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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시작과 마지막 낙차 사람들 어그러진 삶 끝없는 전쟁 비밀의 자락 새 출발 전쟁과 죽음 인연 그을음 만남 비밀의 내부 승부 알게 된 비밀 위기 뻐꾸기 새끼 회귀回歸 대역사大役事 대단원 후기後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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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6년 9월 24일 준공,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소실
우리는 늘 잃은 다음에야 그 가치를 알고 후회하지만, 숭례문崇禮門의 망실亡失은 비통하다는 말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숭례문은 단순한 문이 아니라 조선의 정문正門이었으며 역사의 증거였다. 광화문光化門이 왕실과 외부를 구획하였다면 숭례문은 왕실을 담고 있는 수도의 파수꾼이었고 조선과 다른 세계가 연결되는 통로였으며, 조선 자체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기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흥인문興仁門과 돈의문敦義門을 위시한 다른 대문들보다 훨씬 오래 공들여 세웠던 것인데, 한 개인의 어이없는 행동에 의해 한갓 폐기물로 전락하였다니 그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할 따름이다. 그나마 현판이라도 구하였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려 해도 부르륵 끓었다가는 식고 마는 우리에 의해 망실忘失의 낙차에 함몰될 숭례문을 생각하면 글보다는 피를 뿜으며 울부짖고 싶은 심정이다. 어차피 복원이야 되겠지만 본래의 숭례문이 완벽하게 재현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복원된 숭례문이 진품과 동일한 것은 숭례문이라는 명칭밖에 없지 않겠는가. 복제품에 지나지 않는‘짝퉁 숭례문’에서 역사와 가치가 재생될 수는 없을 것이며, 그것에서는 더 이상 그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것을 실증하는 일 외에 추가적 기능을 발견하기 어렵다. 숭례문의 유통기한은 2008년 2월 10일로 종료된 것이다. 『소설 숭례문』은 폐허에 바치는 애도哀悼의 조사弔辭가 아니라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숭례문의 내면을 재현하기 위한 용도에서 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숭례문의 현판을 양녕대군讓寧大君(1394~1462)이 쓴 것으로 착각하고 있듯이, 숭례문을 세운 사람들을 조선인들로 착각하고 있다. 사실 숭례문을 세운 사람들은 조선이 아닌 고려 사람들이었다. 숭례문을 설계하고 세운 사람들은 전부 고려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하다못해 서까래에 쓸 목재를 베고 기와를 구워 얹은 사람들 또한 고려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조선은 단지 그들의 고력苦力에 의해 완성된 걸작에 문패를 붙이고 소유권을 등기했을 뿐이었다. 나는 숭례문을 완성한 고려의 목수들을 추적하고 그들의 삶과 한을 채굴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다. 고려의 사람으로 조선을 위해 일해야 했던 그들을 찾아내 인터뷰한 결과가 『소설 숭례문』이다. 고려의 왕자였던 사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숭례문을 세우게 되었으며, 그가 겪었던 사랑과 고통이 어떻게 치환되었는지 낱낱이 탈곡하여 담아내었다. 묵중한 망치가 날카로운 끌의 정수리를 때리는 것처럼 한 획, 또 한 획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숭례문의 내부에 함유된 진실이 속살을 드러내었다. 공민왕恭愍王(1330~1374)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황음荒淫하지 않았으며, 비루한 형태의 죽음을 당하지도 않았다. 우리에게 알려진 음란하고 타락한 고려의 모습은 반역을 정당화하기 위해 덧칠된 그림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소설 숭례문』에는 그동안 비틀리고 짓눌렸던 역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 숨쉰다. 나는 그렇게 복원에 동참하였으며 숭례문의 유통기한을 무한대로 연장하였다. 그리 길지 않은 작가 인생 가운데 이번 작업이 가장 값지고 영광스럽다. |