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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제국 1616~1799
100만의 만주족은 어떻게 1억의 한족을 지배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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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 대청제국의 혁신정신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일러두기
지도 - 청조의 최대 판도
대청제국 연표
청조 가계도

서장 천안문에서 만한전석까지 ― 대청제국과 현대 중국
중국을 상징하는 것들 | 천안문 | 북경의 고궁박물원 |정치적 상징의 천안문 | 북경어의 기원은 청조에 있다 | 치파오와 변발 | 교자와 누르하치의 전설 | 일본식 교자의 기원은 청조에 있다 | 만주어 ‘giyose’ | 만한전석 | 만한전석은 한인이 발명한 것이다 | 현대 중국은 청조의 영토를 계승했다

제1장 세 얼굴의 제국

1. 양면성을 가진 왕조-‘오랑캐’와 ‘중화’의 양면성
청조란…… | 세계 으뜸의 대제국 | 한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세계성’ | 가난 덕분에 만들어진 활력 | 청조의 황제 제천 | 사류 의식 | 자금성에 있는 신조가 머무는 나무 | 영릉에 있는 무릎 꿇은 용 | 복릉 | 용은 왜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일까?

2. 삼중 구조의 제국
만주어 | 여진문자의 후예 | 여러 언어로 쓰인 궁정의 편액 | 북경의 옹화궁과 심양 고궁박물원의 경우 | 승덕 피서산장의 경우 | 몽골 한(han)이 머무는 곳 | 만?한?번의 종주

3. 청조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10세기 이래의 중국사 | 최대의 다민족국가 | 청조에 보이는 양면성 | 통일 다민족국가의 청조 | 몽?한?만과 오족의 중국 | 청조의 역사적 위치 | ‘화이일가’의 통일 다민족 왕조 | 명은 ‘한족 국가’인가 | ‘세계시스템’의 완성자

4. 6단계의 발전 과정
6단계

제2장 민족통합, 그리고 건국에서부터 대청국의 성립까지
-초대 누르하치와 제2대 홍타이지의 시대


1. 만주국의 수립
여진족 | 누르하치의 건주오부 통합과 다민족성 | 새로운 사료를 통해 본 누르하치상 | 『현행전례』의 개국 전설 | 주션과 만주 | 누르하치의 탄생 | 젊은 날의 고난 |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해된 사건 | 고립된 누르하치 | 주변 세계의 동요 | 명과의 대결을 결의하다

2. 아이신국의 형성-팔기제의 창설과 요동으로의 진출
아이신국 | 몽골과 한족의 영향 | 팔기제도 | 사르후 전투 | 비원의 여진족 통일을 달성하다 | 부족연합으로서의 팔기 | 복합성

3. 홍타이지의 한 즉위-혁신과 보수의 알력
홍타이지 시대 | 홍타이지에 관한 몇 가지 의문 | 네 번째 지위의 버일러가 한의 자리에 오르다 | 대청국의 성립

4. 아이신국에서 대청(Daicing)국으로
홍타이지의 대청 황제 즉위 | 홍타이지가 받은 황제 존호의 유래 | 만?한의 융합을 꾀하다 | 장유의 서열이라는 멍에를 벗다 | 불완전한 권력 | 대청제국의 축소판

제3장 중국 내지 진출에서 절대군주권의 확립까지
-제3대 순치제 . 제4대 강희제 . 제5대 옹정제의 시대


1. 입관과 순치제의 친정
환영받았던 청조의 입관 | ‘역신’ 오삼계 | 관을 열어 청병을 맞이하다 | 「원원곡」 | 치발령에 대한 한인의 반발 | 머리카락을 남기고자 하면 머리를 남기지 말라 | 청은 명의 후계자인가 | 어린 황제가 즉위한 사정 | 독재 섭정 도르곤 | 순치제의 자기비판 | 지나치게 중국화한 황제 | 제왕학의 딜레마 | 도르곤의 패륜 행위 | 뜻밖의 성과 | 북경 이주에 따른 기인사회의 변화 | 무예도 과거시험 과목으로 | 현실과의 괴리에도 불구하고

2. 강희제-중국 내지 통일
만주의 성과 중국식 이름을 가진 황제 | 국내 평정 | 삼번의 난 | 국성야의 반청운동 | 티베트 불교와 몽골 민족 | 준가르 부족장 갈단

3. 네르친스크 조약의 체결-국제법과의 조우
러시아의 진출 | 고육지책 | 중국 천주교 | 포교를 위한 타협 | 『곤여만국전도』와 『기하원본』 | 한족 세계를 병합하다

