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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편 로마, 기독교, 만족 : 고대 세계의 몰락
제1장 로마 제국
제2장 기독교 교회
제3장 만족(蠻族)

제2편 유럽의 출현
제4장 비잔티움, 프랑크 왕국, 로마 교회
제5장 8세기의 위기
제6장 최초의 유럽

제3편 중세 초의 유럽 : 새로운 사회
제7장 봉건세계
제8장 농업과 농촌 생활
제9장 중세 초의 정부
제10장 교회의 개혁

제4편 12세기의 개화
제11장 유럽의 팽창 : 제1차 십자군
제12장 경제의 부활과 사회적 변화
제13장 종교와 학문
제14장 봉건 왕정 : 제국과 교황

제5편 중세 문명의 결실
제15장 교황 이노센트 3세의 시대
제16장 중세 정부의 발전
제17장 사상의 세계
제18장 건축, 예술, 문학

제6편 중세 세계의 위기
제19장 교황권의 쇠퇴
제20장 백년전쟁 : 14세기의 전투들
제21장 중세 말의 정치 : 분열의 세기
제22장 사회와 문학

제7편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
제23장 백년전쟁의 종말
제24장 대분열의 종식
제25장 국민국가의 대두

저자 소개

저자 : 브라이언 타이어니
케임브리지의 펨브로크 칼리지에서 문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 취득, 워싱턴의 카톨릭 대학에서 가르치다 코넬 대학으로 옮김. 1964년에 스웨덴 웁살라대학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 수여. 중세 교회사 전공으로 ≪공회의주의 이론의 토대 Foundations of the Conciliar Theory≫, ≪중세 구빈법 Medieval Poor Law≫, ≪교회와 국가의 위기 Crisis of Church and State 1050~1300≫ 등의 저서가 있다.
저자 : 시드니 페인터
예일대에서 문학사 및 철학박사, 미들버리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 취득, 1927년에서 1931년까지 예일대에서 가르치다가 1931년 존스 홉킨스 대학으로 옮겨 1945년에서 1950년에 사망할 때까지 사학과 과장으로 재직. 저서로는 ≪윌리엄 마샬 William Marshall≫, ≪사제의 두통거리, 브레따뉴公 드르외의 삐에르 Scourge of the Clergy, Peter of Dreux, Duke of Brittany≫, ≪프랑스 기사도 French Chivalry≫, ≪영국 봉건제후령의 역사 History of the English Feudal Barony≫, ≪존왕의 시대 Reign of King John≫, ≪봉건왕정의 성장 Rise of the Feudal Monarchies≫, 그리고 ≪중세사회 Medieval Society≫ 등이 있다.
역자 : 이연규
1982년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1985년 숭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석사), 1988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경성대학교 사학과 부교수로 있다. 논문으로 [15세기 영국 농민의 생활수준 향상설에 대한 비판적 고찰], [중세 농민경제의 성격과 발전] 외 다수가 있고, 역서로 ≪현대역사학의 추세와 방법론≫(풀빛, 1983), ≪서양근세사≫(집문당, 1986), ≪농업계급구조와 경제발전≫(집문당, 1991) 외 다수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9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640쪽 | 148*210*35mm
ISBN13
9788930301565

책 속으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권위는 13세기에 증대되어으나, 여기서는 자위적인 권력 행사에 대한 새로운 저항이 나타났다. 헨리2세의 두 아들인 리차드와 조은 부왕의 왕권강화 정책을 지속시키려 하였다. 그들은 무거운 상속세를 요구하고, 봉신들의 군사적 봉사 의무로부터 최대한의 수입을 끌어냈으며, 상속녀들을 경매에 부쳐 결혼시켰다. 그들은 계속 왕 법정과 보통법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리챠드는 매력적인 인물이었으나, 군주로는 완전히 낙제였다. 그는 미남이고, 솔직, 대범하며 관대하였다. 그는 또 시인들의 후견인인 동시에 그 자신 괜찮은 시를 썼다. 십자군의 지도자로서 그는 대체로 교회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 p.396

위대한 교황 이노센트 3세가 발진시킨 제4차 십자군은 십자군이란 이름조차 무색케 하는 결과로 끝났다. 1204년, 이노센트는 군대를 모아 베네치아의 함대에 태우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베네치아인들은 성지의 회복보다는 그들 자신의 상업적 이익에 훨씬 더 관심이 컸다. 그들이 1081년에 알렉시우스 콤네누스를 도와 교활한 로베르의 그리스 침략을 저지하는 데 기여하였을 때, 황제는 그들에게 광범위한 상업적 특권을 부여하였고, 얼마 안가 제국의 교역은 대부분 그들의 수중에 장악되었다.

그의 아들 요한 2세는 제노바인들에게도 특권을 부여하여 베네치아인의 경쟁자를 하나 더 만들어 놓았다. 그뒤 1182년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 폭동이 일어나 그곳의 라틴 상인들이 학살된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하여 12세기 말에 베네치아인들은 비잔틴 황제의 권력을 와해시키는 데 큰 관심을 지니게 되었다. 그들은 이윤이 많이 남는 콘스탄티노플과의 교역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완전히 독점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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