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1편 로마, 기독교, 만족 : 고대 세계의 몰락
제1장 로마 제국 제2장 기독교 교회 제3장 만족(蠻族) 제2편 유럽의 출현 제4장 비잔티움, 프랑크 왕국, 로마 교회 제5장 8세기의 위기 제6장 최초의 유럽 제3편 중세 초의 유럽 : 새로운 사회 제7장 봉건세계 제8장 농업과 농촌 생활 제9장 중세 초의 정부 제10장 교회의 개혁 제4편 12세기의 개화 제11장 유럽의 팽창 : 제1차 십자군 제12장 경제의 부활과 사회적 변화 제13장 종교와 학문 제14장 봉건 왕정 : 제국과 교황 제5편 중세 문명의 결실 제15장 교황 이노센트 3세의 시대 제16장 중세 정부의 발전 제17장 사상의 세계 제18장 건축, 예술, 문학 제6편 중세 세계의 위기 제19장 교황권의 쇠퇴 제20장 백년전쟁 : 14세기의 전투들 제21장 중세 말의 정치 : 분열의 세기 제22장 사회와 문학 제7편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 제23장 백년전쟁의 종말 제24장 대분열의 종식 제25장 국민국가의 대두 |
|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권위는 13세기에 증대되어으나, 여기서는 자위적인 권력 행사에 대한 새로운 저항이 나타났다. 헨리2세의 두 아들인 리차드와 조은 부왕의 왕권강화 정책을 지속시키려 하였다. 그들은 무거운 상속세를 요구하고, 봉신들의 군사적 봉사 의무로부터 최대한의 수입을 끌어냈으며, 상속녀들을 경매에 부쳐 결혼시켰다. 그들은 계속 왕 법정과 보통법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리챠드는 매력적인 인물이었으나, 군주로는 완전히 낙제였다. 그는 미남이고, 솔직, 대범하며 관대하였다. 그는 또 시인들의 후견인인 동시에 그 자신 괜찮은 시를 썼다. 십자군의 지도자로서 그는 대체로 교회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 p.396 |
|
위대한 교황 이노센트 3세가 발진시킨 제4차 십자군은 십자군이란 이름조차 무색케 하는 결과로 끝났다. 1204년, 이노센트는 군대를 모아 베네치아의 함대에 태우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베네치아인들은 성지의 회복보다는 그들 자신의 상업적 이익에 훨씬 더 관심이 컸다. 그들이 1081년에 알렉시우스 콤네누스를 도와 교활한 로베르의 그리스 침략을 저지하는 데 기여하였을 때, 황제는 그들에게 광범위한 상업적 특권을 부여하였고, 얼마 안가 제국의 교역은 대부분 그들의 수중에 장악되었다.
그의 아들 요한 2세는 제노바인들에게도 특권을 부여하여 베네치아인의 경쟁자를 하나 더 만들어 놓았다. 그뒤 1182년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 폭동이 일어나 그곳의 라틴 상인들이 학살된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하여 12세기 말에 베네치아인들은 비잔틴 황제의 권력을 와해시키는 데 큰 관심을 지니게 되었다. 그들은 이윤이 많이 남는 콘스탄티노플과의 교역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완전히 독점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p.2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