4. 옹정제-절대군주권의 확립
내치의 황제 | 팔기제도의 확립 | 주접제도와 『옹정주비유지』 | 황제의 육성이 들리다 | 『붕당론』 | 황제제도를 완성하다

제4장 최대 판도의 형성 - 제6대 건륭제 시대

1. 지배 영역 확대의 그늘
건륭제의 ‘십전무공’ | 최대 판도의 영광 | 사리사욕의 절정에 이른 기인 관료, 화신 | 화신의 비밀 | 화신의 대죄 | 왕조에 살며시 스며든 퇴폐 | 건륭제 한인설 | 소문이 말하고 있는 것

2. 중앙아시아 지역으로의 진출-번부의 성립
청조의 최대 영토와 이슬람 세계의 병합 | 번부의 완성 | 몽골을 제압하기 위한 정책으로서의 번부 |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정벌하다 | 번부의 한으로서의 대청 황제 | 외팔묘 | 향비의 전설

제5장 ‘화이일가’ 다민족 왕조의 확립

1. 대청제국 번영의 빛과 그림자-『사고전서』와 문자옥
확대, 성장하는 제국 | 개혁가 강희제 | 유럽과의 대결 | 세계 최대의 국제인 | 중화 세계에 드러낸 위광 | 전성기의 빛과 그림자 | 문자옥의 배경

2. 오랑캐가 중화에게 보뮳는 회답-옹정제의 『대의각미록』
최대의 약점 | 옹정제의 도전 | 새로 정의된 ‘화이의 구별’ | 아들이 아버지의 책을 금서로 만들다 | ‘십전무공’의 영광도…… | 막다른 벽에 부딪친 예감 | 건륭제의 두려움 | 보수성만이 남다

3. ‘화이일가’-대청제국의 세계관
중화를 초월한 이적 | 끊임없는 혁신의 힘 | 그 힘이 다한 때……

보론 시대 구분 : 새로운 ‘청 초기’
기존의 청조사 시대 구분 | 새로운 ‘청 초기’ | ‘청 초기’의 정치적 변천과 시대 구분

후기 - 이단의 대청제국
옮긴이의 글 - 현대 중국의 원형을 찾아서
부록 - 무권점만주문당안 『선겅기연한현행전례 . 전십칠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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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이시바시 다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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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橋崇雄

1951년 사이타마(埼玉)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고쿠시칸(國士館)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할아버지인 이시바시 우시오(石橋丑雄), 아버지인 이시바시 히데오(石橋秀雄)를 이어 3대째 만주사와 청조사를 전공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로는 「淸初皇帝權の形成過程-特に『丙子年四月「秘錄」登ハン大位』にみえる太宗ホン=タイジの皇帝卽位記事を中心として」(『東洋史硏究』53-1, 1994) 등이 있다.
역자 : 홍성구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일본 교토대학,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하면서 다양한 연구 방법과 새로운 연구 경향을 접하면서 연구 영역을 사회사에서 동아시아 국제관계사로 넓혀가고 있으며, 2005년부터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에서 동아시아사를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 「明末淸初の徽州における宗族と?役分擔公議」(『東洋史硏究』61-4, 2003), 『15~19세기 중국인의 조선인식』(공저, 고구려연구재단, 2005)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1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335쪽 | 46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58622673

출판사 리뷰

만주족이 세운 일개 소국이 만족할 줄 모르는 혁신력에 의지하여 차츰 거대한 중화 세계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 힘은 장성 안쪽 세계의 테두리를 아득히 넘어 몽골 세계와 티베트 세계를 통합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중앙아시아로까지 진출하여 이슬람의 위구르 세계도 수중에 넣었다. 청조의 그 만족할 줄 모르는 혁신력이란 도대체 어떠한 역사의 변화를 배경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1. 가난한 오랑캐 만주족, 현대 중국의 원형을 만들다
― 이 책의 개요


