밝기를 조절해가며 변화를 주어 화면을 구성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그저 눈에 잘 띄는 색들을 골라 배치만 한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색의 농담까지 고 려해 그림을 그려낸 것이었다.
「단오풍정」에 사용된 색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다채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때로는 은은하고 곱게, 때로는 자극적이고 선 명하게, 자유자재로 색을 다룬 그의 능력 덕분이었다. 색을 잘 쓰지 않고 심지어는 화려한 채색을 경박하게까지 여겼던 당시의 문인화가들을 비 웃듯 신윤복은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쳐가며 새로운 세상을 열고 있었 다. 그는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가는 색의 마술사였다. --- p. 150

「기방무사」를 보면 그림 속에 있는 문이라든가 기둥, 처마의 선들이 모두 그림의 네모난 틀과 평행이나 수직을 이루고 있다. 왼쪽에 촘촘하게 그려진 발, 기둥, 댓돌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 선들만 한번 집중해서 봐. 몬드리안 그림 같지 않냐?”
P는 전화까지 해서는 호들갑이었다.
“혜원풍속화의 구도를 분석한 학자에 의하면 신윤복이 그림의 프레임까지도 고려해서 그림을 그렸다는 거야. 그림 속의 모든 구성적인 요소들이 그림의 네모난 틀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 고민했던 거지.”
사각의 프레임을 의식한 배경은 이전까지의 풍속화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김홍도의 그림과 비교해보아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혜원만의 특징이었다.
김홍도의 그림들은 화폭 안에서 구도가 완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 p. 154

“사랑하는 여자였겠지?”
그림이 완성됐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P에게 묻자, 그는 씩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그랬겠지. 혜원 말이야, 여자를 정말 좋아했을 것 같아. 그림을 보면…….”
“그런 것 같지? 모든 그림에 여자가 등장하는 걸 봐도 알 수 있잖아.”
P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신윤복의 생애에, 그리고 그의 예술세계에도 한 획을 긋게 된 운명적인 그날을 상상한다. 기방에 앉아 술을 마시는 신윤복 앞에 나타난 아리따운 기녀 한 ?. 봄에 핀 꽃 같은 그 얼굴은 신윤복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는 분명 결심했으리라. 저 여인을 화폭에 담겠노라고. 혼신의 힘을 다하겠노라고. 조심스레 숨을 골라가며 붓을 움직이는 손과 천천히 움직이는 붓끝을 응시하는 눈과 굳게 다문 입술. 그림을 완성하고 붓을 놓은 순간 송글송글 땀이 맺힌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솟아났을 것이다. --- p. 165

그렇다면 김홍도나 신윤복 이후에도 그들에 버금가는 풍속화가가 존재했던 것일까?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왜 유독 그 사람만 잊혀진 걸까?
나는 『천로역정』의 삽화가 궁금했다. 베일에 싸인 김준근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화봉책박물관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신문로에 위치한 이 도서전문박물관은 규모는 작지만 희귀한 고서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기로 유명하다. 1895년에 출판된 『천로역정』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박물관 관장인 여승구 씨는 고서를 연구하고 수집하는 데 한평생을 보낸 사람이었다.
“제가 가장 아끼는 겁니다.”
귀하게 보관하고 있던 『천로역정』을 꺼내오며 그가 말했다. --- p. 179

나는 해외에 있는 김준근의 그림을 찾아 떠나기로 결정했다. 누구에 의 해, 어떤 방식으로 그의 그림들이 다른 나라에 흘러들어갔는지, 그 경로 를 역추적해 나가다 보면 모든 의문은 의외로 쉽게 풀릴지도 모를 일이 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지나친 감정이었지만, 그 모험 같은 취재를 결정한 후 나는 마치 추리소설 속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묘한 흥분감을 느꼈다. 김준근을 역사의 기억에서 불러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 었다.
정말이지, 그는 너무 오래 잊혀져 있었다. --- p. 192

2년 전 캐나다의 왕립 온타리오 박물관에서 ‘KOREA AROUND 1900 : The paintings of Gisan’이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다. 김준근에 대해 모르고 있던 때여서 9개월 동안이나 계속된 그 특별전에 가보지 못했지만, 뒤늦게 자료를 모으던 중 나는 당시의 전시 포스터를 보았다. 기분이 묘했다. 그림과 함께 김준근이라는 이름 석 자가 분명히 찍힌 그 포스터는 토론토의 시내 곳곳에 붙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그림 속 조선의 얼굴들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낯선 땅을 배회했으리라. --- p. 194

