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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1부. 아름다움의 제국 ㆍ그녀의 초상화 I. 가설들과 개념들 ㆍ동굴 벽화에 나타난 원시인들의 삶의 의지 ㆍ미메시스와 계몽 ㆍ근대의 꽃 예술 II. 안티케와 근대 ㆍ안티케의 예술 ㆍ근대인의 안티케 ㆍ이성의 승리를 예찬하는 예술 III. 오늘날 되돌아본 근대 ㆍ혁명 대신 기획한 예술 공화국 ㆍ예술 공화국의 유산과 놀다 ㆍ근대인의 자의식과 문학 ㆍ분석과 종합 2부. 내재 비판의 제국 ㆍ피에로 I. 시민사회와 예술 ㆍ자유 ㆍ자율 ㆍ시민적 계몽의 당착 II. 변증법과 형이상학 ㆍ예술과 사회의 변증법 ㆍ사적 유토피아의 변증법 ㆍ일상이라는 이름의 형이상학 III. 몸의 언어, 마음의 언어 ㆍ방황하는 몸 ㆍ색채와 몸이 아닌 마음으로! ㆍ도망친 아이는 어디로 갔는가 ㆍ심장에서 우주로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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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우리가 학교에서 ‘시민혁명의 본고장’이라 배우는 나라의 수도이다. 그럼에도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보다 패션과 예술로 더 유명한 도시. 루브르 박물관도 이 도시에 있다. 루·브·르라는 석자로 부르주아 예술의 존재감을 묵직하게 드러내는 이 건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어느 여인의 초상을 걸어둔 방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한다. 이 방에는 '라 조콘다' 한 점만 걸려 있다. 그러나 요즘,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라 조콘다'의 방에 가면 아름다움의 제국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바삐 움직이는 관광객들의 발소리가 어수선하다. --- ‘그녀의 초상화’ 중에서
개명된 개인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와 관련하여 오디세우스가 에게 해를 떠돌면서 겪는 모험들만큼 흥미진진한 예화도 없다. 계몽을 실행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갚아야 하는 업보를 치르느라, 오디세우스는 험난한 모험을 한다. 그저 원래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굽힐 줄 모르는 의지로 험난한 여정을 견뎌냈던 오디세우스의 삶은 근대인의 삶이기도 하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자연력에 맞서 싸우는 계몽된 인간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 즉 인류 최초의 문명인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한시도 잊지 않는 강고한 의지로 요정이나 거인으로 의인화된 자연력을 제압해 나간다. ……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알량한 분석능력으로 자연력을 제압하려고 마음먹었던 덕분에 망망대해에서 허우적거리며 계속 방황해야 했다.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든 형국이다. --- ‘미메시스와 계몽’ 중에서 '라오콘 군상'은 서구인들에게 인간사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거듭 새롭게 체험하도록 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구 역할을 해왔다. 신의 의지와 인간의 생존권이 충돌하는 지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근대인은 타고난 정신능력으로 하늘의 별을 헤아릴 줄 알지만 동시에 발은 땅에 디뎌야 하는 현실적 존재였으므로, 문명인이라는 개념에는 이러한 ‘내적 갈등’이 내포되어 있었다. …… 고대 그리스의 연합군과 도시국가 트로이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신화적 전승으로 내포하고 있는 '라오콘 군상'은 이러한 내적 갈등으로 인한 충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신에게 가까이 가기보다 오히려 인간 편에 서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던 라오콘은 떠나겠다던 그리스인들이 남기고 간 대형목마가 트로이에 몰고 올 재앙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더 크고 강력한 제국(로마)을 세워 영원히 번성토록 하겠다는 신들의 뜻에 따라 트로이는 몰락해야 했지만, 사제는 인간의 편에 서서 신들의 뜻에 맞섰다. 목마를 성 안으로 들이자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말린 것이다. 올림포스의 신들로서는 동족을 구하기 위해 천기를 누설하려는 사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뱀 두 마리가 에게 해를 가로질러 라오콘의 일터로 몰려와 세 사람을 휘감는다. 그리고 트로이는 화염에 휩싸인다. …… 근대인들에게 로마제국의 성립은 진보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진보를 위해선 트로이 시민들이 겪은 것과 같은 고통이 반드시 따르기 마련이다. 역사의 진보를 처음으로 자각하고 진보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한 계몽주의자들에게 라오콘의 고통은 가슴에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 역시 자기확신과 회의 사이에서 몸부림쳐야 했기 때문이다. 