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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005
1부 건축의 기억 1. 지난 시간을 살려내는 것, 선유도 공원 2. 골목의 기억, 쌈지길 3. 바다를 그리워하는 집, 빌라 사부아 4. 어떤 상상력, 료안지 5. 세한도의 마음, 추사고택 6.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마음, 소쇄원 7.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김옥길 기념관 8. 집의 이름은 사람을 닮고, 선교장 9. 어린 날의 판타지, 상상사진관 10. 그 장소는 어디로 갔을까? 종로타워 11. 한국인의 서정, 국회의사당 건축 이야기 1) 낡은 장소의 새로움을 입히다, 리노베이션 2부 예술의 가장 좋은 친구 12. 어느 구도자의 삶, 구엘 공원 13. 맞잡은 두 손이 되어, 롱샹 성당 14. 백자와 여자,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15. 게르니카와 유대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16. 느림의 공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17. 얇은 막 안의 시민들, 플라토 갤러리 18. 세 개의 시간,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19. 황홀한 빛의 캔버스, 산크리스토발 주거단지 20. 여행하는 공간, SJ 쿤스트할레 건축 이야기 2) 생활의 여백, 계단 3부 도시의 삶, 도시의 건축 21. 괴물, 예술이 되다, 에펠탑 22. 나무로부터 나무에게로, 토즈 빌딩 23. 건축으로 광고하기, SKT 타워 24. 거리의 추상화, 아이파크 사옥 25. 그 시대의 민낯, 세종로 26. 사각형에 대하여, 서초삼성타운 27. 어디서 무엇이 되어, 아파트 28. 걷는 즐거움, 서울역 고가공원 29. 구보 씨의 일일, 문화역서울 284 30. 육지가 된 섬, 잠실 건축 이야기 3) 높이를 욕망하다, 마천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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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유도 공원은 새것에 대한 강박증을 버리고 골동품을 존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것은 콘크리트 폐허 속에 자연을 방치하여 그 둘이 공생하게 하는 개념이었다. 공원의 콘크리트 폐허 벽면과 기둥 곳곳에는 무성한 담쟁이덩굴과 갖가지 나무줄기들이 자리 잡았다. 여기저기 흉물스럽게 갈라진 옛 정수장 구조체 틈새의 비좁은 공간은 식물들이 촘촘히 메우고 있다. 폐허와 자연의 공존……. 이 낯선 풍경은 어쩐지 아주 먼 미래, 인간이 사라진 도시의 콘크리트 더미가 스스로 자연화되는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선유도 공원」중에서 쌈지길(2004)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인사동 골목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하나의 좋은 예시가 되는 건축적 실험이다. 쌈지길이 들어설 무렵 인사동은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살던 영세한 작업실과 가게, 갤러리들이 하나씩 밀려나고 거대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하나둘 들어오면서 본래의 맛을 잃어가던 상태였다. 이런 변화 속에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인사동의 골목길은 자본 논리에 의해 살아남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쌈지길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인사동의 골목길 풍경을 차곡차곡 접어 건축으로 재생시킨 결과물이다. ---「쌈지길」중에서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이 이 집을 처음 지을 당시에는 저택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쉰세 칸짜리 집이었다. 하지만 1976년 개·보수한 추사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사당이 조합된 작은 주택으로 조성되었다. 손님을 맞는 사랑채는 낮은 툇마루를 길게 늘어뜨려 넉넉한 바깥주인의 인심을 보여준다. 걸터앉아 담소를 즐기며 바람을 맞는다. 사랑채 앞마당에 핀 작은 과실수와 꽃들을 보며 집을 관통하는 온화한 계절을 느낀다. 사랑채 뒤편으로 돌아가면 안채가 보인다. ---「추사고택」중에서 내로라하는 국내 유명 건축가들이 응모했는데 그중 중견 건축가 김정수(1919~1985)의 설계안이 당선된다. 