김준근이 활동한 부산과 원산, 인천 제물포의 공통점은 바로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외국에 문을 연 개항장이라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개항장일까? 예술가들의 활동지역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게는 예술이 발달한 특정한 지역, 혹은 조용한 전원 등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이 좀더 쉽게 상상이 간다. 그런데 왜 김준근은 개항장 만 골라 다니며 그림을 그린 걸까. --- p. 205

소금기 섞인 바람을 맞으며 그림을 그린 이들은 궁중화가가 아니었다. 나라의 주문으로 그림 을 그리지도 않았다. 모두들 마치 게릴라처럼 움직이며 그들만의 활동무 대 안에서 목표로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조선식 몽마르트 언덕의 수많은 무명화가들 가운데 김준근은 단 연 돋보이는 브랜드였다. --- p. 212

조선의 풍속을 알고 이해하는 자가 그린 풍속화는 사진보다도 더 조선을 잘 알 수 있는 매개체였다. 때문에 김준근의 그림은 외국인들에게 더없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조선을 속속들이 알고자 했던 서양인들에게 김준근은 조선의 속살을 그려 보여준 셈이다. 그의 그림에는 19세기 조선이 빠짐없이 담겨져 있다. 이로 인해 당시의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들 역시 조선의 살아 있는 모습들을 생생히 만날 수 있는 것이다. --- p. 217

사극 드라마에 등장하곤 하는 참빗을 팔러 다니는 여인네나 가가호호 방문하여 여성용품을 판매하는 방물장수의 모습 또한 기산풍속도가 아니었다면 어느 누구도 생생하게 재현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문헌 사료를 통해 단지 글만으로 풍속의 모습을 알아내는 것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장면들을 실감나게 담고 있다는 점이 바로 김준근 그림의 힘이다. --- p. 218

시대 변화에 따라 상업성과 대량생산을 그림 생산 방식에 도입했다는 점에서 김준근은 분명 선구적인 면모가 있었다. 그에게 순수예술에 반하여 대중예술을 추구하려는 뚜렷한 의도는 없었을지 모르나 그의 공동작업장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문득 앤디 워홀의 ‘팩토리’가 떠올랐다. 앤디 워홀이나 김준근이나 변화하는 시대가 낳은 산물임은 분명해 보였다.

--- p. 232

출판사 리뷰

EBS 조선의 프로페셔널 화인-김홍도, 신윤복, 김준근 편.
방송에서 다 말하지 못했던
풍속화 속에 감춰진 비밀을 추적한
역사-인문 다큐멘터리


EBS 조선의 프로페셔널 화인-김홍도, 신윤복, 김준근
EBS에서 방송되어 호평을 받았던 다큐멘터리. 요즘 불어닥친 풍속화 열풍 속에 우리나라 대표 풍속화가들의 생애와 그들의 풍속화 속에 담긴 미학적 비밀을 밝혀내보자는 의도로 제작되었다. 다큐멘터리를 글로 옮긴 이 책은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방송에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세 풍속화가의 독특한 이력과 그들만의 개성적인 미술 기법상의 비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 풍속화가 어떤 차이점을 가지는지, 그리고 그들이 조선 후기 근대라는 시대를 어떻게 뜨겁게 살면서 실천했는지, 교과서나 그림 분석에 머물렀던 여타 미술 교양서가 전혀 말해주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조선 후기, 시대의 삶을 기록한 세 명의 화가. 그들의 그림과 시각 속에서 조선에서 싹트던 근대를 발견한다
조선 후기 대표 풍속화가들의 삶과 작품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는 우연한 기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신윤복을 다룬 소설과의 만남이 계기가 된 것. 김홍도와 신윤복 등 조선의 풍속화가가 등장하는 그 소설을 읽으면서 프로그램 제작자 김광호 PD는 의외로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 외에 풍속화나 풍속화가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풍속화가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조사를 시작했으나 그들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그들이 남긴 그림에 집중하기로 했다. 작가가 느끼고 표현하려 했던 것, 그 온전한 기록이 바로 작가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역추적해가면서 희미했던 화가들의 형체가 실체를 드러냈다. 그리고 조선 후기 세 풍속화가가 나름의 방식으로 근대를 도입하고, 근대를 살아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당대의 화법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실험을 추구하며 붓으로 근대를 꿈꾼 세 예술가의 생생한 숨결을 만나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 세계를 추적하면서 김광호 PD는 신윤복이 놀랍도록 근대적인 화가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당대의 다른 화가들에 비해 확연히 앞서 있는 그의 그림을 보며, 그것이 과연 그만이 지닌 특성이었나 하는 데까지 의문이 확장되었다. 마찬가지로 신윤복보다 앞서 활동한 김홍도 역시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으로 사실적 화풍을 정립해 나가면서 가장 먼저 시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화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김홍도와 신윤복에 대해 조사하던 중 만나게 된 또 한 명의 근대 풍속화가 김준근과도 조우한다.
세 화가의 뒤를 좇으면서 김광호 PD는 그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미술 방법을 고안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무척 놀란다.