이 책은 거대한 중국 역사, 그중에서도 이민족인 만주족(여진족)이 지배층으로 군림한 청조의 역사를 다룬 대중 역사서이다. 중화 대륙을 정복할 당시 만주족은 채 100만도 되지 않았으나 1억의 한족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지배 기간은 원이나 진, 후한, 수나라보다 길고 명대에 비견할 만큼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만주족이 280년 동안 성공적으로 한족의 중국 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던 저력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대청제국 1616~1799』의 저자 이시바시 다카오(石橋崇雄)는 한족 중심의 중국사 이해의 틀에서 벗어나 만주족의 입장에서 중국의 역사를 서술한다. 따라서 만주족이 한족의 문화에 흡수 동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기존의 학설과 달리, 한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만주족의 □세계성□, 가난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이들의 □활력과 혁신정신□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혁신을 거듭한 만주족의 청 왕조는 중화 세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넘어 이슬람 세계까지 이어진 거대한 영토를 정복할 수 있었으며, 이들 영토의 이문화를 융합하여 □다민족국가□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중국 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다고 답한다.
특히 만주족의 청 왕조는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와 가장 많은 이민족을 한 국가 안에 녹여냄으로써 화이일가(華夷一家)의 통일 다민족국가를 세웠는데, 이는 현대 중국이 표방한 □오족(五族)의 중국□의 원형을 이룬다고 보았다.
이 책은 현대 중국의 원형인 □다민족국가□가 만들어진 과정을 6대에 걸친 청 황제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밀히 전달한다. 1616년 아이신(金)국(=후금)을 세운 태조 누르하치에서부터 1636년 대청국 황제에 오른 태종 홍타이지, 북경으로 천도한 3대 순치제, 중국 내지를 통일한 강희제, 절대군주권을 확립한 옹정제, 그리고 중국의 최대 판도를 이룩한 건륭제에 이르는 200년(1616~1799), 중국 최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만주족 황제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동감 넘치는 □이단의 중국 역사□를 들려준다.

이시바시 교수는 현대 중국의 □통일 다민족국가□로서의 성격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원형을 청조에서 찾았고, 청조의 역사를 □통일 다민족국가□를 완성해가는 과정으로 묘사했다. 그는 이것을 □만?한?번 체제□로 상징되는 □화이일가□의 통일 다민족 왕조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화이일가□의 통일 다민족 왕조를 완성하여 현대 중국에 유산으로 남겨준 사람들은 다름 아닌 현재 중국인의 채 1퍼센트도 안 되는 만주족이었다. 중국을 정복할 당시 만주족의 인구는 100만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100만도 안 되는 만주족이 1억에 가까운 한족의 중국을 정복하여 280년 가까이를 통치한 것이다. 세계 역사에서 이와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을까?
― 옮긴이의 글 「현대 중국의 원형을 찾아서」(280쪽) 중에서

2. 만주족 입장에서 쓴 새로운 대청제국의 역사
― 이 책의 특징 1


최근 중국사학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연구 경향 중 하나가 한족 중심의 중국 이해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이른바 □내륙아시아적 시각□이라고도 불리는 이 새로운 시각은 비한족이 건국하여 한족의 왕조를 정복하고 통치했던 요?금?원?청조의 역사를 단순히 한족의 우수한 문화에 동화된 왕조로 이해해온 지금까지의 중국사 이해의 틀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다. 오랑캐의 정복왕조를 한족의 우수한 문화에 동화된 □한족화된 왕조□로 이해하는 것은, 현재 중국의 반 이상의 면적을 차지하는 비한족 거주지역과 그곳에 살고 있는 비한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오늘날의 중국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 과정을 왜곡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각은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학계에서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 책 또한 □내륙아시아적 시각□을 토대로 한족 중심의 중국사 연구에서 벗어나서, 가장 성공적으로 한족의 중국을 통치한 청조의 성공 요인을 한족 문화의 수용과 동화에서 찾지 않고, 건국 주체인 만주족의 입장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대청제국의 역사를 들려준다.

이시바시 교수가 서술한 □청조□의 역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아왔던 중국 □청대사(淸代史)□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청대사□가 □한족□의 중국사를 장식하던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면, □청조사□는 그 자체로 중국사가 하나의 풍경인 대자연이 된다. 현대 중국은 청조의 이러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이제야 비로소 현대 중국의 지분 소유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이와는 사뭇 달랐던 것 같다. 여전히 중국이라고 하면 당연하게 □한족□의 중국을 연상하고, 때로는 중국과 모종의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끈끈한 역사적 연대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여기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주자학적 중화사상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을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다른 모습이 보일 것이다. 다민족국가로서의 중국. 거기에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살을 맞대고 살아온 □만주족□의 역사가 있다. 우리가 우리 민족사의 왜곡에 분노하는 것만큼 그들의 역사가 왜곡되는 것에도 공감을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번역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옮긴이의 글 「현대 중국의 원형을 찾아서」(283~284쪽) 중에서