라오콘의 비극적인 전설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그가 행한 일, 그가 받은 고통이 모두 참으로 인간적인 탓이다. --- ‘안티케의 예술’ 중에서 괴테와 실러가 독일의 바이마르에 ‘예술 공화국’을 수립하겠다고 마음먹었던 18세기 말, 유럽은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독일의 양식 있는 식자들은 자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개탄하였다. 낙후된 현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들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상황을 타개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괴테와 실러가 바이마르에서 만났던 것이다. 그들은 이웃 나라 프랑스에서 혁명을 통해 성취한 것을 연극 운동을 통해 풀어보고자 하였다. 예술이 철학적 사유와 결합한다면, 시도해볼 만한 일이었다. 이를 위해 문학이 제일 먼저 동원되었다. 관념적이고 어려운 독일 문학의 전통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독일 계몽주의자들은 예술을 사회구조를 바꾸어낼 무기로 생각하였다. --- ‘혁명 대신 기획한 예술 공화국’ 중에서 가르텐하우스는 바이마르 시내에 있는 괴테의 생가보다 고전주의 예술의 향기를 더 제대로 간직한 명소로 꼽힌다. 이 집 자체가 바이마르 고전주의의 이념을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는 까닭에 괴테 예술의 아우라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로 1년 내내 북적인다. …… 1999년 독일인들은 이 집을 그대로 복사하는 일을 감행했다. 단순퇇 장난이라 하기에는 비용도 굉장히 많이 들었다. 150만 마르크나 되는 큰돈이 투자되었다. 축성일 당일에는 히틀러의 일기를 가짜로 써서 유명해진 콘라트 쿠야가 참석해서 ‘한 말씀’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이 집은 2000년 하노버 박람회에서 전시되었다가 2002년 엄청난 돈을 받고 휴양지에 임대되어 관광 명소가 되었다. 팝 이벤트 공연장으로도 인기가 높다. 괴테와 함께 팝 콘서트를?! --- ‘예술 공화국의 유산과 놀다’ 중에서 피카소가 그린 솔레르씨 가족은 어쩐지 답답해 보인다.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 같은데도 아이든 어른이든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 둘러친 울타리 어느 한 구석이 무너진 것일까? 그 사이로 뱀이 기어오는 것이라도 보았단 말인가? …… 답답함의 원인은 의외로 간단한 데 있다. 에덴동산을 세속화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가족은 태초의 에덴동산처럼 처음부터 그렇게 존재해왔던 것이 아니다. 인간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추진한 기획의 산물이다.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만들어낸 가공물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다고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대인은 에덴동산을 세속화시킬수는 있었지만 모든 조건을 에덴동산과 같이 만들 수는 없었다. 옛 에덴 동산에서는 하느님이 내려주신 과일을 그냥 따먹으면 되었지만 세속화된 이곳에서는 은총이 돈으로 내린다. 돈으로 유지되는 에덴동산은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 ‘시민적 계몽의 당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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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장식품? 한가한 유희? 정치적 수단?’
한국사회가 몰랐던 예술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난다 ‘아름다움의 제국’의 번영과 몰락! 예술은 어떻게 서구 근대 사회를 통합했는가? 예술은 힘이 세다. 한 편의 글, 그림, 음악 혹은 영화는 그저 보고 잊으면 그뿐인 하나의 소일거리일 수도 있지만 때때로 거대한 감동이 되어 보는 이에게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한 번의 통쾌한 웃음은 종종 지루한 일상사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날려 주며, 찰나였을지라도 눈물 한 방울의 카타르시스를 맛 본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남들보다 가벼울 수 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예술이 전한 감동의 파고에 휩쓸려 삶의 향방을 완전히 바꾸기도 한다. 오래전, 서구사회는 예술이 지닌 이 힘에 주목했다. 혁명을 통해 이전 시대의 것들과 작별을 고한 서구 근대는 사회를 통합하고 갈등을 해결할 새로운 이념의 자리에 예술을 불러들였다. 폐기처분되다시피 한 주술과 종교 대신, 근대인이 믿고 의지할 새로운 이념으로 예술을 내세웠던 것이다. 예술을 통해 카타르시스와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은 스스로 ‘교양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더 많은 ‘교양시민’을 육성하는 사회기관의 자리에 예술을 올려놨다. 혁명을 통한 사회 변혁을 도모할 수 없었던 독일 사회에선 ‘예술 공화국’이 대안적 프로젝트로 제시될 정도였다. 