원안은 반듯하고 정갈한 상자형 건물로 계획되었다고 하는데 정부가 개입해서 당선 안을 여기저기 뜯어고쳤다는 후문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붕 위에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 관공서에서 많이 본 듯한, 어정쩡한 초록색 돔이 얹혔고 거대한 건물의 처마 밑엔 다분히 장식적이며 위압감을 주는 기둥들이 줄줄이 늘어섰다. 말로는 다양한 민의를 표현하는 전통 양식의 민흘림기둥 스물네 개를 세운 것이라고 했지만, 그 시대 정국을 돌이켜보면 제국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호위병의 도열이나 다름없었다. ---「국회의사당」중에서 애초 빌바오 시는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처럼 도시를 상징할 만한 명물을 원했다. 심심하고 정형적인 건축을 거부하는 게리는 그런 면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바스크 당국이나 미국 구겐하임재단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누가 봐도 제멋대로인 비정형적 건축물이 빌바오에 등장했다. 정신없는 선이 자유롭게 뒤엉킨 듯한 이 집은 게리가 속한 유대인들의 과거사를 더듬으며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절묘한 지점에 서 있다. 오랜 세월 독립을 원했던 바스크의 투쟁적 역사, 이 지방의 평화로웠던 작은 마을 게르니카에 대한 히틀러와 프랑코의 무자비한 폭격, 그리고 히틀러에게 인종청소를 당했던 유대인들의 아픈 과거는 이 미술관 안에서 공존하며 현재의 관람객을 만난다. 그리고 미술관은 이 모든 과거를 증언하는 오브제로서 미래를 향해 발화한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중에서 때로는 멋지고 화려한 건축물보다 모두에게 개방된 공공 계단 하나가 그 도시를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몇 해 전 뉴욕 타임스퀘어의 더피 광장에 지어진 레드카펫 계단처럼 말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계단에 대해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전망 좋은 자리는 무료”라는 찬사를 보냈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에 작지만 멋진 아이디어를 보태 공공 공간의 매력을 돋보이게 한 훌륭한 사례다.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는 건 물론이다. 계단의 전면은 매표소. 당일 공연하는 뮤지컬 티켓이나 연극표를 반값에 파는 열두 개의 공공 티켓 부스로 이루어졌다. ---「건축 이야기 2」중에서 지하 4층, 지상 15층 규모의 건물 정면에는 지름 62미터의 철골 원형 프레임이 둘러져 있다. 원을 관통하며 건물 북쪽 측면을 뚫고 대각선으로 솟아오르는 대형 은색막대는 전체적인 조형을 파격적으로 유도한다. 원형 프레임 안에는 짙은 빨강의 크고 작은 사각형 박스들이 다양한 선과 어울리면서 색다른 조형미를 뿜어낸다. 리베스킨트는 건물 정면에 붙은 이런 회화적 장식물을 건물 안의 근무자와 건물 밖 행인 서로가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종의 열린 무대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장난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잘 살펴보면 건축가가 도시에 던지는 메시지가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된다. 결국 도시에 사는 우리는 테두리 안에 갇힌 존재라는 것.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어떤 제도적 경계가 우리를 한정 짓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파크 사옥」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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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건축의 문을 열다
지은이가 건축 이야기로 독자를 안내할 때 가장 즐겨 불러내는 ‘조수’는 단연 예술이다. 미니멀리즘 건축 기법이 사용된 ‘김옥길 기념관’ 문을 열기에 앞서, 지은이는 도널드 저드의 ‘무제’ 시리즈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인체 조각을 소환한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듯한 자코메티의 인체가 독자의 눈앞에 불러낸 이미지와 함께, 그의 건축 이야기가 시작된다. 건축 면적이 고작 62.64제곱미터(18평)에 불과한 작은 공간은 짓다 만 것 같은 투박한 ㄱ자 노출 콘크리트 벽에 의해 별도의 실내 마감도 없이 구획되어 있다. 연달아 늘어선 ㄱ자 벽 사이에는 유리 한 장이 창틀 없이 거칠게 끼워져 있다. 통상적으로 건축물에 필요한 요소와 부재部材를 최대한 덜어낸 것이다. 