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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흰옷 입은 사나이
2. 자라나는 데이지를 보며 3. 만능기계 4. 신은 교묘하다 5. 부드러운 껍질 6. 전자 운동가 7. 흉내게임 8. 프라이스의 부이 참조 자료 추천 도서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
David Leavi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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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성정리를 만들어 낸 괴델이 극찬한 앨런 튜링
비트겐슈타인과 논쟁하기도 비트겐슈타인은 형식언어가 괴델의 증명이 보인 방식으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또한 그는 역설이란 것은 언어의 기능에 수반되는 사소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고 거기에 어떤 중요한 귀결이 있을 가능성도 완강히 거부했는데 바로 이점에 대해 튜링과도 논의했다. 하지만 튜링은 비트겐슈타인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서 더 나아가 괴델의 증명과 많은 점에서 닮은 또 하나의 경이로운 증명을 이룩했다. 괴델의 정리는 증명방법이 컴퓨터를 만들어 내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것으로 튜링에게 영향을 주었다. 어떤 명제의 증명가능성을 자연수 집합에서 정의된 어떤 함수의 계산가능성에 대한 문제로 대체하여 괴델은 1930년대 어떤 함수가 계산가능인가를 연구하였다. 이런 연구를 기반으로 튜링, 노이만 등에 의해 1940년대와 1950년대 최초로 컴퓨터가 제작되었다. 플라톤주의자인 괴델은 튜링의 a-기계의 보편성과 직접성에 매료되었으며 1946년에는 튜링에게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냈다. (튜링은) 흥미로운 인식론적 관념에 절대적인 정의, 곧 주어진 체계에 의존하지 않는 정의를 내놓았다. 증명가능성이나 정의가능성 등 이전의 다른 모든 방식들에서는 제시된 관념을 그 언어에 대하여 정의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 각각의 언어들을 살펴볼 때 이렇게 만든 정의들은 우리가 찾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다. --- 166쪽, 제4장 신은 교묘하다 ‘정의가능성’이란 말로 괴델은 분명 그가 그토록 ‘불만족스럽게 여긴’ 처치의 ‘람다정의가능성’을 암시했다. 반면 괴델은 나중에 “앨런 튜링의 연구 덕분에 형식체계의 일반적 관념에 대해 정확할 뿐 아니라 의심할 바 없이 적절한 정의를 얻게 되었다. ……”라고 썼다. 20세기 초에 버트런드 러셀은 “순수수학을 할 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며, 말하는 게 진실인지도 알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처치는 형식주의의 전통을 좇아 수학적 기호들은 본래 갖고 있을 수도 있는 어떤 의미론적 내용도 완전히 떨쳐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괴델은 “나 자신은 …… 과학과 수학의 형식적-구문론적 해석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한다”는 말에서 보듯 이런 견해를 아주 꺼려했다. 결과적으로 튜링은 처치와의 공동 연구에서 한계를 느끼게 되었으며, 처치가 람다계산의 큰 장점이라고 여겼던 의미의 제거를 실재론자라고 자처한 괴델이 거리껴 하게 된 것은 어느 정도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처치와 달리 튜링과 비트겐슈타인은 근본적으로 실용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튜링은 비트겐슈타인처럼 거짓말쟁이역설을 쉽사리 뿌리치지 못했다. 이것은 결국 튜링의 업적이 결정문제의 해결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고 그가 보기에 이 문제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며, 여기에 숨겨진 모순 때문에 실제 세계가 잘못되어 갈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의 논쟁은 한 해 동안 계속되었는데 이 책에는 그중 많은 것을 직접 인용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 하지만 자네는 그게 무너진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물리학적 의문 아닌가? 내 생각에 다리를 건설하기 위한 계산을 주사위를 던져서 하더라도 다리는 무너지지 않을 것 같네. 튜링: 만일 우리가 프레게의 기호체계를 택하고 누군가에게 그 안에서 곱셈을 하도록 가르친다면 러셀의 역설이 인용된 결과로 잘못된 곱셈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 튜링: 물론 아무런 모순이 없더라도 다리가 무너질지 안 무너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모순이 있다면 어디선가 문제가 발생하리란 점은 거의 확실합니다. 비트겐슈타인: 아직껏 아무것도 그런 식으로 잘못되어 간 적은 없었네. 도대체 왜 그랬을까? --- 187쪽, 제5장 부드러운 껍질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에 대한 오해와 진실 애플컴퓨터사의 로고가 튜링의 사과를 가리킨다? 알렉산더 매켄드릭 감독이 1951년에 내놓은 희극 「흰옷 입은 사나이」의 주인공인 화학자 스트래튼은 더러워지지도 않고 닳지도 않는 옷감을 만들어 냈다. 