3. □끊임없는 혁신□이 만들어낸 대청제국
― 이 책의 특징 2


변방의 오랑캐로 불리던 만주족(여진족)이 중화 대륙을 집어삼키고 중앙아시아를 넘어 이슬람 시계까지 이어진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할 수 있었던 까닭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팔기제로 대표되는 청조의 막강한 군사력에서 그 연유를 찾는 것과 달리 이시바시 교수는 청조의 강대함은 □끊임없는 혁신□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끊임없는 혁신을 가능하게 한 조건을 한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만주족이 갖출 수 있었던 순응성이 풍부한 □세계성□, 그리고 가난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활력□에서 찾았다. □가난□한 □오랑캐□는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채우려는 갈망이 □혁신□의 추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혁신□은 누르하치의 흥기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만주족은 중국 동북부에서 여전히 수렵과 채집 생활을 영위하던 가난한 민족이었으며, 누르하치의 흥기는 궁극적으로 가난한 경제 구조를 극복하고 좀더 안정된 경제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에 다름 아니었다. 이어 홍타이지는 대청국을 성립시켰으며, 순치제는 오삼계의 도움으로 북경 입관에 성공, 강희제 때는 중국 내지 정복을 완성했다. 그리고 옹정제와 건륭제 때 이르러 외몽골?티베트?위구르를 정복함으로써 마침내 청조는 최대 판도를 형성했다. 이처럼 태조 누르하치부터 고종 건륭 황제까지 이어진 만주족의 끊임없는 혁신정신 덕분에 청 왕조는 통일 다민족 국가를 이룩할 수 있었다.

먼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청을 건국한 누르하치의 거병에서부터 끊임없이 이어진 성장과 확대 과정 속에서 정치력·경제력·군사력을 둘러싼 혁신 정치와 보수 정치의 대립을 겪으며 수많은 정치적인 변천을 거듭함으로써 이문화(異文化)를 융합하는 다민족국가를 형성하는 데 성공하고, 결과적으로 전례가 없는 청조의 강대함을 낳았다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는 청조를 세운 민족이 북아시아 세계의 일부에 속하는 퉁구스계 여진족(만주족)이었다는 것도 크게 관계될 것이다. 즉, 한족의 왕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비로소 순응성이 풍부한 □세계성□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건국 당초부터 이미 정치력·경제력·군사력의 모든 조건이 정비되었고, 그 후 청조의 변천, 특히 그 최대 판도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장과 확대의 과정이 원대한 계획으로 미리 설정되어 있으며, 이것을 순차적으로 달성했다고 하는 식이 아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디까지나 그 시대마다 권력 투쟁을 둘러싼 정치적 변천이 집적되고, 그 결과로서 성장하고 확대되었던 것에 불과한 것이다.
― 본문(49쪽) 중에서