그나마 1층으로 들어가는 유리문과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 정도가 이 조형물을 건축물로 이해하게끔 해주는 요소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김옥길 기념관」 중에서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한 프랑스의 롱샹 성당으로 안내해주는 작품은 밀레의 걸작 「만종」이다. 두 부부가 두 손을 맞잡고 기도를 드리는 모습으로 표현해낸 소박한 종교적 서정성을 곡절 많은 역사를 지닌 롱샹 성당에서도 읽어내는 것이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조선시대 백자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의식」과,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마그리트의 「데칼코마니」와, 빌라 사부아는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비 오는 파리」와 연결된다. 지은이는 예술 작품 이야기에 공력을 쏟는 듯 보이지만, 어느새 회화나 조각, 비디오아트는 ‘집’ 이야기로 흘러가 있다. 오랜 세월 독립을 원했던 바스크의 투쟁적 역사, 이 지방의 평화로웠던 작은 마을 게르니카에 대한 히틀러와 프랑코의 무자비한 폭격, 그리고 히틀러에게 인종청소를 당했던 유대인들의 아픈 과거는 이 미술관 안에서 공존하며 현재의 관람객을 만난다. 그리고 미술관은 이 모든 과거를 증언하는 오브제로서 미래를 향해 발화한다. -「게르니카와 유대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중에서 ‘건축에서 예술 읽어내기’ 또는 ‘예술에서 건축 읽어내기’는 독자의 머릿속에서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건축물의 콘셉트를 명확하게 그려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도시의 삶, 도시의 기억 한편, 건축가인 지은이가 삶의 현장으로서 집중하는 곳은 ‘도시’다. 아파트를 비롯해 도시인들의 삶을 구성하는 건물들에, 지은이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1958년 처음 세워진 종암아파트에서 시작해 롯데월드타워가 준공된 잠실 개발까지로 흘러가는 서울의 ‘아파트 역사’는 작은 생활사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국내 첫 아파트는 1958년 세워진 종암아파트다. 건국 이후 최초로 ‘아파트먼트’라는 타이틀이 붙은 건물로, 국내 시공사인 중앙산업이 지은 것이다. 최초로 수세식 화장실을 세대별로 하나씩 배치한 이 아파트의 준공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수세식 화장실’이라는 단어를 친히 언급하기도 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아파트」 중에서 또한 그는 종로타워, 아이파크 사옥, 서초 삼성타운 등의 거대한 건물이 도시에 불어넣는 감상과 풍경 변화에 촉각을 세운다. 이러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공공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오랜 역사를 지닌 세종로가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독재의 흔적을 간직한 국회의사당에는 새로운 쓰임새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 로마의 명소인 스페인 광장, 뉴욕 타임스퀘어의 더피 광장을 살펴보며 복잡한 회색빛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새로운 공적 공간을 구상해보기도 한다. 그럼 우리는 어떤 상황일까. 서울만 보더라도 모두의 명소가 된 선유도 공원(구 서울 정수장터)부터 얼마 전 소격동 옛 기무사 터에 들어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도서관으로 재생한 서울시의 옛 청사 등등 다양한 공간과 장소가 속속 탄생하고 있다. 얼마 전 큰 이슈가 되었던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재생 계획은 개발 효과에 대한 협의체의 갑론을박이 거듭되는 중이다. -「건축 이야기 1, 리노베이션」 중에서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여러 공간들을 향유하고 애착을 갖게 된다는 것은, 삶의 즐거움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건축가 최준석이 전해주는 건축의 속삭임을 듣다 보면, 독자들도 길에서 마주치는 내 삶과 밀착된 건물들로부터 의미를 읽어내고 보다 애정 넘치는 눈길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건물로 가득한 도시의 삶을 조금 더 살 만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