신윤복은 구도와 색에 빼어난 화가였다. 그는 인테리어적 요소까지 고려한 큐레이터 마인드를 가진 화가로 완성된 그림이 어디에 걸릴지 장소까지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주사나 등황, 쪽 등 당시에는 구하기 어려웠던 물감을 사용해 그만의 화려한 채색화를 구현했다. 많지 않은 물감으로도 농담을 조절해 그림의 강조점을 살리는 등 당시로서 그의 화법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김홍도는 오늘날 ‘카메라 옵스큐라’라고 불리는 서양광학기구를 사용해 당시 문인들에게 일반적이었던 관념화가 아닌 사실적 그림을 구사했다.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과학에 기반을 둔 실재성으로 사진 같은 정밀한 그림을 그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준근은 상업주의 그림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화원 화가들과는 뚜렷이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근대 이행기 인천이나 원산 등의 개항장을 중심으로 조선을 찾기 시작한 외국인들을 상대로 조선의 풍물을 알리는 그림을 그려 팔았다. 그래서 그는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은 현재 세계 11개국에 1190여 점이 퍼져 있다.

그들은 왜 풍속화를 그렸으며, 풍속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김광호 PD는 직접 발로 뛰며 그들의 삶과 예술에 대한 자료들을 채집해갔다. 그러면서 생각보다 이들 화가들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장의 그림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드라마틱한 삶과 천재적 열정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많지 않은 자료와 그림 속의 정보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재구성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화가들의 생의 이면에 감춰진 애환과 그늘이었다. 그런 것들이 예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아는 일이 이 화가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해서다. 그리고 몇 가지 핵심적인 의문에서부터 출발해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갔다. 궁중 최고의 화가인 김홍도가 어떻게 해서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성리학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에로티시즘을 자유롭게 발산한 신윤복의 화풍은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김준근은 『근역서화징』에도 이름이 올라 있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림이 전 세계에 퍼져 있게 되었을까? 등등.