이 발명은 미래를 향한 커다란 발걸음으로 선전 되지만 그가 일하는 섬유회사의 주인과 동료들이 몸담은 노동조합은 오히려 이 발명 때문에 실업자로 전락하게 되리란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힘을 합쳐 그 옷감으로 흰옷을 만들어 입고 있는 스트래튼을 붙잡아 옷을 없애려고 했다. 사람들은 그를 쫓고 궁지에 몰아넣고 죽이려고 했는데, 결국 마지막 순간엔 옷감이 스스로 분해되어 버린다. 그래서 발명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섬유산업과 스트레튼은 살아남게 된다. 이 책의 도입에서 저자는 튜링을 설명하기 위해 ‘흰옷 입은 사나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트래튼은 그의 발명 때문에 쫓기지만 튜링은 그의 발명에도 불구하고 쫓긴다. 스트래튼의 흰옷은 실패한 발명으로 끝나지만 튜링의 가상적 및 실제 기계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하는 데뿐 아니라 이후 컴퓨터 시대를 여는 데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 「흰옷 입은 사나이」가 튜링이 짧은 생애를 살 수밖에 없도록 했던 조건들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점을 이야기해 주는 것 같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조건들은 동성애와 과학적 상상력과 20세기 전반의 영국의 상황 등이다. --- 16쪽, 제1장 흰옷 입은 사나이 오늘날 튜링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쓸모없게 여기는 순수수학과 산업계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다. 하지만 구속과 자살로 인해 현대 컴퓨터의 발달에 대한 튜링의 기여는 오랫동안 최소한밖에 인정되지 않았고, 어떤 경우에는 아예 묵살되기도 했다. 튜링이 내놓았다고 봐야 할 아이디어들에 대한 공적도 노이만에 돌려지곤 했다. 또한 영국에서 아직 동성애가 불법이었던 시절에 공공연한 동성애자로 살았던 튜링은 재판을 받고 굴욕적인 ‘치료’를 받았는데, 이것이 그를 자살로 이끈 한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구속되고 난 뒤 앨런 튜링에게 남은 짧은 삶은 비탄과 광기를 향한 느리고도 슬픈 추락의 길이었다. 도덕적 죄목으로 재판을 거친 그에게는 감옥에 가두는 대신 동성애를 ‘치료’하기 위한 에스트로겐요법을 받으라는 선고가 내려졌다. 에스트로겐 주사는 화학적 거세 효과를 가져온다. 게다가 치욕적인 부수적 효과도 뒤따른다. 달리기를 좋아했던 야윈 사람의 살이 불어나고 젖가슴이 자라났다. --- 319쪽, 제8장 프라이스의 부이 튜링은 자신의 침대에서 몇 입 깨물어진 사과 옆에 죽어 있는 채로 발견된다. 튜링의 죽음에는 여러 추측들이 많지만 그의 집에는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을 비롯한 화학 약품들이 많았다는 점들에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독이 묻은 사과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인 데이비드 리비트는 “인터넷에서는 애플컴퓨터사의 로고가 튜링의 사과를 가리킨다는 소문이 떠돈다. 회사에서는 이를 부정하면서 오히려 이는 뉴턴의 사과를 암시한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왜 한입 베어져 있을까?”라고 말한다. …… 오늘날 튜링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의 업적에 대한 많은 자료들은 여전히 동성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거나, 이것만 아니었다면 찬란히 빛났을 위대한 경력에 대한 역겹고도 비극적인 오점으로 다루고 있다. --- 19쪽, 제1장 흰옷 입은 사나이 튜링의 본래 모습은 꽃가루를 들이마시지 않기 위해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갈 때 방독면을 썼고 가면서 바퀴의 회전수를 헤아렸는데, 그러다가 체인이 톱니를 벗어나기 전에 이를 알아차리고 멈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과가 끝나면 찻잔을 난방기의 파이프에 사슬로 묶어 두었다고 한다. 블레츨리에서 튜링은 운동복 아래에 파자마를 입었고,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끈으로 묶었으며, 면도를 하거나 손톱을 깎는 일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튜링은 남자답게 행동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여 블레츨리에서 뜨개질을 배우기도 했다. 튜링에게 관습 같은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으며, 괜스런 허장성세나 관료주의도 멀리했다. 컴퓨터 시대의 문을 연 인공지능의 선구자 제2차 세계 대전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주역 컴퓨터계의 노벨상인 ‘튜링상’의 기원 튜링은 오늘날 정보화 혁명 시대를 개척해 낸 20세기의 대표적 인물이다. 