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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 잭슨 5 베스트 앨범
모타운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50년'이란 숫자가 갖는 상징성이 남다르기 때문인지 본토인 미국에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오프라 윈프리, 윌 스미스 같은 쟁쟁한 흑인 스타들이 광고 캠페인에 동참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모타운을 상징하는 굵직한 뮤지션들, 이를 테면 스티비 원더, 마빈 게이 같은 '거장'들의 음악들도 곧 컴필레이션으로 발표된다. 소식에 의하면 마크 론슨이 주도하는 모타운 명곡 커버 앨범도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반세기를 자축하는 규모가 어느 때보다 대대적이다.
잭슨 파이브, 그 중에서도 마이클 잭슨 역시 모타운 역사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그가 메인 보컬을 맡아 부른 'I'll be there'는 1981년 라이오넬 리치와 다이애나 로스가 부른 'Endless love'가 나오기까지 11년 동안 모타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었다. 'I'll be there' 이전에 발표한 세 싱글 'I want you back', 'ABC', 'The love you save'도 그 대단한 비틀스를 1위에서 무려 2번이나 끌어내리며 연속으로 정상에 올랐다. 모두 데뷔 1년 안에 이뤄진 일이다. 1968년 9월에서 1970년 8월까지의 일이다. 사장이자 직접 작곡에도 참여한 베리 고디 주니어는 잭슨 파이브에 대한 엄청난 반응에 놀라 회사의 주 에너지를 슈프림스에서 잭슨 파이브로 돌릴 것을 결정한다. 그만큼 대단한 인기를 얻었고, 당대 최고의 흑인 '아이돌' 그룹이었다. 잭슨 파이브의 역사는 본래 그 자신 뮤지션이기도 했던 아버지 조셉 잭슨이 아들들을 가수로 키우겠다고 결심한 데서 시작된다. 재키, 티토, 저메인, 말론, 마이클 이렇게 다섯으로 구성된 잭슨 가(家)의 형제들은 처음엔 지방을 돌면서 공연하다가 얼마 되지 않아 당시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모타운과 계약하고, 1969년 첫 싱글 'I want you back'으로 곧장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다. 이렇게 단숨에 스타덤을 획득한 예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연속 발표한 4개의 싱글이 모두 1위를 거두었고, 팀은 승승장구하며 국민적인 스타가 된다. 이후 발표한 'Mama's pearl', 'Never can say goodbye'도 싱글 차트 2위에 올랐고, 1975년 에픽으로 이적하기 전까지 앨범 판매고도 상당했다. 팀을 매니지먼트 측면에서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지휘한 것은 사장인 베리 고디였다. 잭슨 파이브의 주요 히트곡들의 크레딧엔 언제나 코포레이션(Corporation)이란 작곡 팀이 올라 있는데, 이 팀은 바로 사장인 베리 고디가 직접 작곡에 참여하기 위해 만든 4인조 프로듀싱 팀이다. 베리 고디는 모타운을 설립할 당시에도 이미 재키 윌슨 같은 가수에게 곡을 주었을 정도로 유명한 작곡가였다. 잭슨 파이브의 인기는 모타운이 LA로 이사하던 시점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1967년 흑인 폭동이 디트로이트에 일어나자 베리 고디는 LA로 회사를 옮길 것으로 결심하는데, LA 지사로 완전히 옮기기 전에 이미 그곳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해서 나온 앨범이 바로 잭슨 파이브의 초기작이다. LA로 옮기고 난 뒤, 모타운 골수팬들은 회사가 너무 상업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며 비판을 가하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 흑인 '아이돌' 그룹으로서 각종 애니메이션이나 TV 쇼 고정 출연 같은 음악 외적인 영역에까지 뻗어나간 잭슨 파이브는 그 때를 상징하는 본보기다. 스티비 원더가 재계약으로 완벽한 창작 자율권을 획득한 것에 비해, 그 자유를 위해 에픽으로 이적해야만 했고, 그 때문에 소송을 당해 잭슨스로 이름을 바꿔야만 했다. 비판적 시선이 비록 있긴 하나 잭슨 파이브의 '소울 대중화' 능력과 팝적 매력을 발휘하는 장기는 대단히 뛰어났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일단 마이클 잭슨의 노래 실력이 나이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고, 초기 히트 퍼레이드에서 알 수 있듯 소울의 거친 그루브를 달콤하고 신나는 댄스 음악으로 변형시키는 능력은 가히 탁월했다. 