4. □통일 다민족국가 대청제국□은 현대 중국의 원형
― 이 책의 특징 3


청조의 역사는 지배족인 만주족과 피지배족인 한족의 이중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부족사회의 만주족 오랑캐가 농경사회에 기반을 둔 중국 내지를 차지함으로써 부족사회와 농경사회의 양면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비한족인 □오랑캐□의 한(han)이 중국 황제를 겸한 청조는 □이(夷)□와 □화(華)□가 동거하는 양면성, 즉 □화이일가(華夷一家)□, 더 정확히 말하면 □이화일가(夷華一家)□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책은 이러한 청조의 양면적 성격에 한 가지 더 주목한 것이 있으니, 바로 만주족(滿)과 한족(漢)에 덧붙여 번(藩, 몽골·티베트·위구르)의 체제에 주목한 것이다. 이를 만·한·번의 3중 구조라고 일컬으며, 이 체제로 인해 청조는 마침내 통일 다민족국가를 이룩할 수 있었다.
당시 청조는 기=만(旗=滿, 중국 동북부지역의 만?몽골?한)과 한(漢 , 중국 내지)을 직접 통치했으나 번(藩, 몽골·티베트·위구르) 지역은 간접 지배하슴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는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성제(省制)와 자치구제(自治區制)의 시행 영역과도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 영토에 포함된 민족은 신해혁명 당시 손문이 주장한 □오족(五族 ; 한·만·몽·티베트·위구르) 공화의 중국□뿐 아니라 현대 중국에서 말하는 □오족의 중국□의 민족 구성과도 일치하는데, 이는 현대 중국이 청조의 영토를 계승한 것과도 연관된다.
다민족국가 중국에 대한 이해는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정책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중국이 □동북공정□ 사업을 진행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들의 나라를 □통일 다민족국가□로 인식하기 때문인데, 이는 한족 중심의 중국 역사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변방 오랑캐의 역사도 이제는 중국 역사의 일부라는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통일 다민족국가□의 현대 중국을 완성한 것이 만주족의 청조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현대 중국은 다민족국가라고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다. 경제학자 사사키(佐?木信彰)의 말을 빌리면, 1982년 12월에 채택·공포·시행된 현행 중국 헌법의 □전문(前文)□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은 전국 각 민족의 인민이 공동으로 건설한 다민족 통일국가이다□라고 강조되어 있다. (…) 청조는 제6대 고종 건륭제 시대인 1750년대 후반에 최대 판도를 형성했는데, 그 규모는 중국 내지 외에 몽골고원, 동투르키스탄, 티베트 등을 포함했다. 여기에서 중국 내지 지배 구조뿐만 아니라 다민족국가로서의 청조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청조가 중국에 군림한 왕조로서 미증유의 광대한 영역을 형성하고 지배한 결과, □중국□의 영역 개념에 일대 변화를 초래했다. 중국 동북부, 중국 내지, 내몽골 지역, 신강(新疆) 위구르 지역, 티베트 지역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로서의 현대 중국은 그 근원을 더듬어가보면 청조와 연결된다. 현대 중국에서 볼 수 있는 다민족성은 바로 청조의 다민족국가 형성이라는 역사적 사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또한 청조의 특색 중 하나로 청조는 직접 통치를 실시하는 □기=만(동북부에서의 만·몽 ·한)□·□한(중국 내지)□과 간접 통치를 실시하는 □번(藩 ; 몽골·티베트·위구르)□이라는 지배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것을 현대 중국에 대응시켜보면 대체로 전자의 두 경우는 성제가, 후자의 경우는 자치구제가 시행되고 있다. 이 둘의 유사성에서 청조가 현대 중국에 미친 깊은 영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본문(40~41쪽) 중에서

5. 강희·옹정·건륭의 시대, 생생한 청조사를 읽는다
― 이 책의 특징 4


이시바시 교수는 청조 초기 200년 동안의 정치적 변천을 6단계로 정리하였다. 북경 입관 전 3단계(누르하치의 만주국 수립 / 아이신국 형성 / 홍타이지의 대청국 성립)와 입관 후 3단계(강희제의 중국 내지 통일 / 옹정제의 절대권력 확립 / 건륭 황제의 중국 최대 판도의 형성) 중 마지막 6번째 단계가 다민족국가로서의 청조의 완성을 의미하며, 이 여섯 단계의 성장 과정은 모두 새로운 다민족국가를 향해 변신을 거듭한 청초의 정치적 변천을 반영한다.
이시바시 교수는 이 6단계를 통해 만주족 황제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만주족에 대한 한족의 복종도를 가늠할 목적으로 만주족의 두발형을 강제한 치발령, 지배구조의 중요한 버팀목의 하나였던 팔기제, 황태자를 대신한 저위밀건법(儲位密建法), 주접(奏摺)제도 등을 세밀하게 소개하였는데, 이들 역사는 청조가 명조의 계승자라는 시각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다시 말해 한족 중심의 역사 서술로는 해독 불가능한 독특한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만주족 왕조로서의 청조론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청 왕조의 역사가 다민족국가를 완성해가는 역사인 동시에 한족과는 다른 만주족 왕조의 역사임을 드러내준다.
또한 이 책은 중국 황제 중 가장 화려한 영화를 누린 강희, 옹정, 건륭 황제의 이야기를 통해 생생한 중국 역사를 묘사한다. 만주의 성과 중국식 이름을 가진 황제 강희는 삼번의 난을 평정함으로써 중국 내지의 통일을 이룩하였으며,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었으며, 예수교 선교사들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이들의 문물을 적극 수용하였다.
이어 등극한 5대 옹정제는 절대군주권을 확립함으로써 건륭제가 중국 최대 판도를 형성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특히 옹정제는 황태자 책립을 둘러싼 후계자 다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황제 생전에 후계자의 이름을 적어 밀봉 후 자금성 건청궁에 보관했다가 사후 개봉하여 공표하는 저위밀건법을 시작했다. 이 제도는 생전에 후계자를 정하지 않는 만주족의 전통과 이와 반대인 중국식 황태자제 방식을 결합한 점에서 화이일가 다민족국가로서의 청조를 상징하는 독특한 제위 계승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옹정제 시대에는 주접제도 또한 한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주접은 황제가 지방 관료에게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한 사적인 상주문으로, 이는 지방관과 황제가 직접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한 제도였다. 이 외에도 옹정제는 두 권의 유명한 책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붕당의 폐해를 조목조목 정리함으로써 관료의 교화를 목적으로 만든 『어제붕당론(御製朋黨論)』이며, 나머지 하나가 민중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독서인이나 문관의 교화를 목적으로 만든 『대의각미록(大義覺迷錄)』이다.
건륭제는 다민족국가인 청조의 영역 확대 과정의 최종 단계를 이룬 황제로, 60년의 재위 기간 중 45년에 걸쳐 외정(外征)에 나서 마침내 몽골고원, 동투르키스탄, 티베트를 포함한 거대한 영토를 거느리게 되었다. 건륭제는 자신이 세운 큰 무공이 모두 10회에 이른다고 자부하면서 이를 스스로□십전무공(十全武功)□이라 칭했다. 오랜 통치 기간 동안 건륭제에 얽힌 역사적 사건이 많았는데, 이 책에서는 사리사욕의 절정에 달한 기인관료 화신(和?)과 건륭제의 한인설을 상세하게 다루었다.
건륭 시기는 만주족의 혁신정신이 최고조에 달해 복합 다민족국가를 완성해간 시기이지만, 동시에 그 혁신정신이 꺾이면서 보수성으로 돌아서기 시작한 분기점이기도 하다. 건륭제의 장기간에 걸친 외정은 최대 판도를 형성한 대가로 풍요로운 국고를 낭비하고,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거듭되는 혁신을 통해 성장과 확대를 거듭해온 청조의 특성은 건륭제에 이르러 종언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이후 청조는 서서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청조는 저항운동을 전개하며 치발에 거역하는 자는 즉각 사형에 처하는 강력한 태도를 취했다. 한족에게 목숨을 택할 것인가, 변발을 택할 것인가의 양자택일을 강요한 나머지 항간에는 □머리를 남기고자 하면 머리카락을 남길 수 없고, 머리카락을 남기고자 하면 머리를 남길 수 없다□는 말이 떠돌게 되었다고 한다. 이 치발령은 중국 역사상 유례없는 탄압 사건으로 발전했다.
― 본문(147쪽) 중에서