과학에 노벨상이 있듯이 당대 최고의 컴퓨터 과학자들에게 수여하는 튜링상이 있다는 것은, 앨런 튜링이 컴퓨터 과학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했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20세기 이전에 산업 혁명이 인간을 육체적 노동에서 해방시켜 주었듯이, 정보화 혁명은 인간의 단순 반복적인 사고 행위, 혹은 정신노동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게다가 이제 컴퓨터는 생각하는 기계, 창조성을 갖는 기계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컴퓨터의 창시자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은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컴퓨터의 원리를 만들어 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앨런 튜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쓸모없게 여기는 순수수학의 머나먼 영토와 산업계를 멋들어지게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다. 이 산업계는 거대한 소수들을 한데 곱하거나, 수십만의 문자를 교체해 가며 올바른 짝을 찾거나, 다리를 건설하는 기술을 돕는 능력에 따라 성공과 실패, 때로는 삶과 죽음이 갈리기도 한다. --- 20쪽, 제1장 흰옷 입은 사나이 프린스턴 시절에 튜링은 매우 큰 두 이진수를 서로 곱하여 어떤 메시지를 암호화할 수 있는 전자곱셈기를 만든 적이 있다. 이 아이디어는 아주 초보적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살 때 신용카드의 번호를 보호해 주는 방법, 곧 엄청나게 큰 두 소수의 곱셈에 근거한 암호화 방법의 원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암호기는 가장 간단한 암호로 이른바 단일치환암호(monoalphabetic cipher)라고 알려진 고도로 복잡한 변종을 만들어 낸다. 튜링이 물리학자 말콤 맥페일에게 설명했듯 이 암호기의 배경에 깔린 아이디어는 “특정한 메시지에 해당하는 수를 엄청나게 큰 비밀의 수와 곱하고 그 결과를 전송하는 것이다. 통상적인 비밀의 수의 크기는 대략 100명의 독일인이 하루 8시간씩 탁상용 계산기로 100년 동안 계산해야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맥페일에 따르면 튜링은 이 계획의 셋째 또는 넷째 단계까지 실제로 진행했다. 물론 이때 튜링은 몇 년 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그는 정부에 의하여 블레츨리파크로 보내지며, 거기에서 훨씬 더 정교한 해독기를 만들 임무를 떠맡게 되리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이후 십여 년 동안 그를 묶어 둘 길, 곧 수리논리학을 기계의 제작에 응용하는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 164쪽, 제4장 신은 교묘하다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명제는 아직도 컴퓨터뿐만 아니라, 인지과학,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과제를 부여한다. 초창기의 컴퓨터는 주어진 함수 값을 계산하는 특정 계산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지금의 모든 컴퓨터는 ‘튜링의 보편 기계’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 기계가 갖고 있는 의미는 모든 연산 문제를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으로 분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튜링의 선구자적인 통찰 덕택에 컴퓨터는 논리 계산과 인간의 마음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게 된다. 바로 여기에 튜링의 진정한 업적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어떤 작은 부분이라도 기계로 흉내 낼 수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마이크로폰과 텔레비전 카메라가 각각 귀와 눈을 흉내 낸다는 것은 그 좋은 예들입니다. 나아가 원격 조종으로 모터가 장착된 팔다리를 가진 로봇을 사람처럼 움직이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우리의 신경 기능을 사뭇 정확하게 복제할 전기적 모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할 이유는 별로 없습니다. 이는 마치 바퀴가 달린 차에 엄청난 공을 들여 훨씬 비효율적인 다리가 달린 차로 개조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 269쪽, 제6장 전자 운동가 튜링은 오늘날의 정보과학과 인공지능의 창시자로도 간주되는 인물이다. 또한 논리학과 생물학과의 관계를 맺게 하려 한 튜링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생물학과 철학 이론가로 부르기도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독일군이 에니그마로 만든 암호를 해독하는 데 기여했다. 블레츨리에 처음 왔을 때부터 이미 튜링은 기계로 만들어진 암호를 깨뜨리는 것은 기계로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이 통찰은 ‘계산가능수와…’의 논문으로 그를 이끌었던 생각의 변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만들어야 할 기계는 단순히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게 아니라 현실 속에서 정말로 작동해야 한다. 그 결과는 폴란드의 선구자보다 더 빠르고 기술적으로 더 정교한 제2세대의 봄베였다. 또한 크기도 더 커서 폭은 2미터가 넘고 높이도 거의 2미터에 이르렀으며, 무게도 1톤이나 되었다. 이 기계적 괴물은 실질적으로 30대의 에니그마가 한꺼번에 작동하는 것을 흉내 냈다. …… --- 215쪽, 제5장 부드러운 껍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