그렇다고 늘 10대들 취향에 맞춘 쉬운 음악만 부른 것은 아니었다. 'Maybe tomorrow', 'Never can say goodbye' 같은 곡들은 앳된 목소리가 보컬을 맞고 있어서 그럴 뿐이지 상당히 진중한 울림이 있다. 나중 1978년에 기어코 자신들의 힘으로 제작한 앨범 [Destiny]를 만들어내는 것을 봐도 잭슨 파이브는 결코 진정성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았다. '버블 검' 소울만 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후기에 발표된 'I am love'는 무려 7분에 달하는 대곡으로, 록 밴드들의 전유물이던 '사이키델릭'을 시도했다. 몽롱한 소울 분위기에서 본격적인 록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명확한 분리선을 그으며 마치 두 곡이 이어지는 느낌을 준다. 줄곧 상한가를 달렸지만 침체기도 있었다. 특히 'Maybe tomorrow', 'Corner of the sky', 'Little bitty pretty one' 같은 곡들은 탑 10에 드는 데에도 실패했다. 너무 한 번에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었기 때문인지 중반 이후에는 인기가 시들했다. 마이클 잭슨의 '로봇 춤'으로 화제를 모았던 1974년 'Dancing machine'이 2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I'll be there' 이후로는 다시 1위를 거머쥐지 못한다. 잭슨 파이브 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멤버는 단연 마이클 잭슨과 저메인 잭슨이었다. 둘 모두 솔로 활동을 병행했고, 그룹 활동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저메인은 마이클 잭슨의 인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마이클이 'Got to be there', 'Rockin' Robin', 'Ben' 같은 굵직한 히트곡이 있던 것에 비해 저메인은 'Daddy's home'이 9위에 오른 것이 고작이었다. 나중 [Off The Wall], [Thriller] 등을 발표하며 마이클 잭슨의 독주가 시작되자 잭슨스와 저메인의 활동은 거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만큼 마이클 잭슨의 인기는 그룹의 시작부터 후반기까지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런 그의 '어린' 시절 베스트 선곡이 CD3에 담겨 있다. 2위에 오르며 모타운 시절 그의 솔로 작업을 대표하는 'Ben', 같은 앨범 [Ben]의 수록곡으로 같은 레이블 소속인 템테이션스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My girl', 로큰롤 뮤지션 바비 데이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Rockin' Robin', 솔로 데뷔곡이자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인 'Got to the there' 등, [Off The Wall] 이전의 그를 상징하는 곡들도 빠짐없이 담겨 있다. 특히 재밌는 것은 점점 목소리가 변해가는 성숙 시기의 마이클 잭슨을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싱글이었던 'Got to be there'와 4년 뒤 발표한 'Just a little bit of you'는 마치 다른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확연히 음색이 틀리다. 아이돌의 음악으로 들어도, 소울 음악으로 들어도 어느 쪽 하나 뒤지지 않는다. 그만큼 상업적인 의도로 만들어졌든 음악성을 추구하든 상관없이 일단 노래를 만든다는 자체에 엄청난 정성과 노력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재능 있는 작곡가, 뛰어난 가수, 눈을 사로잡는 앙증맞은 안무와 무대 매너. 이것들을 하나로 묶어낸 총화가 이 앨범에 고스란히 요약되어 있다. 모타운 시절로만 한정한다면 마이클 잭슨과 잭슨 파이브의 중요 곡들이 완벽 총망라되어 있다. 대표곡, 준 히트곡은 물론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숨은 보석들까지 전부 수록되었다. 이미 베스트, 싱글 모음집이 많이 나온 뮤지션들이긴 하지만 모타운 50년이 갖는 상징성, 그리고 이를 통해 그곳의 음악들에 관심을 가질 신세대들을 위해 적절한 포맷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