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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르네상스에서 사실주의까지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 철저한 사실주의 산드로 보티첼리 <봄> - 신화적 환상의 장식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성 안나와 성모자> - 천상의 미소 산치오 라파엘로 <작은 의자 위의 성모> - 완벽한 구성 알브레히트 뒤러 <멜렝콜리아 1> - 빛과 어둠의 세계 디에고 벨라스케스 <궁정의 시녀들> - 붓놀림의 마술 렘브란트 <플로라> - 명암 속의 여신 니콜라 푸생 <사비니 여자들의 약탈> - 다이내믹한 군상 얀 베르메르 <화가의 아틀리에> - 상징적 실내 공간 앙투안 와토 <사랑의 섬으로의 순례> - 그림으로 그려진 연극 세계 프란시스코 데 고야 <벌거벗은 마하> - 꿈과 현실의 관능미 외젠 들라크루아 <알제의 여인들> - 빛나는 색채 윌리엄 터너 <국회의사당의 화재> - 불과 물의 공기 귀스카브 쿠르베 <아틀리에> - 사회 속의 예술가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 근대의 서곡 2. 인상파에서 순수추상까지 클로드 모네 <양산을 쓴 여자> - 빛에 대한 갈망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앞의 소녀들> - 색채의 하모니 폴 세잔 <온실 속의 세잔 부인> - 조형의 드라마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침실> - 불안한 내면 세계 폴 고갱 <이아 오라나 마리아> - 이국적 환상 조르주 쇠라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 고요한 시정 툴루즈 로트레크 <물랭 루즈의 포스터> - 세기말의 애수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여자> - 소박파의 꿈 에드바르트 뭉크 <절규> - 불안과 공포 앙리 마티스 <커다란 붉은 실내> - 단순화된 색면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 큐비즘의 탄생 마르크 사걀 <나와 마을> - 회상의 예술 바실리 칸딘스키 <인상 · 제3번> - 추상회화로 가는 길 피레트 몬드리안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 - 대도시의 조형시 |
Shuji Takashina,たかしな しゅうじ,高階 秀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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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려진 모티프 자체는 특별히 이상하지도 기묘하지도 않다. 노을이 비낀 하늘과 멀리 펼처진 북유럽의 만을 배경으로, 화면에는 평범한 다리 한 개가 비스듬히 그려져 있다. 다리 위 저쪽에는 두 남자가 나란히 사라지려 하고 있다. 그리고 앞쪽에 해골을 연상시키는 불길한 얼굴을 한 남자 하나가 멍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두 손으로 귀를 누루고 있다. 이 남자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놀랐는지 화면에 그것을 설명해 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그를 그렇게 두렵게 하는지를 이해하려고 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그 남자의, 다시 말해 뭉크 자신의 불안에 휘말리고 만다.
많은 환상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뭉크도 자기의 환상 세계를 키우기 위해 친숙한 현실의 뒷받침이 필요했다. 환상이란 반드시 언제나 현실에서 벗어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뜻밖의 심연처럼 뻥 뚫린 불길한 다른 세계가 얼굴을 내밀 때 거기에서 두려운 환상 세계가 형성된다. 적어도 뭉크를 그랬다. 이 <절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것은 뭉크 자신의 현실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나중에 뭉크는 이 작품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마침 석양 무렵이었는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죽으 듯이 기진맥진해서 가만히 서 있었다. 파란 피오르드와 마을 위로 불과 피의 혀가 너울거리며 돌아다녔다. 친구들은 먼저 가 버리고 나만 뒤에 남아 있었다. 그대 무엇인지도 모르는 공포에 떨면서, 나는 자연의 큰 절규를 들었다..." --- pp.308~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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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의〈아틀리에〉속에 사회의 다채로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많은 우의상이 등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림을 바라보며 왼쪽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러한 의미를 가진 우의상들이다. 우선 캔버스 바로 옆의 성 세바스찬의 나체 석고상 앞에서 아무렇게나 다리를 펴고 앉아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자가 있는데, 그녀는 사회의 비참함을 나타낸다. 그 바로 뒤에 보이는 해골을 실은 신문은 당시의 저널리즘이 나폴레옹 3세의 어용신문이 되어 완전히 생명을 잃은 것을 의미한다…… 그 뒤에서 옷감을 팔고 있는 유대상인은 말할 것도 없이 상업 활동을 의미하며, 그를 상대하고 있는 중산모를 쓴 남자는 부르주아지, 즉 시민계급을 대표한다. 그리고 그들 주위에 무덤 파는 인부, 창녀, 어릿광대, 농민, 실업자 등 사회의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가장 왼쪽 끝에 있는 유대교의 박사와 그 뒤쪽의 가톨릭 신부는 물론 종교를 의미하며 앞쪽의 개를 데리고 있는 사냥꾼은 여가를 의미한다. 그 앞의 바닥에 내던져진 솜브레로(챙이 넓은 스페인 모자), 기타, 단검은 낭만파 예술의 쇠퇴를 나타낸다고 한다. 요컨대 이 화면 왼쪽의 사람들을 통해, 쿠르베의 눈으로 본 당시 사회의 생생한 상황이 표현되고 있는 셈이다.