김홍도가 살았던 18세기는 풍속화가 유행하던 시대였다. 전 세계가 요동치는 격변기로 동아시아에도 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새로운 사상, 물자 유입과 더불어 내적으로도 부가 축적되어 다양한 문화가 발전했으며, 일부 소수 계층이 향유하던 예술 또한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새롭게 꽃피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서민회화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는 조선도 예외가 아니어서 동아시아 회화에서 17∼18세기는 풍속화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홍도가 태어나 자란 시기는 풍속화가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문인화만 평가하던 당시 분위기에서 새로운 화풍인 풍속화의 유입은 조선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김홍도 역시 젊은 시절 조영석이나 윤두서 등 풍속화가의 화풍을 접하고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그러한 시대의 영향만이 김홍도가 풍속화를 그린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김홍도가 풍속화를 그리게 된 중요한 계기는 문화정치를 표방한 정조와의 만남이다. 서민들도 풍속화를 원했지만 임금인 정조가 풍속화를 원했다.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그림이 정조에게는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창구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단원 풍속화는 격변하는 시대적 배경과 임금의 요구, 화가의 재능과 노력이 합쳐져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김홍도는 풍속화를 그리면서 감정까지 그대로 전달되는 음악적인 선을 구사함으로써 그의 천재성을 드러냈다. 「무동」이나 「서당」 등의 그림을 보면 옷자락에서 음률이 흘러나오는 듯한 음악적인 느낌을 받는다. 보는 사람들에게 흥겨움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음률이 누구나 김홍도 그림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또한 김홍도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풍속화가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림 안에 진한 웃음 코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신윤복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폭된 것은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영향이 클 것이다. 신윤복이 과연 남장여자일까? 하는 호기심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았을 것이다. 『근역서화징』에 신한평의 아들로 나오고 굳이 남장을 하면서까지 활동할 절박한 이유가 없었던 걸로 보아 그가 여자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나 이런 가정이 가능했던 것은 신윤복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장신구나 의복의 섬세한 표현과 화사한 색채, 그리고 어떤 그림에서나 빠짐없이 여성이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윤복 하면 에로틱한 그림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엄격했던 성리학 분위기가 지배하던 시대에 신윤복의 그림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의외로 조선시대에도 에로틱한 그림들은 인기가 있었고 많이 나돌았다. 그러나 정조 사후 사상 탄압으로 자유로운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었다. 신윤복은 도화서 화원이었으나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한 기록은 거의 없다. 아마 자유로운 화풍 때문에 도화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왔을 거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하지만 김홍도의 그림에 영향을 받은 흔적을 보여주는 그림들은 여럿 남아 있다.
신윤복의 그림 속에는 빠짐없이 여인이 등장한다. 그것도 거의가 기생이다. 신윤복이 기생을 즐겨 그렸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추측된다. 그 시절 기생은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여인이었던 동시에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에 소속된 천민으로 사회의 신분질서 안에서 많은 제약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신윤복의 미의식과 비판의식을 함께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소재였다. 여인으로나 작품으로나 기생은 신윤복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였으며, 그림에 담아내는 대상인 동시에 감정이입의 대상이었다. 신윤복은 기생의 눈을 통해 사회적 억압을 드러내고(「이부탐춘」), 조금씩 해체되어가고 있던 사회질서 속에서 조금씩 솔직해지는 여성들의 심정을 그림으로 대신 이야기한 것이다. 신윤복의 그림에는 또한 유독 양반이 많이 등장한다. 기생들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집단이 바로 양반들이기도 하다. 궁중화원이 아니었던 신윤복은 양반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그림 속에 많이 담아냈다. 기생을 희롱하고 아낙네에게 농을 거는 모습은 신윤복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매춘하는 장면을 담은 「삼추가연」이나 기생과 뱃놀이하는 양반을 그린 「주유청강」 등의 뒤에는 양반들의 놀이를 그저 곱게만 바라보지 않는 혜원의 시선이 있다.(「청금상련」) 김홍도가 풍속화 속에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렸다면, 신윤복은 궼민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김준근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조선 후기 풍속화가다. 『근역서화징』에도 실리지 않은 걸로 보아 도화서 화원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국내에는 숭실대 기독교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명지대 LG연암문고 세 군데에 그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을 뿐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기산 김준근이 서민 화가였다는 것과 함께 그의 그림이 거의 외국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그의 그림은 외국에 흘러들어가게 되었을까?
김준근은 한 지역에 머물러 있지 않고 부산, 원산, 인천 등을 옮겨다니며 활동했다. 그 세 지역의 공통점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외국에 문을 연 개항장이라는 것이다. 화가들이 개항장에 머물면서 외국 사람들에게 국내의 풍물을 그린 그림을 그려 팔았는데, 중국에도 닝보우와 광저우에서 중국의 풍속을 그린 화첩을 제작해 팔면서 이른바 ‘수출화’라는 것이 등장했다. 중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개항장을 중심으로 요코하마 풍속화가 제작되었는데, 당시 동아시아 3국이 개항의 산물로 풍속화를 활용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김준근을 비롯한 많은 화가들 또한 돈을 벌기 위해 명성을 얻기 위해 개항장으로 몰려들었을 거라고 추측된다. 그리고 수많은 무명화가들 틈에서 김준근은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김준근이 활동하던 당시는 사진술이 발명되어 조선의 풍경이나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해오고 있다. 그런데도 김준근의 그림은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19세기의 생활문화를 담는 데 풍속화가 사진보다 훨씬 자세한 정보를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이국의 땅에 와서 낯선 풍물을 접한 외국인에게 기산풍속도는 조선을 이해하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조선의 다양한 풍습을 담은 그림은 그래서 지금 당시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로도 가치가 높다. 그의 그림을 통해 100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우리는 19세기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김준근의 독특한 점은 그가 근대 이행기 적극적으로 서양 문물을 수용하고, 집단 제작 형식의 공방을 운영하며 그림을 생산했다는 것이다. 서양 종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서양 안료와 우리나라 전통 안료를 함께 사용해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분홍, 보라 등의 낯선 색깔의 색채를 표현했다. 김준근은 변화하는 시대상을 그림의 내용으로만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시대가 낳은 새로운 스타일의 화가였다. 밀려드는 주문에 따라 여러 화공들이 협업체제로 그림을 대량생산한 본격적인 상업주의 화가였다. 마치 앤디 워홀의 ‘팩토리’ 같았다고나 할까? 상업주의와 대량생산을 표방했다는 점에서 김준근은 변화하는 시대가 낳은 산물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을지 모르나, 김준근은 이런 작업을 통해 그의 그림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근대 조선의 문물을 세계에 알렸다.

풍속화와 근대라는 지점에서 만난 조선 후기 세 명의 풍속화가,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 그들의 모습은 근대를 향한 열정과 독창성, 풍속화라는 장르를 통해 현재를 뛰어넘으려 했던 진정한 화인의 모습이다. 풍속화는 그들의 삶이며 예술이며 무기였다. 그들은 풍속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 속에 뿌리 내렸다. 그러기에 그들의 작품 속에는 실로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가득 배어 있다. 필시 그들의 풍속화가 오래도록 우리 주위에 살아 있을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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