예술은 계몽의 시대, 서구사회가 품은 갈등과 혼란을 해결하고 봉합하는 하나의 통합기관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근대 서구사회는 가히 예술을 통해 성립된 하나의 제국, 즉 ‘아름다움의 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친구와 경쟁하고 동료를 적으로 삼아야 하는 21세기 자본주의 사회, ‘아름다움의 제국’은 무너져 내리는 중이다. 화폐로 바로바로 환산되지 않는 것은 별다른 가치를 획득할 수 없는 지금, 한때 서구 근대사회의 중심 이념이자 방황하는 근대인의 심리적·실질적 안식처였던 예술의 찬란함은 사회변화의 광풍 속에 빛이 바랜 지 오래다. 당장의 생활을 위해 앞뒤 없이 달려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개념을 흔들고 근원을 되짚는 예술은 사치와 동의어다. 한 편의 예술작품이 지닌 가치는 환산된 화폐로만 평가될 뿐이며, 바쁜 일상에 쫓기는 사람들은 더 이상 ‘교양시민’으로 살고자 하지 않는다. 박물관과 미술관에 박제된 예술품은 현대 관광객의 순례대상으로 전락했다. 장식과 유희, 수단으로서의 역할만이 예술의 얼굴로 오인당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인의 운명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21세기 자본주의 제국의 신민들에게 예술은 무엇이며, 또 어떤 의미여야 하는가? 『예술, 서구를 만들다』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분열과 혼돈의 21세기를 위한 미학적 탐험! 알타미라에서 게르니카까지, 서구 근대를 밝힌 예술을 읽는다 혼란과 분열이 운명이라면, 그것을 극복하는 것 또한 인간에게 주어진 의무일 터, 『예술, 서구를 만들다』는 혼돈의 시대를 헤쳐 나가는 길을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예술에서 찾아보려는 시도이다. 서구 예술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고 현대의 대표적 예술작품들을 일별함으로써, 근대 이후 반복된 분열을 극복하고 행복으로 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독특하고 진지한 미학적 탐험을 위해 신화와 설화, 고대와 근대, 현대를 넘나든다. 호메로스의 이야기 속 오디세우스를 통해 근대인의 고단한 삶을 성찰하는가 하면, 모두의 외면 속에 희생당한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 이야기와 그 모습을 형상화한 '라오콘 군상'을 통해 반복되는 인간사와 예술의 역학관계를 음미한다. 예술의 품 안에서 살고자 고향을 등졌다가 귀국을 결심하자 병을 얻은 빙켈만, 시민예술의 폭넓은 이해와 실현을 위해 일부러 아리스토텔레스를 오독한 지식인으로 남은 레싱, 인간이 지닌 심미안이 조화와 통합으로 가는 단초임을 밝힌 칸트, 혁명을 꿈꿀 수 없을 정도로 분열된 독일사회의 통합을 위해 예술 공화국을 꿈꿨던 괴테와 실러, 계몽 이후 인간에게서 사라진 자연의 회복을 위해 종합예술작품의 필요성을 주창했던 바그너, 조화와 합일로 대표되는 그리스 예술을 전범으로 삼아 자연과 예술, 그리고 삶의 합일을 도모했던 이사도라 덩컨, 그리고 서구 문명화과정 자체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계몽의 남용이 드리운 그늘을 밝혀내고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환기한 아도르노에 이르기까지 촘촘하게 놓인 수많은 사건과 일화, 인물들의 이야기는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서구 예술사를 꿰뚫는 동시에 한국사회가 미처 보지 못했던 예술의 또 다른 얼굴, 즉 사회의 기관이자 변혁의 주체로서의 예술의 역할을 새롭게 환기한다. 다양한 학자와 저술가, 예술가들의 개념과 시각을 빌려 짚어 나가는 예술사의 단면과 개념들은 그간 우리가 보지 못했던, 혹은 보고도 모른 척했던 근대의 그늘을 드러내며, 더불어 그 그늘을 극복하기 위해 고투했던 예술의 활약상을 차분하면서도 화려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예술, 서구를 만들다』가 시도하는 미학적 길 찾기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아도르노에 이르는 만큼 장구하며 또한 방대한데, 이 거대한 탐험의 규모에 어울리게 책 속에는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동원되었다. 페이지를 가득 채운 고대 원시 벽화와 신전, 조각상, 그리고 수많은 회화작품들은 이 책 『예술, 서구를 만들다』를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며, 조금은 낯설 수도 있는 개념과 가설들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매우 친근한 가이드 역할을 한다. 다 빈치, 렘브란트, 뒤러, 브뤼헐, 고흐, 마네, 모네, 드가, 멘첼, 로댕, 뒤샹, 리히터, 워홀, 클레, 베크만, 피카소 등을 아우르는 예술가와 예술작품이 저자 특유의 시각으로 해석되어 있어 보는 즐거움과 읽는 재미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 『예술, 서구를 만들다』는 분열과 혼돈의 업보를 지고 살아가는 근대의 후손들을 위한 성찰이며, 어떻게 해도 행복해지기 어려운 자본의 세기, 스스로를 돌아볼 새조차 없었던 대중을 위한 삶의 길라잡이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조근한 이야기와 차별화된 해석은 ‘예술’이라는 언어에 주눅 들었던 대중에게 개별 예술작품을 읽는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며, ‘도대체 왜 하필 예술인가’를 묻고 싶은 생각 많은 독자에게 또 다른 위안이 되어 준다. 여전히, ‘예술’은 힘이 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