--- pp.173~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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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화가의 아틀리에〉의 벽에 걸린 지도는 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그 지도 앞에 선 모델의 별난 모습은, 화가가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우의상을 그리려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으로 판단하건대, 그것은 ‘명성’을 상징하는 우의상임에 틀림없다. 그녀가 머리에 쓰고 있는 올리브 나무 잎으로 엮은 관은 예로부터 명성이나 영광을 상징하며 트럼펫은 그 명성이 널리 세상에 울려 퍼지는 것을, 책은 그것이 기록되어 후세에 전해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그 뒤쪽의 지도는 그 명성이 네덜란드 17주에 울려 퍼진다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그리고 이 방의 주인공이 바로 캔버스를 향해 정성 들여 모델의 모습을 옮기고 있는 화가라면, 우의적인 모습에 의해 표현되는 명성은 바로 그 화가의 명성이 될 것이다.
--- pp.11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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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의 시가 의미하는 것은 명백하다. 클로리스는 대지의 님프이며 서풍은 봄바람이다. 겨울 동안 대지는 단 한 가지 색으로 덮여 있었다. 그런데 봄바람이 불어오면서 새싹이 돋고 고운 봄꽃이 피어난다. 클로리스가 제피로스에게 붙잡히자마자 아름다운 꽃의 여신으로 바뀐다는 것은 바로 자연 속의 봄이 오는 광경을 의인화한 것이다. 보티첼리는 이 변신의 과정을 아주 교묘하게 그려냈다. 이미 보았듯이 대지의 님프와 꽃의 여신 사이에는 아무 공통점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단 하나, 이 두 사람을 맺어 주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님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봄꽃이다. 이 꽃들은 님프의 입에서 넘쳐흘러 그대로 플로라에게 떨어져서 어느새 꽃의 여신이 입은 옷의 무늬가 되어 버린다. 흰색 한 가지로 덮여 있던 대지가 눈부시게 다채로운 꽃들로 뒤덮이게 되는 것이다.
--- p.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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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를 읽는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그림 하면 동양화보다는 먼저 서양화가 떠오른다.
이는 우리의 삶이 근대화되면서 서양화도 함께 유입돼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기도 하며, 붓과 먹으로 그리는 수묵화보다는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력과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채로 이루어진 유화가 보다 더 우리의 눈길을 잡아끌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오늘날의 미술은 타블로이드(tabloid)라는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설치미술, 레이저 아트 등 보다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가면서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려한 액자틀에 끼워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전시장의 벽면을 장식하는 것만이 그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들의 기초가 된 것이 아마도 서양의 명화일 것이다. 서양의 명화는 이제 우리와 아주 친숙해져 있다. 사진과 인쇄 기술의 발달로 마치 원화를 보는 듯한 복제화가 우리의 실내를 장식하고 광고의 이미지로도 사용되고 있다. 또 다양한 교류전을 통해 국내에서도 서양의 명화들을 자주 접할 수 있고, 잦아진 해외여행으로 인해 서구의 유명 미술관에서 직접 명화를 대할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서구의 명화를 만나더라도 이 작품들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왜 명화라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묘사가 사실적이라든가, 색채가 화려하다든지 하는 겉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평가를 하다가도 명화 속에 담긴 의미라든가, 명화가 그려진 당시의 역사적 혹은 문화적 배경 등에 대해서는 특별한 설명이 없으면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렇듯 ‘명화란 무엇일까?’ , ‘명화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고 머릿속에 물음표 또는 의문을 가졌거나, 또 작품 앞에 서면 왠지 주눅이 들어 뒤로 물러선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그림을 보는 눈’을 길러주는 안내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명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이야기꾼의 안내로 미술관을 관람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리고 한 작품 한 작품 읽다(?) 보면 어느새 ‘명화’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며, 그냥 흘러보냈던 그림들 하나하나가, 홀연 눈에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눈에 보는 서양 미술사! 이 책은 일본과 프랑스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일본의 대표적인 서양미술사학자 다카시나 슈지가 서양미술사에 거대한 자취를 남긴 화가들의 대표작 그것도 세계의 공공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어 기회만 되면 직접 대할 수 있는 29점을 골라 쓴 명화에 대한 작품론이자 해설서다. 지은이는 널리 알려진 유명 작품들 속에 담겨 있는 의미나 배경, 작가의 삶과의 연관, 미술사에서 그 작품이 놓인 위치와 의의, 표현 기법과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 드라마틱한 화가의 생애 등을 찬찬히 더듬어 보여주고 명작들이 탄생하게 된 과정까지도 시대 상황과 연관지어서 설명해 주기 때문에 미술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명화들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의 순수 추상미술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대와 사조를 대표하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명화를 통해 보는 서양 미술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에서 30년 넘게 꾸준히 사랑 받아 온 텍스트! 이 책은 1969년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에서 처음 문고판으로 발행된《명화를 보는 눈》과 1971년 발행된 《속 명화를 보는 눈》을 합본한 것이다. 이 두 권의 원서는 일본에서 간행된 이후 30년 넘게 꾸준히 사랑 받아 왔다. 우리나라와 출판 시장이 다르지만 《명화를 보는 눈》은 2002년 봄 55쇄를, 《속 명화를 보는 눈》은 44쇄를 찍었다. 또 이 원서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서양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이나 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의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눌와〉가 이 책을 알게 된 것도 미술평론가인 유홍준 선생님의 서가에서다. 세계의 미술관을 한자리에 앉아 관람하다! 이 책의 원서는 문고판이라는 한계 때문에 58점의 도판이, 그것도 흑백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눌와〉에서 우리글로 옮기면서 독자들이 더욱 생생하고 자세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기존의 흑백 도판뿐만 아니라 원서에서는 글로만 소개되어 있던 작품들도 추가해서, 총 154점의 컬러 도판을 수록하였다. 작지만 알찬 도록의 역할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