비공개인 주접의 원본에 가필된 비를 통해서 우리는 옹정제의 생생한 육성을 들을 수 있다. 특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 주접을 보낸 지방 관료 본인에 대한 평가 부분이다. □無知(어리석은 놈)□, □無識小人(어리석은 놈)□, □覽, 笑之(살펴보았다, 우습다)□, □覽奏, 深爲嘉悅(주문을 읽어보았다, 매우 기쁘고 즐겁다)□, □嘉悅覽之(기쁘고 즐겁게 읽었다)□, □好, 勉力(좋다, 열심히 하라)□, □勉之(열심히 하라)□, □朕懷(그립다)□, □深慰, 朕念(수고 많았다)□ 등 그곳에 기록된 질책과 격려의 말을 하나하나 열거하려면 끝이 없다. (…) 각각의 관료와 깊은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들을 장악하고, 정치에서 자신의 독재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옹정제의 관료정치에 대한 의욕이 보통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기에서 엿볼 수 있다.
― 본문(191~192쪽) 중에서

절강성(浙江省) 해녕주(海寧州)에 살고 있는 진씨(陳氏) 일족이 있었다. (…) 이야기는 강희 연간, 옹정제(윤진胤?)가 아직 제위에 오르기 전의 일이다. 이 진씨와 윤진은 서로 깊은 친분을 맺은 사이였다. 윤진에게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무슨 기이한 인연인지 진씨에게서 태어난 사내아이와 생년월일에서 태어난 시까지 모두 같았다. 이 사실을 알고서 기뻐한 윤진은 뜻밖에도 자신의 아들과 진씨의 아들을 바꾸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윤진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사실은 계집아이였기 때문에 비(妃)가 비밀리에 진씨의 아들과 슬쩍 바꿔치기했고, 윤진은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고도 한다. 어찌 되었든 이 바꿔치기 한 아들이 후의 건륭제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황제는 만주족이 아닌 한족이 된다. 청조가 중국 내지 지배를 착실하게 확고히 다져가는 이면에 감춰진 건륭제 출생의 중대한 비밀. 이것은 한족[華]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을 지배하는 강대한 만주족[夷]의 청조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들 수 있는 이야기거리이고, 이보다 더 통쾌한 소문의 근거는 없을 것이다.
― 본문(213~214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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